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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41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1.12.18 09:00
조회
130
추천
1
글자
12쪽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6)

DUMMY

사람이란 게 종종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바로 이 순간처럼.


나는 내 오른손에 쥐어진 칼과 바닥에 놓인 재료들 그리고 양피지를 보고 한 가지 가능성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레시피에 적힌 대로만 음료를 만들었었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았나. 레시피를 따라 음료를 만드는 능력이라면 처음 레시피가 나에게 왔을 때 그렇게 많은 빈 양피지가 필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나에게 열린 또 하나의 스킬.


[레시피 개발]


나는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양피지를 바르게 펼쳤다.


잉크도 없다. 펜도 없다. 무언가 적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양피지만 줬다는 것은 내가 가진 무언가로 레시피를 적을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그 순간 머릿속에서 석판으로 흘러 들어가던 노란색의 실빛이 떠올랐다.


오른손을 들어 양피지를 만지자 역시나 노란색의 실빛이 연약하게 흘러나왔다.


나오는 꼴이 시원찮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저 망할 탑이 내 마나를 다 먹어치웠으니...


단 한 장의 양피지, 얼마 남지 않은 마나, 한정된 재료.


기회는 한 번 뿐이다.


내가 저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음료는 단 하나. 머릿속에서 음료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며 손을 움직이자 양피지 위로 노란색으로 빛나는 글자들이 새겨졌다.


유래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언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된 글자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양피지 위에 자리 잡았다.


“끓는 물은 없어...”


물을 끓일 틈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 음료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레시피를 모두 적었다. 소년이 썼던 레시피처럼 친절하지도 않다.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름도 없다. 오로지 내가 쓰기 위해 쓴 나의 레시피.


양피지에서 손을 떼자 작게 빛나더니 눈앞에 안내창이 나타났다.


[레시피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해당 레시피에 이름을 정하시겠습니까? 정하시지 않으실 경우 임의로 지정됩니다.]


레시피는 내 마음대로 했지만 이름은 다른 음료와 맞추는 것이 좋겠지? 그래야 기억하기 쉬울 테니까.


“검술의 밀크티로 해줘.”


이 밀크티가 검술 능력을 올려 줄지는 모른다. 레시피 작업은 처음이었으니까. 제발 내가 원하는 대로 완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검술의 밀크티 레시피가 완성되었습니다.]


[특수 스킬 레시피 개발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검술의 밀크티를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근력, 민첩, 행운이 상승하며 마법의 효과를 받습니다.]


[해당 레시피의 효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특별한 재료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나타나는 안내창을 차례대로 끄고 손안의 레시피를 바라봤다.


나는 이제... 찬물로 밀크티를 만들어야 한다.


방금 작성한 레시피지만 그대로 만들 수도 없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것은 재료의 혼합일 뿐.


나는 물병에 있는 물을 반쯤 버리고 거기다가 찻잎을 부었다. 별 생각 없이 가져왔는데 지금 보니 보이차다.


[이름 : 보이차 찻잎

나이 : 1살

특성 : 말린 잎 ]


이걸 이제 확인한 나도 참...


일단 물병에 넣고 흔들었다.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물을 세차게 흔들었다. 우러나오길 기대하진 않는다... 맛도 기대하지 않는다.


제발 아주 잠깐이나마 나에게 도움이 될 ...


약간 색이 변한 물에 우유를 들이부었다.


밀크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걸 밀크티라고 준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몰매를 맞고 밖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검술의 밀크티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름 : 검술의 밀크티

나이 : 10초

특성 : 물

완성도 : 미완성

효과 :

5분간 근력이 5만큼 상승합니다.

6분간 민첩이 3만큼 상승합니다.

5분간 행운이 2만큼 상승합니다.

5분간 마법의 효과를 일부 받습니다. ]


[ 깨우친 바리스타가 만든 검술의 밀크티입니다. 레시피 재료 중 일부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효과가 일부만 적용됩니다. ]


다른 음료를 만들었을 때와 같은 안내창이 뜨더니 뒤이어 하나가 더 나타났다.


[ 주의 - 남들에게 선보이기 창피한 수준의 음료입니다. 되도록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알고 있거든.”


이딴 걸 주의 안내창이라고 보여주다니. 나랑 장난치나!


나는 잎이 날아다니는 병을 들어 그대로 다 마셨다. 정말 역겨운 맛이다. 밍밍한 우유맛에 희미한 차향이 섞여 있었다.


정말 다시는 이런 걸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희망을 가져본다.


‘마법의 효과를 받습니다.’


이 문구에 모든 걸 걸었다.


다 마신 병을 바닥에 던지고 칼을 쥐었다.


만약에... 만약에 쓸모가 없는 효과면 어쩌지...


나는 잡다한 불안을 날려버리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효과가 있으면 좋은 거고. 없어도 내가 그들을 죽일 거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칼을 들고 한참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난장판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레시피를 작성하는 동안 꼬맹이가 눈치껏 주변을 봐준 탓에 전세가 완전히 뒤집혀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진 쉬에의 목을 죽일 듯이 밟고 있던 첸의 얼굴에도 상처가 조금씩 나있었다.


사실 꽤나 오래 버텼다. 나는 우선적으로 꼬맹이 주변의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상대를 바라보고 있자 노란색의 선이 하나 나타났다.


남자의 무릎부터 시작하는 노란색의 선은 골반에서 한 번 꺾이고 겨드랑이 쪽에서 한 번 꺾여 Z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법의 효과라는 것이 아마도 이것이리라.


나는 선을 따라 칼을 움직였다. 접근한 나를 발견한 남자가 뒷걸음질을 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선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는 그런 남자의 모든 움직임을 계산했다는 듯이 정확하게 흉부 위쪽을 가로 질렀다.


공격이 끝나자 선이 사라졌다. 다른 상대들을 바라보니 또 다른 노란색 선이 보였다.


꼬맹이를 봐도 보였다. 꼬맹이의 무릎이 찢어져 있었다. 아주 날카로운 것으로 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곳에서 저런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칼을 들고 있는 나뿐이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지...


“아저씨 이제는... 괜찮은 거죠? 제 정신인거죠?”


꼬맹이가 불안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응. 이제 정말 괜찮아.”


물론 5분 뿐이다.


꼬맹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꼬맹이 뒤로 오는 남자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베었다.


남자의 비명소리가 처참하게 들려왔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적이라면 굳이 살릴 필요가 없다.


“꼬맹이. 저기 너희 대표님하고 사부 있거든. 보조 좀 부탁한다.”

“엥. 아저씨는 어쩌려고요?”

“나는 소원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소원 언니요...? 그러고 보니.. 소원 언니... 어디 갔어요?”


꼬맹이의 시선이 탑 안을 훑었다. 그래. 네가 소원을 거기 데려다 뒀구나.


하지만 탓할 수 없었다. 탑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지 않은 것은 나였으니까. 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저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두 내 잘못이다.


“그건 이따 얘기해 줄게. 지금 너희 대표님 매우 위험한 상태니까. 어서 가봐.”

“아... 알겠어요. 혹시 위험하면 절 부르세요.”


로운의 상태를 확인한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첸을 향해 뛰었다. 물론 가는 길이 편하지는 않았다. 꽤 많은 시체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지만 어디선가 계속해서 나타나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무기는 다 어디 갔다 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들의 몸을 중심으로 새겨진 노란색 선을 따라 칼을 휘둘렀다.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쳐주듯이 노란색의 선은 내가 베어야 할 곳을 차근차근 친절하게 이끌 듯 알려주고 있었다.


단순히 검술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아니다. 요령을 익힌다면 약물의 효과가 떨어져도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다.


공격해 오는 남자들을 베며 첸의 곁으로 다가갔다. 첸의 머리 위로 쇠파이프를 높게 들고 있는 남자의 등이 보였다.


등에는 가로로 길게 노란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촤악-


아주 시원스럽게 베인 상처에 남자는 힘없이 쓰러졌다.


“어... 고마워요.”


첸은 뜻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저도 갚아야 할 것들이 생겼거든요.”

“다행이네요.”


이 사람은 로운을 극도로 아낀다. 그가 조금 더 힘을 내줘야 기울어가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당신도 갚아야 할 게 많을 걸요.”


로운이 쓰러져있는 곳을 바라보자 그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섭게 변해가는 표정이 소름끼칠 정도다. 그런 얘기가 있지 않은가. 실눈캐가 눈을 뜨면 정말 무서워진다고.


지금 첸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눈으로 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기가 담긴 눈빛이었다. 바라보고 있는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닌 바라보고 있는 대상을 저렇게 만든 사람을 향한 살기.


잠깐 멈춰 있는 순간을 노린 검은 양복의 남자가 첸의 뒤로 다가왔다. 하지만 곧 그의 주먹을 맞고 날아갔다.


정확히는 목 위로만... 남은 몸통은 제자리에서 힘을 잃고 쓰러졌다.


“빨리 끝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더 늦으면 큰일 납니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검게 물든 피부가 로운의 잘생긴 얼굴까지 번져있었다.


그저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줬을 뿐이다. 효과는 대단했다.


그는 이미 내 앞에 없었으니까.


첸의 움직임은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손길 한 번도, 발길 한 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모든 동작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남자들을 쳐냈다.


그러나 결과물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꼬맹이가 이걸 봐서는 안 되겠는데...”


고개를 돌려 꼬맹이의 상태를 보니 손은 로운을 챙기면서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트리지 않았다. 입까지 쩍 벌리고 구경하는 폼이 손에 팝콘이라도 쥐어줘야 할 판이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이제 남은 거구의 수는 고작해야 20 여명. 그마저도 첸의 움직임에 빠르게 줄어갔다. 계속 어딘가에서 기어 나오던 것도 멈춰서 확연히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가도, 주변을 둘러봐도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진 쉬에... 어디 있어!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결국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허수아비일 뿐이니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자를 잡아야 했다.


“황혼의 보스가 보이지 않아요.”


근처로 다가가 말을 걸자 그가 삐딱하게 고개를 옆으로 숙이며 나를 바라봤다. 살벌하다.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 숲으로 향했다.


“여긴 나한테 맡겨요.”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목덜미를 타고 귓가에 올라탔다. 평소의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음성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네네...!”


그런 그에게 뭐라 말도 못하고 그저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곳 지리도 모르는 내가 이 어두운 곳에서 그자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숲쪽으로 조금 들어오자 다른 세상이라도 된 듯 차분한 어둠과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어디로 간 거지? 모든 방향이 똑같아 보이는 곳에서 나는 뛰고 또 뛰었다. 어둠은 어둠으로 이어졌고, 한 번 발을 디딘 모든 것들을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어둠은 점점 짙어져갔다.


“진 쉬에!!”


나무 사이로 나의 목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소리마저 잡아먹혔다. 여기서 굳이 시력에 의존해야 할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과한 호흡으로 불규칙했던 호흡이 잔잔해지면서 살랑 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나뭇잎 사그락 거리는 소리,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는 소리,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조급하게 뛰고 있는 누군가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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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각자의 목표(8) 22.01.01 84 0 11쪽
61 각자의 목표(7) 21.12.31 90 0 11쪽
60 각자의 목표(6) 21.12.30 90 0 12쪽
59 각자의 목표(5) 21.12.29 91 0 12쪽
58 각자의 목표(4) 21.12.28 92 0 13쪽
57 각자의 목표(3) 21.12.27 89 0 13쪽
56 각자의 목표(2) 21.12.26 94 0 14쪽
55 각자의 목표(1) 21.12.25 101 0 11쪽
54 각자의 일상 21.12.24 102 0 13쪽
53 워밍업(2) 21.12.23 110 0 13쪽
52 워밍업(1) 21.12.22 118 0 12쪽
51 Restart 21.12.21 127 0 11쪽
50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8) 21.12.20 122 1 12쪽
49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7) 21.12.19 118 1 13쪽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6) 21.12.18 131 1 12쪽
47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5) 21.12.17 118 1 12쪽
46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4) 21.12.16 118 0 12쪽
45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3) 21.12.15 120 0 13쪽
44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2) 21.12.14 124 0 11쪽
43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1) 21.12.13 124 0 12쪽
42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0) 21.12.12 128 0 13쪽
4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9) 21.12.11 133 1 14쪽
40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8) 21.12.10 131 1 12쪽
39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7) 21.12.09 13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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