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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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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86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1.1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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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4)

DUMMY

선물 받은 이후로 소중하게 잘 보관하며 먼지가 쌓이지 않게 매일 매일 닦았지만 실제로 꺼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손바닥에 감기는 감각이 묵직하지만 무겁지는 않다.


“이햐. 아저씨 칼 멋있네요.”


옆에서 꼬맹이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이 녀석은 내가 이걸 들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는 걸까.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잘못을 했을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칼을 쥐었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 칼을 보내줬다는 것은.


“아저씨...? 괜찮아요?”

“어? 어...”


나도 모르는 사이 검을 쥐고 있는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 쥐고 있던 손을 덮어도 소용이 없었다. 양손이 동시에 떨리고 있었으니까.


이전에 벌을 죽였을 때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베야하는 것은 이전과 같은 몬스터가 아니다.


지금부터 나는...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나에게 이걸 준 거야?


「...」


당연히 답은 없었다. 하긴 언제 한 번 속 시원하게 답을 준 적이 있던가.


그때였다. 뒤통수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수학 문제를 두 개 틀렸다고 얻어맞았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자 웃는 얼굴의 한 남자가 있었다.


“첸...?”

“이런 상황에서 망설일 거면 꺼져요. 당신은 로운과 탑에 올라갈 자격이 없어.”


웃는 얼굴과 온화한 목소리. 그리고 그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말.


그는 짧게 말하고는 내 뒤를 향해 뛰었다. 다급하게 뒤를 돌았다. 소년이 주고 간 칼에 정신이 뺏겨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몬스터가 아닌 적을 마주하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위협적인 울림을 전하며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 사이를 첸이 뛰어다니며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로운과 석이 퀸비를 상대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황혼이 지나가게 둔 다면 두 사람도 위험해진다.


아직 위급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체되고 방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퀸비의 창이 둘을 꿰뚫고 말 것이다.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창끝에 걸린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손은 떨려 검을 제대로 쥐고 있을 수도 없었지만 항상 도움만 받을 순 없었다.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상상 속의 죽어가던 두 사람의 모습이 현실의 모습과 겹쳐지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때 한 거구의 남자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 옆으로 피해 그의 옆구리를 벴다. 기분 나쁜 감각이 손끝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이후에도 몇 번인가 몸이 움직여 거구의 공격을 피했다. 따뜻한 온기가 전심을 휘감은 느낌이었다. 내 몸이 적의 사이를 파고들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베었다. 손끝에서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팔로, 팔에서 심장으로... 기분 나쁜 감각이 번져갔다.


칼날을 따라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몸을 움직였다.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현실이 점점 멀어져 갔다.


꼬맹이와 첸,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나오는 소리 없는 영상이 어떠한 방해도 없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


가장 먼저 이상함을 눈치 챈 것은 소원이었다.


‘지혁이... 분명 검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지혁이 운동신경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종종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대학 체육 대회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알바를 하면서 보여준 그의 몸놀림은 제법 날렵했다.


이후 탑과 마법진에서의 경험을 통해 발전 시켰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 검을 다루는 일은 별개가 아닐까.


불과 아까까지만 해도 검을 야구배트처럼 휘두르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어떤가. 한 손으로 검을 쥐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다니며 꽤나 익숙하게 검을 휘둘렀다.


‘마치 딴 사람 같아...’


그가 긴 잠에서 깨어나고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가족의 지원 없이 20대 초반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악착같이 살던 버릇이 그대로 남아 무모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성격이 된 것은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몸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 1년이 넘게 침상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신체 능력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밖을 돌아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에서도 일주일을 버텨냈다.


그 외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은 많았다. 미혜를 통해 들은 얘기를 이번에 로운의 말을 통해서 확신했다. 그의 청력이 말도 안 되게 예민해졌다.


늘 촉각을 세우고 알바를 부르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게 몸에 벤 남자이기는 했지만 곤충의 날갯짓 소리까지 들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날갯짓 소리를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듣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몬스터 소리만 들은 것도 아니다. 그때 탑을 향해 뛰어오던 두 사람의 발소리도 듣지 않았던가.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신체적 능력이야 능력을 받고, 마나를 쓸 수 있게 되면서 좋아졌을 수 있다.


모든 의문이 의문으로만 남았을 때. 그가 칼을 들었다. 처음에는 떨리던 손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멈췄다.


처음 사람을 베고 난 뒤 그의 얼굴엔 불안감과 당혹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휘몰아치듯 이어지는 공격에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몸을 피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로 남자들 사이를 휩쓸고 다녔다.


점점 사라져가는 그의 표정 대신 그의 칼에 검붉은 빛이 드리웠다.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인형’


머릿속에서 한 단어가 떠오르자 소원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공격을 피하고 칼을 휘두르는 행동만을 반복하는 인형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언니!”


미혜의 목소리와 함께 등을 타고 고통스러운 압력이 느껴졌다. 소원의 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검은 양복의 남자와 함께 탑을 향해 날아갔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탑에 부딪친 두 사람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언놈이야!”


미혜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를 쳤지만 서로 엉켜 싸우기 바쁜 와중에 누가 쳐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저 낯선 중국인 남자였다. 상대를 날려 보낼만한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자신과 저 사람밖에 없었는데 자신은 아니었다.


‘나중에 추궁을 해내겠어.’


이를 바득 갈면서 날쌔게 뛰어다니고 있는 첸을 한 번 노려본 미혜가 소원을 향해 뛰어갔다.


“저리 가봐!”


자신보다 두 배는 클 법한 남자를 질질 끌어 치우고는 소원의 상태를 살폈다.


머리를 비롯한 몸 곳곳에서 피가 나며 의식을 잃은 듯 눈을 감고 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아아... 어떡해... 어떡하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소원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물부터 났다. 이런 건 배운 적이 없었다.


“지...지혈이라도...”


입고 있던 상의 허리 부분과 소매를 뜯어 상처부위를 감쌌다.


“이걸로는 부족해...”


주변을 둘러봐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참으려고 해도 솟아나는 눈물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좀 껄끄럽지만...”


옆에 누워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설프기는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아보이는 상태로 지혈을 마친 미혜가 소원을 안아 들었다.


“미안 언니... 내가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어서.”


주변을 둘러봐도 당장 안전한 장소가 없었다. 앞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난장판이었다.


‘싸우면서도 언니의 상태를 살필 수 있으면서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만한 곳...’


미혜의 눈에 탑의 문이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닫혀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활짝 열려있었다.


‘저기라면 괜찮을 거야.’


조심스럽게 바닥에 소원을 내려두고 남자에게서 뺏은 재킷을 덮어주었다. 탑 안이 생각보다 서늘해서 잘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미혜는 알지 못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싸우기 시작했기에 탑이 마법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탑이 살아있듯이 움직인다는 것도.


탑이 초면이었고, 탑에 대해 알고 있는 누구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금방 올게요. 언니.”


그저 눈물을 글썽이며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소원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었다.


조금만 더하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쪽은 끝날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 같진 않아 보였던 중국인 남자가 잽싼 몸놀림으로 상대를 때려눕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검을 들고 화려한 전적을 보이고 있는 지혁도 한몫했다.


‘아저씨 제법인걸.’


코를 쓰윽 문지르며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깐. 미혜의 눈에 초점 없는 지혁의 눈이 보였다.


평소 감정이 표정이 드러나고, 정이 넘치던 지혁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베고 있다? 거기까지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표정이 미혜의 시선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저씨!”


그를 향해 뛰어가며 그를 불렀지만 반응은 없었다. 그저 반복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다리가 베여도 일어나고, 팔이 베여도 다른 손으로 무기를 들고 뛰어오는 남자들을 피하며 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미혜가 지혁의 어깨를 잡아 돌리려는 찰나 그의 칼이 미혜를 스쳐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기는 했지만 옷자락이 베였다.


그렇게 휘둘렀는데도 소름끼치는 날카로움이었다.


“아저씨! 제정신이야?!”


놀라 소리쳤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 어떡하지... 기절 시킬까.’


지금의 그는 이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없다면 전세는 빠르게 기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피하고 있었지만 수를 감당할 수는 없었는지 얼굴이나 팔에 상처가 나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가 더 있을 수 있는 상황에 그는 미동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한 상황이 와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혁이. 자신을 살려주고 그렇게 아껴주던 지혁이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가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군과 적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역시 내가 좀 더 고생을 하더라도 기절을 시켜야겠어.’


적들에게 맞아도 쓰러지지 않던 그를 힘으로 기절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죽지만 않게...’


이번에는 천천히 지혁에게 다가가 주먹을 힘주어 쥐었다.


“아저씨 미안해!!”


그리고 내리치려는 순간 지혁이 칼을 내리고는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스킬을 시전 중이던 미혜의 주먹이 허공을 헤매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아저씨!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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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각자의 목표(6) 21.12.30 90 0 12쪽
59 각자의 목표(5) 21.12.29 91 0 12쪽
58 각자의 목표(4) 21.12.28 9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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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각자의 목표(2) 21.12.26 95 0 14쪽
55 각자의 목표(1) 21.12.25 102 0 11쪽
54 각자의 일상 21.12.24 103 0 13쪽
53 워밍업(2) 21.12.23 1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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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4) 21.12.16 1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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