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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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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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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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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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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REMO : ....or Maybe Dead!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REMO> 최종편의 도입부에는 한국의 평범한 농촌마을이 잠시 등장한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주저 없이 한국 로케이션을 진행했겠지만.

장비문제와 빡빡한 촬영 스케줄 때문에 한국 로케이션은 포기했다.

대신 캘리포니아 북부 세크라멘토에 10가구가 사는 조용한 한국 농촌을 그대로 재현한 야외 세트를 지었다.

마을 앞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들녘이 펼쳐진 풍경을 류지호가 원했다.

일단 JHO Pictures에서 세크라멘토의 휴경지를 1달 간 임대했다.

프로덕션 디자인팀이 한국농촌 특유의 구불구불한 논두렁을 만들었다.

그곳에 인근 농장에서 누렇게 익은 벼를 사들여 옮겨 심었다.


“몇 에이커에요?”


류지호의 물음에 마이크 리바가 대답했다.


“2에이커가 조금 못 돼.”


1에이커가 1,224평이다.


“자포니카죠?”

“세크라멘토에서는 주로 자포니카를 재배한다고 하더군. 그 쌀로 초밥을 만든다고 들었네.”


일차적으로 미국의 초밥점에도 나가고, 일본에도 수출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지난해 쌀 생산량은 200여만 톤.

이중 약 50% 정도가 일본, 터키, 한국 등에 수출되고 있다.

미국에는 두 곳의 대표적인 쌀농사지역이 있는데, 한 곳은 <REMO> 최종편의 야외 세트가 지어진 세크라멘토고, 다른 곳은 미시시피 주변 지역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농업 총생산량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농업이 크게 발달했다.

미국 쌀농업의 80%를 점유할 정도다.

기업형 관개 농업지대로서 장립, 중립, 단립 등 3종이 재배되고 있는데, 이중에 한국 쌀농업에 영향을 주는 자포니카 타입인 중립종이 94%를 차지하고 있다.

아칸소,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미주리  모두 미시시피강 주변 범람지대로 벼농사의 곡창지대다.

이들 지역의 벼농사는 지력회복을 위해서 벼농사-콩-콩 이런 식으로 3년 단위의 로테이션이 기본 방식으로 재배된다.

마이크 리바가 벼를 구입한 농장은 직원만 200명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쌀농사를 짓고 있는 기업형 농장이다.

140만 평에 이르는 대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2,000평 정도에서 벼를 베어봤자 티도 나지 않았다.

<인터스텔라>에서 30만 평이 넘는 옥수수밭을 조성한 수준의 공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꽤나 고집스러운 영화적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후우.


류지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REMO> 최종편 크랭크 인을 했다.

워낙에 팀워크가 좋은 팀인데다가 <Zombie Apocalypse>에서 손발을 맞춰봤기에 프리프로덕션에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난감해졌다.

저 만치 낮은 언덕에서 <REMO> 촬영준비가 한창이다.

Eye-MAX 3D 영화는 성질 급한 감독은 절대 못할 짓임을 절감하고 있는 류지호다.

카메라 셋업 한 번 바꿀 때마다 기다림에 연속, 연속 또 연속이다.

마이크 리바가 답답해하는 류지호를 보며 웃었다.


“하하. 다들 꾸물거리는 것 같아 답답해?”

“조금 그러네요.”

“단편영화를 찍어보며 적응한 것 아니었나?”

“며칠 촬영하는 것이었어요. 이번에는 4달 이상을 이렇게 작업해야 하니까....”


류지호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마이크 리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내가 처음 할리우드 영화 어시스턴트로 참여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먼.”

“.....?”

“그때는 70mm 영화도 종종 만들어지곤 했지. 스튜디오 직원이 필름값을 아까워하며 카메라 옆에 찰싹 붙어서 잔소리가 엄청 심했던 시절이지.”

“Solido가 그 시대 파나비전 70mm보다 더 크지 않을까요?”

“더 크고, 더 아름답지.”


큰 것은 맞지만, 카메라 바디가 아름답지는 않았다.

디자인 개념이라곤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의 상자 모양이니까.

마운트에 매트박스를 달아놓으면 뭔가 폼이 나야하는데....

마치 소형 냉장고에 눈알 두 개가 멋대가리 없이 달려있는 것 같다고 할까.


“마치 에디슨이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최초의 영화 카메라를 떠올리게 하잖나.”

“처음 봤을 때 Bolex 16mm 카메라가 생각나더라고요.”

“Bolex를 다뤄보지 못했을 텐데?”

“UCLA에 세 대가 있어요. 저기 스테레오그래퍼로 참여한 로이와 학생 때 몇 번 가지고 놀았어요.”


말 그대로 가지고 놀았다.

이전 삶에서 한 번도 다뤄보지 못했기 때문에 ARiCH와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16mm 단편영화 모두 ARiCH 기종으로 작업했지만,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장비는 모두 다뤄보았다.

어쨌든 Eye-MAX Solido에 기어헤드를 장착한 상태에서 슈퍼크레인에 올려놓고, 의자에 걸터앉아 사진을 촬영하면 폼은 엄청 난다.

카메라와 함께 사진이 찍히면 꽤나 있어 보인다.

그래서 스태프 너도 나도 기념사진을 한 장씩 남겼다.


“준비가 어느 정도 된 모양이네요.”

“가보게.”


류지호는 마이크 리바에게서 떨어져 촬영장으로 향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거장들이 기다림의 미학을 미덕으로 삼아 작업을 한다.

각고의 기다림 끝에 성취하는 마법 같은 시간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감독이 영상 시인으로 불리는 타르코프스키다.

그와 같은 감독들은 영화가 예술로서 철학이나 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극단의 반대적인 성향의 감독도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감독이다.

철저한 사전 설계를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로 정확하게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류지호는 후자에 가깝다.

영화작업에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다림 혹은 대기의 미학을 부정하진 않는다.

영화라는 작업 자체가 오랜 준비 끝에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하는 예술이기에.


✻ ✻ ✻


류지호와 헤어진 마이크 리마가 한국의 농촌마을을 재현해놓은 야외 세트로 향했다.

한국의 논을 재현한 세트 테두리는 모두 그린 스크린으로 둘렀다.

추후 CG로 한국의 평야 풍경을 합성할 생각이다.

한국의 농촌을 재현해 놓았다고 해서 초가집은 아니다.

류지호의 강화도 외가 마을을 참조했다.

마이크 리바는 한국에서 분위기소품부터 일반 소품 일체를 공수해 왔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 막걸리 사발, 새참 광주리, 도리깨 등.

실제 한국의 시골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세트에 배치했다.

그를 위해 프롭팀을 한국에 파견까지 했다.

완벽한 듯 보이는 할리우드 영화가 고증 부분에서 욕을 먹을 때가 자주 있다.

고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다.

제작비 아끼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렇지.

할리우드 영화미술 작업 역시 전문화·세분화가 매우 잘 되어 있다.

무대 세트 디자이너, 소품 담당, 의상 디자이너 등이 있고, 그 안에 도면만 작업하는 사람이나 장식만 하는 사람이 따로 또 세분화되어 있다.

경력이 20~30년 차가 기본이다.

나이는 할리우드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장애요소가 아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

좋은 점도 있지만, 류지호가 보기에 답답한 점도 많았다.

각자의 전문 분야를 서로 존중해줘야 하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잡힌 방향대로만 진행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도 도중에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

심지어 거장 감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한국은 이러한 체계가 없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데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서 간 쓸데없이 기싸움을 벌여 시간과 감정 소모가 일어나는 단점도 있다.

대신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촬영 도중에라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고 반영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다.

어디가 맞고 틀리고 문제는 아니다.

서로 장단점이 있다.

마이크 리바가 데커레이션 파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쪽에 빨래 몇 개만 빼주게.”


데커레이션 담당자가 한국의 시골 빨랫줄에 걸려 있을 법한 옷가지 몇 개를 뺐다.

빨랫감 디테일까지 일일이 류지호가 확인했다.

중장년이 주로 사는 한국 시골 빨랫줄에 리바이스 청바지가 걸려 있으면 이상하니까.


“평상 위치가 너무 중앙에 있어. 5피트만 왼쪽으로 옮겨.”


마이크 리바는 데커레이션 팀원들과 함께 마당에 널어놓은 붉은 고추들의 수량을 추가시켰다.

영화 미술은 크게 공간 세트 디자인, 소품, 데커레이션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세트 제작팀은 크게 목공팀과 작화팀으로 나눌 수가 있다.

목공팀은 미술팀에서 그려준 도면을 보고 전체 건물 골조를 세운다.

작화팀은 세워진 골조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영화적인 질감을 표현해 줄 시트지 등을 붙여서 실제 같은 느낌을 만든다.

화면으로 보기에는 벽돌이나 시멘트 같아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목조로 건물 골조를 세우고 스티로폼으로 벽채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다치지 않도록 철골 구조물을 철재가 아닌 고무 소재로 만들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세트 제작팀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필두로 한 미술팀과 협업한다.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공간을 상상해서 도면을 그리면 세트 제작팀이 그대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이곳 야외 세트의 한국 시골 마을을 재현하기 위해, 마이크 리바는 자신의 조수와 함께 일주일 간 한국에 다녀왔다.

수백 장의 사진 자료를 가져와 도면과 함께 세트 제작팀에 넘겼다.

도면이 세트 제작팀에 넘어가면 어떤 마감재를 써서 영화 콘셉트에 맞는 건물의 느낌을 살릴지는 고민하는 건 세트 제작팀의 몫이다.

미국은 영화 미술을 위한 시대별 소품 창고가 따로 있다.

그 만큼 자료가 풍부하고 체계적이다.

류지호가 가본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도 그랬다.

반면에 국내 환경은 그렇지 못했다.

WaW 종합촬영소에서 전국을 돌며 시대 소품들을 수집하는 직원을 따로 고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항상 예산에 신경 써야 했다.

시대적 고증이 필요한 소품의 경우는 그때마다 제작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90년대까지 소품창고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관리되다보니 시대물 소품들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메이저 스튜디오 오너가 별 걸 다 신경 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류지호가 챙기지 않으면 충무로 인프라 발전이 세월아 네월아 늦춰질 뿐이다.


슥.


육중하고 거대한 Eye-MAX Solid의 오른쪽에 류지호가 섰다.

그곳에서 배우들이 서있는 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보이는 류지호만의 루틴이다.

다른 루틴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기곤 했지만, 이것만은 절대 없애지 못했다.

류지호가 윌리 워커와 오순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죠. 두 사람?”


윌리 워커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2편까지 함께 했으면 더 좋았을걸.”


오순탁이 씩씩하게 말했다.


“디렉터, 우리는 준비가 되었네.”


류지호가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오순탁과 윌리 워커가 차례로 자신의 주먹을 류지호의 주먹에 부딪쳤다.


“가 봅시다!”

“좋지!”


디렉션을 주기 위해 했던 루틴을 고스란히 반복한 류지호가 모니터 스테이션으로 향하며 외쳤다.


“스탠바이!”


<Zombie Apocalypse>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 오랜만에 맡아보는 촬영현장 공기 같았다.

단편영화와 장편영화를 대하는 마음자세가 똑같을 수가 없다.

왠지 온몸의 영화세포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필로폰도 히로뽕도 아닌.... 영화뽕!

영화작업이라는 마약이 선사하는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며 류지호가 외쳤다.


“레디!”


동시녹음이 아님에도 모든 스태프가 숨을 죽였다.

촬영현장의 기본이다.

직접적으로 촬영에 임하지 않는 스태프들까지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카메라!”

“롤.”


드르르르르!


전기톱 소리보단 작았지만 여전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특수 제작된 블림프 덕분인지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사운드!”

“스피드.”


촬영현장에서 녹음된 다이얼로그 사운드는 영화에 사용하진 않는다.

다만 후시녹음의 가이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은 조건에서 다이얼로그를 녹음해 둔다.

디지털사운드 기술이 더 발전하면 악조건 속에서 녹음된 다이얼로그 사운드로 되살려서 사용할 순 있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다.


“씬 3, 커트 1, 테이크 1!”


딱.


전자식 슬레이트 클랩퍼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붙었다 떨어졌다.


“GO!”


시골 아낙 세 명이 광주리에 새참을 이고 논두렁을 걸어간다.

그들이 도착한 논에서는 마을 남정네들이 한창 벼를 베고 있다.

이미 논의 절반은 추수가 끝나있다.

벼를 베고 난 후에 남은 밑둥까지 디테일이 상당했다.


[새참 드시고 하세요~]


아낙들이 새참을 논두렁에 풀어놓는 사이, 남정네들이 논을 빠져나온다.

소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정네들 사이에 치운과 레모가 끼어있다.

시난주 일족들이 추수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위성전화를 가지고 달려온 일족의 소년으로 인해 사제의 평온한 일상이 깨진다.


[바브라 스트라샌드는 어쩌고 비틀즈에요?]

[내가 튼 거 아니다. AFN에서 나오는 노래다.]


원작에서 치운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광팬으로 묘사되었다.

이미 1편에서도 그와 관련된 대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 장면에서는 AFN 라디오 방송에서 비틀즈의 ‘Ob-La-Di, Ob-La-Da’가 삽입될 예정이다.

오리지널 비틀즈 음악을 사용할 순 없었다.

다른 가수의 커버곡이 깔릴 예정이다.

비틀즈 오리지널은 아직까지 영화에서 사용된 적이 없다.

류지호가 비틀즈 음악 저작권을 보유한 ATV Music Publishing의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마이키 잭슨은 비틀즈를 포함해 몇 개 판권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런데다가 저작권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이리저리 얽혀있기도 했다.

영화에 삽입하기 위해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저작권자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영화에서 비틀즈의 오리지널 곡이 사용된다면 류지호가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


“NG!"


류지호 답지 않게 좀처럼 만족을 못했다.

별 것 아닌 장면을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찍었다.

배우들의 연기에는 불만이 없었다.

일부로 NG를 냈다.

첫 촬영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두 배우와 맞춰보는 것이다.

목소리의 톤 앤 매너부터 제스처, 얼굴근육 사용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오케이!”


프로덕션 기간 5개월, 보충 촬영 5회 내외, 포스트 프로덕션 9개월, 1.5억 달러 제작비.

최초의 Eye-MAX 3D 상업극영화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 ❉ ❉


세크라멘토의 촬영은 단 삼일 만에 끝났다.

그럼에도 한국 로케이션 촬영보다 싸게 먹혔다.

직후 뉴욕으로 날아갔다.

이미 2nd Unit이 뉴욕에서 CG 소스 촬영과 주인공들이 출연하지 않는 커트를 선별해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2nd Unit 연출은 편집자 출신의 스펜서 베어드 감독이 맡았다.

그는 작년 <네메시스>를 연출해 다시 한 번 흥행참패를 맛보았다.

액션영화 편집 분야에서는 할리우드에서도 꽤 알아주는 실력자였지만, 좀처럼 연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헌데 감독생활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연출한 영화가 연달아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출에 대한 꿈을 접으려고. 세 편 연출했으면 충분한 것 같아.”

“내 영화의 2nd Unit이 마지막이에요?”

“불러만 준다면 2nd Unit 연출은 계속할 수도 있고.....”

“<REMO>만 편집해요?”

“마틴 캠벨이 조로 영화를 맡기고 싶어해.”

“트라이-스텔라에서 준비하는 <레전드 오브 조로>요?”

“응.”

“일단 두 작품 편집에 집중하세요. 스펜서가 잘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고민해 볼 게요.”


늘어지게 앉아있던 스펜서 베어드가 발딱 몸을 바로 했다.


“정말인가?”

“대신 <U.S. Marshals> 정도 예산 밖에 못 만들어줘요.”

“내게 몇 개 아이디어가 있는데 들어보겠나?”

“이번 영화 끝나고요.”

“좋았어!”


한국에서는 ‘도망자2’라는 타이틀을 달고 개봉한 <U.S. Marshals>의 예산은 4,500만 달러였다.

류지호는 스펜서 베어드 특유의 편집감각을 살릴 수 있는 중급예산 규모 액션장르를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의 시선으로 연출을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원작이 있는 스릴러영화를 맡기면 그럭저럭 기본은 할 만한 깜냥은 있다.

류지호는 스펜서 베어드가 계속해서 자신의 영화 편집을 전담해 주길 원했다.

류지호가 영화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할리우드에서 유일한 편집감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통이 잘된다는 점도 큰 장점이고.

평균제작비 규모의 영화부터 블록버스터를 넘나드는 류지호 영화들에서 어떤 일관성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최적의 편집자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누가 편집하는가에 따라 영화의 톤과 성격이 확 바뀔 수가 있다.

류지호가 상업 영화만 연출할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매 영화마다 다른 재미를 보여줘야 하기에 편집자를 바꿔줄 필요도 있다.

그런데 상업영화 안에도 인문학적인 요소를 묻힐 생각이라면 매번 새로운 편집자와 일하는 것보다 잘 통하는 사람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장르가 바뀌고, 스펙터클이 대폭 추가되더라도 감독이 추구하는 철학을 편집에서도 일관되게 유지시켜 줄 수 있을 테니까.

이미 류지호의 사단으로 불리는 스펜서 베어드였지만, 류지호가 연출기회를 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줄 것이다.

감독으로 성공해서 더 이상 편집을 안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더라도 류지호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

전용 편집자를 잃게 되지만, 대신 상업영화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감독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 ✻ ✻


<REMO> 제작팀에서 최고급 호텔 객실을 제공하려고 했다.

류지호가 마다했다.

롱아일랜드 파커 저택에서 지내면 되기 때문이다.

하루 객실료만 몇 천 달러나 하는 호화 객실을 빌릴 이유가 없었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ParaMax Films 프로덕션 오피스에서 퇴근한 류지호를 윌리엄 파커가 맞이했다.

걷는 것이 여의치 않아 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윌리엄 파커다.


“차 한 잔 하겠느냐?”

“좋죠.”


집사 브래드가 휠체어로 다가서려는 걸 류지호가 만류했다.


“차 두 잔만 서재로 부탁해요.”


류지호가 손수 휠체어를 밀어 서재로 향했다.


“뉴욕에서 얼마나 머물 예정이냐?”

“2주 간 맨해튼을 중심으로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요.”

“출근하려면 교통체증 때문에 고생할 텐데. 호텔에서 지내지 않고.”

“제가 부지런한 건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 남들보다 일찍 움직이죠 뭐.”

“안색이 무척 밝구나.”


영화촬영을 시작하고 남몰래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것도 아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즐기지는 못해도 불만을 가져선 안 된다.


“오전에 주치의가 왕진을 온다면서요?”


휠체어에 의지하고 않고는 거동이 힘들기에 예전에는 없던 전문 간호간병인이 상주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재계의 거물도 시간을 거스를 순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일 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을 계획이라고?”


윌리엄 파커는 자신의 건강문제를 언급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예. 한국과 일본에서도 한 편씩 찍기로 계약했어요.”

“재밌어?”


할 만해가 아니라 즐기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돈 버는 것보다 쓰는 데 더 재능이 있나 봐요. 아무렇지도 않게 1.5억 달러짜리 영화를 찍어대는 걸 보면요.”

“2억 달러 영화도 찍을 수 있으면서 엄살은....”

“뉴멕시코 농장에 모시고 가고 싶어요.”


기운을 차리라는 말을 돌려서 했다.


“네 약혼식에 갈 수 있을 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결혼도 축하해주시고, 손주 이름도 지어주셔야죠.”

“손주 이름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뭔데요?”

“결혼식부터 하고 와서 물어보려무나.”


오랜만에 조손이 대화를 나눴다.

아쉽게도 그리 오랜 시간 함께 할 순 없었다.

40여 분이 지나자 윌리엄 파커가 휠체어에 앉아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윌리엄 파커를 침대로 옮겼다.

어느 틈엔가 브래드 집사가 귀신같이 나타나 윌리엄의 잠자리를 살폈다.


“할아버지 잘 부탁해요.”

“언제나 제 대답은 같습니다.”

“고마워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윌리엄의 방을 빠져나온 류지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해가고 있는 윌리엄 파커를 보자 기분이 심란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저택의 정원을 산책했다.

가을로 접어든 뉴욕의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가벼운 옷차림 사이로 스며드는 서늘한 밤기운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정원 곳곳을 배회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할아버지가 회귀 한다면 어떤 삶을 다시 살아갈까....?’


윌리엄 파커는 미국 유수의 상속가문인 파커가의 장자로 태어나 중년이 될 때까지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도 명문가 자제로서 거쳐야 할 필수 코스였다.

장년의 나이에는 막대한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할아버지에게도 한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있었고, 금수저가 다이아몬드 수저로 업그레이드 된 삶을 살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상이며, 최고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부자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닐 터.

윌리엄 파커에게도 지금의 삶이 아닌 다른 꿈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회귀를 한다면 제이크 맬란처럼 마음껏 즐기면서 사시게 될지도....’


가문의 후계자로 키워져 평생을 가문의 부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았던 윌리엄 파커.

그가 회귀 한다면 살아보지 않은 삶을 찾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선택지가 무척 많을 것 같지만, 류지호가 두 번 살아 보니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삶은 정말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 같다.

쉽게 풀릴 것 같다가도 자꾸 꼬일 때가 많아 정답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관점이 달라지듯 팔자를 고치는 것은 내 몫이다.

삶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딛는 방향에 따라 무수한 갈래 길을 만나게 된다.

삶은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새로운 길은 개척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운명을 개척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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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영화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 +3 23.07.26 2,933 112 25쪽
563 형이 갖고 싶었던 건 아니고? +6 23.07.25 2,961 123 29쪽
562 Love Of a Lifetime. (4) +4 23.07.24 2,840 118 23쪽
561 Love Of a Lifetime. (3) +3 23.07.24 2,688 93 24쪽
560 Love Of a Lifetime. (2) +8 23.07.22 2,985 116 26쪽
559 Love Of a Lifetime. (1) +2 23.07.21 2,955 113 24쪽
558 어련히 알아서 할까..... +6 23.07.20 2,958 118 29쪽
557 두고두고 가문의 영광이겠지..... +9 23.07.19 2,903 122 25쪽
556 MJJ Music Records. (4) +4 23.07.18 2,853 110 24쪽
555 MJJ Music Records. (3) +2 23.07.17 2,837 114 21쪽
554 MJJ Music Records. (2) +5 23.07.15 2,939 125 22쪽
553 MJJ Music Records. (1) +5 23.07.14 2,994 103 22쪽
552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2) +3 23.07.13 2,993 113 23쪽
551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1) +5 23.07.12 2,982 112 23쪽
550 나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건데..... +4 23.07.11 3,014 118 27쪽
549 내 이럴 줄 알았다! (2) +8 23.07.10 3,017 118 27쪽
548 내 이럴 줄 알았다! (1) +4 23.07.08 3,028 112 25쪽
547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4 23.07.07 3,032 11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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