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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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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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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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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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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새벽 4시 정각.


류지호의 기상 시각이다.

과거로 돌아 온 후 매일 새벽 4시 기상이 습관화 되었다.

처음에는 수면시간이 부족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신문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을 제외한 평상시에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느 날처럼 맡은 구역에 신문을 돌린 후 류지호가 보급소로 돌아왔다.


“찾으셨습니까?”


보급소장이 의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리 앉아봐라.”


류지호가 등받이 없는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뛰면서 돌리려니 힘들지?”

“한 구역만 도는 거라 할 만합니다.”

“네가 맡은 구역 쪽에서는 왜 신문 안 왔냐는 항의 전화는 안 오더라.”

“대문에 끼우지 말고 마당 안에 던져 넣으라고 하셔서.”

“훔쳐가는 못 된 심보를 가진 놈들이 좀 많아야지.”


신문을 배달할 때, 양옥 주택의 마당에 함부로 던지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마당에 물기라도 있다면, 신문이 젖어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그리고 대문 사이에 대충 끼워 넣으면, 아무나 자기 것인 양 빼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당장에 구독자로부터 쌍욕을 듣게 되고, 보급소로 항의전화가 온다.


“이제 요령은 좀 생겼어?”

“그럭저럭. 욕 들어먹으면서 하는 일이라고 맘 편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짬밥도 안 되는 놈이 자전거 타고 돌리면 일을 두 번 하는 수가 있어.”

“한 달 해보니까 이것도 만만한 게 아닌 걸 알겠습니다.”


신문을 돌리다보면 신문을 던지게 될 때가 많다.

신문을 던지는 것이 쉬워보여도 요령이 없으면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벽을 맞고 도로 튕겨져 나오기도 하고, 개집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보기 좋은 모양으로 접혀 놓아야 하는데 신문이 활짝 풀어헤쳐지기도 한다.

던지는 각도, 신문의 무게, 접는 방식, 던지는 자세, 바람의 세기, 떨어지는 곳에 깨지는 물건 유무 등등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나름 고난도 기술이 필요했다.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든 거야.”


보급소장이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한 달 동안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류지호가 봉투를 받아들고, 들뜬 기분으로 대답했다.


“월급으로 딴 짓 하지 말고 부모님 내복부터 사드려.”

“예.”


적은 돈이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 처음으로 번 돈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류지호는 월급봉투를 안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신문보급소를 나섰다.


❉ ❉ ❉


체육시간.

일반 체육시간과 달리 오늘은 조금 달랐다.

운동장이나 실내체육관 아닌 유도장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신포고의 학교체육이 유도였기 때문이다.


쿵!


학생들이 유도장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전방회전낙법으로 왕복했다.

학생들 틈에서 류지호가 회전낙법을 깔끔하게 해냈다.

체육교사가 다가왔다.


“자세가 깔끔한데?”

“감사합니다.”


류지호가 겸양을 떨었다.


“운동 했냐?”

“태권도 합니다.”


체육교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볼 땐, 너 소질 있다.”

“하....하.”


류지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운동에 소질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어릴 때부터 삐쩍 말라 멸치대가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런데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아침 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어 폐활량도 조금씩 늘고, 남들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미세하게 근육도 붙고 있다.

앞으로 키도 2~3센티는 더 클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활동 뭐 해?”

“방송부 외에 따로 하는 건 없습니다.”

“유도는 어때?”

“재미있습니다.”

“공업선생님이 방과 후에 학생들하고 유도하는 거 알아?”

“예.”

“격투기 좋아하면 들러봐라.”

“신경 써주셔 감사합니다.”

“태권도도 포기하지 말고.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해.”


체육교사가 류지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멀어졌다.

체육교사는 교감, 학생주임, 교련교사 못지않은 꼴통이다.

다만 방송부원에게는 모질게 굴지 않는다.

방송부라면 웬만한 잘못은 넘어가 줬다.

체육대회 때마다 방송부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종이 울린 후에 류지호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유도장을 방문했다.


꽝!


키가 큰 학생도 단숨에 넘겨버리는 단신의 공업교사가 단연 돋보였다.

165Cm 정도 신장의 공업교사는 앞이마가 시원하게 드러난 대머리다.

그는 중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단단한 체구를 자랑했다.


꽝!


류지호는 쉴 새 없이 학생들을 매트에 메다꽂는 공업교사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동안 홀린 듯 유도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방송부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짙은 눈썹 때문인지 제법 사내다운 인상의 학생이다.

유도복을 입은 학생은 류지호가 올려다 볼 정도로 머리 하나 만큼 키가 컸다.


“난 1학년 유도부장 안승혁이야.”

“나도 1학년. 류지호라고 해. 근데 우리 학교에 유도부도 있었어?”

“특별활동인데 인원이 많이 늘어서 정식 서클이 됐어.”


몰랐던 일이다.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그저 공업선생의 취미생활을 도와주는 학생 몇이 어울려 운동 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까부터 계속 구경하더라? 유도에 관심 있어?”

“체육쌤이 한 번 가보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난 중학교 때 배구하다가 다쳐서 운동 접었거든. 유도 해보니까 꽤 할 만해.”

“매일 이렇게 모여서 운동하는 거야?”

“평일에는 야자 전까지만 하고, 주말에 주로 빡세게 하는 편이야.”

“우리 방송부는 중복 서클 활동을 할 수 없어.”

“유도부는 학교에서 같이 운동만 하지 따로 구속하는 거 없어.”

“서클이라며?”

“저기 개장수.... 공업쌤이 서클 아니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 셔. 나오면 나오는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그냥 자유롭게 하재.”


공업교사는 88오토바이 중고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오토바이 뒤에 개를 싣는 철창을 그대로 방치하고 다녔는데, 때문에 개장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쨌든 서클인데 서클 같지 않은 유도부다.

류지호는 소속감 없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공업 쌤이 유도도 가르쳐줘?”

“안 가르쳐 주셔. 무조건 대련이야. 선수로 뛸 것도 아닌데 기본만 연습하면 쉽게 질려서 그만 둔다나. 어디 가서 맞지 않을 정도 딱 그 정도만 하래.”

“그럼 마구잡이로 하는 거야?”

“처음 오면 형들이 기본은 가르쳐 주긴 해. 아주 기초적인 건 체육시간에 배우잖아. 낙법 같은 거.”

“나도 유도장 나와서 유도해도 돼?”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싫으면 안 나와도 된다니까.”


류지호는 자신의 하루 일과를 곰곰이 따져봤다.


‘요 몇 일간 야자를 빼먹고 저녁에 운동을 하고 있단 말이지. 매일 야자를 빼먹으면 담임한테 걸리는 건 시간문제야. 태권도는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새벽반에서 하는 걸로 충분할거야. 여름 방학까지는 태권도를 새벽에 하는 걸로 하고, 저녁에 유도장에 나오는 걸로 할까?’


류지호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안승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생각해?”

“내일부터 잘 부탁한다.”

“나오고 싶으면 나오라니까. 맘대로 해.”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야지. 제대로.”

“유도복은 있냐? 안사고 수업시간에만 빌려서 입는 놈들도 많아서.”

“방송실에 널린 게 유도복하고 교련복이야. 안 빨아서 냄새나고 더러워서 그렇지.”


처음 수봉공원에서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건강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박광렬 패거리에게 삥을 뜯기고 나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적어도 같은 또래에게는 일방적으로 맞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더해 과거로 돌아오기 전 골골대던 육체와 달리 고등학생의 건강한 육체는 생각보다 활력이 넘쳤다.

공부든 일이든 뭐든,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건강이 없다면 의욕도 의지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운동의 종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수가 될 것이 아니니까.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했다.


‘너무 의욕만 앞서는 건가?’


실패한 삶에서 중고등학교 6년과 군대 2년 6개월을 자유가 없는 단체생활을 한 것 외에 나머지 삶을 영화감독이라는 프리랜서로 살았다.

프리랜서의 삶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지만, 방만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류지호는 명백히 후자였다.

일분일초를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멍청이! 또 그렇게 살고 싶은 거냐?’


류지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류지호의 하루 일과에 유도가 추가되었다.

류지호는 내친김에 방송실의 사물함을 뒤져 냄새나는 교련복, 체육복, 유도복들을 모두 꺼냈다.

수돗가로 가지고 가서 깨끗하게 빨았다.

그 중 상태가 가장 좋은 유도복을 한 벌 챙겼다.

류지호는 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방송실에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학교를 벗어났다.

동인천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다 속옷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식구들의 내복도 구입했다.

집에 오자마자 식구들을 거실로 불러 모은 후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 늘어놓았다.

심영숙이 내복을 꺼내 들며 물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내복을 샀어?”

“......”


류민상이 내복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류지호에게 물었다.


“그간 신문배달 한 거냐?”

“어떻게 아셨어요?”


류지호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다고 살짝 표정을 굳혔다.


“중학교 내내 게을렀던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새벽같이 일어나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부모가 있겠냐?”

“그, 그렇겠네요.”


류지호가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류민상이 담배를 피워 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출근하는 길에 네가 신문보급소에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근데 왜 가만히 계셨어요?”

“며칠 하다가 포기할 줄 알았지.”


부모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아무리 호칭을 바꾸고 철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열일곱 살은 아직 애다.

게다가 천성이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들이다.

꾸준히 신문을 돌릴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공부하기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잠은 언제 자니?”


심영숙이 아들이 안쓰러워 걱정스레 말했다.


“공부 좀 하는 애들은 다 저처럼 몇 시간 안자요.”

“엄마는 아들 몸 축날까봐 그러지.”


류지호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침에 운동하듯이 신문을 돌리면 체력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좋아져서 오히려 공부가 잘돼요. 공부도 체력으로 하는 거예요. 누가 책상에 오래 집중해서 앉아있냐 싸움이에요.”

“네 뜻은 알겠다. 언제든지 무리다 싶으면 관둬.”

“아라 아빠!”


심영숙이 남편의 허락에 제동을 걸었다.


“놔둡시다.”

“공부하기에도 벅찰 애가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벌겠다고 고생을 사서 한다는 게 말이 되요?”

“얼마나 돌리냐?”

“100부 조금 넘어요. 한 시간 정도 돌리고요.”

“들었지? 운동 삼아 한 시간 돌리는 거라잖아.”

“한 달 정도 돌리니까 이제 적응이 되어서 안 힘들어요. 어머니.”


류지호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보탰다.


“고삼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 대신 돈 욕심에 몸 축날 정도로 무리하지는 말고.”


류민상이 결론을 지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또?”

“태권도 다시 시작했어요.”


류민상과 심영숙이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혹시 학교에서 누가 괴롭혀?”


류민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류지호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류지호가 양손을 격렬하게 저으며 부인했다.


“아버지, 어머니도 알다시피 제가 어릴 때부터 입이 짧아 비쩍 말랐잖아요. 편식도 좀 심했고.”


류민상과 심영숙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실 거예요. 언젠가부터 제가 먹는 양도 늘고 편식도 안한다는 걸요.”

“알다마다. 나물하고 멸치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고 가져오잖니.”

“운동을 하니까 식욕도 마구 돌고, 돌이라도 소화시킬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배고픈 게 뱃속에 거지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니까요.”


류지호가 농담조로 말했지만 부모님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태권도 관비를 벌려고 신문배달 시작한 것이냐?”

“아니요.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에요.”

“돈 달라고 하면 엄마가 안 줄까봐 네 멋대로 저지르고 본거야?”

“상의 없이 일 시작한 건 죄송해요. 하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럼 이유가 뭔지 말해봐라”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회사 다니시고, 매일 잔업까지 열심히 일하시잖아요. 어머니도 매일 부업하고요. 저도 두 분처럼 열심히 살고 싶어요. 뭐든지 최선을 다해 배우고 싶어요. 가족을 위해서도, 저를 위해서도요.”

“......”


류민상과 심영숙은 할 말을 잃었다.

큰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많이 챙겨주지 못하고, 사실상 알아서 커가는 삼남매다.

고등학교 1학년은 가족을 위해서 뭘 할 나이가 아니다.

자식이 뭔가 해야만 할 정도로 부모로서 형편없지도 않고.


“알았다.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둬. 건방지게 가장 자리 넘보지 말고.“


류민상이 어색한지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류아라가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엄마, 나 이 옷 입어 봐도 돼?”


심영숙의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류아라가 잠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졌다.


“이 기집애가.... 가만있지 못해!”


류아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재빨리 빨간 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어머니도 한 번 꺼내보세요. 치수가 안 맞으면 바꿔 와야죠.”

“어떻게 번 돈인데... 엄마는 차라리 그냥 돈으로 바꾸고 싶어.”

“이미 아라가 입어서 못 물러요.”


류지호가 빨간 내복 차림으로 거실을 뛰어다니는 류아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라야, 내복 맘에 들어?”

“응! 큰오빠, 옷이 빨게~”


류순호가 내복을 들어 살펴보며 불퉁거렸다.


“빨간색은 좀 그런데. 내 건 다른 무난한 색깔로 사오지.”


심영숙이 내복을 자신의 몸에 대보는데, 류아라가 달려들었다.


“와아~ 엄마 옷은 꽃이 달렸어!”


류지호는 부모님에게 드릴 것으로 특별히 고급 내복을 골랐다.

심영숙의 내복 상의 브이넥에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큰오빠, 나도 저걸로! 나도 꽃 있는 걸로 바꾸면 안 돼?”


류아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류지호를 바라봤다.


“그냥 그거 입어주면 안될까?”

“오빠아아아~”


류아라가 류지호에게 애교를 부렸다.

류지호가 졌다는 듯 그러마 하려는데 심영숙이 끼어들었다.


“겨울도 아닌데 내복을 입고 설치지 말고, 얼른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어.”

“싫은데......”

“엄마 말 안들을 거야?”


심영숙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오늘 이거 입고 잘 거야!”


류아라가 빽 소리치고, 부리나케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 잘 입을게.”

“엄마도.”


가족들이 내복을 챙겨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아들. 누가 때리고 괴롭히면 선생님한테 말씀드려. 아니면 방송부 형들에게 말하던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중학교 가면서 태권도 그만 둔 것이 아쉬웠어요. 고삼 되면 매일 책상에만 앉아있을 텐데 그전에 미리미리 체력을 길러놔야죠.”

“무리다 싶으면 엄마가 그만하라고 할 거야. 알았지?”

“네.”


그날 밤.


류아라는 큰오빠가 사준 빨간 내복을 입은 채 심영숙의 품에 안겨 잠을 잤다.

심영숙은 아들이 선물한 내복을 신주단지 모시듯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

가보로 간직할 태세다.

잠든 류민상에 입가에도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류지호는 오늘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부모는 다르다.

살면서 이 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자식의 성장은 부모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이니까.


❉ ❉ ❉


류지호는 방송실 청소를 끝내자마자, 깨끗한 유도복을 챙겼다.


“빨래 지호 네가 한 거야?”


방송실을 나서려던 류지호에게 박상은이 물었다.


“빨래는 내가 해줄 수 있어. 대신 사물함에 아무렇게나 우겨 넣지만 말아주라.”


류지호가 유도복을 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철웅이 물었다.


“유도하게?“

“한 번 배워보려고.”

“태권도 한다며?”

“매일 할 건 아니고.”

“키 키는 데는 농구가 좋아.”

“서클 가입해야 하잖아.”

“그렇긴 하지.”


야간자율학습 시작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다.

류지호는 유도복을 챙겨 유도장으로 향했다.


“진짜 왔네?”

“어... 근데 좀 어색하다.”

“일단 유도복부터 갈아입자.”


둘은 유도장 구석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유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안승혁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인지 팔 다리에 잔 근육이 발달해 있었다.


‘키도 크고, 적당한 근육까지. 자식... 부럽네.’


류지호가 내심 부러워하는데, 안승혁이 말을 걸었다.


“먼저 몸부터 풀어놔야 돼. 안 그럼 운동하다가 다쳐.”


류지호는 태권도를 하면서 익숙해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어, 지호 아냐?”


류지호가 말을 건 3학년 선배를 향해 넙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SPBS 17기 류지호에요.”

“그래, 오랜만이다.”


인사를 받은 선배는 방송부 3학년 하재근이다.

방송실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라서 다른 선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별로 없는 선배다.

과거로 오기 전 삶에서 류지호가 영화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가 하재근이었다는 사실.


“유도 하려고?”

“예.”

“2학년 애들이 뭐라고 안 해?”

“청소 마치고 온 거라 별 말 없었습니다.”

“방송부가 군대도 아니고, 다나까 쓰지 말라니까.”


하재근이 질색하며 류지호를 나무랐다.


“입에 붙어서 잘 고쳐지지 않네요.”

“지호가 유도는 처음이라 기술 같은 걸 잘 몰라요. 저도 이제 막 배우는 처지라. 형이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안승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래도 저 놈이 직계 후배다. 선배가 되가지고 모른 척 할 순 없지.”


하재근이 단박에 승낙을 하고, 둘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우선 유도의 기술로는 메치기라는 것이 있어. 유도의 핵심을 이루는 기술인데 상대를 어깨 너머로 메어치는 걸 말해.”


먼저 대략적인 이론수업이 시작됐다.


“몸의 자세에 따라 서서하는 기술, 누우면서 하는 기술로 크게 나눌 수 있어. 유도는 허리를 중심으로 온몸을 조화롭게 써야해.”


류지호는 선배 하재근으로부터 다양한 유도 기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안승혁을 상대로 업어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또 그만큼 상대가 되어 주면서 유도 수련의 첫날을 마쳤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하려고 달려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변해만 한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다면 내일도 오늘과 똑같을 것이다.

오늘 하루가 바뀌면 내일 아침이 바뀌게 될 터.

그렇게 작은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언제가 성과로 돌아오리라.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작가의말

코시국으로 한 해 동안 고생하신 독자님들, 성탄절 연휴 세상 편하게 즐기며 쉬십시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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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8 21.12.28 13,582 244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6 21.12.27 14,120 273 20쪽
1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3) +7 21.12.27 14,322 280 22쪽
1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11 21.12.26 14,592 277 21쪽
1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1) +12 21.12.25 15,141 266 22쪽
11 돈을 왕창 벌자! +13 21.12.25 15,578 272 20쪽
»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9 21.12.24 15,275 275 20쪽
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879 260 21쪽
8 Goodfellas. (4) +10 21.12.23 16,145 279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669 262 20쪽
6 Goodfellas. (2) +12 21.12.22 17,261 292 19쪽
5 Goodfellas. (1) +20 21.12.22 18,504 295 21쪽
4 Again 1987. (3) +25 21.12.21 19,260 328 20쪽
3 Again 1987. (2) +11 21.12.21 22,046 337 20쪽
2 Again 1987. (1) +20 21.12.20 27,773 398 21쪽
1 프롤로그. +49 21.12.20 40,616 46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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