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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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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1,19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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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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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자의 목표(5)

DUMMY

주말 아침이 되면 임시 거처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침부터 기분 좋아 보이네요?”


로운이 김이 나고 있는 음료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내 앞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네? 저 별로 그렇게 기쁜 일은 없는데요?”

“입꼬리가 이렇게 올라가 있는 데요?”


그가 양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답했다.


“그냥...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을 놓았나 봐요.”


우리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며 잠시 실없이 웃었다. 요즘 들어서 이렇게라도 의도적으로 웃지 않으면 웃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로운 씨는 얼음 능력잔데 따뜻한 거 자주 마셔도 돼요? 이것도 편견이려나.”

“아. 뭐... 오히려 항상 춥다보니 자주 마시는 것 같아요.”


이변이 일어나고 사람들에게 능력이 생기면서 생활 자체가 바뀐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지 못한다.


그 사람 주변으로 떠오르는 글자들 때문에. 얼굴밖에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나이, 능력까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소름끼치겠는가.


로운도 비슷한 것 같았다. 늘 춥다니... 이번 겨울에는 뭔가 따뜻한 걸 선물해 줘야겠네.


“그래서 진짜로. 무슨 일이에요? 첫사랑에 빠진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잖아요.”


이제는 로운도 제법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장난도 쳤다.


“첫사랑이라뇨. 누굴...”


사랑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요? 뭔가 사랑에 빠진 줄 알았는데.”

“사랑이 아니라 증오에 빠진 것 같아요.”


나는 그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같은 조원들이 지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이가 좋은 조원이네요.”

“그렇죠. 근데 지들끼리만 사이가 좋아서 문제에요.”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끌며 보여주자 로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계속 의견을 내는 나와 의도적으로 그걸 무시하고 있는 조원들.


“이래가지고는 조별과제를 할 수 없는 걸요.”

“흠. 확실히 의도적으로 그러는 걸로 보이네요. 왜 저러는 거지?”

“좀 다툼이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 애들보다 로운 씨가 한 살 많네요. 어때요 22살이 보는 21살의 모습이?”

“흐으음...”


그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어쩔 수 없죠. 20대 초반은 어린 나이니까요.”

“하하 로운 씨도 이제 22살이면서”

“그건 그래요.”


물론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외형적으로가 아니라 그가 풍기는 분이기는 20대 초반의 그것이 아니었다.


“저는 조별과제를 해도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았어서... 이거랑은 다른 의미로 무시당했죠.”


담담하게 말하는 그가 왜인지 씁쓸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를 조금 일찍 졸업하셨다고 하셨죠?”

“네.”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아. 궁금하신 건가요?”


새삼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어보는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이렇게 보면 또 어린애 같고.


“아버지가 쓸데없는데 시간 쓰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쓸데없는데요?”

“네. 다른 애들처럼 하면 다른 애들하고 똑같이 클 뿐이라고요. 학교는 방학이라든가 행사라든가 시간을 쓸 곳이 많잖아요.”

“그렇죠?”

“그 시간들을 모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년을 앞서 갈 수 있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게... 의미가 있나?


“뭐... 어렸을 때야 아버지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시기에 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시간낭비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번에 그런 얘기를 했구나.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도 엄격한 부모님을 만나면 고생하는 건 똑같겠네.


“지혁씨는 학생 때 어떠셨어요?”

“음... 저는...”


내가 학생 때? 학생 때 뭐했지? 학교를 다녔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것은 어두운 방안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며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그것도 제 3자가 보는 시선의 모습.


“공부했던 것 같아요. 제 적성에는 안 맞았지만.”

“공부요? 무슨 공부요?”

“음... 수학? 영어? 부모님이 제가 공부해서 성공하기를 바라셨거든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바라셨죠.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등요.”

“‘사’자 직업에 사업가도 들어가는군요.”


그가 진지하게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하게 들어줄 것만 같은 그의 표정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 사기꾼 안 된 게 어디에요.”


우리는 또 한 번 실없이 웃었다. 아니. 나는 웃으면 안 되지. 진짜로 사기를 쳤잖아? 진지하게 반성합니다.


“아무튼. 엄격을 넘어서... 꽤 집착이었죠.”

“집착이요?”

“네. 저는 외동이다 보니까 집안을 살릴 수 있는 게 저 뿐이라면서 저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어요. 저는 매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었지만요.”

“흠...”


만약 고민이 생긴다면 로운에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어떤 하찮은 고민이더라도 그는 매번 진지한 얼굴로 고민해줄 것 같으니까.


“참 안타깝네요.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대한 보상이 아닌데 말이죠.”

“부모의 심정이란 건 부모가 되기 전에는 잘 모르는 거니까요. 뭐... 이제는 기대도 안 하세요.”

“흠... 어렵네요.”


로운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삼키려는 듯 빠르게 말을 끝냈다.


“아.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요.”

“뭔데요?”

“조별과제요. 저는 제가 어리다고 무시했던 사람들한테 이 방법으로 대응했어요.”

“어떻게 했는데요?”

“실력으로 눌러버렸어요.”


천사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로운다운 발상이다.


“하긴. 그게 제일 확실하기는 한데.”

“아주 기를 확 눌러버려요!”

“흠흠. 노력해보겠습니다.”


아쉽게도 그가 당연히 제시한 길이 나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 맞아. 로운씨. 마인드 리더라는 능력에 대해서 아세요?”

“마인드 리더요?”


되묻는 모양새를 보니 그도 잘은 모르는 것 같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독심술사 같은 건가?”

“그런 능력도 있어요?”

“네. 뭐. 능력이 다 전투에 쓰이거나 보조를 하는 거는 아니니까요.”


난생 처음 듣는 소리다.


“제가 들은 가장 전투와 거리가 멀었던 능력이 사물의 나이를 아는 능력이었어요. 오래된 물건일수록 알아내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사물의 나이를 아는 능력이라니...”

“뭐. 덕분에 지질학이나 고고학에서는 신났죠.”

“아. 확실히 그렇겠네요.”


이변이 일어난 이후 특별한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탑을 오르거나 마법진에서 살아남는 능력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위험이 없는 시대에 능력이 생겼더라면 능력자들의 위치가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별다른 도구 없이도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로운은 열대지역에 가서 빙수장사를 했을지도 모르고. 나래 씨는 건설현장의 에이스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음... 미혜와 석은 어느 분야에서 힘을 썼을까.


“무슨 재밌는 생각을 골똘히 해요?”

“그냥 만약에 이변이 일어나지 않은 세상에서 능력이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음... 재밌는 얘기네요.”

“아마 로운씨는 열대 지역 가서 빙수 장사를 했으면 잘하지 않았을까요.”

“하하. 그게 뭡니까 대체.”


해맑게 웃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세계였다면 저는 좀 무서웠을 것 같네요.”

“왜요?”

“지금이야 탑이나 마법진같은 능력을 분출할 곳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세계였다고 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인간들이 감당해야 했겠죠. 지금의 몬스터를 대체할 또 다른 위험이 나타났을 것 같아요.”

“흠. 그것도 그러네요.”

“아. 저는 시간이 돼서 이만 가볼게요. 오늘 대화 즐거웠어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로운이 놀란 표정으로 말하며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역시 대표님은 바쁘구만.”


그나저나 진짜로 어떡하지? 아까 로운에게 보여줬던 화면 그대로 켜둔 핸드폰에서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문주희 : 선배님. 읽지만 마시고 대답해주세요.]


[성태훈 : 자꾸 이러시면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조 명단에서 이름을 뺄 수밖에 없습니다.]


[문주희 : 저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신다면서요. 이거 도움도 안 되고 계시잖아요.]


흐음... 지들도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아 놓고는... 확실히 선을 넘는데 뭐라고 할까. 이에는 이고, 눈에는 눈이랬다.


[우지혁 : 내 의견이 그렇게 필요하시다니. 그럼 컨셉은 탑으로 갑시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귀중한 주말에 회의를 한다고 해놓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짓이나 하고 있는 애들한테 쓸 생각은 없다.


그래. 원한다면 내가 이 구역 조별과제의 민폐가 돼주겠어.


+++


나의 황금 같은 주말은 여기서 보내야하니까 말이야.


5층이 뚫린 이후로 주말이 되면 탑 앞이 붐비는 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사람이 넘치는 게 관광지가 따로 없다.


“주말마다 사람이 넘치는 걸 보니 관광지가 따로 없네.”


내가 방금 생각을 말로 말했던가?


“여기가 무슨 놀이동산인줄 아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탑에 오르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한국 전체로 봤을 때는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의 탑 앞은 탑을 오르는 걸 구경하려는 구경꾼들이 더 많았다.


특히 저...


“네! 수박 여러분들! 호박 TV입니다. 단호한 저 단호박이. 오늘은 3층... 네? 3층은 못 오른다고요? 에이 그럴 리가요.”


저 사람뿐만이 아니다.


“안녕. 여러분들~ 오늘의 탑 오르기 콘텐츠는 2층을 올라볼 거예요! 부디 무사히 다녀오길 기대해주세요!”

“여러분!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


등등.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탑 안까지 인터넷이 닿다보니 개인방송 콘텐츠로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어떻게 다시 오르게 된 탑인데... 저런 식으로 소비하다니... 안 그래요?”


내 생각이 아니었다. 내 옆에 선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목소리가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


상대는 나를 알아본 듯 반응했다.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요. 탑 앞에서 보다니 역시 능력자였던 거죠?”

“아... 네. 뭐.”

“우리나라 능력자들은 좀 더 능력자로서 자각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쯧... 탑이 얼마나 위험한 줄 모르나.”


어디로 봐도 어려보이는 외모의 고서우가 혀를 차며 어르신처럼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그... 음.”


고서우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말끝을 흐리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서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7학번 고서우라고 합니다. 올해 3학년이에요.”


24살?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


“아. 저는 우지혁이라고 합니다.”

“아하. 저보다 선배님이신가요?”

“그렇죠?”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아. 예...”


고서우는 발랄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작고 하얀 손에는 자잘한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마주 잡은 채로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나저나 선배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에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서우가 말을 이었다.


“아. 저는 동아리 활동으로 견학 왔어요.”


아무래도 자신의 용건은 말하지 않고 묻기만 한 것이 실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문제는 아니었지만 예의 없는 후배들과 대화를 하고 왔던 참이다 보니 그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다.


“저는 시장 조사하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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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워밍업(2) 21.12.23 1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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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Restart 21.12.21 1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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