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번 피험자 김현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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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2년 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 쪽지 뭐야!!! 진짜 소름 돋게...”
당황하는 강현재와는 다르게 미소를 머금은 세연.
“뭐야. 이세연씨 짓이야?”
“기본이지.”
“하여튼 사람 놀래키기는. 이런 건 또 언제 쓴 거야?”
“강현재씨랑 아저씨가 애기한테 정신 팔려 있을 때.”
“정말 못 말리는군요. 세연아가씨.”
“내가 말했잖아요. 이번에는 확실히 할 거라고.”
“이런 일을 벌일 거면 미리 언질을 주던가!”
“우리 현재 무서웠쪄요~?”
“닥쳐.”
“귀엽긴.”
“근데 저렇게까지 해도 되는 거야? 기껏 살려 놨는데 심정지로 죽으면 어떡해.”
“죽일 생각으로 한 건데.”
“뭐? 이세연씨 그건 아니지!!!”
“농담이야. 저 정도로 심정지가 오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 또한 저 자의 운명이거늘.”
쪽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김현수.
그가 2년 전에 했던 행동이라면 뺑소니사고다.
뺑소니 사고로 인해 즉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쩌면 그 여학생도 빨리 병원에 옮겨졌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철저하게 짓밟혔다는 것.
한 사람의 이기적인 사고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계속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현수도 분명 그걸 알고 있다.
쭈욱-
쪽지를 찢는다. 그리고 그 쪽지는 김현수 외 아무 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마치 그 소녀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던 것처럼. 종이도 마찬가지로.
“서우야 잠깐 할머니랑 있어. 아빠 어디 좀 다녀올게.”
“얘는 방금 들어왔으면서 어디 가니? 서우가 아빠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어머니 잠깐만 더 같이 있어 주세요. 금방 올게요.”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급히 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아까 그 사거리.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넓은 사거리에서 김현수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은 분명 아까 봤던.
“...저 아주머니였나 봐요. 아까 피켓 들고 계시던.”
“저 아주머니 2년 전부터 저 자리에 계셨어. 하루도 빠짐없이.”
수척해진 아주머니의 모습이 안쓰럽다. 부모를 잃은 고통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딸을 잃은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김현수는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씨발...”
그가 조용히 읊조린다.
“시발... 시발...!!!!!!”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쳐다볼 정도로 큰소리로 외친다.
“왜... 왜 나야... 도대체 왜 거기 있었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벌을 받아야 되냐고...!!!!!!!!으흐흑...”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
“오늘은 이만 철수하자. 기분 더러워졌어.”
해국과 현재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일은 해결해야 하니 각자 쉬다가 현실 기준 3일 후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3일이 지났다.
물론 영혼 세계에서는 반나절이다.
“시작해 볼까요.”
“진짜 의지 안 생긴다. 이번 건은.”
“동감이야.”
“자. 다들 손을 잡으시죠. 그럼 하나둘 셋!”
팟-
들어왔다. 김현수의 꿈속으로.
“오늘은 배경이 도로네요.”
“잠깐. 여기 뭔가 익숙한데요. 앗, 아까 그 사거리에서 조금만 꺾으면 나오는 골목 아닌가요?”
“이상하네요. 제가 만든 배경이 아닌데.”
아주머니께서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달라며 매일 같이 서 계셨던 그 자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 아마 사고 역시 그즈음에서 일어난 듯하다.
“그럼 이건 김현수가 스스로 꾸고 있는 꿈이군요.”
“그 일 있고 제 잘못이 계속 생각나긴 했나 보네. 꿈에서까지 나오는 거 보면.”
저 멀리 김현수가 보인다. 다만 현실의 김현수와는 다르게 그 어느 곳에서도 불안해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
“아저씨. 꿈속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아가씨”
“그럼...”
세연은 해국에게 작은 소리로 속닥인다.
“나 빼고 둘이 또 뭐 하는 거야!!!”
“기다려봐. 멘탈 약한 강현재씨한테 말하면 또 하지 말라고 할까 봐 그래.”
잠시 후 자동차 한 대가 김현수 앞에 나타난다. 김현수와 매일을 함께 하는 자동차인지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운전석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자동차는 왜 만들어 낸 거야?”
“봐봐. 지금부터 김현수는 아주 끔찍한 일을 겪을 거야.”
김현수가 달린다.
2년 전 그때처럼 졸음운전을 하지는 않지만, 꿈에서는 원래 누구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법. 무언가에 홀린 듯 같은 길을 4바퀴째 맴돌고 있다.
“아저씨 지금이에요.”
“예.”
마지막 4번째 바퀴를 달리고 있던 김현수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2년 전 그 어린 학생이 차에 치였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잠깐. 저, 저기 설마...!!!”
2년 전과 같은 상황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여학생이 아닌, 여학생의 딱 반만큼의 키를 가진 꼬마아이.
김현수의 아들 서우다.
퍼억-
“윽...”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아이가 2미터가량 부웅 떴다 ‘털석’하고 떨어진다.
김현수의 차가 멈춘다.
스윽.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내 눈을 감싼다.
작고 부드럽고 촉촉하다.
“멘탈 약해 빠진 강현재씨는 이런 거 보지 마.”
“이세연씨 나 이 정도로 멘탈 약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이런 끔찍하 상황에 결코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리고 남자로서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잠시 후 놀란 김현수가 밖으로 나온다.
“분명, 뭐가 부딪힌 것 같은데...”
그리고 그가 그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차 앞으로 가는 순간.
“...”
처참하게 피투성이가 된 채 힘없이 쓰러져 있는 자신의 아이를 발견한다.
“서, 서우야...? 서우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그 앞에서 서늘하게 식어간다.
“서우야... 왜 그래... 아빠야. 이거 뭐 잘못된 거지...? 우리 서우 아니지...? 그래 지금 아빠가 잠깐 제정신이 아닌 거야. 그래.”
아무리 자신의 아이를 불러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눈을 꼭 감았다 뜨는 김현수. 하지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눈을 감기 전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에게 여전히 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모르겠지만.
“서우야!!!!! 아빠가 잘못했어. 아빠가 너무너무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우리 서우 일어나자. 응...? 거기 누구 없어요?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다섯 살밖에 안된 아이예요!!!!! 제발... 제발 우리 아이 좀 누가 살려주세요... 으흐흐흐흑...”
“그래도 자신의 아이는 끔찍이 아끼네요.”
“범죄자라도 저 사람도 부모는 부모니까요.”
“그럼 이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러. 강현재씨?”
“어? 어 왜...”
조금 전 세연의 손길이 생각나 괜히 말끝이 흐려진다.
“나는 지금 저 끔찍한 광경 앞에 갈 거야. 강현재씨 무서우면 그냥 여기 있어도 돼.”
“아니야 이세연씨. 나도 같이 가.”
오열하는 김현수 앞에 왔다.
분명 죄를 지은 뺑소니 범이지만 이렇게 통곡하는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좋지는 않다.
“김현수씨.”
김현수가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바라본다.
“당신들은...”
“아들을 잃어보니 심정이 어떤가요?”
“... 제 아이... 제 아이 좀 살려주세요. 제발...”
“아니요. 살려낼 수 없어요. 당신의 아이는 이미 죽었거든요. 저어기로 갔어요.”
두번째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세연.
방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미소를 보았다.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죽지 않았어요. 우리 서우... 우리 서우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요!!!”
“그러게요. 하나밖에 없은 소중한 자식을 잃게 되면 그 사람은 남은 생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당신의 그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한 여학생이 서우처럼 죽었고 그 아이의 엄마는 매일 매일 딸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요. 자신의 인생도 모두 버린 채로. 그 아이가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 그 엄마의 2년간의 끔찍했던 시간, 그리고 앞으로도 쭉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할 시간. 이 모든 시간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잘못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 그때는 거기까지는 미쳐 생각을 못 했어요. 우리 서우만 생각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김현수씨가 그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자수하고 평생 뉘우치며 살겠습니다. 제, 제가 지금까지 모은 돈 전부를 그 부모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시키는 건 뭐든 다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우리 서우만 살려주세요... 제발...”
“김현수씨는 여전히 자신이 최우선이네요. 하지만 틀렸어요. 당신은 지금 말씀하신 그 어떤 행동으로도 당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상쇄시킬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가는 세연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 여학생은 이미 죽고 없기 때문이죠.”
“...”
“김현수씨가 아무리 뉘우치고 반성해도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요. 시간이란 것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뒤로 갈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으니까.”
“내가... 그 아이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김현수는 고개를 숙인다.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들이 뺨을 타고 내려와 바지의 꽤 넓은 면적을 적신다.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
그런데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김현수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분명 어딘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뭘까. 도대체 뭘까.
“있잖아 이세연씨. 나 방금 소름 돋는 사실이 떠올랐어.”
“뭔데?”
“아까 김현수씨 집에 갔을 때 뭔가 이상하게 찜찜했거든.”
“난 잘 모르겠던데... 그냥 평범한 신혼집 아니었어?”
“이세연씨 혹시 옷장에 옷 몇 벌있어?”
“갑자기 옷은 왜? 딱히 안 세어 봤는데 300벌은 되지 않을까?”
“그럼 이세연씨 말고 평범한 2~30대 여자는?”
“못해도 한 철에 2~30벌은 되지 않을까?”
“근데 딱 한 벌 있었어.”
“뭐가?”
“그 집 옷장에 여자 옷이. 딱 한 벌이었다고.”
“뭐...???”
김현수가 병원에 실려 가기 전 인기척을 느껴 그의 침실로 들어갔을 때 아이가 있던 한 칸을 제외하고는 모든 옷장 문을 모두 열어봤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 집에 방문했을 때 아이가 나오면서 열려진 옷장문을 통해 마지막 옷장까지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신혼집인데 여자 옷이라고는 분홍색 원피스 딱 한 벌이었다.
김현수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던 사진 속의 여자는 누구일까?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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