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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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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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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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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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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방학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사다난한 나날들이었다.

더위가 막바지로 치달아 마침내 개학날이 밝았다.

류지호의 아침은 변함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고우찬과 신문배달을 하고, 태권도 수련을 한 후에 등교하는 일상이다.


“담임이 교무실로 오래.”


류지호가 교무실로 연정훈을 찾아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호 왔구나. 몸은 이상 없고?”

“덕분에요.”

“이제 병원에는 안 가도 되는 거냐?”

“나중에라도 후유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네요. 종종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찾으셨다고요?”

“오늘 운동장 조회는 꼭 참석해야 한다.”

“......?“

“교장선생님이 직접 시상하시겠다고 하시니까 조회에 나와.”


류지호는 영문도 모른 채 운동장 조회에 나갔다.


- 위 학생은 평소 품행이 단정하고 선행이 남다른 모범생이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교장으로부터 선행상을 받았다.

아침 조회에서 수상을 함으로써 전교생이 류지호의 선행을 알게 되었다.

특히 급우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네가 슈퍼맨처럼 몸을 날려 여자 아이를 구했다며?”


짝꿍인 강용석이 설레발을 쳤다.

사인방 친구들과 방송부 친구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모양이다.


“개장수한테 유도 배운 거야?”

“매일 유도장에서 뒹굴더니 막 낙법도 하고 그랬나봐?”


급우들이 한창 왁자지껄 류지호에 대해 떠드는데.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 연중훈이 들어왔다.


“차렷! 경례!”

“지호가 차에 치일 뻔 한 여자 아이를 구했다는 이야기 들었을 거야. 용감한 행동을 한 친구를 위해 박수한번 쳐주자. 건강한 모습으로 등교한 지호를 위해 격려의 박수!”


짝짝짝!

류지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급우들에게 박수에 대한 답례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오늘 하루도 힘내라. 조회 끝.”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학 후유증을 앓았다.

류지호도 마찬가지다.

병원입원과 뮤직비디오 촬영, 피서와 외가집 방문 등으로 한동안 교과서와 참고서를 놓았다.

다시 공부를 하려니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쩌랴, 억지로라도 공부를 해야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교과서에 고개를 처박았다.

한번 정체되어 버리면, 다시 실력이 상승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모된다.

말이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점점 빨라지지만, 멈췄다가 빠르게 달리는 데는 많은 힘이 소모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언제 시류에 치여서 실력을 상승시킬 기회를 잃게 될지 모른다.

무리해서라도 실력을 상승시켜야만 했다.

어떤 철학자가 말하기를 사람은 곧 바로 날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 나는 것을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아직 고등학생일 때 부족했던 기초를 단단히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준비해야 하는 것은 기초체력과 시험성적이다.


✻ ✻ ✻


개학 첫날은 숙제 검사와 자습으로 수업을 끝마쳤다.

야자도 하지 않기 때문에 류지호는 정규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방송실로 향했다.


“여어~ 우리 방송부의 자랑 왔냐?”


한수호가 류지호를 놀리자 방송부원들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새삼스럽게 왜들 그래요?”

“우등상하고 개근상 받아서 삼관왕 한 번 먹어봐라.”

“그건 석민이가 더 유력하지 않을까요?”


신포고 방송부는 졸업식에서 모두가 선행상을 받는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김석민은 세 가지 상을 모두 수상하고 모범상까지 받았었다.

사관왕에 오른 것도 모자라 졸업식 대표로 나서 답사를 하기도 했었다.


“지호하고 상은이는 이리 와서. TV 좀 들어봐.”


40인치의 대형 텔레비전이라 4명이 들어야 할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평판 디스플레이 방식이 아닌 브라운관에 전자빔을 쏘는 방식이라서 뒤쪽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비디오 데크까지 꺼내 케이블을 연결했다.

한수호가 테이프 하나를 비디오 데크에 넣고 재생 시켰다.


“편집 전의 비디오니까 고려하고 봐라.”


화면에는 신포고 학생들의 방송제를 축하는 모습, 진명여고와 여러 고등학교 방송부가 보내는 축하 메시지, 방송부 졸업생 선배들의 축하메시지, 교장과 교감의 인터뷰 영상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한창 젊은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출연진들의 방송제 축하 메시지가 나왔다.


“우와!”


순간 열렬한 반응이 폭발했다.

인기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주인공들의 방송제 축전이 나왔기 때문이다.

KBC 보도국에서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는 신포고 대선배를 끈질기게 졸라 간신히 촬영해 온 축전 영상이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올해 5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청춘드라마다.

의대생들을 중심으로 꿈과 이상, 사랑과 정열 등을 캠퍼스, 가정,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 보인 드라마였는데, 주인공들 모두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여주인공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는데, 슈퍼스타의 척도인 책받침용 코팅 사진의 최고 인기인이었다.


“지호야 어때?”

“이번 방송제는 망하려야 망할 수가 없겠네요.”

“그렇지?”

“입소문이 나야 보러 오는 외부 학생이 많을 텐데... 그게 좀 아쉽네요.”

“걱정 마. 여고 축전 따러 갔을 때 거기 방송부 애들한테 슬쩍 흘렸다.”

“300석 다 채울 수 있을까요?”

“넉넉하게 한 500개 갖다 놔.”

“그걸 언제 다 강당으로 옮겨요?”

“그건 니들 사정이고”


2학년 선배들이 방송제 리허설을 하는 동안 교실에서 강당으로 의자를 옮기는 것은 1학년의 몫이다.

김석민이 자신의 가늘고 여린 팔을 들어 보였다.


“부장아,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500개면 한 사람당 몇 개씩 옮겨야 되나...”

“산수도 못해? 100번이잖아.”

“그걸 누가 몰라서 하는 말이냐?”

“각자 친구들 좀 모아보자. 정 안되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학생들 동원해야지 뭐.”


박상은이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희망 섞인 제안을 내놓았다.

신포고 방송제는 별다른 문제없이 준비되고 있다.


“야, 여기로 패스해!”

“패스!”

“나이스!”


방송실을 빠져나온 류지호와 방송부 동기생들 눈에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는 신포고 학생들이 보였다.

운동장 한 쪽에서는 족구를, 농구장에서는 농구를 하고 있다.

농구 골대 하나에 네댓 명이 슛을 쏘아대고 있고, 축구 골대에는 골키퍼로 두 명에서 세 명이 마구 뒤섞여서 난리도 아니다.


“와. 에너지가 넘치는 구나 넘쳐! 젊은 것은 역시 좋은 것이여.”


최원석이 운동장을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류지호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군대네.’


혈기왕성한,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남자들이 미친 듯이 악을 지르며 뛰어 다니고 있다.

이곳이 고등학교 운동장이란 사실을 모르고 보면, 어딜 봐도 군대다.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질풍노도의 넘치는 에너지를 저렇듯 해소하고 있다.

미래에는 PC방이니 노래방이니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놀 거리가 존재하지만, 이 시기에는 저렇듯 미친 듯이 뛰어노는 것이 거의 전부다.


“나중에 아버지 퇴직하시면 연하대에 PC방이나 노래방 차리라고 말씀드려야지.”


최원석이 혼잣말 하는 류지호에게 물었다.


“PC방이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내일 보자.”


모처럼 평범한 고등학생의 하루를 보냈다.


“지호야, 당구 한 겜 치고 가.”

“니들 하고 수준 안 맞아서 재미없어. 50끼리 놀아.”


한참 당구에 맛을 들이고 있는 사인방이다.

류지호는 사인방과 헤어져 대한서림으로 향했다.

새로 출판된 미학이나 영화 관련 이론서가 있을까 돌아봤다.

흥미를 끄는 책이 없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도 들렀다.

딱히 돈 주고 살만한 책은 없었다.

한동안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 ✻ ✻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한 보잉 747-300 비행기가 태평양을 횡단하고 있다.

미국 팬암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 회사로 초창기 미국 항공 산업의 선구자였으며, 국제선 거의 모든 노선을 취항한 항공계의 제국이다.

또 다른 미국의 대형 항공사 델타항공이 태평양 노선으로 도쿄노선만 운행하던 것과 달리 팬암은 김포공항에 취항하고 있다.

팬암 항공제국은 1991년에 부도가 나며 몰락한다.

제국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다.


우우웅!


육중한 747-300의 퍼스트 클래스.

1만 달러에 가까운 운임에 걸맞게 널찍한 좌석과 전담 승무원만 2명에 최고참 사무장이 자주 오가며 승객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 30대 후반의 백인 여성.

레오나가 어른이 되면 저런 외모가 되지 않을까 싶은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한 늘씬한 여성이다.

레오나의 엄마이자, 제임스의 아내, 파커가문의 막내며느리 신분 외에 동부 명문가문 그레이엄 가문의 셋째 딸.

캐서린 마리(M) 파커다.

현재 미국 동부지역 3대 로펌의 공동대표이자, 두 가문의 투자은행 G&P의 법률고문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캐서린이 한국의 조간신문을 보고 있다.


펄럭!


한글을 알지 못하는 상관을 위해 비서가 사회면 기사에 붉은 색 펜으로 박스를 쳐놓았다.

경찰서장과 류지호가 기념촬영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기사와 함께 실려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의 기사는 모두 내렸습니다.”


30대 중반의 백인 여성이 보고했다.

그녀의 이름은 로라 페이.

캐서린의 전속 비서다.


“잘했어. 로라.”


가문의 사소한 것도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 현실.

파커와 그레이엄 가문의 손녀가 외국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가면 미국이 시끄러웠을 터.

언론에서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온갖 기사를 쏟아냈을 것이다.

징글징글했다.

발 빠르게 사전조치를 취한 비서진은 칭찬 받아 마땅했다.


“.....음모론도 빠지지 않았겠지.”


캐서린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명문 중 명문가인 파커와 그레이엄가의 손녀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건은 타블로이드의 아주 좋은 기삿감이다.

뉴스기사가 아니라 소설이 판 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온갖 황색언론이 갖가지 선정적이며 흥미위주의 내용을 마구 뒤섞어 기사를 쓸 것이다.

심지어 부부의 불화설부터 가문 내부의 알력다툼으로까지 과장되어 보도될 터.

캐서린이 신문을 접으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캐서린은 레오나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근처를 지나던 고등학생이 몸을 던져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없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은혜든 원수든.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이 가문의 철칙이다.

캐서린은 한국에 체류 중인 남편 제임스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은혜를 갚을지에 대해 논의했다.

일반적인 방식의 보상방식으로 접근했더니, 소년의 아버지가 거절을 했단다.

변호사가 계속해서 설득 중이라고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학생의 부모는 완고한 면이 있는 모양이다.

드러내지 않고 보상할 방법이 필요했다.

‘용감한 시민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봉사와 선행과 관련한 수상경력은 미국 대학 입학에 큰 도움이 된다.

가문의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은 부담이었지만, 소년이 좀 더 자신이 한 일에 자부심을 갖기를 바랐다.


“경찰에서 포상하는 금액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은 금액을 줄 수 없었다고 해요.”

“일단 그 소년이 명예를 얻은 것으로 충분해.”

“포상금으로 가족들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호호호. 화목한 가족이네.“


류지호의 일거수일투족이 캐서린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가문의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불순한 의도로 접하는 사람도 많고, 약점을 잡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도 많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관계된 모든 것들을 단속해야만 했다.

류지호와 신효정이 나눈 대화 역시 모두 캐서린에게 보고가 되었다.


‘자기가 직접 사업계획서를 준비해서 브리핑 하고 싶다고 했다지. 고등학생인 자신이 제안을 하면 그저 귀엽게 봐줄 뿐이고, 어린 것이 기특하다 애썼다고 칭찬하고 말거라고. 겨우 16살의 나이에 투자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겠다고 한 것도 놀랄 지경인데 직접 투자계획서와 브리핑한다는 건 무슨 배짱일까?’


단순히 가족의 은인 정도로 생각했다.

신변호사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지금은 조금 달랐다.

흥미가 동했다.

소년은 자신의 딸을 구함으로써 가문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인연을 맺는 것도 어렵지만, 끊는 것은 더욱 어렵다.

명문가문이라면 더더욱.

거머리 같은 이들 천지다.

온갖 잡놈들이 툭하면 돈을 뜯어내려 수작을 부렸다.

오죽하면 가문에서 가장 바쁜 이가 로펌을 운영하는 캐서린일까.

온갖 지저분한 고소고발 및 소송을 처리해야 하니까.

캐서린으로서는 직접 소년을 만나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어떤 가정에서 살고 있는지, 부모로부터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키울 가치가 있을지.

적당히 사례를 하고 인연을 끊을지.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시아버지인 윌리엄의 말처럼 그가 특별한 학생이라면 친밀한 관계를 맺을 생각이다.


‘소년을 쓸 만한 인물로 키워 장기적으로 한국의 네트워크를 맡기면 좋고.’


파커와 그레이엄은 한국에 딱히 네트워크를 갖춰 놓지는 않았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홍콩 거점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지금까지는 그랬다.


❉ ❉ ❉


어느덧 9월에 들어섰다.

여름 내내 괴롭혔던 더위도 꺾여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했다.

류지호가 파커 가족이 퇴원선물이라며 사준 옷을 꺼내 입었다.

평소 입던 옷을 입자, 어머니가 질색을 하셨다.

몸에 착 감기는 것이 쫄쫄이 같다나.

처음에는 분위기가 달라진 줄 알았다.

가만 보니 원래 입던 옷이 다 작아졌다.

이 시기는 다소 헐렁하더라도 넉넉한 품으로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몸에 ‘착‘ 감기는 스타일의 패션은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하는 수 없이 파커 가족이 선물한 메이커 옷을 입을 수밖에.

신효정이 쇼핑한 옷이라고 전해 들었다.

류지호가 성장기임을 고려해 옷을 골랐다고 했다.

한창 청청패션이 유행이다.

그 대신 면바지, 체크무늬 셔츠, 캐주얼 수트를 걸쳤다.

모범적인 대학생 패션이다.

썩 잘 어울렸다.


“멋지네, 우리 아들.”


심영숙은 훤칠한 아들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러면서 이렇게 멋진 옷 한 벌 사주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심영숙이 내심 자책하고 있을 때 류지호의 입이 열렸다.


“어머니는 준비 다 하신 거예요?”

“진즉에 끝마쳤어.”

“화장도 해야 하고, 옷도 고르다 보면 여자는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입고 갈 옷은 미리 정해두었고, 화장은 뭐...”


심영숙이 말끝을 흐렸다.

부부동반으로 친목계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외출할 일이 없는 심영숙이다.

화장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

사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방문판매원에게서 싸구려 화장품 몇 개를 구입해 마지막 찌꺼기까지 알뜰하게 쓰고 버리는 심영숙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다 그러하지만.


‘난 정말 철들려면 멀었구나. 신문배달 월급 받으면 어머니 화장품부터 사드려야겠어.’


류지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심영숙은 그저 메이커 옷을 입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

온 가족이 부산을 떠는 이유가 있었다.

파커가족이 류지호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 했다.

류순호, 류아라 남매는 서울 나들이를 간다는 소리에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전철 타고 가도 되는데....”


파커 가족은 류지호 가족을 위해 택시를 보내주었다.


✻ ✻ ✻


서울 중구 장충동.

남산 중턱에 위치한 서라벌호텔.

큰오빠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류아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아~! 끝내준다!”


류순호 역시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 호텔을 구경했다.

촌놈처럼 기웃거리는 류순호를 호텔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쳐다봤다.

류순호가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왜? 바닥에 뭐 떨어뜨렸어?”

“아, 아니야. 그냥.... 어색해서.”

“어릴 때 아버지 따라서 올림포스 호텔 결혼식장 많이 다녔잖아.”

“거긴 인천이고. 여기는 서울이잖아.”


류지호가 단순한 십대였다면 힐끔거리는 부유층 사람들을 보며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도 기회가 무한이 열려있지도 않은 현실에 불공평한 하늘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예외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태연할 수가 있었다.


‘우리 가족도 앞으로는 이런 곳에서 자주 와서 비싼 요리 먹을 건데 뭐. 내가 꼭 그렇게 되도록 할 거고.’


띵!


엘리베이터는 23층에서 멈췄다.

한눈에 봐도 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는 곳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최고급 정통 프렌치 정찬과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류지호의 가족이 조금은 어색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차분한 인상의 남자 종업원이 맞이했다.

종업원이 손목의 시계를 들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류지호 학생과 가족 되십니까?”


이 호텔 레스토랑은 예약한 손님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일까.

신효정이 사전에 무슨 조치를 취한 것일지도 몰랐다.


“제가 류지호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레스토랑은 총 36석에 불과했다.

테이블 간의 간격이 넓게 떨어져 있어 서로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할 일이 없어보였다.

바닥재는 무엇이 깔렸는지 모르지만 부드러웠다.

천장에 달린 호화스러운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따뜻한 빛을 주위에 흘려 댔다.

곧 저녁식사 타임임에도 실내 분위기는 조용했다.

종업원은 시종일관 공손한 태도로 류지호 가족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가족이 안내 된 테이블은 가장 안쪽 창가에 마련된 테이블이다.

파티션이 설치돼 있어 아늑한 느낌을 자아냈다.

날씨가 맑았던 덕에 창밖으로는 서울 시내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아버지, 어머니 자리에 앉으세요.”

“흠.”


부모님이 어색하게 자리에 앉자, 류아라가 냉큼 큰오빠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차를 내왔다.


“음.”


이런 곳에서 나오는 차는 당연히 비싸고 고급스럽다.

류지호의 입맛에는 솔직히 무슨 맛인지 그저 그랬다.

감독이랍시고 행세하던 시절, 스타급 배우와 미팅을 할 때 고급 딱지가 붙은 곳을 여러 군데 다녀봤다.

천생 촌놈 입맛인 류지호는 특별함을 느낄 여유와 교양이 없었다.


‘현장에서는 커피믹스가 최고지.’


류지호가 영화현장에서 한창 일할 때는 믹스커피를 하루에 20잔 이상 마시곤 했다.

촬영현장에서 음료 케이터링에 커피믹스가 떨어지면 제작부는 스태프들의 원성을 들을 정도다.

커피믹스는 촬영현장 케이터링에서 절대 동나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역류성식도염이 생겼던 거였나?’


류지호는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차를 홀짝거렸다.

그러기를 한 10분 정도 자났을 때.


또각! 또각!


구두와 하이힐 소리가 섞여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곧 파티션 사이로 파커 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백인여성과 함께.


작가의말

새해 첫 연재는 아니지만, 첫 주를 시작하는 연재입니다. 올해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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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8 21.12.28 13,593 244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6 21.12.27 14,131 273 20쪽
1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3) +7 21.12.27 14,335 280 22쪽
1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11 21.12.26 14,604 277 21쪽
1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1) +12 21.12.25 15,153 266 22쪽
11 돈을 왕창 벌자! +13 21.12.25 15,591 272 20쪽
10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9 21.12.24 15,288 275 20쪽
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893 260 21쪽
8 Goodfellas. (4) +10 21.12.23 16,160 279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681 262 20쪽
6 Goodfellas. (2) +12 21.12.22 17,274 292 19쪽
5 Goodfellas. (1) +20 21.12.22 18,518 295 21쪽
4 Again 1987. (3) +25 21.12.21 19,276 328 20쪽
3 Again 1987. (2) +11 21.12.21 22,065 337 20쪽
2 Again 1987. (1) +20 21.12.20 27,793 398 21쪽
1 프롤로그. +49 21.12.20 40,648 46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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