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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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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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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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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내 이럴 줄 알았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이 친구는 칼 말론이야. 인사해라.”


류지호가 격식은 덜 갖췄지만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호 류에요. 친구들은 Jay라고 불러요.”

“칼이라고 부르게.”


칼 말론(Carl Malone)은 1970년대에 케이블TV 제국 TCI를 설립한 업계 거물이다.

1999년 이 회사를 BT&T에 약 500억 달러에 매각했다.

현재는 Tele-Liberty Media의 회장이자 최대 의결권을 가진 대주주다.


“말로만 듣던 미스터 할리우드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는 군. 에드윈에게 얘기 많이 들었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두 거물이 만났다는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이렇듯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더욱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류지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칼.“


칼 말론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겸양을 떨었다.


“내가 할 말이네.”


입가는 웃고 있지만 칼 말론의 눈은 날카롭게 류지호를 관찰했다.

류지호는 그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넘기며 에드윈 터너를 쳐다봤다.


“......”


사람들이 그의 시대는 저물었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에드윈 터너의 친구는 미국 사회 곳곳에 있다.

대부분이 거물이다.

칼 말론 같은 인물이 죽마고우다.

비록 UOL-워너타임 사내 권력싸움에서 패배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언론이나 케이블Tv 업계에서 재기할 수 있다.

에드윈 터너가 그 세계에 대한 열정과 동력을 상실한 상태처럼 보이긴 했지만.


“말로만 들었는데, 목장이 굉장하군요?”

“이 땅이 내가 소유한 농장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긴 하지.”

“도대체 농장을 얼마나 보유하고 계신 거예요?”

“14개였던가....?”


에드윈 터너 소유 토지는 대부분이 목장이다.

류지호가 현재 땅을 밟고 있는 뉴멕시코주에 하나, 몬타나주에 4개, 네브라스카주에 4개, 사우스다코타, 캔자스, 오클라호마 등 일곱 개주에 걸쳐 총 14개의 목장을 갖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에는 열대 농장까지 보유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탤러해시 남쪽에 있는 별장용 목장은 2만5천 에이커에 달했다.


“휘유! 굉장하네요.”


류지호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자, 에드윈 터너의 자랑이 시작되었다.

그가 초창기 땅을 구입할 당시인 1976년에는 멸종 위기에 놓인 미국 들소가 1마리에 불과했단다.

27여년이 지난 지금 4만 마리를 보유해서 미국 내에서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들소를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내 목장의 초원에서 자란 아메리칸 버팔로들은 내 이름을 딴 레스토랑 체인과 미국 전역의 식료품점에 스테이크와 햄버거용으로 공급되고 있지.”


언론재벌로 알려져 있는 에드윈 터너였지만, 실제 수입은 목장에서 나오는 들소 고기 납품 사업과 레스토랑 체인 수입이 훨씬 컸다.


“그저 자연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구입했던 목장들이 지금의 빅 비즈니스가 될 줄은 몰랐어.”

“다른 나라의 농장은 관리가 잘 되고요?”

“티에라 델 푸에고라고 알아?”

“남미의 최남단 지역이잖아요.”

“겨울이 되면 티에라 델 푸에고 목장으로 가서 플라이 낚시를 즐기곤 하지.”


류지호로서는 신세계였다.

에드윈 터너는 개인 사유지 곳곳에 대저택이나 별장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

멸종 위기였던 아메리칸 버팔로를 방목하고 있다.

열대농장도 운영한다.

심지어 목장을 활용해서 태양열 발전, 목재, 천연 가스, 사냥 및 낚시 사업도 하고 있다.

류지호는 비서들이 목장(ranch)에 투자해야한다고 했을 때 시큰둥했던 것을 후회했다.


“내 사유지를 방문객에게 개방하진 않아. 다만 보호해야할 곳을 빼고 사람 발길이 닿아도 되는 곳 일부는 외부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지. 큰 돈벌이는 되지 않지만.”

“천연가스가 나온다고요?”

“이곳 농장 외곽지역 일부를 천연가스와 석탄 개발을 위해 개방했지.”


땅을 사고 보니 그곳에서 천연가스가 매장되었더라.

딱 그런 태도다.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다 되는 모양이다.

UOL과 워너-타임의 합병만 제외하고는.


“말이 나와서 그런데, 땅이 안정성 면에서는 주식보다 훨씬 낫다고 본다.”


이 완고한 보수주의자조차 땅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여담으로 그에게 영향 받은 친구 칼 말론 역시 은퇴를 전후로 엄청난 땅을 사들이며 에드윈 터너와 미국 최고 땅부자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된다.


“몇 개 목장의 호수나 강에서는 낚시꾼들로부터 연간 500만 달러를 거둬들이고 있지. 또 엽사들에게 산과 들을 개방하는 건 어떻고. 벌목과 목재판매 사업도 병행하고 있어 나름 괜찮은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류지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에드윈 터너가 류지호의 멘토 혹은 롤 모델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미디어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류지호가 신뢰를 보내는 인물 중에 한 명이다.

UOL-워너타임 부회장에서 물러난다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때, 또 영화배우 출신의 아내와 이혼이 공식 확인되었을 때, 류지호는 에드윈 터너를 조금 걱정했다.

평생을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온 에드윈 터너였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것을 과연 견딜 수 있을는지....

쓸데없는 걱정이자 우려였다.


“자연을 훼손하는 건 에드윈의 신념에 반하는 거 아니었어요?”

“가능한 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업하려고 애쓰고 있지. 돈이 벌리면 좋은 거고.”

“다행이네요.”

“왜?”

“그냥요.”

“내가 실의에 빠져서 독한 위스키에 의지해 축 늘어져 있을 줄 알았어?”

“그럴 리가요. 만약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에드윈 터너가 아니겠죠.”


테드 터너가 류지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손바닥에서 힘이 느꼈다.

여전히 정력이 넘치는 노인네다.


“모두가 날 퇴물 취급해도, 네 녀석만큼은 날 인정해 줄 거라 생각했다.”

“인정한 적이 없는데요?”

“동정한 거냐?”

“설마요. 누군가에게 동정 받을 위치 아니시잖아요.”

“땅에 관심은 없어? Playa Vista의 늪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큰 결단을 내린 것은 아주 칭찬할 만 했어.”

“이런 광활한 대지나 농장은 관리가 힘들 것 같아서 생각도 안 했어요. 주로 대도시 빌딩 위주로 투자하고 있었죠.”

“어떠냐? 목장을 감상한 소감이. 흥미가 생겨?”


당연히 흥미가 동했다.

연인이 된 레오나 파커는 어릴 때부터 승마를 즐겼다.

만약 그녀와 사이에서 자녀가 생긴다면 함께 광활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도 좋을 것 같았다.

산과 계곡이 목장 안에 포함되어 있다면, 낚시에 이어 또 하나의 취미를 가질 수도 있다.

바로 픽업트럭 오프로드 레저다.

류지호는 북미에서 신형 픽업트럭이 출시되면 바로 구입해 LA 근처 사막으로 나가 며칠 가지고 놀았다.

새 모델에 싫증을 느끼게 되면, 경호원이나 측근 중에서 원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누군가는 억만장자의 허영이라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류지호에게는 서핑, 낚시와 함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생활일 뿐이다.


“레인가에서 여기 뉴멕시코의 벨 목장을 매물로 내놓았다고 하더구나. 대략 30만 에이커 쯤 될 거다. 관심 있으면 말해. 소개시켜 줄 테니까.”


대략 3억 7천 평의 어마어마한 크기다.

제주도 면적의 2/3에 해당한다.


“제 회사에도 부동산 전문가는 많아요.”


에드윈 터너가 추천한 목장은 과거 서부 영화 촬영지의 단골 장소로 유명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루하게 듣고만 있던 칼 말론이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밖에서 대화를 나눌 텐가.”

“자,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지중해 풍 주택 안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류지호를 수행했던 경호원들이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 ❉ ❉


류지호는 에드윈 터너 목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두 노인과 가까운 강으로 나가 플라이 낚시도 하고, 들소 고기를 이용한 요리도 대접받았다.

그러는 사이 다양한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UOL-워너타임의 부회장에서 물러나는 속사정도 들었다.


“5월에요?”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딕이 이사회에는 남으라고 설득을 하더군.”

“에드윈이 이사회에서까지 물러나면 곤란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어요?”

“자네는 어떤가?”

“GARAM은 지분율이 겨우 1.8%에요. 경영에 간섭할 생각도 없을 걸요.”

“Jay... 왜 합병 전에 많은 주식을 처분했지?”

“JHO의 애널리스트들이 한 목소리로 두 회사 합병 이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니까요.”


에드윈 터너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가 복잡한 감정을 수습할 수 있도록 류지호와 칼 말론은 조용히 와인을 마셨다.

비상장인 JHO Company Group을 제외하고 할리우드 빅 식스 간에는 서로 일정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다.

경쟁관계에 있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조인트 벤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멀티플렉스 사업에서의 협력이다.

GARAM Invest 또한 나머지 빅 식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경영 참여는 생각하지 않는 단순 투자다.


“내가 제안했던 NBC 50억 달러 인수건을 제리가 거부했을 때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지. 그때 실행했어야 했어. ...그랬어야 했어.”


칼 말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윈 터너는 워너-타임과 UOL의 합병에 자주 불만을 터트렸다.

회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축소된데 좌절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에드윈 터너가 류지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거든 떠날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자신처럼 미련을 두다가 얼굴 붉힐 상황을 만들지 말고.


“이사회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끝이 아니잖아요. 여전히 개인으로써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되잖아요. 당장 물러나시면 많은 사람들이 곤란하지 않을까요?”


에드윈 터너는 UOL-워너타임 지분 대략 3,20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잠시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어.”


이미 참모들로부터 UOL-워너타임 내부 갈등에 관해 보고를 받았다.

에드윈 터너의 이사회 퇴장은 워너-타임 측의 승리로 끝이 난 기업사냥꾼 칼 아이젠과의 협상과 무관치 않았다.

칼 아이젠은 Timely Entertaunment를 놓고 류지호를 짜증나게 했던 유명한 행동주의 아니 기업사냥꾼이다.

칼 아이젠은 워너-타임에도 시비를 걸었는데, 4개사로 분할하자는 요구를 철회한 대신 200억 달러 자사주 매입과 새로운 이사 2명의 선임권을 확보했다.

탐욕스러운 칼 아이젠다운 제 밥그릇 챙기기였다.

이익 앞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되겠지만.

칼 아이젠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의 탈을 쓴 기업사냥꾼들이 기업을 멍들게 하기도 한다.

류지호가 증권거래소 상장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꼴을 보기 싫어서다.


“UOL-워너타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지? 네 생각을 말해 봐라.”

“작년부터 영화에만 집중 하고 있어서 투자한 기업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나는 UOL의 흑자 전환 방안을 내놓은 CEO들의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야. 지금처럼 워너-타임의 그늘 밑에서는 살아나기 힘들 거야.”

“UOL을 다시 매각할 생각은 없는 거죠?”


칼 말론 회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자신과 친우인 에드윈 터너는 UOL을 매각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대주주들의 생각은 완전 달랐다.

UOL-워너타임 측이 내놓는 낙관적인 전망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성도 그다지 높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UOL의 덩치가 워낙 커서 인수할 기업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매각에 대해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주주가 있을 줄은 몰랐다.


“뉴미디어와 기술 분야 사업은 민첩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발력 있는 의사결정과 행동력이 필요하죠.”


끄덕.


두 노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뉴미디어의 등장을 선도한 장본인이 바로 에드윈 터너와 칼 말론이다.


“워너-타임에는 그런 문화가 결여돼 있다고 생각해요. UOL은 몇 년 동안의 급격한 시가총액 상승 때문에 전반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지고, 포식자처럼 몸집만 불리려는 경향이 있었어요. 투자자와 주주들은 떨어진 주가에 대한 보상만 주장하고.”


칼 말론이 말을 보탰다.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

“UOL이 성장할 사업모델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지금처럼 워너-타임의 일부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모델을 찾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에요.”


에드윈 터너가 입을 열었다.


“합병 이후 주가가 70% 이상 폭락한 것은 UOL의 방만한 사업과 회계 관행에 대한 정부의 조사 같은 여러 문제가 겹쳤기 때문이야.”

“명분을 찾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니까....”


류지호는 말을 끝맺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에드윈 터너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풍겼기 때문이다.

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몸집을 불리는 방법으로 M&A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다만 아무나 인수합병 시장에 끼어들었다가는 초죽음이 된다.

돈 많고, 기업 규모가 크다고 해서 인수합병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밖에서 볼 때는 워너-타임의 전 CEO 제리 레빈이 어마어마한 영향력과 권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이사회를 통해 사사건건 견제를 받아왔다.

조디 워커 정권이라는 든든한 배경으로 자리를 버틴 것뿐이다.

에드윈 터너 그 자신도 권언유착, 정경유착의 혜택을 받았다.

이제 와서 권력의 순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억울해 할 필요도 없다.

재산을 몽땅 잃은 것도 아니고.

일련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그는 모든 걸 걸지도 않았다.

류지호는 두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저간의 숨겨진 사실들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미국 정치, 금융, 재계 최상부에서 적당한 거래가 이루어진 내막이 있었던 것.

미국의 유대계 자본은 극소수 예외를 빼고는 창업주를 통해 기업을 지속시키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때가 되면 적당한 명분과 대가를 주고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자기들 딴에는 윈윈 거래라고 여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미국 기업들의 풍조는 거대 자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꽉 틀어쥐고 있는 미국의 금융자본을 음모론 정도로 치부한다.

분명한 현실이다.

유대 자본을 상대할 만큼 충분한 맷집이 생길 때까지 JHO를 상장했다가는 류지호 역시 에드윈 터너의 처지를 따라갈 수도 있다.

칼 말론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BT&T가 조만간 UOL-워너타임에게 케이블TV 사업부문을 매각할 계획인 것 같더군.”


케이블 업계는 칼 말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지호는 뜻밖의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위 업체가 2위에게 사업체를 넘기는 모양새네요?”

“Komcast와 Tox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지.”

“1위와 2위가 합치고, 3위와 4위가 합친다? 미국 케이블 업계가 빅2 체제로 간다는 건데, FCC에서 인정할까요?”

“요 몇 년 사이 케이블TV 업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잖은가. 대형 인수합병이 벌어질 때도 되었어.”


에드윈 터너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이블TV 업계에서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 이야.”


이어서 과거를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30년 케이블TV 사업 경력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96년에 CNN을 워너-타임에 매각한 거야.”


칼 말론이 친우를 위로하듯 자신의 잔을 가져다 댔다.


챙!


에드윈 터너와 건배를 한 칼 말론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JHO/DirecTV의 성장이 눈부시더군.”

“Tele-Liberty Media에 비하면 갈 길이 아직 멀었죠.”

“내가 DirecTV에 관심이 많았던 걸 알고 있나?”

“글쎄요. 매튜 그레이엄이 그 사안을 처리했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해요.”

“나는 말일세. JHO Company가 성장하는 걸 보고 있자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전통적인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분명 가입자 경쟁을 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위성방송이 기존 케이블TV를 따라잡는 것은 요원했다.


“이 녀석은 외계인이라도 납치해서 감금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보팀이나 싱크탱크가 미국 정부 수준이거나.”


에드윈 터너의 농담에 류지호는 ‘하하‘ 웃음으로 넘겼다.


“혹시 위성방송을 내게 팔 생각은 없나?”


칼 말론이 느닷없이 훅 치고 나와서 류지호는 즉각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


에드윈 터너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도착했을 때 칼 말론 회장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뭔가 거래를 제안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위성사업을 언급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칼 말론을 단순히 케이블TV 업계 거물 정도로 생각해선 안 된다.

로버트 폭스에 못지않은 미디어 업계의 큰 손이다.

미디어를 순전히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본다는 면에서 로버트 폭스와 다르지 않다.

즉 언론의 역할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없이 돈벌이 혹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은 똑같다.

많은 액수의 기부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로버트 폭스 못지않은 미디어 자본의 폐해를 대표하는 인물일지 몰랐다.


“그리 크지 않은 기업을 인수하고, 그 기업이 직원들의 힘으로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게 즐겁습니다. JHO/DirecTV의 임직원들이 매출증대를 위해 애쓰는 것보다 난시청 지역 주민들이 TV시청이 가능하도록 더욱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마치 두 분이 처음 케이블TV사업을 시작했던 때처럼....”


푸하하하.


에드윈 터너가 배꼽이 빠져라 웃어재꼈다.


피식.


칼 말론도 웃었다.


‘맹랑한 녀석.’


업계의 산증인이자 거물인 자신과 친우를 앞에 두고, 감히 미디어를 비즈니스로만 대하는 것을 꼬집다니.

거절의 표시로 하는 한 말치고는 매우 도발적이었다.

한편으로 진심도 느껴졌다.

칼 말론이 보고받기로 JHO Company Group은 거대 복합미디어그룹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현금도 넘쳐나서 매 분기 돈잔치를 벌여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이익의 대부분을 재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강성노조로 악명 높은 자동차업계에서도 안 하는 의료비지원을 시행하는데 매달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고.

오죽하면 오너가 겨우 700만 달러 배당금을 받았다는 것이 떠들썩하게 뉴스가 될까.

100대 부자에 너끈히 들어가는 주제에 전용기 한 대 없다.

요트는커녕 별장도 없어서 휴가 때 호텔에서 지낸단다.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는 수도자 같은 녀석이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듣자니 자신의 사람들 경조사에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고 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귀족이 있다. 출생과 지위에 의한 귀족, 돈에 의한 귀족, 정신적 귀족, 이들 중에서 세 번째가 가장 고상한 귀족인데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그런 것으로도 인정받는다.]


<팡세>에서 블레이즈 파스칼이 한 말이다.

파스칼이 말한 고귀한 귀족이 학자를 일컫겠지만, 어쨌든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것이 미국 상류층의 공통된 인식이다.

자신과 같은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거액을 기부하고 자선재단을 만드는 것은 상속세 회피를 위한 유서 깊은 탈세 방법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부자들이 얻은 막대한 소득의 일부라도 사회로 환원이 되니 결과적으로는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충족시켜 준다.

서른 밖에 안 된 청년이 귀족으로서의 소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박수를 쳐줄 만했다.


“아메리카 대륙 궤도에 적어도 10개의 위성을 띄울 때까지는 JHO/DirecTV가 어디까지 성장하나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 후에 기업가치 500억 달러 정도 되면 고민해 보겠습니다.”


간신히 웃음을 멈췄던 에드윈 터너가 다시 한 번 배를 잡고 웃었다.

반면에 칼 말론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50억 달러가 아니고?”


류지호는 대답 없이 활짝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두 노인이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서 JHO/DirecTV가 자산으로 50억 달러를 달성하는 조건을 궁리했다.

가입자 2,300만 이상, 가동되는 위성 자산 7개 이상.

문제는 그 전에 더 큰 복합미디어그룹에 매각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JHO Company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작년 같이 박스오피스를 석권하고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꿈과 이상만 높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의 망상이라는 것.


“Jay, 실수한 거다.”


류지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뭘요?”

“협상에서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결론을 지어서는 안 돼. 지금 너는 사람 간의 관계마저 단절 시키고 있다.”


류지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타깃을 칼 말론에게 돌렸다.


“에드윈의 말에 동의하세요?”

“동의하지 않네. 난 충분히 협상의 여지를 발견했으니까.”


에드윈 터너가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아 발끈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 친구가 그러지 않았나. 500억 달러 가치가 되면 생각해보겠다고.”

“자네나 나나 그때는 무덤에 누워있을 텐데?”

“10년도 안 돼서 트라이-스텔라를 빅 세븐에 올려놓았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에드윈 터너가 류지호에게 화살을 돌렸다.


“기분이 어떠냐?”

“....예?”

“이 친구는 쉽게 누군가를 칭찬하지 않아.”

“노인들에게 예쁨을 참 많이 받아서 새삼스럽지도 않아요. 젊은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걱정이죠.”

“뭐라?”

“이 목장에 방문한 젊은 남자는 제가 최초일 걸요? 제 말이 틀려요?”

“애송이를 목장에 초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지금까지 가장 나이가 어렸던 녀석이 누구였냐 하면....”


류지호는 농담을 잘 못 했다는 후회를 했다.

한동안 에드윈 터너의 농장 자랑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치사해서. 나도 이런 목장 하나 꼭 장만하고 만다!’


에드윈 터너의 자랑질에 질려버린 나머지 류지호는 목장 구매를 결심했다.

갑자기 에드윈 터너가 섭섭하다는 듯 따졌다.


“내 영화에는 왜 영화권리를 쓰지 않았냐?”

“<갓 앤 제너럴>이요?”

“그래, 인석아.”

“영화권리를 모두 써버려서 에드윈이 제작하는 영화에는 관여할 수 없었어요.”


류지호의 오해다.

사실 에드윈 터너는 자신의 영화를 트라이-스텔라에 투자·배급을 제안한 적이 없다.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 <갓 앤 제너럴>은 에드윈 터너 소유의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워너-타임에서 배급했다.

지난 2월에 개봉했는데, 제작비 회수는커녕 박스오피스 폭탄을 터트릴 것이 확정적인 상황이다.

비평과 관객반응 역시 처참한 상황이다.


“내가 그 영화에 투자할 때만 해도 워너-타임의 주식 가치가 70억 달러였어. 지금 상황이라면 그처럼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 않았을 거야.”

“얼마나 쓰셨는데요?”

“7,000만 달러. 어디 가서 제작비 이야기는 떠들지 마라. 창피스러운 일이니까.”

“실패할 때도 있는 거죠, 뭐.”

“넌 실패 안 하잖아!”

“다 부풀려진 이야기에요. 할리우드 통신을 믿으세요?”

"CNN을 만든 사람이 나다, 인석아...“

“CNN이라고 정론만 펼치지 않던데요?”


에드윈 터너가 한 방 맞은 표정을 지었다.


“......”


미디어계 거물들과 허물없이 농담 따먹기 할 수 있는 청년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류지호는 어떤 위화감도 없이 두 노인과 어울렸다.

밤이 늦도록 와인을 마시며 미국 케이블TV 업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30년 가까이 미국 미디어산업에서 활약한 거물의 경험담과 각종 무용담에는 갖가지 정보가 담겨있었다.

또한 여러 비즈니스 상황에서 좋고 나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칼 말론이 별장을 떠났다.

류지호는 남아서 에드윈 터너와 좀 더 어울렸다.

뉴멕시코주 남부는 공기가 꽤 텁텁했다.

그렇다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에드윈 터너와 함께 픽업트럭을 몰고 나가 주택 주변을 구경하고, 버팔로라고 하는 들소 떼도 구경했다.

사람의 손이 전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과 들 그리고 강을 돌아다녔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머물 생각이에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이사회에서 물러나면 계획은 있으시고요?”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도 있고, 육가공 업체도 있고, 터너재단도 있단다. 할 일이야 없겠냐?”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한국의 DMZ라고 아세요?”

“잘 안다. 전쟁 비극의 상징이면서 매우 가치가 있는 생태계를 간직한 곳이지.”

“DMZ 방문 건으로 초청하면 한국에 오시겠어요?”

“근사한 연설문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마.”

“이왕이면 UN쪽 높은 사람들과 함께 방문해주시면 고맙고요.”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저는 에드윈처럼 UN에 10억 달러나 기부할 돈이 없어요.”

“웃기는 소리는.....!”


에드윈 터너보다 몇 배 부자가 류지호다.

돈이 없어서 기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기부한 돈이 올바르게 쓰일지 확신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투명하고 올바른 조직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암튼 류지호는 뉴멕시코주를 떠나며 다짐했다.

앞으로 절대 부자에 관해서는 걱정 따위나 오지랖 떨지 않기로.

지금 한국에 머물며 E-스포츠 사업에 푹 빠져있는 제이크 멜란도 포함해서.

MacIntosh의 스테픈 잡스도 신경을 끄기로 했다.

자신이 뭐라고 참견할까.

그런데, 류지호가 벨에어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 자네 요구대로 건강검진을 받았네.


스테픈 잡스의 목소리가 워낙 침착해서 별 일이야 있을까 싶었는데....


- 암 진단을 받았네.

“.....예?”

- 췌장암 1기라더군.

“.....?”


스테픈 잡스의 어투는 마치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다녀온 후 아침을 잘 먹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만큼 아무렇지 않다는 투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작가의말

장마가 오락가락 합니다. 비 피해없으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니름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성실하게 완결까지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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