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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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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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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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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Daredevil> 배급은 20th Century PARKs가 맡았다.

여름 시즌 블록버스터도 아닌데 작정하고 밀어주는 분위기다.

첫 주말 북미 스크린을 무려 3,471개나 잡았다.

개봉 첫 주 4,5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거둬들여 오프닝 주말 1위를 기록했다.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배경에도 불구하고, 썩 훌륭한 편이다. 다른 Timely 프랜차이즈를 복사하지 않은 점은 칭찬받을 만하다.]

- New York Post.


[슈퍼히어로 영화가 차세대 액션 영화임이 분명해졌다. 이제 슈발츠네거 스타일의 영웅들이 설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액션영화가 진화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선입관을 깨준 감독에게 고맙다.]

- The Hollywood Reporter.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영화다. 노골적으로 지적인 척 하는 건 조금 불편했다.]

- Chicago Sun-Times.


[Timely Comics 프랜차이즈가 다시 한 번 할리우드를 점령 한 날이다. <블레이드>와 <레모> 후속편으로 실망을 안겨준 프로듀서 지호 류가 이번에 다크히어로를 들고 나왔다.]

- Entertainment Weekly.


[시력과 청각에 과민한 고통을 선사하지만, 결국 설득당하고 말았다.]

- Empire.


[그렇게 나쁘지 않다. 연출을 맡은 명수 리는 홍콩감독이 아니다. 홍콩이 아닌 다른 아시아 감독이 선사하는 두 시간의 기묘한 체험이 괜찮았다. 이 경험을 딱 꼬집어 정리할 수 없어 안타깝다. 하지만 영화는 최근 본 액션장르 중 가장 좋았다.]

- The Philadelphia Inquirer.


[언젠가 Timely와 지호 류에게도 한계가 닥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의 프랜차이즈가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 SCREEN.


평단과 언론의 평가는 다소 갈렸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가 좀 더 많은 편이다.

로튼 토마토 관객지수도 78%로 선방 중이다.

이명수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는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보였다.


“축하드려요, 감독님.”

“그런 소리 말아. 이제 첫 주 지났어.”


이명수 감독이 펄쩍 뛰며 축하를 고사했다.

혹시나 설레발을 떨었다가 2~3주차에 관객이 뚝 떨어질까 싶어서다.


“PARKs에서 작정하고 밀어주고 있잖아요. 북미에서 1억 달러는 무난히 넘길 것 같다네요.”

“1억 달러가 손익분기점이야?”

“어림없죠. P&A 비용을 워낙에 많이 쏟아 부어서. 1.9억 달러 정도가 손익분기점일 것 같은데... 월드 박스오피스에서 2.5억 달러는 얼추 달성할 것 같긴 해요.”


그 정도 스코어를 달성하게 되면 이명수 감독은 안전하게 할리우드에 안착할 수 있다.


“쉽지 않아.”


이명수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툭툭.


류지호가 격려의 의미로 이명수의 등을 쓰다듬었다.

감독이 신뢰가 안 가면 교체하면 된다.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삐끗하면 다른 프로젝트로 대체하면 된다.

영화 비즈니스는 류지호게 쉽다.

MacIntosh에 있어서는 그것이 안 된다.

스테픈 잡스는 대체불가의 존재다.

류지호가 파악하기로는 아이튠즈 이후 파이프라인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당시는 비디오 재생이 가능한 아이팟 비디오와 음원스토어를 확장시켜 영화나 다른 콘텐츠까지도 판매하는 iTunes Store로 확대 편성하는 것까지 잡혀 있는 상황이다.

아직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잡스의 계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잡스만 아니면 그냥.... 아휴 진짜!”


류지호는 연신 투덜대며 실리콘밸리 쿠퍼티노로 향했다.

MacIntosh 본사에서 스테픈 잡스를 만나기 위해서.


❉ ❉ ❉


실리콘 밸리 쿠퍼티노에 둥지를 틀고 있는 MacIntosh 본사.

MacIntosh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피니티 루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얼마 안 가서 이곳은 새로운 세계의 중심이 될 곳이다.

세계 정보기술 산업 전반의 지형을 뒤흔들고 동시대인들의 생활 방식을 바꿀 혁신적인 제품들이 이곳에서 탄생할 테니까.

현재 MacIntosh 본사는 4층짜리 야트막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 전부다.

잡스 사후 이전하게 될 인피니티 루프에 비해 눈길을 끌만한 요소는 없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물 배치에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10년 안에 선망의 대상이 되는 기업에 와 있었지만, 류지호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Playa Vista에 JHO 계열의 캠퍼스 스타일 본사들이 준비되고 있었기에.


“어서 오십시오. 안내하겠습니다.”


CEO 비서의 안내를 받아 본사로 입장했다.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며 최소 3개 이상 문을 통과해야 했다.

외부 방문객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MacIntosh 직원들도 마찬가지로 엄격한 보안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비밀 유지가 MacIntosh 직원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덕목이라나.

MacIntosh에서는 자기 업무가 아니면 옆자리에서 하는 일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 MacIntosh은 마약 조직처럼 점조직으로 운영된다!


오죽하면 그 같은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그런 유난 때문인지 인피니티 루프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밖에 새나오는 법이 없다.

섣부르게 정보를 누설하면 무자비한 해고와 소송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밀주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공통된 특징이긴 했다.

MacIntosh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심지어 퇴직 직원의 언론 인터뷰에 대한 추적 소송도 불사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밖에 잘 몰라요. 그 사람 뒤에 누가 있는지 알려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죠.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반복해 그런 교육을 받아요. 불필요한 것은 알려고 하지 말라는 거죠. 회사 문화 자체가 그래요. 정보 유출은 생각할 수도 없죠.”

“잡스씨와 직원들의 교류는 어때요?”

“실무자들은 잡스씨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아마 카페 맥을 지나가면서 밥 먹는 모습을 몇 번 본 것이 다 일거예요.”

“그렇군요.”


잡스의 비서는 회사 분위기를 감추는 것 없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류지호가 개인 최대주주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잡스의 건강을 예민하게 여겼던 것처럼 MacIntosh 보안에 대해 우려할까 싶어서다.


“......?”


류지호가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잡스 집무실이 아닌 회의실이었다.

잡스의 비서가 회의실 문을 열어주며 인사했다.


“미팅이 끝나고 다시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고마워요.”


류지호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스테픈 잡스가 작년 출시한 iMac G4로 작업에 열중 하고 있다.


“잡스씨.”

“어서 오게.”


스테픈 잡스의 평소 표정을 보면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난다.

항상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얼마나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업무 중인 것 같아 류지호는 일을 마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슬슬 지겨워지려고 할 때 스테픈 잡스의 입이 열렸다.


“왜 내게 수술을 강요하는 거지?”

“아픈 사람이 치료받길 바라는 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난 수술 받을 생각이 전혀 없네.”

“왜입니까?”

“누군가가 내 몸을 여는 게 싫어.”


류지호는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삼켰다.

혹시 수술이 잘 못될까봐 혹은 수술해도 가망이 없어서.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모르는 이가 자신의 몸을 수술하는 게 싫은 것 뿐.


“잡스씨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으로 아는데,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다른 방법들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네.”


대체의학을 찾아보겠다는 의미다.


“내가 좀 알아봤습니다.”

“주주가 CEO의 건강까지 신경을 쓰는 특이한 케이스군.”

“잡스씨의 췌... 병은 진행 속도가 느려 완치율이 높다고 하더군요. 조기 발견한다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가능한 것이지, 완치된다는 말은 아니지.”

“무섭습니까?”

“......”

“아니면, 자신이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일단 외면하고 보는 겁니까?”

“.....”

“당신이 처한 현실은 피한다고, 또 걸러낸다고 될 문제가 아닐 텐데요? 건강은 아이맥 개발이나 아이튠즈 비즈니스 모델과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난 채식주의자네. 그건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야.”


류지호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다.

췌장암 말기의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완치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상황이다.

그런데 수술을 거부하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자네는 아시아에서 왔으니 알거야. 침술과 약초술을.”

“검증되지도 않은 방법이잖습니까? 설마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신봉하면서 비과학적인 불확실성에 자신의 건강을 배팅한다는 겁니까? 최후의 수단이면 모를까.”

“안 될 건 뭔가? 난 패배는 할지언정 꺾이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아닐세.”


막무가내다.

이미 암치료의 방향을 결정한 듯 싶었다.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이라는 자연치유 방법일 테지.

스테픈 잡스는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시하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병적인 자아도취다.


“자연치유.... 말은 좋지요. 스스로 모르모트가 되겠다는 겁니까?”


누구 좋으라고.


“난 내가 개발한 모든 제품을 고객보다 우선해서 테스트한다네. 내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똑같은 입장에서. 내가 첫 번째 테스터가 되는 셈이지.”

“그것과 질병이 어떻게 같습니까?”


그것도 췌장암과.


“내게는 별로 다르지 않네.”

“백만 분의 일도 안 되는 확률에 도박을 해보겠다는 겁니까?”

“나는 살면서 극복하지 못할 장애는 없다는 걸 수차례 확인했네.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자네도 나와 같지 않던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난 대학 때부터 불교 철학에 심취했지. 참선과 명상은 내 일과의 중요한 일정이라네. 자네도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걸로 알아. 자네가 하는 단전호흡과 명상은 다르지 않지.”

“난 병에 걸리지 않았지요. 만약 내가 잡스씨 입장이라면 당장 병가를 내고 전문의 조언을 따를 겁니다. 내게 닥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적절히 행동할 겁니다.”

“방식이 다를 뿐이네.”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교주의 기적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병마와 싸우는 최고경영자 잡스씨를 믿지 못하겠다면요?”

“아무리 주주라도 내 인생에 간섭할 권리는 없네.”

“난 잡스씨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경영자의 건강상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겁니다. MacIntosh에는 잡스씨가 꼭 필요하니까요.”

“날 그렇게 높이 사고 있을 줄은 몰랐군.”

“만약 자연치유든 대체의학이든 효과가 없을 경우 혹은 악화될 경우... 생각해 봤습니까?”

“그때가 되면 자네는 날 더 이상 볼 수가 없을 거야. 내가 아무도 만나지 않을 테니까.”


어린애가 주사 맞기 싫어 떼쓰는 것도 아니고.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힘겹게 MacIntosh CEO로 복귀한 주제에.


“당신이 없는 MacIntosh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부사장이나 이사들 모두 굉장히 스마트하다네. 천재 수준이지. 나는 말이야, MacIntosh를 나가서야 MacIntosh에 얼마나 똑똑한 인재들이 몰려 있는지 알게 되었다네. 그리고 내가 복귀한 이후로 인재들이 더 많이 들어왔고.”

“말 잘 했어요. 그들은 어디로 튈지 몰라요. 잡스씨가 그런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당신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없다면 누가 과연 대신할 수 있을까요? 난 어려울 거라 봅니다.”


주주들은 항상 잡스 자신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때만 되면 MacIntosh에서 떠날 것을 종용하기만 했다.

실제 80년대 스테픈 잡스는 매우 공격적이어서 회사 직원들의 사기를 꺾기 일쑤였다.

헌데 실리콘밸리 엔젤이라고 불리는 벼락부자 애송이가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니.

칭찬을 좋아해야 할지 가소롭다고 해야 할지.....


“당신이 부재한 상황에서 신제품 파이프라인이 바닥나고, 새로운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당신이 모아 온 그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실패한 제품이 한두 개 나오고, 책임을 둘러싼 내분이 벌어지면! 그때는 이탈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1980년 초반에 개발자와 연구원들이 대거 이탈할 때처럼.


“왜요? 당신이 없을 때 벌어지는 문제는 상관없습니까? 그렇다면 왜 MacIntosh에서 쫓겨난 후 다시 돌아오려고 그렇게 애썼지요?”

“그때는 내가 아마추어처럼 굴었다는 걸..... 미숙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좀 더 원론적으로 볼까요? 역사적으로 빼어난 기업이 오래 유지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강력한 카리스마와 항로를 알려줄 선장이 없는 MacIntosh의 항해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 항해가 과연 오래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날 MacIntosh에서 다시 쫒아낼 수 있을 것 같은가?”

“상관 안 합니다. 당신이 말도 안 되는 대체의학에 의지하겠다면 아이팟과 아이튠즈가 반응이 오든 말든 주식을 모두 팔아치울 생각입니다.”

“자네에게 MacIntosh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보유한 실리콘밸리 기업 모든 주식을 합친 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좀처럼 감정의 동요가 없던 스테픈 잡스가 매우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 매튜는 당신이 MacIntosh에 복귀한 시점부터 회사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없는 MacIntosh는 나와 GARAM에게 그리 매력적인 회사가 아닙니다.”


닷컴버블 붕괴로 수많은 실리콘밸리 벤처들이 무너질 때 류지호가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기업들은 살아남았다.

심지어 투자를 받아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아픈 걸 숨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중요한 순간에 당신이 쓰러지거나 장기 병가를 내게 되면, 그때는 누가 책임집니까?”

“비록 주가는 바닥을 뚫을 기세지만.... MacIntosh는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들었다고 자부하네.”

“당장은 그렇죠. 아이팟의 반응이 꽤 좋다고 들었지만, 그런 제품이 2년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젠가 한계가 닥치겠죠.”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었다.

스테픈 잡스는 류지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고집쟁이에다, 자기중심적이었다.

회의실에서 몇 번의 고성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도저히 말을 들어먹지 않는 잡스에게 화가 난 류지호가 지른 고함이었다.

누구도 회의실에서 새어나오는 고성에 신경 쓰지 않았다.

MacIntosh 본사는 그 만큼 보안이 철저한 기업, 아니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오로지 주어진 과업만 죽어라 파는 문화였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IBT가 IT시장 그 자체였다.

현재는 PS에 IT기업 1위 자리를 내주고, INTEG와 오성전자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다.

최고가 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건 더 힘들다.

이전 삶에서 스테픈 잡스는 췌장암이 간과 폐까지 전이되고도 7년을 버텼다.

암진단 1기에 수술을 받는다고 완치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류지호가 보기에 그 지랄 맞은 성격상 재발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불교식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스스로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성향이라서 스트레스 관리가 될지 미지수였다.


‘나도 모르겠다.’


류지호는 할 만큼 했다.

사실은 그 이상의 오지랖을 부렸다.

더 이상 간섭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못했다.

스테픈 잡스와의 만남이 영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와 고성까지 오가며 격렬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류지호는 놓치고 있는 것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것은 기술과 내용에 관한 것이다.

MacIntosh는 소비자들의 눈에 ‘기술’이 보이지 않도록 하라는 원칙을 세웠다.

MacIntosh 제품은 소비자에게 복잡한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도구’ 가 아니라, ‘해답’을 줘야 하는 것으로 마케팅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류지호는 D-Cinema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해도 과몰입 중이다.


‘이번까지만!’


LA로 돌아오며 류지호는 차분하게 D-Cinema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REMO> 최종편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에 모든 걸 쏟아 붓기로 했다.

이후 찍는 영화들은 다시 필름으로 돌아가 기본과 초심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재조정했다.

그 다음?

미리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저 위대하다는 혁신가 잡스조차 한치 앞도 못 보는데, 내 주제에 10년 앞을 내다보는 것은 무리야.’


예술 분야는 때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갈 필요도 있다.

우연히 찾아온 영감으로 인해 걸작이 탄생할 수도 있으니까.


❉ ❉ ❉


류지호는 스테픈 잡스 문제로 꽤나 심력을 소모했다.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그런데 좋은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생활에 활력이 다시 돌아왔다.


“워킹 데드!”

“예. 보스.”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이 트라이-스텔라TV에서 보내온 판권계약서 사본을 내밀었다.

10여 년 TIMELY Comics 출신 만화가 7명이 독립해 인디만화를 주력하는 만화출판사를 만들었는데, 바로 IMAGINARY Comics다.

90년대 말과 최근까지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워킹 데드>, <인빈서블> 시리즈로 인해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고 있다.

이전 삶에서 인디만화들을 주력으로 삼아 TIMELY와 AC의 뒤를 이어 세 번째 규모에 들어가는 만화출판사로 성장했었다.

류지호는 <워킹 데드>가 출판되자마자, 트라이-스텔라TV에 판권계약을 주문했다.

이제 막 첫 번째 에피소드가 연재된 <워킹 데드>를 계약하자고 하자, IMAGINARY Comics는 크게 당황했다.


“미스터 할리우드가 5년 안에 TST를 통해 좀비아포칼립스 TV시리즈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류지호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곧바로 협상이 급물살을 탈 줄 알았지만.


“이제 막 회생의 기회를 잡은 IMAGINARY를 보스가 잡아먹으려는 줄 오해를 했다고 해요. 보스는 TIMELY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나는 코믹스 실사화를 연달아 성공해보였어요. 그들 입장에서는 환영해야 할 상황 아닌가....?”

“회사가 어려워지자 초창기 멤버 몇 명이 TIMELY로 복귀하고 산하 스튜디오 하나는 AC Comocs에 인수되었다고 해요. 보스가 그 틈을 노려 IMAGINARY Comics를 TIMELY에 편입시킬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해요.”

“시간을 끌면 경쟁사가 끼어들었을 텐데.....”

“워너-타임이 냄새를 맡고 접근을 했지만 그들이 제대로 협상을 나서기 전에 게임을 끝낼 수 있었어요.”

“판권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네요.”


류지호가 영화판권에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다른 스튜디오나 프로듀서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번개처럼 움직여 순식간에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불필요한 경쟁이 붙었다.

몇 차례 알짜 판권을 놓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다 먹을 순 없으니까.’


미국의 코믹스 시장은 사실상 넘버원의 TIMELY, 뒤에 바짝 붙어 있는 AC Comics가 양분하다시피하고 있다.

두 회사의 점유율은 무려 85%에 육박한다.

나머지 점유율을 Black Horse, DWI, IMAGINARY 등 군소 회사들이 치열한 점유율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소 5개 에피소드가 쌓일 때까지 실사화 유보 조항은 들어가 있죠?”

“예. 판권확보에 관한 공식확인도 5개 에피소드가 정식 출판된 후로 유보했습니다.”


류지호가 <워킹 데드> 판권을 확보했다는 뉴스가 나가면 많은 팬들이 기대감을 가질 터.

TV시리즈로 제작되려면 최소 5년은 지나야하기에 벌써부터 프로젝트가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비밀보장 조항은 반드시 지켜질 겁니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IMAGINARY Comics를 팔아도 다 배상하지 못할 엄청난 위자료를 트라이-스텔라TV에 지불해야 하니까요.”

“그래요.”


제니퍼 허드슨이 몇 개의 보고서를 더 내밀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미국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주로 매튜 그레이엄이 상대하는 편이다.

실리콘밸리의 경우는 미래 거물이 될 일부 창업자를 제외하고는 GARAM Ventures의 데이브 보우먼이 관리하고 있다.

류지호는 영화 분야의 거장이나 어떤 위대한 제작자와도 몇 시간 토론을 벌일 수 있다.

정보통신과 첨단과학기술 분야는 조금 자신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류지호는 글로벌기업 CEO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소극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서실에서는 주요 기업 경영동향에 대해 꾸준히 보고를 올리고 있다.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잘 들어주는 것도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겠지만, 대화가 통해야 더 큰 즐거움이 생기는 법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들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최신 동향은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수고했어요.”


류지호가 건넨 정보보고서를 받아든 제니퍼 허드슨이 곧바로 종이를 파쇄기에 넣었다.

JHO 헤드쿼터에서 나오는 모든 문서는 보안등급이 가장 높은 파쇄기에서 분해된 후에 JHO Security Service가 수거해 자체 소각장에서 깨끗하게 타서 재만 남긴다.

간혹 사립탐정과 파파라치들이 쓰레기를 가져가기도 하기에 폐문서조차 민감하게 취급하고 있다.


“혹시 IMAGINARY 경영진과 식사자리를 가지실 계획은 없으세요?”

“딱히.....”

“알겠습니다.”


류지호는 IMAGINARY Comics가 미숙한 경영 때문에 코믹스 출판이 늦어져서 소매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그로인해 현금유동성과 매출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창작자 간의 충돌이 일며 내부 불화가 있다는 것도 TIMELY가 몇 개 코믹북에 대해 표절 및 저작권침해에 관해 소송을 걸고 있다는 것도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무려 11시즌짜리 TV시리즈 판권을 확보했다는 사실 뿐이다.

물론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시즌이 줄어들 수도 있다.

이전 삶에서는 <워킹 데드>가 케이블 베이직 채널에서 방영하면서 처절한 서바이벌의 묘사보다는 생존자들의 정신적 공황과 붕괴과정,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프리미엄 채널 TST는 폭력장면 묘사에서 좀 더 적나라한 표현이 가능하다.

게다가 류지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좋은 콘텐츠에 대해 제작비를 아끼는 법이 없다.

작정하고 제작비를 투입하면 특유의 드라마 및 주제의식과 함께 볼거리까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모든 시즌을 시즌5 수준의 비평적 성공과 시청률 대박으로 만들어주지.”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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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매드원
    작성일
    23.07.12 10:15
    No. 1

    잡스가 반쯤 신격화 비스무리하게 되어있다지만
    3화이상 잡아먹는거는.,,
    거기에 친하지도 않는대 병하고 채식주의같은거 건드리는것도 걍 오지랍같음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나 사생활 간섭하는건 친하지 않으면 힘들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대주주라고 저러는건 ,,,
    잡스는 사업가지 개발자는 아니고 뭔가 참신한건 없을것 같습니다
    애플카,vr기기,ai 정도인대 소설이니 작가님이 자비스급 내놓지 않는한 챗gpt가 최대 느낌이고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유시어
    작성일
    23.07.12 16:00
    No. 2

    스마트폰이 주는 임펙트가 있긴 하지만 사실 애플이 앞선 것이지 유일한 건 아니죠.
    주인공이 너무 얽매이지 않나 싶습니다.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7.13 01:47
    No. 3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7.13 04:02
    No. 4

    워킹데드가 나오는 군요
    잘보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Emc
    작성일
    23.10.21 22:05
    No. 5

    원본인 디렉터스 컷이 연재될 때에는 챗 gpt가 없었답니다...
    잡스 사망 이후 애플 불안해보일때였구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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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REMO : ....or Maybe Dead! (9) +3 23.08.03 2,503 97 24쪽
573 REMO : ....or Maybe Dead! (8) +7 23.08.02 2,654 111 26쪽
572 REMO : ....or Maybe Dead! (7) +3 23.08.02 2,630 9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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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 REMO : ....or Maybe Dead! (3) +7 23.07.31 2,671 98 23쪽
567 REMO : ....or Maybe Dead! (2) +3 23.07.29 2,897 111 26쪽
566 REMO : ....or Maybe Dead! (1) +4 23.07.28 2,962 106 24쪽
565 낄 데 안 낄 데 분별을 못하고 있어! +6 23.07.27 2,939 114 26쪽
564 영화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 +3 23.07.26 2,929 112 25쪽
563 형이 갖고 싶었던 건 아니고? +6 23.07.25 2,957 123 29쪽
562 Love Of a Lifetime. (4) +4 23.07.24 2,837 118 23쪽
561 Love Of a Lifetime. (3) +3 23.07.24 2,684 93 24쪽
560 Love Of a Lifetime. (2) +8 23.07.22 2,982 116 26쪽
559 Love Of a Lifetime. (1) +2 23.07.21 2,951 113 24쪽
558 어련히 알아서 할까..... +6 23.07.20 2,953 118 29쪽
557 두고두고 가문의 영광이겠지..... +9 23.07.19 2,898 122 25쪽
556 MJJ Music Records. (4) +4 23.07.18 2,850 110 24쪽
555 MJJ Music Records. (3) +2 23.07.17 2,833 114 21쪽
554 MJJ Music Records. (2) +5 23.07.15 2,936 125 22쪽
553 MJJ Music Records. (1) +5 23.07.14 2,990 103 22쪽
552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2) +3 23.07.13 2,991 113 23쪽
»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1) +5 23.07.12 2,979 112 23쪽
550 나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건데..... +4 23.07.11 3,011 118 27쪽
549 내 이럴 줄 알았다! (2) +8 23.07.10 3,016 118 27쪽
548 내 이럴 줄 알았다! (1) +4 23.07.08 3,023 112 25쪽
547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4 23.07.07 3,029 11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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