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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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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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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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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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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심영숙이 병실 문을 열자, 외국인들이 떼로 들어왔다.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풍채가 좋은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입고 있는 복장이다.

휘장 사이에 각종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미 육군 정복을 입고 있다.


“어서 오세요.”


심영숙이 외국인 가족을 맞이했다.

외국인 가족 외에 오피스룩 패션의 한국인 여성이 동행이 있었는데 심영숙의 인사를 파커 가족에게 열심히 통역을 해주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류지호가 몸을 일으켜 양반다리로 앉았다.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부끄럽기라도 한 듯 여자아기 아빠의 뒤로 숨었다.


‘내가 저 아이를 구한 거야....?’


류지호의 얼굴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득 찼다.

누군가를 구한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니까.

외국인 가족이 침대로 다가왔다.


- 몸 상태는 좀 어때요?


중년 남자가 영어로 물었다.

통역이 나서기 전에 류지호가 대답했다.


- 아주 좋습니다.


심영숙이 놀란 얼굴로 아들을 돌아봤다.

영어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말을 알아듣는데, 대화는 힘들어요.”


통역을 도와주는 여성이 모자간의 대화를 외국인 가족에게 전했다.

풍채가 좋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침대로 바짝 다가왔다.

흰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노인은 주름이 많았지만 혈색 도는 볼에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다.


- 난 윌리엄 파커라는 노인이고, 여기는 내 아들 제임스, 저기 여자아이가 학생이 구한 내 손녀 레오나라네.


미 육군 정복을 입은 노인의 이름은 윌리엄 J. 파커(William J Parker).

한국전쟁 당시 미 육군 제7보병사단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참전용사였다.

스마트하게 생긴 남자가 레오나라는 이름의 여자아이 아빠 제임스 T 파커였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호 류라고 합니다. 지호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자기소개와 인사정도는 과거로 돌아온 것과는 상관이 없이 영어로 할 수 있었다.


“신효정이에요. 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시면 됩니다.”


이후부터 신효정의 도움으로 파커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미안해요. 일찍 찾아온다는 게 이렇게 늦고 말았군요.

- 아닙니다. 일찍 오셨어도 제 잠든 모습만 구경하시다가 돌아가셨을 겁니다.

- 지호군의 용기와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윌리엄은 군인 출신다운 태도와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군인다움이 묻은 영어 말투를 알 리가 없다.

류지호의 눈치로 파악한 것이 그렇다는 거다.


- 내 손녀를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 같네.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 아닙니다. 제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류지호는 두 손을 저으며 겸양을 떨었다.


- 레오나의 아빠로서 나 또한 지호군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도록 하겠습니다.

- 은혜라니요? 감사만 받겠습니다.

-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즉시 말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제임스는 아버지 윌리엄과 달리 부드럽고 상냥한 이미지의 남자였다.


- 레오나,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아빠의 말에 레오나가 조심스럽게 침대가로 다가왔다.


-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빠의 뒤로 숨었다.

결혼을 한다면 저런 예쁜 딸을 갖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레오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여자아이는 <하늘이 보내준 딸>에 출연한 해나 패닝을 닮은 얼굴과 금발머리, 사파이어를 닮은 파란색 눈동자가 아역 배우라고 해도 될 정도로 깜찍했다.


- 반드시 사례는 합니다. 가족 모두를 대신해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이러시지 마세요. 부담스럽습니다.


제임스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류지호는 난처함에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숙이는 제임스를 만류했다.


-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 겸손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이 한 행동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어요.

- 손녀분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윌리엄의 두꺼운 손이 류지호의 손등을 토닥거렸다.

류지호는 애지중지하는 손녀 레오나를 구해준 큰 은인이다.

그 어떤 것으로 보답을 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파커 가족은 류지호에게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진 것이다.

거듭되는 감사의 인사가 민망했지만, 마음 한편이 뿌듯해지는 것은 류지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신효정의 통역으로 꽤 긴 시간 담소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윌리엄이 참전용사임을 알게 됐다.

9·15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에 초청 받아 가족 모두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노구의 윌리엄이 언제 다시 한국을 방문할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빠듯한 일정이 아니라 시일을 길게 잡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원래 계획은 인천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곳곳을 관광할 예정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류지호는 윌리엄의 시선이 상당히 거북했다.

마치 자신의 폐부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운 눈빛이라고 할까.

기품 있는 태도로 인해 범상치 않은 신분의 사람들인 것을 눈치 채고 말과 태도에 신경을 썼다.

그럼에도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윌리엄의 눈길에 내심 긴장을 내려놓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찜찜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병문안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제임스는 사고 처리와 보상은 자신이 다 알아서 할 테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푹 쉬라고 당부했다.


- 제 명함입니다.


류지호는 제임스가 내민 명함을 받았다.

G&P Investment Bank.

CEO James T. Parker.

명함에 회사가 뉴욕에 위치하고 있으며, 투자은행을 알려주는 기업명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다.


“......”


윌리엄은 손녀를 구해준 것만으로 인성이 좋은 소년일 것이라 예상했다.

막상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니 유쾌하기까지 한 소년이다.

한 가지 꺼림칙한 것이 있긴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어쨌든 병문안 분위기는 좋았다.


- 오늘 통역을 도와준 미스 신은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곤란한 일이나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세요. 즉시 처리해 줄 겁니다.


제임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효정이 심영숙에게 명함을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 저와 이야기 나주시죠.”


신효정이 심영숙을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


-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 지호군을 붙잡고 있었군요. 쉬어야 할 테니 우리가족은 이만 돌아갔다가 다시 방문하도록 하죠.

“I hope you always stay healthy, William 할아버지.”

“할아버지?”

"Many happy returns, Grandpa!(만수무강 하세요. 할아버지)“


류지호는 아무리 문화적 차이라지만 노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한국식으로 공경하는 의미인 할아버지라고 표현했다.

받아들이는 윌리엄은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윌리엄은 껄껄 웃으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 빨리 아픈 거 나아요~


레오나가 수줍게 말하고는 제임스의 다리에 매달려 병실을 빠져나갔다.

류지호는 복도까지 나와 파커 가족을 배웅했다.

병실 앞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서양인 둘이 서있었다.

병문안 동안 밖에서 임무를 수행한 모양이다.


‘....!’


류지호는 파커 가족이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오나. 안녕.”

“지호도 안녕~”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닫히는 걸 확인하고, 류지호와 심영숙이 병실로 돌아갔다.

부(富)에도 특유의 기품이 있다.

아무리 고상하게 치장하고 비싼 액세서리를 두르고 있더라도 기품의 깊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류지호가 보기에 파커 가족이 보여주는 부유함은 연륜이 있는 것 같았다.

졸부나 어설픈 부자가 아니라는 거다.

윌리엄이란 노인에게서 어떤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면, 그의 아들인 제임스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였다.

지적이고 신사 같다랄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된 것이다.

자신 역시 이번 일로 몇 가지 깨달은 것도 있고.

류지호는 저녁에 나온 병원식을 깨끗하게 비웠다.


"옵빠아아아~“


병원식을 치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이 병문안을 왔다.

특히 류아라가 류지호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류민상은 아들의 무모함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하하.”


류지호는 뒷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류아라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류지호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큰오빠, 많이 아파?”

“아라가 호~ 불어주면 금방 날 것 같은데?”


류아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진짜?”

“그으럼~”

“호~”


류아라가 입술을 오므리고는 류지호의 상처에 입김을 불었다.


“아라야, 오빠 간지러워.”


몸을 움찔거리는 류지호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한 류아라가 더욱 센 입김을 불었다.


“하하, 간지럽다니까.”

“헤헤.”


류순호가 유치하게 장난치는 형과 여동생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당신이 우리 아들이 미국사람하고 영어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심영숙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남편에게 말했다.


“미국사람들 다녀갔어?”

“낮에 왔다갔어요.”

“지호가 영어로 이야기 했다고?”

“그냥 간단한 말만 알아듣고 말한 것뿐인데......”


류지호가 쑥스러워 말을 흐렸다.


“호호호. 마이마이 사준 값을 톡톡해 하네요.”

“다른 말은 없고?”

“변호사인가 하는 여자가 그러는데 보상을 하고 싶다고.....”

“무슨 보상?”

“지호하고 아이들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네요. 대학교까지.”

“흠.”

“그리고 우리에게도 사례금을 주겠다는데......”


심영숙이 남편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받아들이셨어요?”


류지호가 심영숙에게 물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겠니? 아빠하고 상의한다고 말했지 뭐.”

“그러겠다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류민상의 표정이 엄해졌다.


“네가 장한 일은 한 것은 맞지만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냐?”

“그건 아니지만......”

“지호야,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우리가 없이 살아도 굶지는 않는다. 아빠가 대학 나온 사람처럼 벌지는 못해도 너희 삼남매 대학 못 가르칠 정도는 아니다.”


류지호가 심영숙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 문제는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몸 추스르는데 신경 써.”

“예.”


류지호는 아버지의 엄한 표정을 보며,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임에도 불구하고 한문도 제법 알고, 때때로 선비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다.

류지호는 항상 피곤에 찌들고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했다.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야 보였다.


‘되도 않는 선비질과 똥고집이 아버지를 닮았던 모양이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이만 갈게.”

“어머니도 같이 집으로 가세요.”


류지호는 망설이는 심영숙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큰오빠랑 같이 있을래. 싫어! 여기서 잘 거야.”


류아라는 하루 못 본 것만으로도 큰오빠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자꾸 떼쓰면 큰오빠만 힘들어.”


류아라는 울면서 류지호에게 매달렸다.

한참을 울며불며 떼를 쓰던 류아라는 엄마의 회유와 압박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힝, 큰오빠... 안녕...”


울먹이며 손을 흔드는 류아라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류지호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눌러야 했다.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잠시 조용한 시간을 갖나 싶었다.

이번에는 사인방 친구들이 병실로 쳐들어왔다.


“1인실에서 팔자 좋네!”


친구들은 류지호는 제쳐두고, VIP 병실을 처음 와본 태를 내며 감탄하기 바빴다.


“냉장고에 음료수 있어. 하나씩 마셔라.”


고우찬은 냉큼 냉장고를 열어젖히더니 음료수를 꺼내 친구들에게 돌렸다.

황재정이 음료수를 받아들고, 특유의 시비조로 입을 열었다.


“괜찮냐?”

“멀쩡해.“

“무슨 깡으로 그랬냐?”

“몰라.“

“죽을 수도 있었다며?”

“살아 있잖아.”

“너희 엄마 말씀으로는 차에 그대로 꼬라박았다던데?”

“내가 그림 같은 낙법으로 보닛을 타고 넘어서 아스팔트 바닥에 팍 낙법으로... 암튼 내가 액션영화 한 편 찍었다.”


류지호가 짐짓 허세를 부렸다.

곧장 황재정의 표정에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나왔다


“야,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마. 그러다가 눈 찢어지겠다,”

“네가 한 걸 믿을 수가 있어야지. 네 성격상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도 이해를 못 하겠어.”

“질풍노도의 시기잖아. 그런 시기를 겪다보니까 사람도 바뀌는 거다.”

“이 새끼. 말이라도 못 하면...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병문안 온 거 맞아? 시비 걸러 온 거 아냐?”


매사 비관적인 황재정이다.

인간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가 문예부에 들어서 읽은 시며 소설들은 시대를 반영하듯 어둡고 우울했다.

연일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 형들을 응원하는 황재정이다.

바꾸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걸 핑계 삼아 그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황재정은 경멸했다.

그렇기에 황재정은 류지호의 용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너처럼 쉽게 변하는 거냐?”

“비관적이거나 좌절감에 찌든 문학작품만 읽지 말고,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 작품 좀 읽어.”

“흥! 네가 문학을 알아?”

“너보다는 책 많이 읽었을걸.”

“뭐 읽었는데?”

“됐고! 우찬이 네가 나 대신에 신문 돌렸다며?”


류지호가 빵과 사이다를 입안에 욱여넣고 있는 고우찬으로 대화 상대를 바꿨다.


“나한테 빚 하나 진거야. 까먹으면 뒈진다.”

“내가 친구 하나는 제대로 키웠다.”

“키우긴, 지랄!”

“하하하.”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퇴원할 때까지 내가 신문배달 해줄게.”

“진짜?”

“엉아만 믿어!”

“혼자 돌리려면 꽤 힘들 텐데.”


고우찬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우찬이가 빵 다 먹는다!”

“병문안 와서 환자 거 뺏어 먹냐?”

“괜찮아, 배고프면 마음껏 먹어.”

“오예!”


고우찬이 제일 신나 빵이며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김준우와 황재정도 슬그머니 합세했다.


“하하하!”


류지호는 세 친구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졌다,

친구가 좋은 것은 이런 작은 것에도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친구들은 음식과 음료수를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병원을 떠났다.


❉ ❉ ❉


류지호가 병원에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

부모님께 퇴원할 뜻을 밝혔다.

제임스가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으로 찾아왔다.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강하게 권했다.

류지호가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정밀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옮기기를 바랐다.

류지호가 완강하게 거부를 함으로써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이런 검사는 왜 받아야 하는 겁니까?”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다 받으세요.”

“전 열일곱 살입니다.”


류지호는 교통사고와 아무 상관도 없는 위와 장 내시경 검사까지 받느라 눈물 콧물을 한바가지 쏟았다.

무슨 검사가 그리도 많은지, 류지호는 녹초가 됐다.

없던 병도 생길 정도로 괴롭고 피곤했다.

어쨌든 다음날 검사결과 나왔다.

의사로부터 퇴원해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친구들이 퇴원소식을 듣고 찾아와 격려를 해줬다.

특히 파커 가족은 퇴원선물이라며 갖가지 학용품과 옷가지 등을 잔뜩 싸들고 찾아와 이래저래 분위기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낯을 가리던 레오나가 류지호의 가족과 많이 친해졌다.

특히 또래인 류아라와 언제 친해졌는지 말도 통하지 않음에도 잘도 어울렸다.

점심 무렵, 퇴원수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신효정이 택시를 대절해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변호사님이 어쩐 일이세요?”

“파커 가족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지호학생 가족분들을 집까지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앞으로도 제가 제임스씨를 대리할 겁니다.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변호사는 고급직업이다.

부부는 그런 사람이 자신들을 위해 잔일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택시 두 대를 대절했으니 나눠서 타시면 됩니다. 지호학생은 나와 함께 타시죠.”


부모님이 한 차에 타고, 류지호는 신효정과 함께 택시에 탔다.

택시 두 대가 병원을 벗어났다.


“지호학생 아버님이 제임스의 보상 제안을 거절했다는 걸 알고 있죠?

“그러셨군요.”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줬으면 해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나는 지호학생이 보상금도 받고 장학금도 모든 형제가 다 받을 것을 권하고 싶어요.”


류지호는 신효정이 자신의 가족을 깔보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주제에 자존심 세우지 말고 주는 돈 넙죽 받아먹으라는 말씀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에요.”


어딘지 날이 서있는 류지호의 말에도 시종일관 차분한 신효정이다.


“윌리엄 파커께서 지호학생을 좋게 봤어요.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아이를 구한 용기 있는 행동에도 크게 감명 받았지만, 지호학생에게는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이대로 잘 성장하면 주변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똑바로 자신의 길을 갈 타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좋게 봐주시니 고마운 일입니다. 나중에 제가 크게 감사하더라고 전해주세요.”


류지호는 그저 립서비스라고 여길 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윌리엄께서 아드님인 제임스에게 지호학생을 잘 키워보라고 말씀 하셨어요.”

“미국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하고 또 사랑합니다.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커 가족이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그 분들을 대리하게 되지요. 한국에서 일어나는 지호학생과 가족의 관한 사안을 처리하는 일을 맡을 거예요. 일종에 고문변호사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류지호는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퇴원을 하는 순간 그들과 인연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고문변호사를 붙여준단다.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고.


“고문변호사로서 내 생각을 들어보겠어요?”


류지호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봐야 했다.


“사례금, 보상금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 그 돈에는 지호학생에 대한 투자의 의미도 들어있다고 봐요.”

“저에 대한 투자요? 절 언제 봤다고.....?”


류지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딸을 구해준 고마움을 넘어 뭔가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 같다는 뉘앙스다.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신효정은 투자라는 표현을 썼다.

사례금을 받지 않으려는 류민상을 설득하기 위한 의미로 투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순간 그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혹시 제 뒷조사를 했다거나 주변을 탐문했다거나 하는......”

“설마요. 고등학생에게 뒷조사를 할 만큼 비밀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 몇 마디 나눠보면 대략 어떤 학생인지 알 수가 있답니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말을 하던 신효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열일곱 살의 입에서 뒷조사 운운하는 말이 나오자 황당하면서 엉뚱한 학생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떠보듯 입을 뗐다.


“저는 그리 뛰어난 학생이 아닙니다만.”

“글쎄요. 판단은 두 분이 하시는 거고, 나는 그 분들을 대리해 일을 할 뿐. 단지 개인적으로 지호학생 가족이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왜요?”


류지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신효정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혹시 파커가족과의 인연이 신변호사님의 법률사무소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까?”

“글쎄. 그것까지는 알려 줄 의무는 없다고 보는데......”


신효정이 말끝을 흐렸다.


‘이 아줌마가 어디서 약을 팔려고 그래?“


류지호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물었다.


“윌리엄 어르신과 제임스씨가 신변호사님 법률사무소에 기회가 될 정도로 미국에서 대단한 사람입니까? 월가의 메이저 투자은행 오너라도 된 답니까?”

“적어도 구멍가게 수준의 펀드를 운영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설마 스탠리모건이나 레만 같은 그런 수준의 금융회사 오너는 아니겠죠? 에이~ 설마?”

“글쎄요....”


신효정은 지금의 대화가 재미있었다.

류지호는 얼마 전 소년 딱지를 뗀, 고작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그런데 월가와 법률사무소를 들먹이더니, 세계 삼대 투자회사를 말하지 않나 투자회사의 개념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윌리엄이나 제임스가 미처 보지 못한 면을 신효정이 발견한 것 같다랄까.


“변호사님 법률사무소가 서초동에 있습니까?”

“그래요.”

“제가 방학 끝나기 전에 한 번 찾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언제든지요.”


어느덧 택시가 류지호의 집 앞에 도착했다.


“폐를 끼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편안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불편한 류민상이다.

따라서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신효정에게 감사부터 전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건 파커 가족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겁니다. 감사는 파커 가족에게 하십시오. 그럼 쉬십시오.”


타고 온 택시에 도로 타려던 신효정이 류지호를 향해 돌아섰다.


“지호학생... 파커 가족은 이 동네 땅 전부를 보상이나 사례금으로 요구한다고 해도 큰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요.”

“그럴지도 모르죠. 아무리 월스트리트에서 작은 헤지펀드라도 현재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움직이는 규모보다는 다루는 자금이 클 테니까.”

“후훗.”


신효정은 다시 한 번 류지호에게 강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잘도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열일곱 살이라고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평범하지 않은 고등학생임은 분명했다.


“빠른 시일 안에 만나기를 기대할게요.”

“오늘 감사했어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신효정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류지호를 생각했다.


‘천재인가? 학업성적은 특출 난 것이 없었는데.’


신효정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류지호와 대화를 나눠보니 마치 어른과 마주하는 인상을 받았다.

윌리엄이 말한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안정감이 그런 모습일까.


“궁금해지네,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신효정이 어떤 생각을 품게 되었지 모른 채 류지호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집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것도 두 그릇씩이나.


작가의말

연말연시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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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879 26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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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Goodfellas. (3) +13 21.12.23 16,669 262 20쪽
6 Goodfellas. (2) +12 21.12.22 17,261 29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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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gain 1987. (2) +11 21.12.21 22,046 337 20쪽
2 Again 1987. (1) +20 21.12.20 27,773 398 21쪽
1 프롤로그. +49 21.12.20 40,616 46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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