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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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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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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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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영화밥 먹고 살 팔자...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포고 교정의 공기가 달라졌다.

평상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

학생들의 표정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즐거움을 곧 만난다는 기대감이 어려 있다.

교정 곳곳에서 서클 홍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축제 시즌이 돌아 왔다.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이 시기에 축제 준비와 관람으로 들떠있을 때다.

학교마다 축제 시기는 다양하지만, 보통 9월초에서 중순 사이에 연다.


“중학교 때는 축제가 더럽게 재미없었는데. 고등학교는 좀 다를라나?”


고우찬이 기대 섞인 어조로 류지호에게 말했다.


“고등학교 축제가 다 거기서 거지겠지.”


중고등학교에선 매년 빠짐없이 축제를 연다.

학교 축제는 마치 소풍과도 같다.

공부에 시달린 심신을 회복하는 휴식시간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일 년에 한번 때가 되면 열리는 연중행사에 불과했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잘 할 줄도 모르는 분야를 준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느니, 그 시간에 국영수를 공부할 일이지.”


그렇듯 타박을 놓는 어른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축제가 끝나면 더욱 불이 나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학생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공부 빼고는 모두가 쓸데없는 일.


‘숨통을 틔워주고 공부도 시켜야지.....’


전통이 오래되지 않았거나 교내 서클 활동을 규제하는 학교는 축제가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재미가 있을 리가 없다.

공부만 시키고, 공부만 할 것 같은 신포고다.

축제가 연례행사쯤으로 진행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수십 개의 서클.

그 곳에서 배출한 수백 수천 명의 동문들.

오랜 시간 전통이 쌓인 것이 신포고 축제다.


“나도 몰랐는데, 우리 학교 서클이 많기는 진짜 많더라. 3일 동안 한다고 했지?”

“목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해.”

“준우하고 재정이도 전시회 한다고 체육관에 박혀서 나오지를 않아.”


문예부, 사진부, 미술부 등은 실내체육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각 서클의 부스들에서 전시회와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도서부는 도서관에서, 생물부는 생물실에서, 물리부와 발명부는 과학실에서, 전산부는 전산실에서 각기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농구, 축구, 야구, 배드민턴 등의 스포츠 서클은 운동장에서 유도부는 유도장으로 학생들을 초대한다.

3일간 재학생들은 점심시간을 통해 축제를 즐기고, 방과 후에는 외부 학생들이 들어와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된다.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몰려드는 터라 방과 후 교내는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이왕 축제를 할 거, 수업도 하지 말아야지. 꼬박꼬박 수업은 다 한다더라.”

“대학교가 아니잖아.”

“재정이하고 준우는 토요일 수업 빼준대. 방송부도 그러냐?”

“우리는 금요일 오후 수업부터 빠져.”

“부러운 놈. 방송부는 툭하면 땡땡이야.”

“우리가 노냐? 신포인의 밤 준비 안 해? 금요일 수업 끝나면 바로 할 텐데 언제 준비 하냐?”

“누가 뭐래?”


보통의 학교들은 금요일에 축제를 진행하여 평소 수업시간 동안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시 및 간단한 공연을 진행하고, 방과 후에는 페스티벌만 연다.

때문에 금요일에 수업을 마치고 방문하는 외부 학생들은 전시 관람은 못 하고 페스티벌만 구경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신포고는 목요일 방과 후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종일 축제를 진행하기 때문에 전시 관람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근처에 있는 여학교 학생들이 다 몰려오겠지?”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

“난 서클도 안 들었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냐?”

“내가 재미있게 해줄게.”

“뭔데?”

“그런 게 있어. 토요일에 수업 끝나고 방송실로 와.”

“알겠어.”


고우찬은 무슨 일을 시킬 줄도 모르고 힘차게 대답했다.


“사장님, 신포고 방송제 팸플릿 나왔어요?”


판촉물 인쇄소 사장이 2단 접지 형태로 만들어진 팸플릿을 가져왔다.


“확인 좀 해볼게요.”


류지호가 팸플릿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만족할 만한 품질은 아니다.

어쩔 수 없다.

졸업생과 재학생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방송제 예산을 만들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무사히 방송제를 마칠 수가 있다.

류지호는 팸플릿을 받아 들고 방송실로 돌아왔다.


“지호야, 방송실에서 마이크 케이블 좀 가져와.”

“마이크 연결 끊어졌다. 납땜 좀 해.”

“마이크 케이블 서로 엉키지 않게 정리 잘 해 놔.”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스폿 조명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어.”

“창문에 암막 떨어진 것 있나 살펴보고 와.”

“앰프 언제 보내주나 전화 해봐.”

“지호야!”

“일루 잠깐 와봐. 지호야...”


류지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뭐만 했다하면, 류지호를 찾았다.


“으쌰!”


방송제 준비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축 처졌던 기운도 다시 살아났다.

어느새 머릿속에서 파커 가족에 대한 것들이 희미해졌다.


✻ ✻ ✻


평소라면 야자를 해야 할 시간.

여학생들이 신포고 강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명여고 방송부 1학년 학생들이다.


“안녕하세요. JBS입니다!”


여학생들이 신포고 2학년들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공다연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뚱한 표정이다.


“어서들 와.”


류지호도 반갑게 인사했다.


“흥!”


공다연은 토라져 류지호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소연아, 쟤 왜 저래?”

“나도 몰라.”


신소연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진짜 몰라?”


류지호가 은근한 어조로 떠보듯 물었다.


“사실은... 저번에 뮤직비디오 찍고 시간 있냐고 물었다면서. 그때 네가 딱지 놔서.... 그 날 이후로 다연이가 쫌 그래...”


신소연이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미안한 듯 말끝을 흐렸다.


큭.


류지호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도하고 당당하기에 뒤끝도 없을 줄 알았다.

나름 공다연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다연이 저러는 걸 누군 이해하겠냐. 암튼 소연아 잘 부탁해.”

“응!”


신소연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공다연이 애꿎은 이철웅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깜댕이! 넌 왜 나 모른 척 하는데? 그렇게 쳐다보지 마. 변태 같잖아.”


마음을 접은 것일까.

이철웅은 그녀의 억지를 편한 얼굴로 받아주었다.

류지호와 친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교환했다.

이철웅이 저렇듯 태평한 것이 의아했다.


“원석아, 철웅이가 기술 쓰는 거야?”


혹시 밀당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최원석이 자신도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인사들 나눴으면 무대 위로 올라가 줄래?”

“예. 선배님!”


진명여고 여학생들이 무대에 마련된 의자에 자리를 잡자, 신포고 방송부 아나운서 파트가 사이사이 자리를 잡았다.

두 학교의 방송부들은 지난 몇 주 동안 주말마다 모여서 대본 리딩을 진행했다.

오늘은 방송제를 앞두고 마지막 라디오 드라마 리허설을 하기로 했다.

이 단계를 프로들 세계에서는 드레스 리허설(Dress Rehearsal)이라고 부른다.

연극/뮤지컬/TV프로그램 녹화 전에 하는 최종적인 총연습이다.

모든 장비와 분장, 의상까지 갖추어진 상태에서 실제로 관객이나 방송에 보이는 것과 같이 도중에 중단 없이 진행하게 된다.

참고로 드레스 리허설은 카메라 리허설과 런 스루(run through)로 다시 나뉜다.


“효과음, 데크에 걸어놨지?”

“스탠바이 됐어요.”


이재호가 오디오믹서에 자리를 잡았다.

류지호가 서브를 섰다.

무대에서 45도 위치에 마련된 간이 단상에는 PD 역할을 하는 한수호가 위치했다.

한수호 서브는 박상은이다.


“아아아~”

“음~”

“가나다라마바사~”


두 학교 방송부원들이 대본을 들춰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목을 풀었다.

한수호의 손이 이재호를 가리켰다.


스윽.


이재호의 손가락이 오디오믹서의 볼륨 스위치를 서서히 밀었다.


따라라리라~


무대 양 옆에 놓여있는 스피커에서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다.

한수호가 손바닥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에 따라 음악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안토니오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경기가 워낙 나쁜 탓에 변변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해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처지다.]


오철규의 담담한 음성이 마이크를 탔다.

<자전거 도둑>.

한수호가 준비한 라디오 드라마다.

순수 창작물은 아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48년)으로 잘 알려진 루이지 바르톨리니의 동명 소설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한 한 것이다.

참고로 영화 <자전거 도둑>은 세계영화사 10대 걸작을 꼽을 때면 으레 꼽히는 작품이다.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영화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역작이다.


[마리아, 구직소개소에서 광고 전단지 붙이는 일자리를 구했어.]

[어머, 잘됐어요. 정말 잘됐어요.]

[헌데 문제가 있어.]

[뭔가요?]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해.]

[어쩌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라... 자전거는 전당포에 맡기고 돈으로 바꿨잖아요?]

[돈을 벌기 위해 돈 될 만한 물건을 팔아야 할 처지라니....]

[안토니오. 힘내요. 당신은 우리 가족의 기둥이라고요.]


주인공 안토니오 역할의 이명한과 아내역의 신소연이 자연스럽게 대사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보며 류지호가 감상평을 내놨다.


‘명한이형이 우리 방송부 에이스긴 에이스구나. 소연이도 제법이네.’


라디오 드라마는 오로지 청각에만 의존하는 시간예술이다.

내레이션, 음향효과, 배경 음악 등이 극적효과를 받쳐주지만, 무엇보다 성우의 연기력이 중요했다.


[안토니오, 이렇게 해요. 침대보 여섯 장이면 다시 자전거를 찾아올 수 있지 않겠어요?]


신소연과 이명한이 빠지면서 오철규가 마이크 앞으로 나왔다.

소리만으로 청취자들이 동작과 상황을 상상할 순 있지만, 라디오 드라마는 가능한 알기 쉽게 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안토니오와 마리아는 침대보 여섯 장을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되찾았다.]


한수호의 손가락이 류지호를 가리켰다.

류지호는 재빨리 레코더의 포즈 버튼을 풀어 효과음을 재생시켰다.


- 따르릉! 따르릉!


[안토니오는 아내 마리아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점쟁이를 찾아간다.]


[우리 남편이 당신의 말대로 일자리를 얻었어요.]


신소연의 대사를 점쟁이 역할의 공다연이 받는다.


[내가 그랬잖아. 곧 직장을 구할 거라고.]

[그러게요.]

[직장을 얻게 되면 복채를 더 가져오라는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은 모양이야?]

[받으세요. 그때 약속한 복채에요.]


공다연은 평소 목소리를 변조해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연기했다.


“오호!“


공다연의 연기를 지켜본 류지호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확실히 다연이가 센스가 있어. 아마추어가 저런 식으로 목소리를 변조하면 듣는 사람은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텐데. 딱 적당한 선에서 풀었다 쥐었다 해주네.”


류지호가 칭찬했다.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이재호가 주의를 줬다.


“지호야, 집중해!”

“아, 네 형....”


계속해서 드라마 리허설이 이어졌다.

안토니오가 자전거를 타고 첫 출근하는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출근하는 가장을 배웅하는 아내와 아들의 기쁨도 마찬가지다.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안토니오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신나게 달리는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따르릉‘ 소리며,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폐달 밟는 소리 등 류지호는 미리 걸어놓은 효과음을 재생시켰다가 끊었다가 바쁘게 손을 놀렸다.


[안토니오의 취직 기쁨은 한나절이 못 되어 그만... 무참한 낭패로 끝나 버린다. 거리로 나가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는 도중에. 그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자전거는 안토니오와 그 가족들의 생활 기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토니오로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전거를 꼭 찾아야만 한다.]


오철규의 내레이션이 한동안 길게 이어졌다.

류지호는 다음에 나올 효과음과 음악을 미리 준비했다.

오디오믹서를 컨트롤하는 이재호와 그를 서브하는 류지호의 호흡이 제법 잘 맞았다.

한수호도 내심 흡족한 얼굴로 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 삐뽀. 삐뽀.


옛날 경찰차 사이렌의 효과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안토니오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협조를 구하기도 하면서 백방으로 자전거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자전거를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마침내 안토니오는 자전거포를 뒤지다 한 청년이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도둑의 집을 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절망에 빠진다.

자신의 자전거를 훔쳐간 청년이 자신처럼 가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둑 청년은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서 소동까지 벌이게 된다.

도무지 자전거를 되찾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심정의 안토니오는 아들 브루노와도 다툰다.

계속해서 어비아들이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다니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멀티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 자신의 배역에 따라 대사를 치고 빠졌다.

남자 역할과 여성 역할을 넘나드는 공다연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때론 넉넉한 아줌마, 때론 신경질적인 경관, 축구장으로 향하는 설레는 축구팬 등등.

공다연은 주인공 어비아들이 로마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온갖 인간 군상들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알고 연기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연이는 느낌이 살아 있어. 진명여고 애들은 중학교 때 방송부를 해봤던 애들을 뽑나? 다들 제법이란 말이야.’


반면에 신포고 방송부 수준을 좋게 봐 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명한 정도가 봐줄만 했다.


“주인공이 명한이형이어서 다행이네요.”

“수호가 얼마나 쥐 잡듯이 잡았는데.”

“그랬어요?”

“대본 쓸 때부터 주인공은 너야 딱 찍더니, 틈만 나면 쪼아대더라.”


한동안 대사가 이어져 잠시 류지호와 이재호가 대화를 나눴다.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던 안토니오는 독한 마음을 먹고 남의 자전거를 훔치려한다. 그러나 난생 처음 해보는 도둑질이 잘 될 리가 없다.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는데....]


오철규의 내레이션이 끝나자 울부짖는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아빠아아아!]


성난 군중들에 둘러 싸여 비통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부루노가 울면서 아버지를 외쳐본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찌그러진 모자를 주워 먼지를 탁탁 털고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가까스로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사람들은 안토니오를 경찰서에 넘기려 한다.

그러나 자전거 주인은 어린 아들 브루노를 보고는 자비를 베푼다.

안토니오 부자를 그냥 돌려보내준다.


[흑흑. 브루노 집으로 돌아가자.]

[아빠, 울지 마세요. 엉엉.]


아들 앞에서 참혹한 망신을 당한 아빠 안토니오.

안토니오는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며 아들 브루노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이재호가 오디오믹서를 만지자 울음소리를 뚫고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다.


따라라리라~


안토니오는 수치로 인한 충격에 조용히 흐느낀다.

잠시 아빠와 아들은 맥이 빠진 채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묵묵히 걸어갈 뿐.

브루노는 그런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아버지의 손을 끌어 잡는다.

안토니오도 아들의 손을 꼭 움켜쥔다.

빅토리아 데 시카 감독은 영화에서 울먹이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주는 브루노의 모습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시킴으로써 그들 앞에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극복해낼 것이라는, 두 사람은 그 길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가 점점 안토니오 부자에서 멀어지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 삶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가치는 있다.


빅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러한 주제의식을 전했다.

라디오 드라마는 그런 멋진 장면을 보여줄 수 없다.

때문에 한수호는 대사를 만들어 넣었다.


[아빠, 많이 아파요?]

[흑...]


안토니오는 울음을 참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난 아빠가 내일은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브루노.... 내 아기.]

[나는 아빠가 하나도 안 창피해요.]

[아빠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게. 브루노.]


슬픈 음악이 서서히 줄어들며, 아름답고 밝은 선율로 바뀐다.

안토니오와 브루노의 대화도 조금 밝아졌고, 집으로 돌아간 남편과 아들을 마리아가 반갑게 맞아주는 것으로 라디오 드라마가 끝이 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수호가 방송부원들을 향해 외쳤다.


“너무 늦은 시간에 귀가하면 부모님께 야단맞으니까 여기까지 하자.”


짧은 라디오 드라마였지만, 리허설만 한 시간 훌쩍 넘게 반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두 학교의 방송부들이 서로를 치하하고 격려했다.

한수호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밤을 새워서 리허설을 하고 싶지만.


“1학년들이 버스정류장까지 JBS 여학생들을 데려다 주고 와. 정리는 2학년들이 할게.”

“상은이하고 원석이가 대표로 갔다 와. 우리가 형들 도울 테니까.”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철웅을 쳐다봤다.

이철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배들을 돕기 시작했다.


“자식이 쿨하네. 철웅아, 잘 생각했어.”

“뭐래 븅신이~”


짝사랑처럼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도 없다.

이철웅이 미련을 단숨에 털어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시간만큼 확실한 약도 없다는 사실.

아니면 새로운 사람이 빈 곳을 채워주던지.


❉ ❉ ❉


신포고 축제날이 밝았다.

류지호는 토요일까지 태권도장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신문을 돌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식구들과 밥상머리에 앉아 아침을 먹는데, 오랜만에 류순호가 말을 걸었다.


“오늘부터 형네 학교 축제 아냐?”

“응.”

“방송제는 언제 해?”

“토요일 4시. 늦어도 4시 30분에는 시작할거야. 보러 올래?”

“친구들하고 구경 가려고. 형이 방송부라고 애들한테 자랑했거든.”

“볼 만 할 거야.”

“그날 친구들 맛있는 거 사준다는 약속 지켜.”


류지호는 숟가락으로 밥을 뜨다가 멈췄다.


“약속?”

“전에 친구들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잖아.”

“그 동안 정신없이 생활하다보니 형이 깜박 했다. 순호야 미안해.”

“가끔 라면 사먹으라고 돈 줬잖아. 괜찮아.”


류순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음... 방송제 끝나면 장비 철수 하고, 저녁에 졸업생 선배들이랑 뒤풀이가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할 수 없지. 그냥 우리들끼리 보고 올게.”


류순호의 반응은 담담했다.

오빠들의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던 류아라가 끼어들었다.


“큰오빠, 큰오빠아~”

“왜 아라야?”

“방송제가 뭐야?”

“학생들한테 노래도 들려주고, 라디오 드라마도 보여주고... 학교에서 학예회하지? 그걸 고등학생 오빠들이 하는 거야.”

“와아~ 큰오빠 나도 갈래. 나도 큰오빠 학예회하는 거 구경 갈 거야.”

“이 기집애가! 밥알 튀잖아. 밥 삼키고 말해!”


심영숙이 류아라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치며 혼을 냈다.

엄마의 매서운 손바닥을 피해 얼른 자신의 품으로 달려온 류아라를 향해 류지호가 자상하게 말했다.


“오빠가 다니는 학교는 버스 타고 한참 가서, 수봉산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많이 걸어 올라가야 돼. 아라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류아라가 입 안 가득 들어있던 밥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수봉산보다?”

“응.”

“힝, 다리 아픈 건 싫은데...”


하하하.


여동생의 귀여운 엄살에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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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블루오션인 건 확실해! +8 22.01.02 12,037 248 27쪽
25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4) +12 22.01.01 11,557 258 20쪽
24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3) +11 22.01.01 11,565 248 22쪽
23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2) +8 21.12.31 11,841 235 16쪽
22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1) +8 21.12.31 12,612 243 24쪽
21 우리는 가족입니다! (3) +13 21.12.30 12,505 259 24쪽
20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541 262 20쪽
19 우리는 가족입니다! (1) +11 21.12.29 13,307 240 21쪽
18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10 21.12.29 13,283 264 23쪽
17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3) +13 21.12.28 13,249 267 16쪽
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8 21.12.28 13,651 245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7 21.12.27 14,193 275 20쪽
1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3) +7 21.12.27 14,397 281 22쪽
1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11 21.12.26 14,667 279 21쪽
1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1) +12 21.12.25 15,219 269 22쪽
11 돈을 왕창 벌자! +13 21.12.25 15,657 274 20쪽
10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9 21.12.24 15,355 277 20쪽
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962 263 21쪽
8 Goodfellas. (4) +10 21.12.23 16,238 281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758 26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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