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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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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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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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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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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영화밥 먹고 살 팔자...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점심방송 때문에 늦은 점심을 먹은 류지호가 대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에는 공연에 참가할 몇몇 학생들이 공연연습을 하고 있다.

개학 직후 신포고 학생회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교내팀들이다.

특이한 것은 비보이팀과 응원부가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벌인다는 것.

춤으로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존심 싸움이다.


짝!


한수호가 박수를 한 번 쳤다.

한눈을 팔고 있는 방송부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1학년들은 선부터 깔고, 2학년들은 바텐에 달린 조명 확인하자.”

“레쯔 고우!”


방송부원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무대 왼쪽으로는 출연자 대기실이, 오른쪽으로 음향과 조명시설 컨트롤 룸이 위치했다.

류지호는 오른쪽 컨트롤 룸으로 들어가 마이크 선을 끌고 나왔다.

한수호가 무대 천장에 달려있는 라이트 바텐을 확인하고 있는데, 학생회장이 말을 걸었다.


“리허설은 언제부터 할 수 있어?”

“출연자들 다 모인거야?”

“너희들 준비되면 부르려고.”

“우리는 어제 세팅 다 해놨어. 선만 연결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어.”


학생회장이 손목시계를 들어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2시부터 하는 걸로 하자.”


미리 와서 연습하던 출연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신포인의 밤 공연은 전적으로 학생회가 주도한다.

방송부는 음향과 무대조명만 책임졌다.

신포인의 밤 공연에서 방송부가 특별히 할 일은 없다.

류지호와 1학년들은 강당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리허설을 지켜봤다.

따분한 시간이다.


“심심하네.”


류지호가 툭하고 속내를 내뱉자, 김석민이 말을 받았다.


“그럼 수업 들어가.”

“넌 왜 수업 빠졌는데?”

“축제잖아.”


공부 외에 한 눈 파는 법이 없는 김석민도 은근히 축제가 기꺼운 모양이다.

박상은이 벌떡 일어서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시간 죽이는 것도 지루한데, 드라마 연습이라도 할래?”

“이렇게 멍 때리고 있으면 뭐하냐. 우린 본공연 때 라인만 지켜볼 건데. 상은이 말대로 드라마 연습이나 하자.”


류지호도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며 동조했다.


“다들 동의한 거다?”


박상은의 물음에 친구들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형한테 이야기 하고 올게.”


그렇게 강당에서 신포인의 밤 공연 리허설을 하는 동안 1학년들은 방송실로 자리를 옮겨 드라마 연습을 진행했다.


“당신이 훔치지 않았다는 걸 뭘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수호형이 경찰관은 불친절하다고 했어. 지금 철웅이 너는 조금 친절한 것 같아.”

“그럼 목소리 깔아 볼까?”


친구들이 드라마 대사를 연습하는 동안 류지호는 큐시트를 보며 음향효과와 배경음악 타이밍을 시뮬레이션 했다.


띠리리링!


수업종이 교내에 울려 퍼졌다.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온 학생들이 긴 행렬을 이뤄 대강당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마치 개미떼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교문도 활짝 열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근에 위치한 타 학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간간이 여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강당에서 공연을 앞둔 관현악단의 악기 조율 소리와 보컬 그룹의 악기 튜닝 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느새 대강당은 교내외 학생들과 교사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교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신포인의 밤 공연의 막이 올랐다.

사인방 친구들 역시 강당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공연을 즐겼다.

결코 수업을 기다릴 때의 우울하고 생기 없는 표정이 아니었다.

다른 신포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껏 들떠 있었다.


따라라~


클래식 기타반의 공연에 이어 차력쇼와 개그콤비의 만담이 차례로 이어졌다.

비보이팀과 응원부가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과 율동을 선보였다.

신포고 합창단이 귀에 익숙한 가곡과 ‘꽃밭에서’ 등의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관현악단이 클래식과 팝송을 넘나들며 학생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취미로 하는 애들 실력이 꽤 괜찮네......’


서클들의 전통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고등학생 평균 이상의 실력을 뽐냈다.

공연을 마친 팀이 무대를 빠져나가고 후속 팀이 교체될 때마다 류지호와 박상은이 마이크 스탠드를 가져다 놓기 위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연자가 마이크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하울링을 일으켜 당황할 때도 번갈아 무대 위에 올라갔다.


휘이익!


류지호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면 고우찬과 강용석 같은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며 응원했다.

음향시스템을 관리하는 모습이 전문가 같아 보여 은근히 멋있게 보이는 모양이다.

대강당 조명도 방송부 통제다.

일부 학생은 백스테이지를 들락거리는 방송부를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보기도 했다.

몇몇 학생은 대기실과 음향실을 기웃거리며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방송부들은 이런 것이 일상이다.

사실 별 것도 없는 행위들이다.

다만 허가된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막상 들어가 보면 별 것 없지만, 괜히 궁금해지는 그런 거다.

외부 학교의 찬조공연과 졸업생과 함께하는 공연까지 모두 마쳤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보컬 밴드가 무대로 올라왔다.


와아!

휘익!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와 격려가 강당을 뒤흔들어놓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밴드의 공연이다.


딴딴딴. 딴따따단.


너무도 유명한 ‘Smoke on the water’의 전주.


“예에에에에에~”


신포고 유일의 밴드 데스레인 보컬의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본격적인 밴드공연의 막이 올랐다.

신포고 강당은 락밴드 공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달아올랐다.

매일 반복되는 수업.

성적에 대한 압박감.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걸 잊었다.

학생들은 온몸으로 해방감을 분출하며, 학업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끝나지 않는 파티는 없다.

썰물처럼 학생들이 빠져나간 강당은 방송부들만의 차지가 되었다.

대강당 곳곳에 검은색 종이들이 떨어져 있다.


“제기랄, 암막 대신 붙여놓은 색종이들 많이 떨어졌어.”


이재호가 욕설 섞인 짜증을 토했다.

공연의 열기가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창문을 가리기 위해 붙여놓은 검은색종이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다.

몇 군데 창문은 검은색 종이가 당장 떨어질 듯 나풀거렸다.


“에휴~”

“한숨 쉴 시간 없어. 빨리 사다리 가져와.”


1학년들이 얼른 창고로 달려가 사다리를 가져왔다.

창문마다 암막을 치는 작업을 또 다시 반복했다.

중간에 당직 교사가 찾아와 얼른 귀가하라고 종용하고 돌아갔다.

11시를 훌쩍 넘겨서야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시내버스 막차 시간이 지나버렸다.


“어떻게 하지?”

“엄마한테 혼나는데...”

“난 전화해서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학교 간다고 해야지.”

“오늘 외박하는 거야?”


1학년들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다들 시골집에 놀러갈 때 빼고 외박을 해봤을 리가 없다.

류지호만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뿐.

영화 일을 하다보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게 된다.

집에 들어간 날보다 밖에서 잘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수호가 당직 교사에게 부탁해 교무실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선생님 바꿔 드릴게요. 통화해 보세요.”


김석민의 경우 당직교사가 부모님과 통화 하는 수고를 하고서야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스!”


김석민이 기쁨에 소리를 질렀다.

난생처음 해보는 외박이 대단한 일탈인양 흥분했다.


“형들 배고파요!”

“지금 문 연 가게가 없어.”

“방송실에 라면하고 코펠 있잖아요. 치사하게 형들만 먹으려고 숨겨놨죠?”

“이렇게 된 거 라면 먹고 날밤 까보자!”


방송부원들이 당직교사 몰래 방송실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입이 열 개라 양이 턱없이 적었다.

국물로 배를 채울 뻔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3학년들이 간식거리를 잔뜩 싸들고 대강당을 찾아왔다.


“고생해라.”


후배들 간식을 챙겨준 3학년들이 학교 근처 독서실로 돌아갔다.


“소화도 시킬 겸 무대 세팅 바꿀까?“


원래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해야 할 일이다.

미리 방송제용 무대로 바꿔서 나쁠 것이 없었다.


“빔프로젝터 테스트 한 번 해볼까요?”

“그러자.”


박상은이 얼른 빔프로젝터를 가져왔다.

류지호는 스크린을 거는 받침을 꺼내와 조립했다.

LCD 빔프로젝터는 내년 처음 등장하게 된다.

아직은 TV와 같은 주사선 방식의 CRT 빔프로젝터다.

작고 무게가 가벼운 LCD 빔프로젝터에 비해 CRT는 크기도 크고 무게도 좀 나갔다.

프로젝터는 빔과 같은 빛을 투사하여 스크린에 영상을 표현한다.

때문에 프로젝터의 투사거리에 따라 화면의 크기가 달라진다.

열심히 위치를 옮겨가며 화면 크기를 조정하고, 초점을 맞췄다.


“테이프는 왜....?”


류지호가 빔프로젝터가 놓일 위치에 테이프로 마킹을 했다.

이렇게 표시를 해두어야 내일 방송제 세팅을 다시 할 때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이 일머리다.

일을 해본 사람만 하는 행동이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류지호에게 박상은이 물었다.


“빔프로젝터가 좀 더 밝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류지호는 최고 화질을 자랑하던 필름 Eye-MAX 영화도 관람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LED도 아니고 CRT가 성에 찰리가 없다.

사실 류지호는 나름 고민을 좀 했다.

화면 크기도 크면서 밝은 화면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화면 크기가 줄어드는 대신 콘트라스트(명암대비)를 살려 화질을 선택할 것인가.

왜냐하면 CRT 프로젝터는 화면 크기를 줄이면 약간의 필름 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은 부질없었다.

객석 300석의 맨 마지막 줄에서 영상이 잘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화질이나 밝기 보다는 화면의 크기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삼류감독 주제에 촬영감독들하고 괜히 친해가지고 눈만 높아졌어.’


류지호는 장비욕심이 많은 촬영감독들과 친분이 있었다.

대부분의 촬영감독은 촬영장비는 물론이고 관련 액세서리, 홈시어터 같은 것들에 돈을 아끼지 않는 영상장비 마니아다.

그들의 장비들을 구경하다보면 절로 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급형이나 일반인용은 눈길도 가지 않게 된다.


‘인터넷, 스마트폰, 디지털시네마... 아쉬워하면 할수록 나만 답답하지. 내가 장비를 연구하고 개발할 것도 아니면서 너무 연연하지는 말자.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지 공학자가 아니잖아.’


쓸데없는 미련을 날려버렸다.

류지호는 기준을 고등학생 수준으로 맞췄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있다가 디테일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가 있다.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프로다.

비록 고등학교 방송제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아, 아! 마이크 첵! 마이크 체크!”


음향 장비들이 세팅된 것을 확인한 한수호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여유롭게 웃고 있던 한수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애들아! 원래 내일 오전과 오후에 두 번에 걸쳐 최종 리허설을 할 예정이었어. 잠자기 전에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말이 필요 없다.

곧바로 리허설이 시작됐다.

2학년들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학년들은 옆에서 보조하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무대 아래 PD 단상이 마련되어 있다.

한수호가 그곳에서 방송제 모든 과정을 컨트롤했다.


‘나도 내년에는 저렇게 멋지게 무대를 지휘할 수 있을까?’


박상은이 보기에 한수호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라디오 드라마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1학년들은 리어설일 뿐인데 지나치게 긴장했다.

긴장된 마음에 입이 자꾸 말랐다.

연신 물을 마시며 한수호의 눈치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애들아, 괜찮아. 실수해도 돼. 대사 씹으면 어때? 그냥 내뱉어버려. 쫄지 마.”


한수호는 고함을 치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톤으로 말을 했다.

그럼에도 1학년들은 쉽게 긴장을 털어내지 못했다.

류지호만 빼고.


“모두 수고했다. 1학년들은 당직실에 가서 자고, 2학년들은 방송실로 가자.”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방송제 본 행사 뿐.

이 밤이 지나면 진짜 방송제, 최초의 동영상 방송제가 열린다.

그때.


“수호야, 큰일 났어!”


이재호가 급하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명한이가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 갔는데, 토하고 난리도 아냐!”


한수호가 재빨리 방송부원들을 돌아봤다.


“너희들 중에 설사한 사람 있어?”


방송부원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식중독은 아닌가?”

“어떻게 해?”

“일단 화장실로 가보자.”


한수호가 화장실로 달려가자, 방송부원들이 우르르 뒤를 따라갔다.

화장실에서는 이명한이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맹장 터진 거 같아요!”


이명한의 상태를 확인한 류지호가 외쳤다.


“안되겠다. 명한이 내 등에 업혀줘!”


이재호와 류지호가 재빨리 이명한을 부축해 한수호의 등에 업혀줬다.


“당직 선생님한테 말해야지?”


오철규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명한이 데리고 기독병원 응급실로 갈게. 철규가 당직선생님께 말씀드려.”

“기독병원까지 명한이 업고 뛰려면 힘들 텐데....”

“재호하고 교대로 업으면 돼.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가자 재호야.”


한수호가 이명한을 업고 화장실을 뛰어 나갔고, 이재호가 허둥지둥 뒤를 쫒았다.

방송제가 열리기 12시간 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 ❉ ❉


신포고 교정에 어슴푸레한 새벽이 찾아왔다.

방송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명한을 응급실로 데려간 한수호와 이재호는 밤새 소식이 없었다.

당직교사도 수시로 방송실로 올라와 상황을 물어보고 돌아갔다.


드르륵.


방송실 문이 열렸다.

드디어 한수호와 이재호가 방송실로 돌아왔다.

오철규가 대뜸 물었다.


“명한이는?”


한수호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원한 물 있으면 한 잔만 갖다 줘.”

“잠시만요!”


박상은이 재빨리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왔다.

컵에 담긴 물을 단숨에 비운 한수호가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한수호가 명쾌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맹장이 터졌대. 바로 수술실로 옮겨져 응급 수술을 하는 것 까지 보고 왔어.”

“수술 결과까지 보고 오지 그랬어.”


오철규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한이 부모님께 전화 드렸더니 금방 택시 타고 오셨더라. 우리한테 고맙다고 택시비까지 챙겨주시더라고.”

“많이 놀라셨겠네.”


한수호와 오철규의 대화를 지켜보던 방송부원들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다.


“아무리 맹장수술이라고 해도 일주일은 입원해야 하지 않나....?”

“으음.”

“이거 참......”


방송부원들이 한숨과 탄식을 쏟아 냈다.

이번 방송제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1,2학년 통 털어 10명.

이 숫자의 인원이 멀티로 출연하고, 바쁘게 역할을 분담해서 움직이는 것도 벅찬 것이 사실.

그런 상황에서 한 사람이 빠지게 됐다.

방송부 인원이 적은 것이 오늘 열릴 방송제 발목을 잡았다.


“3학년 형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때?”

“병원에서 전화를 걸어봤는데, 형들 통화가 안 돼. 독서실에 있나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오철규가 의견을 제시했다.


“수호하고 내가 명한이가 하기로 한 거 나눠서 하고, 상은이가 PD 볼 수 없어?”

“그게 가능하겠냐?”

“상은이는 수호 옆에서 서브만 했잖아. 연습을 해봤어야지.”


이재호가 문제점을 지적하자, 의견을 제시했던 오철규가 다부지게 말했다.


“그럼 빡세게 연습을 시켜야지 별 수 없네.”


모두는 말이 없었다.

오철규가 방송부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되고 안 되고를 따지고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지 않냐? 명한이한테는 미안한데, 이번 방송제 망치면 두고두고 후회할거 같아.”


탕!


한수호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치고 벌떡 일어섰다.

방송부원들의 시선이 한수호에게 모아졌다.

한수호가 2학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명한이 자리, 내가 다 들어갈게.“

“드라마 연습 안 했잖아.”

“대본 내가 쓴 거라는 거 잊었어?”

“그럼 PD는?”

“별 수 있냐?”


한수호가 박상은과 류지호 두 사람을 가리켰다.


“이 두 놈 빡세게 굴려서 PD 만들어 봐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 한수호는 지체하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다.


“지호는 서브 보면서 음악하고 이펙트 타이밍은 모두 숙지하고 있지?”

“예.”

“상은이는?”


박상은이 잠시 뜸을 드리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숙지까지는 아니고... 큐시트 보면서 하면 어찌어찌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너희 둘은 잠잘 생각은 접어둬. 방송제 열리기 전까지 죽었다고 생각하고 날 따라와.”

“예!”


류지호와 박상은이 바짝 기합이 들어 대답했다.


“재호만 남고 나머지는 방송실이나 당직실 가서 눈 좀 붙여.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놔야 컨디션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목 잠기지 않게 물 자주 마시고.”

“위기에 강한 남자. 한수호!”


오철규가 짐짓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다들 모여 봐!”


방송부원들이 한수호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렸다.

한수호가 손등이 보이게 내밀자, 하나둘 그 위에 손을 포갰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SPBS!"

“우리는!”

“하나다!”


한수호가 선창을 하고, 방송부원들이 후창을 하며 파이팅 의지를 불태웠다.

매우 오글거리는 구호를 외쳐댔지만, 방송부원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 ✻ ✻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대강당에서 한수호를 대신해 PD 역할을 수행해야 할 박상은이 잠도 잊은 채 연습에 한창이다.

오디오 믹서를 조정하는 이재호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박상은 역시 점차 집중력이 떨어져 연신 실수를 범했다.

류지호는 졸음이 밀려올 때마다 수돗가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상은아, 조금만 힘을 내봐. 릴렉스. 여유를 가져.”


류지호가 박상은을 격려했다.

PD 포지션을 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난 한 달 반.

방송제 준비를 위해 열정을 불태운 방송부다.

이대로 방송제가 엉망이 된다면, 류지호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치겠다. X발!”


박상은이 평소 입에 담지 않던 욕설을 내뱉었다.

그 역시 답답하고 간절한 것은 마찬가지.

류지호 역시 필사적으로 방송제 전반 진행을 연습했다.


‘나쁘지 않아.’


이재호가 슬그머니 한수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은 무리야. 쟤들 집중력 떨어졌어. 저러다가 방송제 하기도 전에 퍼진다.”

“휴우~”

“일단 잠 좀 재우자.”


한수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류지호와 박상은에게 다가갔다.


“여기까지 하자.”

“다 같이 목욕탕 가서 씻고. 두 시간만 쉬다 오죠.”


류지호의 제안에 두 선배가 흔쾌히 동의했다.

네 사람은 학교 근처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박상은과 이재호는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샤워만 하고, 평상에 뻗어버렸다.

한수호가 평상 끝에 걸터앉아 요구르트를 따서 마시는데, 류지호가 곁에 앉았다.


“무슨 할 말 있어?”

“그게...”


류지호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였다.

한수호가 픽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안 어울려, 인마.”

“네?“

“그렇게 망설이는 게 너는 안 어울린다고. 독사 같은 교감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잖아. 뮤비 찍을 때는 또 어땠고.”

“하하...”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류지호는 일단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편하게 말해봐.“

“다른 대비책은 있어요?”

“준비해라. 이 말 밖에는.”


가타부타 부연을 하지 않은 채 준비하라는 짤막한 말만 던졌음에도, 류지호는 용케 말뜻을 알아챘다.


“상은이가 아닌 제가 맡게 되나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

“아직은 모른다는 뜻이야.”


한수호가 말을 끝맺자, 류지호는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때 가서 결정할래.”


한수호가 말을 마치자마다 평상에 몸을 뉘었다.

고등학교 2학년생에게 힘겨운 판단과 결정이다.


“바로 오늘이 방송제가 열리는 날이야.”

“날씨 좋다!“

“오늘 정말 예감이 좋다.”


한수호와 이재호는 뭐든 잘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며 애써 불안감을 털어냈다.


작가의말

참고로 Smoke on the water는 모르시는 분은 별로 없을 듯 하지만, 바로 그 딥 퍼플의 명곡 맞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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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243 209 22쪽
» 영화밥 먹고 살 팔자... (3) +7 22.01.06 10,464 195 21쪽
33 영화밥 먹고 살 팔자... (2) +5 22.01.06 10,718 215 20쪽
32 영화밥 먹고 살 팔자... (1) +8 22.01.05 11,320 219 24쪽
31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는 법이다. +13 22.01.05 11,158 224 26쪽
30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4) +10 22.01.04 11,461 224 24쪽
29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3) +15 22.01.04 11,512 238 24쪽
28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2) +11 22.01.03 11,487 234 21쪽
27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1) +8 22.01.03 11,942 235 20쪽
26 블루오션인 건 확실해! +8 22.01.02 12,038 248 27쪽
25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4) +12 22.01.01 11,557 258 20쪽
24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3) +11 22.01.01 11,565 248 22쪽
23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2) +8 21.12.31 11,841 235 16쪽
22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1) +8 21.12.31 12,612 243 24쪽
21 우리는 가족입니다! (3) +13 21.12.30 12,506 259 24쪽
20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542 262 20쪽
19 우리는 가족입니다! (1) +11 21.12.29 13,308 240 21쪽
18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10 21.12.29 13,284 264 23쪽
17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3) +13 21.12.28 13,250 267 16쪽
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8 21.12.28 13,652 245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7 21.12.27 14,194 275 20쪽
1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3) +7 21.12.27 14,398 281 22쪽
1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11 21.12.26 14,668 279 21쪽
1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1) +12 21.12.25 15,220 269 22쪽
11 돈을 왕창 벌자! +13 21.12.25 15,658 274 20쪽
10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9 21.12.24 15,356 277 20쪽
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963 263 21쪽
8 Goodfellas. (4) +10 21.12.23 16,240 281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759 26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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