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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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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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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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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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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2번 피험자 남태길(4)

DUMMY

“왜 하필 여의도였는지... 알 것 같아요.”



금융권을 비롯해 다양한 산업군이 모여 있는 여의도.

7시가 조금 지난 시각, 이곳 여의도는 이 세상 그 어디보다 바쁘게 돌아간다.



“나 빼고 다들 열심히 사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들.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치열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아침부터 누구보다 바쁘게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곳 여의도에 모여 있다.


태길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용히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 회사는 9시 출근인데 여기는 7시만 넘어도 사람들이 넘쳐나네.”


“원래 금융권이 출근이 빠르잖아. 방송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저나 남태길씨 세 시간째 저러고 있는데 우리가 계속 기다려야 돼?”


“어쩔 수 없지. 우리 일이니까.”



현실에 존재했던 한 달 전.

나에게 출근길은 지옥이었다.

출근하면 쏟아지는 업무량과 팀장님의 잔소리, 유관부서와의 사소한 기 싸움. 모든 것이 그저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

그들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다.


나의 불안정했던 삶도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빛이 났을까?



[띠링. 미션 완료 보상. 이용권 1개가 지급됩니다.]



태길의 시계에서 알람이 울린다. 확인 버튼을 누르는 태길.



[다음 미션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뭐야. 왜 미션이 또 있는 거지?”


“그러게. 우리가 상의했던 건 여의도에 방문하는 것까지였는데.”


“저의 소행입니다.”


“아저씨가요?”


“아저씨도 참 상의도 없이... 무슨 미션인데요?”



[다음 미션은 두구두구두구. 둠치칫 둠치칫.]



“격 떨어지게 삼일전자 제품에 저런 의태어 좀 넣지 마세요.”


“예. 죄송합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가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보상은 이용권 1개. 그럼 굳 럭!]



“갑자기 웬 서울대?”


“그러게. 여의도에서부터 똥개훈련 시키는 거 아니에요?”


“서울대는... 우리나라 상위 1% 학생들이 모인 곳이죠. 20대가 모인 장소 중 가장 큰 집단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그곳에 가면 남태길씨도 더 큰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취지는 좋네요.”


“하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서관은 내 체질이 아니야.”


“방금 여의도에 있던 남태길씨의 모습을 보니 혼자 보내도 될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럼 우리 오랜만에... 놀아요!!!”


“뭐?”


“놀자는 말씀입니까? 셋이서?”


“사실 몸이 이렇게 되고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잖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만 서도...”


“근데 뭘 하고 놀자는 겁니까. 현재군?”


“그건 일단 따라오세요!!!”




***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봄에는 예쁜 꽃들로 가득 차고 여름밤에는 맥주 한 캔 기울이며 여유를 즐기는 곳. 특히나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너무 덥지 않은 지금은 모든 연인의 필수 데이트 코스이자, 최근에는...

헌팅의 메카가 되어버린 이곳.



“오 한강이라니... 강현재군 설마 지금 생을 마감하려고 하는 겁니까?”


“그러게. 자살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어차피 이 몸으로는 못 죽어.”


“아이~ 이 사람들이 진짜 뭘 모르네. 자살은 무슨 자살이야 내 앞길이 얼마나 창창한데!”


“난 아저씨한테 장단 좀 맞춰 준 거야. 커플만 그득그득 하고만. 사람 많은 이곳이 뭐가 좋다고.”


“이세연씨 이런데 안 와봤지?”


“와봤어 나도.


“누구랑?”


“혼자. 가끔 일 끝나고 한강에서 혼자 러닝해.”


“역시 아무래도 이세연씨는 친구가 없었...”


“닥쳐.”


“그나저나 한강이 이렇게 젊고 활기찬 곳이었다니...”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요 아저씨. 이제 놀랍지도 않아.”


“여기서 무얼 하며 놀자는 겁니까?”



어디선가 커다란 돗자리를 들고 오는 강현재.



“한강 피크닉을 즐길 겁니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문제라니요?”


“한강에 치맥은 필수거든요. 근데 알다시피 우리가 치킨을 시킬 수가 없는 몸이잖아요.”


“뭘 그런 걸 가지고. 허허.”



어디론가 전화하는 해국. 5분 후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한 대가 아저씨 앞에 도착한다.



“수고했어요.”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우와. 아저씨 어떻게 하신 거에요!”


“이 세계도 현실과 같아요. 저택 안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을 시켰죠.”


“저택 안에 치킨집도 있었어요?! 그럼 진작 먹었지!!!”


“허허. 기본이죠.”


“이 세계에도 있을 건 다 있다구. 그럼 나도 오랜만에 치팅데이 좀 해볼까?”



순식간에 치킨을 해치우고 하늘을 보고 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 좋군요.”



해국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진심 어린 행복. 그 역시 그동안 몹시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여유가 달콤하면서도 불안하다.



띠리리리리리리리링-



“아 귀청 떨어져!!!”


“갑자기 웬 알람이에요. 아저씨?”


“시간이 되었군요. 남태길씨가 세 번째 미션을 수행할 시간이.”


“세 번째? 아니 미션을 또 넣었어요?”


“아저씨 솔직히 미션 주는 거에 재미 들렸죠.”


“오랜만에 해킹 프로그램을 썼더니 저도 모르게 신이 나서 그만...”


“아무튼 아저씨도 애라니까.”


“그래서 다음 미션은 뭔데요? 또 장소에요? 이번엔 뭐 노량진인가?”


“이번엔 꿈과 열정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 반대라고 해두죠.”




***



서울역.

서울역에 왔다.

분명 출퇴근 시간에는 아침에 봤던 여의도나 대학교 도서관처럼 치열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그닥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네요.”



노숙자들의 집합소.

서울역이다.


노숙자라고 다 같은 노숙자는 아니다.

어떤 이는 역 입구에서 신문지나 박스를 겨우 덮고 잠을 청하고, 어떤 이는 조금 더 안쪽에서 이불을 덮고 지낸다. 또 어떤 이는 좀 더 깊숙한 구석 자리에서 텐트까지 치고 거의 살림을 차린 마냥 나름대로 호화롭게 지내기도 한다.

이곳 노숙세계 역시 계급이 존재한다.

여느 조직이든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계급이 형성되는 것처럼.



“저 아저씨는 다리를 다치신 건가.”



저 아저씨처럼 엎드린 채로 끌차를 굴리며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너무 불쌍해. 내가 원래 몸이었다면 현금이라도 두둑히 쥐여 드렸을 텐데.”


“이세연씨.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마.”


“무슨 소리야?”


“돈 많은 사람은 남을 속이고 돈 없는 사람들은 순진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뭐라는 거야 아저씨한테 실례되게. 강현재씨가 그렇게 마음을 나쁘게 쓰니까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라고.


“남태길씨가 왔네요.”



해국의 시선을 따라가니 태길 역시 이곳에 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여의도역이나 도서관과 사뭇 다른 이곳을 보며 태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태길씨. 오늘 하루를 돌아보세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배우는 사람들, 그리고 삶에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그 어떤 열정도 존재하지 않은 채 꾸역꾸역 버텨가는 이곳의 사람들. 남태길씨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내일의 남태길씨는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해국의 말이 태길에게 들릴 리 없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이미 태길은 해국이 하는 말 이상의 무언가를 가슴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느꼈을 테니.



태길은 박스를 덮은 노숙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아침에 어머니께 받은 3만 원을 드린다.



“어이 구야.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저씨. 이걸로 맛있는 음식 사드세요. 그리고 거기 일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느껴지시는 것이 있다면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하세요.”


“...”



“남태길이 강현재보다는 낫네.”


“그래도 생긴 건 내가 좀 더 난 것 같은데...”



[띠링. 미션을 완료하셨습니다. 이용권 1개가 지급됩니다.]



“남태길씨 개이득. 이용권을 3개나 모았네.”


“개이득은 무슨 원래 없든 미션 우리가 굳이 만든 건데.”


“생각해보니 그렇군.”


“순순히 믿고 따라와 준 남태길씨한테 고마울 따름이죠.”



해국이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도 얼른 집에 들어가서 남태길씨 꿈속으로 가죠. 거기서 마지막으로 수면 시계 사용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버려야겠어.”


“순간이동은 없지?”


“없지.”



택시를 타러 역 밖으로 나온 세 사람. 그때 익숙한 얼굴이 세 사람 앞을 지나간다.



“잠깐. 저 아저씨...!!!”


“응?


“아까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 아저씨 아니야?!”



거동이 불편한 줄 알았던 휠체어를 탄 아저씨다. 두 발로 멀쩡히 맥도날드로 걸어 들어간다.



“와... 세상 무섭네.”


“그러게 내가 저런 사람 함부로 도와주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놀랍군요. 저런 거짓부렁으로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려고 하다니.”


“하긴. 근데 딱히 새롭지도 않아요. 현실에서도 온갖 불행은 자신이 짊어진 척하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관심을 바라는 이들이 넘쳐나니까.”



세연은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뭐 그래도 세상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존심 다 버리고 저런 짓까지 하겠어. 아무래도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불쌍한 중생들에게 기부 좀 팍팍 해야겠다.”


“이세연씨 드디어 개과천선 하는 건가.”


“원래 착했어. 나.”


“잠깐. 저 사람.”


“또 왜. 이번엔 어떤 노숙자야?”


“아니. 남태길씨.”



태길이 역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왜 역에서 나오는 거지?”


“그러게. 한남동 가는 지하철 아직 안 끊겼을 텐데.”



태길에게 다가가는 세연.



[다음 미션입니다. 역 밖으로 나오세요.]



태길의 시계에는 다음 미션을 안내하는 메시지가 떠 있다.



“뭐야. 아저씨 미션이 또 있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세연아가씨?”


“남태길 시계에 미션지가 떠 있어요. 역 밖으로 나오라고."


“제 미션은 서울역에 들어가는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만.”


“그럴 리가 없잖아요.”


“뭐야 그럼 이건 도대체...”


“잠깐. 남태길. 남태길씨 어디 갔어?”


“조금 전까지 분명 저 앞에 있었는데...”



세 사람이 벙쪄있는 사이 태길이 사라졌다. 당장 그를 찾아야 한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태길의 비명소리. 누군가 태길의 입을 막고 골목으로 사라진다.



“남태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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