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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39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1.1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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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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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6)

DUMMY

‘바닥이 진동하고 있어. 이건 사람의 것이 아냐.’


첸은 수많은 작은 울림 사이에서 유난히 묵직한 울림을 느꼈다. 중간 중간에 사람만한 크기의 개미가 나타난 것은 확인했다.


인파로 인해서 자신의 주변까지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울림의 주인이라면 여기 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기 전에 자신의 사람들이라도 도망시켜야 했다. 난리통에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조용히 의사를 전달해야 했다.


등을 맡기고 있는 동료의 옆구리를 찔러 인애단 내부에서 사용하는 수화로 의사를 전달했다.


‘거대한 울림이 느껴짐. 후퇴바람.’


첸의 손짓을 본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다른 동료를 찾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사람들이 난리통에서 사라졌지만 눈치채는 이는 없었다.


‘문제는...’


첸의 시선이 Z지대의 입구를 향했다. 길을 찾지 못한 것인지 빠져나올 구멍을 찾지 못한 것인지 두 남녀가 곤란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사실 첸에게 두 사람은 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 두고 가도 알 바가 아니었고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로운이 함께 탑에 오를 일행이라고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로운에게 탑은 매우 특별했고, 함께 오르는 사람들은 소중했다.


‘여기서 두고 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슬퍼하겠지.’


첸의 머릿속에서 계산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로운 뿐이었다. 지혁이라는 사람과도 안면이 있었지만 역시나 알 바가 아니다.


‘역시 로운에게 미움 받기는 싫으니까~’


생각을 마친 첸이 흐르는 물 같은 움직임으로 인파를 헤치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다른 단원과 달리 얼굴이 알려진 첸을 영월이 가만 둘리가 없었다.


“도망칠 생각이냐!”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들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밀치며 그를 따라왔다.


첸은 자신의 뒤에 있던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등을 걷어찼다. 그러자 도미노가 넘어지듯 낯선 남자와 함께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울림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감이 뛰어난 몇 명은 이미 도망을 간 뒤였다. 무감각하고 둔한 사람들만이 싸우기 위해 남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가요! 호텔로.”


두 사람의 앞에 도착한 첸이 말했다. 나래와 제천이 곤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싶은데...”


남자 쪽에서 우물쭈물 말했다.


“길을 몰라요.”


아...


첸은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뒤로는 영월이 이번에야 말로 자신을 죽이겠다고 따라오고 있었고, 도망을 쳐야 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지리를 잘 모른다.


호텔의 위치는 로아에게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그들에게 설명해줄 자신이 없다.


“아. 두 사람 능력이 뭡니까.”


일단은 둘 다 능력자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염동 능력자고... 이쪽은 불 능력자에요.”


염동이랑 불...


“날아서 갈 수 있습니까?”

“네?”


여자 쪽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염동 능력에 특화된 능력자들은 종종 자기 자신을 띄우기도 했다.


“할 수 있기는 한데... 두 명은 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괜찮아!”

“지금 할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고 있습니다.”

“뭐가 와?”


이번에는 남자 쪽에서 되물었다. 첸의 속이 답답해졌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이렇게 고민을 해야 하는 건가.


“잊었습니까. 여기. 마법진 안이란 걸.”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남자가 당당하게 대답했지만 옆에 서 있던 여자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한 첸이 나래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능력을 쓰기 힘들다면. 지붕을 밟고 가십시오. 로운의 호텔. 매우 높아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알겠어요.”


첸은 평소의 부드러운 미소로 답해주고는 두 사람을 들어 무너져가는 잡화점의 지붕 위에 데려다 주었다.


“뛰십쇼. 뒤도 보지 말고.”


이미 진동이 주변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 사람들이 마법진에서 얼마만큼의 활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직접 몬스터를 마주해서 사기가 꺾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네.”

“너. 왜 명령질이 ...!”

“조용히 해요.”


나래가 첸에게 화를 내는 제천의 귀를 잡아당기며 지붕 끝으로 이동했다. 곧 이어 제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우어어억! 누나! 나 어지러워! 멀미!”


두 사람이 몇 백 미터 정도 멀어진 것을 확인한 첸은 건물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신을 따라 올라오는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들이 보였다.


지긋지긋한 것들.

첸은 영월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황혼이나 불사는 인애단을 건들지 않았다. 자신의 보스는 잠자는 미친개였다. 평소에는 늘 잠을 자는 것처럼 온순하지만 한 번 깨어나면 자신들조차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영월은 미친개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녀석들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 균형을 무너뜨렸다.


‘보스 달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나.’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첸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약 5m는 될 것 같은 크기의 여왕개미가 Z지대에서 얼마 멀지 않은 번화가의 백화점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싸우는 인간들을 발견한 여왕개미가 더듬이를 높게 치켜들었다.


뒤늦게 눈치 챈 몇 명은 다른 이들을 제물 삼아 도망쳤다. 그 와중에도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만이 남았다.


여왕개미의 더듬이에서 황금색 빛이 나오더니 Z지대 주변을 둘렀다. 그리고 곧이어 작게는 2m, 크게는 4m 크기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제야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렸던 이들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늦었어.’


첸의 시선이 빠르게 아래를 훑었다. 다른 단원들에게 할아버지를 부탁했었는데 무사히 잘 데리고 나간 듯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꼼꼼하게 사람들을 확인했다. 이제 그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첸은 뒤에서 들리는 처절한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입구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자신이 아는 로운이라면 별일이 없는 한 호텔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첸은 호텔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Z지대와 상반되는 화려하고 높은 건물이 보였다.


+++


Z지대를 벗어나자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는 건물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가 나타났다.


다만 번화가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종종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시선에 돌아보면 마치 위험한 거라도 본 듯이 곧장 숨어 버렸다.


“다들 이 근처에 숨어 있는 건가요?”

“네. 아마 모든 사람을 모두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건물에 숨어서 조용히 지내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저렇게 숨어서 우리를 봐요.”

“글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도와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네?”

“마법진이 언제 해제될지 모르니까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생활하려면 사람은 적을수록 좋잖아요.”


맞는 말이지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입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상황 자체에.


우리는 말없이 아무도 없는 휑한 거리를 걸었다.


“호텔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올 때도 차를 타고서 조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5~6시간이면 되지 않을까요?”


마치 집 앞 산책을 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5시간 안에 안전이 확보된 곳에 도착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운이겠지.


“잠시만요.”


길을 안내하며 걷던 로운이 갑자기 발을 멈추고 나와 소원을 끌고 골목길에 몸을 숨겼다.


“왜 그래요?”


소원이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황혼입니다.”

“황혼이면 아까 얘기해주신... ”


밖을 확인하는 로운의 옆얼굴에 당혹감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소원은 길게 묻지 않았다.


“그런데 왜 숨나요?”


기분 탓이었나 보다.


“깡패들한테 들켜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로운이 싱긋 웃어보였다. 단순히 깡패들한테 들키는 것이 곤란한 게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나도 고개를 내밀고 밖을 확인했다. 역시나. 낯익은 남자가 양쪽에 거구를 데리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여전히 왼쪽 눈에서 푸른색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 황혼의 보스였다.


아마도 그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몸을 숨긴 거겠지.


“뭔가 찾고 있는 모양이네요.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른 쪽으로 갑시다.”


로운이 우리의 등을 밀며 골목길로 이끌었다.


+++


“이쪽으로 가는 거 맞아요?”

“아니요. 조금 많이 돌게 될 거지만... 그래도 황혼을 만나는 것보다는 나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이 처음 향하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대가 정반대인 것 같은데... 방향은 알고 가는 거죠?”

“...”


왜. 왜 대답이 없지? 왜 대답을 하지 못하냔 말이야.


점점 좁아지는 골목길에 나란히 걷던 우리는 한 줄로 걷기 시작했다. 로운을 선두로 소원 그리고 내가 일렬로 걸었다.


다행이라면 골목길에 통행을 방해하는 물건들이 거의 없는 탓에 이동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때 벼락이 내리치듯 골목길 안쪽에 노란색 빛이 내리쳤다.


“잠시만요.”


경험상 저 노란색 빛이 나타나서 평범하게 일이 진행된 적이 없었다.


“왜 그래?”


벼락을 본 것은 나뿐인지 내 말에 두 사람은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러나 곧 두 사람의 시선도 가로챌 정도로 강렬한 빛이 골목길에서 우리를 가로 막았다.


밝은 빛이 사라지자 어떤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뭐지...?”


고치처럼 생긴 타원형의 무언가가 허공에 떠있었다. 빛이 모두 사라지고 완전한 형체가 보였을 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벌집이 왜...”


머릿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색경보가 격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나는 이걸 본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노란색 빛과 함께 나타난 정체불명의 벌집. 그렇다면 저기서 나올 것은...


벌집의 앞에 벌집보다 큰 포탈이 생기더니 거기서 그것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주황색 몸통, 먹잇감을 찾는 것 같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더듬이. 그리고 무엇보다 몸통의 끝에 나있는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침.


벌이었다. 그것도 성인 남자의 상체만한 크기의 벌이 빠른 날갯짓을 하며 포탈을 통해 나타났다.


까아앙!


위험함을 생각하기도 전에 로운이 만든 얼음벽이 우리 앞을 가로 막았다.


“뒤로 도망쳐요!”


반투명한 얼음 뒤로 하나 둘 늘어가는 주황색의 실루엣들이 보였다. 도망쳐야 했는데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얼음벽에 작은 구멍이 나더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혁 씨! 지혁 씨가 뛰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로운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렇다. 여기는 아주 좁은 골목길. 나는 보이는 길을 따라 무작정 뛰었다. 뒤에서 다급하게 쫓아오는 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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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각자의 목표(7) 21.12.31 90 0 11쪽
60 각자의 목표(6) 21.12.30 90 0 12쪽
59 각자의 목표(5) 21.12.29 91 0 12쪽
58 각자의 목표(4) 21.12.28 92 0 13쪽
57 각자의 목표(3) 21.12.27 89 0 13쪽
56 각자의 목표(2) 21.12.26 94 0 14쪽
55 각자의 목표(1) 21.12.25 101 0 11쪽
54 각자의 일상 21.12.24 102 0 13쪽
53 워밍업(2) 21.12.23 110 0 13쪽
52 워밍업(1) 21.12.22 118 0 12쪽
51 Restart 21.12.21 1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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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0) 21.12.12 1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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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8) 21.12.10 131 1 12쪽
39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7) 21.12.09 135 1 13쪽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6) 21.12.08 14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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