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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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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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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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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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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내 이럴 줄 알았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LA에 위치한 Kozak Theatre.

작년부터 이곳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시작했다.

류지호는 올해도 여지없이 성대하게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이 참석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8시부터 6시간 동안 다솜방송 영화채널 DCN에서 생중계 된다.

제 75회 아카데미에서는 트라이-스텔라 투자·배급 영화 <갱스 오브 뉴욕>과 ParaMax 투자·제작·배급 영화 <시카고>의 수상이 유력했다.

<시카고>는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최다부문 후보에 올라 돌풍을 예고했다.

<갱스 오브 뉴욕> 역시 11개 부문 노미네이트, 감독상 유력 후보다.

안타까운 것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분이다.

류지호의 <복수의 꽃> 출품이 불발되었고,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오아시스>가 출품되었다.

아쉽게도 한국작품은 다섯 편의 최종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복수의 꽃>이 출품되었다면 감독 이름값으로 후보에는 올랐지도 몰랐다.

아카데미 프로모션이라는 것이 있다.

후보에 오르는 것부터 최종 수상까지 수개월에 걸쳐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을 이른다.

<오아시스>는 미국에 영화가 팔리지 않아 배급사가 없었다.

<복수의 꽃>은 일찌감치 ParaMax Emtertainment와 배급계약을 체결했고, 그들이 오너의 영화를 가볍게 다룰 리가 없으니 아카데미 캠페인을 치밀하게 전개했을 수도 있다.

외국어영화상은 각국이 단 한편만 출품하게 되어 있다.

7명의 한국의 심사위원들은 아카데미 프로모션에 대한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출품작을 선정했고, 해외홍보도 하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조차 그 같은 환경을 고려하지 못했다.

류지호로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자신의 작품이 걸려 있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중국의 <영웅>, 네덜란드 영화 <난리법석 결혼소동>, 멕시코 영화 <아마로 신부의 죄악>, 유럽 3개국 공동제작 영화 <과거가 없는 남자> 등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독일 영화 <러브 인 아프리카>가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럴 줄 알았다.’


류지호는 후보작이 발표되기 전에는 정확한 수상작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막상 다섯 편의 후보작이 발표되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러브 인 아프리카>는 전형적인 백인시선으로 아프리카를 다룬 영화다.

백인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교감, 공감, 유대를 보여주는 척 하지만, 전형적인 유대인에 관한 영화다.

고상하고 진지하면서 콧대 높은 인종주의가 은연중에 묻어 있는.

사실 아카데미상 입맛에 딱 맞는 영화이긴 했다.


‘어쩌면 <오아시스>도 비슷할지도....’


영화 <오아시스>는 멜러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편견과 가식에 찬 세상에 작은 비판을 던져 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다만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또 다른 편견을 보여주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영화감독은 가치중립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철저히 백인만의 시선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든, 비장애인이라서 장애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위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장애인을 밀어 넣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에 대한 비판을 온전히 감독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러브 인 아프리카>와 <오아시스>가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는 영화시상식에서 수상했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두 영화를 불편해 할 수도 있다.

소위 ‘100대 영화걸작선’의 리스트에 들어가는 영화조차 만장일치는 몇 편 되지 않는다.


짝짝짝.


시상식 내내 류지호는 모두 아홉 번의 기립 박수를 쳤다.

여섯 번은 작품상 및 여우조연상을 비롯하여 음향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등을 수상한 <시카고>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로 시상식 불참을 고려하기도 했어요. 전쟁으로 인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중요하며 아카데미시상식은 반드시 열려야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참석하게 됐어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리 키드만의 수상소감이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때문이었을까.

반전메시지를 담은 <피아니스트>가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등 알짜배기 3개 부문을 수상했다.

많은 영화인들은 아카데미가 <갱스 오브 뉴욕>의 손을 들어 줄 것이라 예상했다.

헌데 아카데미는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가 수상한 것은 아카데미의 정치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피아니스트>는 논란을 낳았다.

감독상 수상자가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13세 소녀 강제 추행 사건 전력으로 미국입국이 불가능했다.

무려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갱스 오브 뉴욕>은 단 하나의 오스카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불운을 맛보았다.

감독상 수상이 가장 유력시 되었으나, 미국입국조차 불허된 감독에게 넘겨줘야 했다.

JHO 계열 영화사들이 흥행과 각종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할리우드 주류들 사이에서 류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오묘해지는 것을 넘어 경계가 극도로 심해졌다.

90년대는 이변을 만들어냄으로써 아카데미 시상식을 다채롭게 만들어 할리우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애써 좋게 해석했다.

그런데 박스오피스 ‘줄세우기‘부터 독식에 가까운 아카데미상 수상까지.

JHO에 대해 바짝 경계하는 태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류지호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JHO Pictures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트라이-스텔라와 ParaMax의 오너라는 것이 없어지진 않는다.

여전히 류지호의 영화선택권 다섯 장은 실패를 모르고 있기도 하고.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는 명백히 주변인이다.

배우들의 경우는 히스패닉에게까지 배역을 빼앗기기 일쑤다.

프로듀서 중에서도 메이저 스튜디오와 일하는 이들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 중저예산 영화를 다루기에 A-List 감독과 일할 기회가 없다.

언감생심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설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예외가 만들어졌다.

바로 류지호다.

<반지의 제왕>이 작품상이라도 수상하는 날이면 또 한 번 무대에 오를 수 있다.

할리우드 주류들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 중에 하나는 아카데미나 골든글로브 수상자들이 소감에서 자주 류지호를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대중들은 못 느끼지만,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잘 알고 있다.

류지호가 할리우드에서 존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류지호는 인종차별도 사람을 가려가면서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류지호에게만은 아시아계이기에 받아야 했던 대접이 일체 없다.

할리우드에 몸담고 있는 아시아계들은 류지호가 인종차별에 맞서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했다.

토크쇼나 인터뷰에서 관련 언급을 좀 더 강하게 해주길 바랐다.

백날 말해봐야 바뀌는 것이 없음에도.

류지호는 자신이 소유한 영화사 작품 중에서 불합리하게 동양인 캐릭터가 화이트워싱 당하거나 흑인이나 히스패닉으로 배역이 변경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계의 스테레오타입 캐릭터가 좀 더 개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모든 인종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전형적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저 영화 속에 만들어진 모든 인종의 등장인물들이 현실에서 볼 법한 살아있는 인물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정관념만 깨면 되는 쉬운 일이다.

여성이나 흑인이 세상을 구원하는 걸 억지로 넣지 않아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인종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현실적인 인물상으로 묘사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류지호가 생각하는 영화에 정치적 올바름을 입히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억지로 균형을 맞춘다고 스토리와 캐릭터를 혼란에 도가니에 몰아넣지 않아도.


“아쉬워요?”


애프터 파티장으로 향하던 류지호가 모리스 메타보이에게 물었다.


“별로.”

“주연상이나 감독상 정도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시상식에 오지도 못할 감독에게 상을 준 것은.... 역시 아카데미답다고 할까.”


참고로 마르틴 스콜체제 감독은 올해와 내년에 연달아 작품이 예정되어 있다.

올 해 촬영하는 워너-타임 투자·배급의 <에비에이터>와 기획 중인 <무간도> 미국판 <디파티드> 두 편이다.

작년 말 워너-타임이 <무간도>의 제작사에 판권 구입을 문의했었다.

헛물을 켰다.

판권은 <무간도>에 투자와 세계 배급을 담당한 ParaMax Entertainment가 진즉 확보해 놓고 있었기에.

브래들리 피츠의 제작사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의 출연을 조건으로 제작 참여의사를 밝힌 상태다.


“<Infernal Affairs>는 마르틴이 메가폰을 잡기로 서명한 거야?”


<Infernal Affairs>는 홍콩판 원작의 영어제목이고 ParaMax Films가 제작하게 될 할리우판 제목은 <The Departed>다.

류지호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대기로 했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아직 스크립트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도대체 비결이 뭐야?”

“.....?”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모르겠어. 자네가 손대는 영화마다 성공하는 비결을 모르겠어.”

“Moe의 비결은 뭐에요?”

“내 비결?”

“오스카를 일곱 번이나 들어 올렸잖아요. 한 번 받기도 힘 든 오스카를 말이에요.”

“좋은 스크립트와 좋은 감독 그리고 좋은 배....”


또 말렸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실실 웃고 있는 류지호가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또 본전도 못 찾고 말았군.”

“내년 오스카를 기대해 보자고요. <반지의 제왕>이 마무리되잖아요.”

“......?”

“아카데미가 이변이니 파격이니 좋아하는 편이잖아요. 판타지 장르에도 한 번쯤 상을 줄만 하지 않나요?”


이전 삶에서는 작품상 수상자로 로비 잭슨이 나섰다.

그가 프로듀서 크레디트에도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작품상을 수상하게 되면, 류지호도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다.

<반지의 제왕> 영화 권리를 얻기 위해 판권을 소유하고 있던 사울 젠츠를 설득한 장본인이자, 막대한 제작비를 조달하고, 로비 잭슨에게 메가폰을 맡긴 것도, 부정적인 사내 여론을 다독인 것도 류지호였기에.


“아쉽지 않아?"

"뭐가요?“

“자네가 차린 식탁에 난 포크와 나이프로 맛있게 식사만 즐긴 것 같네만.”

“JHO Pictures에서 제작되는 영화도 있고, 나중에 제 영화로 당당하게 오스카 들어 올리죠 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REMO> 준비는?”

“그걸 이제 물어보시네요?”

“오스카에 집중하다 보니.”

“언제는 제 영화가 최우선이라고 하더니, 섭섭해요.”

“....흠!”


대답이 궁색해진 모리스 메타보이의 걸음이 빨라졌다.


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번째 삶을 살면서 한결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도 그런 사람이다.

십대 시절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항상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할리우드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계임에도 거만하고 권위적이지 않았다.

LOG의 와이즈너만 해도 굉장히 권위적이다.

메이저 스튜디오 임원들은 대체로 거만하고 자신이 최고인 줄 안다.

모든 걸 자신이 결정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좋은 말로 하면 그립이 센 것이고, 상식적으로 보면 불통의 아이콘들이다.


‘LOG가 최근 어려워 진 것은 전적으로 회장의 독선과 오만 탓이지.’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당당함과 안하무인이다.

당당함에는 정대(正大)함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안하무인에는 과시적인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옳고 그름을 독단으로 결정하고 강행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아무도 가질 수 없다.

그런 권력이란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위대한 자가 되기 위한 영웅적 욕망에서 나온 행위는 당당함이 아니고 오만과 허영이다.

LOG의 최고전성기를 자신이 이룩했다는 위명을 남기기 위해 폭주했던 마이크 아이즈너는 자신의 손으로 영광의 시대를 저물게 만들고 있다.

반면에 모리스 메타보이는 공명정대한 당당함과 열린 소통으로 트라이-스텔라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 당당함이란 보통의 힘없는 사람이 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것이고, 힘 있는 자의 당당함은 오만함에 불과하다고 하지. 당당함이란 말이다. 내게 어떤 힘이 있다고 해서 그 힘을 밑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쏟아 붓는 강단 있는 모습이 아니고, 힘의 사용을 절제함으로써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란다.


윌리엄 파커가 한 말이다.

당시에는 말장난처럼 들렸다.

이제 와서는 그가 정의한 당당함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류지호다.


‘그나저나 걱정이네.’


날이 갈수록 육중해 지는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의 배와 체중이 걱정이다.

아무래도 비만은 만성질환의 씨앗이니까.


“아차!”


류지호는 불현 듯 스치는 생각에 재빨리 휴대폰을 꺼냈다.

얼른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저장하고 있던 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갔다.

신호만 가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잡스씨, 납니다. JHO의 지호 류.


휴대폰 너머에서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할리우드 파티를 즐기고 있을 시간 아닌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MacIntosh Inc의 최고경영자 스테픈 잡스다.

개인 전화번호를 아무나에게 알려줄 리가 없었지만, 류지호는 예외다.

개인으로나 소유하고 있는 기업 모두가 MacIntosh의 최대주주 신분이었으니까.

제 아무리 이사회를 자기 사람들로 구성했다고 해도 류지호를 홀대할 수는 없다.

류지호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MacIntosh를 집어삼킬 수도 있으니까.

천하의 스테픈 잡스라고 해도 류지호의 전화를 무시할 수 없다.


“오스카 생중계를 보고 있었어요?”

- 난 그런 건 안 보네. 용건이 뭔가?


친구 아니면 오로지 비즈니스 파트너.

친절한 옆 집 아저씨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 스테픈 잡스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곤 한다.

FIXART의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암튼 류지호에게 스테픈 잡스의 성향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건강은 어때요?”

- 다짜고짜 전화해서 건강상태를 물어?

“대답해 봐요.”

- 내 건강은 걱정 말게. 회사를 경영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까.


MacIntosh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잡스는 지난 1996년 자신의 회사 NeXT를 MacIntosh Inc에 합병시키면서 CEO로 복귀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 경영진을 몰아내고 자신과 맞는 인사들로 수뇌부를 채운 것이다.

그런 후 주주들을 설득했다.

닷컴버블 붕괴로 인해 주가가 대폭락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아이팟이 성공하면서 MacIntosh는 서서히 정상화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창 때의 주가를 회복하려면 몇 년을 더 걸려야 하겠지만.


“정기건강검진은 언제 받았어요?”

- 아직 검진을 받을 시기가 아니네.

“......!”

- 어디서 무슨 루머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난 아무 문제없이 쌩쌩하니, 괜한 트집 잡을 생각은 단념해.

“혹시 눈 흰자가 노랗게 변하지는 않았어요? 소변색이 진해져서 갈색이라던가. 황달은요? 혹시 대변 색이 회색으로 변하진 않았겠죠?”

- 이봐!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내일이라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 봐요. 특히 암 검사 따로 받아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 MacIntosh를 먹어치우고 싶나? 내 건강을 핑계로!

“내 말대로 검진을 받지 않으면, JHO가 MacIntosh 등기 이사를 모두 차지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류지호는 강하게 나갔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말을 들어먹을 인물이 아니니까.


“외할아버지가 암수술을 받았어요. 나의 아버지도 암이 초기에 발견되어서 고생을 하셨고. 가족력이 있어서 내가 암에 대해 민감합니다.”

- ....음.

“나 역시 암이 가족력일까봐 정기검진을 받을 때 무조건 암 검사를 따로 받고 있습니다. 만약 잡스씨가 평소 체중에서 갑자기 10% 이상 빠졌다면 심각한 상황입니다. 정기검진 기다리지 말고 당장 받아보세요.”

- ....!

“내 말이 우습게 들린다면, 최대 주주로서 요구합니다. MacIntosh 최고경영자의 신속한 정기건강검진과 그에 대한 이사회 보고를 요구합니다.”

- 내 건강을 두고 주주총회라도 열겠다는 거야?

“필요하다면요. 물론 오늘 나와 나눈 대화는 우리 둘만의 비밀입니다. 검진결과는 이사회가 부담스럽다면 내 개인 메일로 보고해 주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잡스의 황당해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 ....허, 이거... 참.


왜 그렇지 않을까.

최대주주란 작자가 느닷없이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온 것도 언짢은데, 암 검사를 받으라고 하니 황당하기만 했다.


“나는 잡스씨가 없는 MacIntosh는 필요 없어요. 당신이 감기에 걸리는 것조차 싫습니다.”

- 그만 끊지. 안 그러면 내가 폭언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하지만, 내 요구를 절대 무시하지 마세요.”


뚝.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내가 너무하긴 했어.’


스테픈 잡스가 MacIntosh에 복귀하는 시점에서 경고를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미 한참 떠난 기차다.

손 흔들어봐야 부질없었다.

류지호는 휴대폰을 꺼낸 김에 한 통 더 전화를 걸었다.


“스탠, 납니다.

- 아, 보스!

“유니벌스뮤직그룹 인수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요?”

- 며칠 만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것 같습니다.

“서명단계입니까?”

- 그 정도는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조항 몇 개에서 의견조율 중입니다. 그것만 합의하면 공식적인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 게요.”


만약 유니벌스뮤직그룹을 품게 된다면 팝의 황제 마이키 잭슨과 계약할 마음을 품고 있는 류지호다.

현재 마이키 잭슨은 소닉에픽뮤직과 갈등을 빚고 있다.

계약연장을 해야 하는데 서로 버티고 있다고 들었다.


“돈만 밝히는 소닉에픽뮤직보다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을 그나마 해주는 유니벌스뮤직이 나을 수도 있겠지.”


물론 유니벌스뮤직이나 소닉에픽뮤직이나 소속 가수에 대한 갑질은 그리 차이 나진 않는다.

다만 류지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마이키 잭슨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류지호에게는 밖으로 드러난 JHO Security Service가 있고 백인우월주의 단체를 날려버렸던 비공식 조직도 가지고 있다.

마이키 잭슨이 유니벌스뮤직 소속으로 인연이 이어진다면, 매우 높은 수준의 보호를 해줄 생각이다.

민사 소송이든, 언론의 공격에서든.


❉ ❉ ❉


아카데미 시즌이 끝난 지도 시일이 조금 지났다.

지난 통화 이후로 스테픈 잡스로부터 어떤 연락도 없었다.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의 인피니트 루프로 쳐들어갈까 류지호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문전박대를 당할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팔자려니 해야 할까?’


사실 사망한 년도는 기억해도 암 판정을 언제 어떻게 받았는지는 몰랐다.

스테픈 잡스의 열렬한 추종자도 아니었고, MacIntosh이나 아이폰 빠도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신경 써야할 것이 많았어도 잡스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조금 너무하긴 했어.‘


그가 좀 더 오래 산다고 해서 MacIntosh가 계속해서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보장은 없었다.

다만 잡스 특유의 기질로 젊은 천재들을 쥐어짜내서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 분야의 핵심 아이콘이 되었을 수도 있고.’


기다리던 연락을 올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엉뚱한 인물이 전화를 해왔다.


❉ ❉ ❉


류지호는 경호원만 대동하고 주 경계를 넘었다.

목적지는 뉴멕시코주 남부였는데, 텍사스 엘파소 국제공항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로 갈아탔다.


<콘택트>.


뉴멕시코하면 류지호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전파망원경(VLA)이 소코로 카운티에 있다.

미국립전파천문대에서는 모두 27대의 안테나를 가동 중이다.

소코로 카운티는 뉴멕시코주의 중앙 쪽에 있어서 류지호가 지금 비행하고 있는 남부 상공에서는 볼 수가 없다.

대신 뉴멕시코주 남부의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뉴멕시코주의 목장지대로 류지호를 초대한 사람은 에드윈 터너다.

UOL/워너-타임 최대 개인주주였던 에드윈 터너는 합병 전보다 75%나 주식 순가치가 빠졌다.

가만히 앉아서 수 조원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에드윈 터너가 알거지가 되었다고 조롱하는 황색신문도 있다.

그걸 믿는 어리석은 대중들도 있고.

에드윈 터너가 미국 최고의 땅부자라는 걸 모르고 떠드는 것이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총 204만 에이커(대략 25억 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보유한 땅의 면적은 미 동부의 로드아일랜드주와 델라웨어주를 합친 것 보다 넓다.

제주도 면적의 5배에 달한다.

전라북도 면적보다 넓다.

몬태나, 네브라스카, 캔자스, 사우스다코타, 뉴멕시코 등 미국 10개주의 20여개 지역과 아르헨티나,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군도인 티에라델푸에고까지 땅을 소유하고 있다.


“......!”


바람이 불지도 않고 날씨도 좋아서 프로펠러 비행기가 그렇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프로펠러 소음도 그렇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새 비행기가 뉴멕시코 남부의 100만 에이커(대략 12억 평)에 이르는 대규모 목장 상공을 날았다.

이 개인 목장의 최북단에서 말을 타고 달리면, 에드윈 터너가 소유한 땅만 밟고 곧장 멕시코 국경을 넘을 수 있을 정도다.

사유지 안에는 산도 있고, 초원도 펼쳐져 있고, 강도 흐르고, 바위산도 있으며, 초지에는 수천 마리의 들소들이 몰려다녔다.

드넓은 초원에서 들소 떼들이 질주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갖고 싶다....“


오죽하면 류지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을까.

한국의 대관령 목장이 초라해질 정도로 속이 뻥 뚫릴 정도의 엄청난 규모다.

류지호가 방문할 예정인 뉴멕시코주의 에드윈 터너의 목장은 개인 소유의 단일 땅으로 미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투다다다닥.


목장에 깔려있는 활주로에 프로펠러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지상에 내려서고 나서, 왜 제트기가 아니라 프로펠러 비행기로 갈아탔는지 알게 됐다.

활주로가 일반적인 지방의 작은 공항보다 짧았다.

웬만한 쌍발 비행기는 뜨고 내릴 수 있었지만, 비즈니스 제트기 이착륙에는 아슬아슬한 길이와 넓이로 보였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효율의 문제죠. 활주로 유지관리에 터무니없는 비용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승무원의 설명이었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따로 구입해 운행하는 것보다 활주로 유지관리비가 덜 들 것 같았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억만장자가 그러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랴.

암튼 활주로에 내렸다고 해서 곧바로 캠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을 날고, 낮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초원을 가로지른 끝에 도착한 곳은 숲 가장자리에 지어진 아담한 시골집이었다.

말 그대로 작고 소박했다.

스페인 풍의 기와지붕, 지중해 스타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단층 주택 두 채가 나란히 있었다.

차량의 소리를 들었는지, 주택에서 노인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초대를 한 에드윈 터너였고, 다른 한 명은 매체에서는 접했지만 사석에서는 처음으로 만난 인물이다.

두 사람은 플라이 낚시라도 다녀온 모양이다.

멜빵을 풀어놓은 가슴 웨이더를 입고 있다.


“환영한다. Jay!"


에드윈 터너가 따뜻한 미소를 입에 물고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류지호도 마주 미소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오랜만에 뵙네요.“


에드윈 터너가 류지호에게 유난히 살갑게 구는 이유가 있다.

매년 환경운동에 써달라며 100만 달러를 터너파운데이션에 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Jay는 부에 취해 고가의 스포츠카와 요트를 구입하는 것에만 열중하는 청년CEO와 다른, 기부를 실천하는 젊은 부자들의 모범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에드윈 터너가 한 말이었다.


“좋아 보이시네요?”


작년 조앤 폰다 여사와 이혼해서 궁상맞아 보일 줄 알았다.

예상과는 달리 표정이나 행색이 밝아보였다.


“무거운 걸 내려놓게 돼서... 내 정신 좀 봐. 여기 이 친구는 처음 보지?”


에드윈 터너가 풍채 좋은 노인을 소개했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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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매드원
    작성일
    23.07.08 11:22
    No. 1

    아무리 살리고 싶다고 해도 대주주라 해도 저건 친하지도 않은대 월권 아닌가요?
    미국식이면 왠지 안될것 같은 기분이?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7.08 14:45
    No. 2

    개인정보에 민감한 미국 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일 입니다.
    하지만 현실 에서는 경영자들을 내쫓는
    방법으로 자주 쓰이는 밤법이라 더 예민하게
    대응한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7.09 09:41
    No. 3

    잡스는 저렇게까지 해도 될까말까입니다. 잡스 일대기를 보면 지독한 워커홀릭이라 막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고 본인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무시했다는 것이 정설이죠. 만약 잡스가 건강관리를 해 오래 살았다면 혁신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9 cooooool
    작성일
    23.07.09 10:46
    No. 4

    잡스 없어진 이후에
    애플이 더 잘나갔죠

    아이폰이 혁신이란 이미지로 사용자 모은건데

    이후로 아이폰에 더 이상 혁신은 없다고 기사가 나와도

    잡스 없으니 그런거다
    잡스가 그리워

    하고 적당히 합리화가 된거죠

    ㅡㅡㅡㅡ
    이미시장지배하는 닫힌 세계관에
    미국ㅡ애플이라는 브랜드로
    이미 잡스없이 계속 가는거죠

    ㅡㅡㅡ
    중국 일본에 한국차 한국폰 안 팔리는데

    미국과 경제전쟁하는중국인들 갤러시는 한한령이후 갤러시는 안삼
    근데 애플은 삼

    이게 한국은 우리에 까부는 건방진 소국이라 안사는거지만
    애플은 적이지만 무서운 대국이라



    현대차도 전기차에서 앞서가고 가솔리차도 갈수록 대박인데
    중국 일본에선 안팔림

    태슬라가 중국에서 잘 팔리는거보면
    ㅋㅋ

    한한령으로 k팝 한국영화 중국닫힘
    근데 미국영화는 계속 상영

    웃긴놈들

    한국기업이 미국 중국 일본과 동등하기ㅣㅣ 경쟁하는 경우는 몇배 노력했거나 몇배 경쟁력있다는 이야기죠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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