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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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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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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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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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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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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또 다른 세계(1)

DUMMY

“정태수. 강현재는 니가 죽인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죽였다니...!!!”


“잊었어? 그 친구는 자네가 먼저 소개시켜준거야. 우리 실험체 조건과 딱 맞아떨어진다며.”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을 차로 박아버리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 손으로 이미 계약서에 사인 했지 않나?”


“무슨 싸인. 기억 안 나요.”


“철저한 보안 유지라는 명목이 있다면 피험자의 목숨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아니 그 때는... 아무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명백한 살인이지 않습니까!!!”


“그 친구는 위험했어. 너무 깊숙이 파고들려 한다고.”


“제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너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어.”


“악마들...”


“껄껄껄. 지금 자네가 화난 이유가 무엇이지?”


“지금 장난합니까? 당신들이 멀쩡한 내 친구를 차로 쳤잖아요!!!”


“정말 친구를 다치게 해서. 그 이유 때문인가?”


“그게 아니라면 제가 뭐 때문에...”


“자신의 치부가 혹시라도 세상에 알려질 것이 두려운 건 아니고?”


“...”


“남이 걸린 암보다 내가 걸린 감기가 더 아픈 법. 인간은 원래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정 과장이 단순히 피험자를 소개시켜줘서 그 큰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일하고 돈을 받는 것은 권리입니다.”


“권리치고는 액수와 조건이 상당했지. 그에 따라오는 모든 정신적 고통에 대한 대가 인 거야.”


“...”


“하하하.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모든 일은 우리가 잘 처리할 테니. 이래 봬도 우리는 프로야.다만 우리가 이미 한배를 탔다는 것만 잊지 말라고.”



뚝-



“하...”



전화를 끊은 태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리지는 않는다.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뭐야 시발. 그럼 결국 내가 이렇게 된 게 정태수 때문이라고...?”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소개해준 사람이 정태수라고 했으니까 내가 시계를 얻은 그 날부터? 아니면 더 오래전부터?


어디부터 어디까지 저 새끼가 관여한 결과물일까.



그간 태수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려본다. 분명 처음 수면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 근데 수면 시계에 대해서 들은 적 있는 것 같아.”


“뭐?! 어디서?”


“그게. 우리 회사에 신제품 개발팀이 있거든. 그냥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긴 한데.”


“찌라시에 의하면 현대인들 불면증 치료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물건이고 임상 시험 결과 체내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으로 입증됐대.”



수면 시계가 위험하지 않은 물건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강현재가 이세진을 처음 만났던 장소는 청담동의 한 클럽. 만약 세진과 정태수가 한 편으로 움직였다면,



[정태수: 청담에 OO클럽 어때? 저번에 갔을 때 보니까 물 좋던데.]



태수가 가자고 했던 그 클럽에서 세진을 처음 봤다.

꿈에서만 봤던 그 여자를.



그래.

처음부터 모든 것은 계획된 일이었다.

자신은 그들의 계획에 속절없이 놀아났을 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썅!!!!!!!”



증기를 내뿜는 폭주 기관차 마냥 있는 힘껏 주먹을 치켜들어 정태수에게 날린다.



“그냥 죽어라 이 자식아!!!!!!!”







휙...



다섯 번의 주먹은 모두 소용이 없다. 주먹이 지나간 자리에는 작디작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소용이 없을 것을 사실 알고 있었다.


지금 내 안에 느껴지는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배신감.


35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배신감이었다.


이세진에게 배신당했을 때보다

열 배.

아니 솔직히 백배 천배는 더 아프다.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일까?




***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태수는 참 열심히 사는 아이였다.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 물론 천재는 그때도 천재였다. 같이 놀았는데 시험만은 항상 1등을 도맡아 했으니.)


아무튼 모든 분야에서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초등학생 때 이런 아이들은 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매년 반장선거 철이 되면 어김없이 정태수를 뽑는다.


그에게는 인성도 1등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태수는 뭐든 잘하는데 성격까지 좋은 사람. 딱 그런 존재였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대학 생활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학회장이었으며 가장 친한 4명의 친구가 있었다. 생긴 것만큼이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고학점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날 다섯 명이서 팀플 수업을 들었는데 4명씩 조를 짜라고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태수가 입을 연다.



“얘들아. 4명씩 조를 짜라고 했으니 너희 넷이서 해. 내가 다른 조로 갈게.”


“아니야. 두 명, 세 명 나눠서 인원 더 구하면 되지.”


“사실 어제 OO이가 팀플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그래도 같은 과 친구인데 거절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 알겠다. 아무튼 맘 약해서 탈이다 정태수.”



그리고 태수는 A+ 학점을 받는다. 그 조에는 발표 기획안 전문가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정태수. 누구랑 해도 A인생이구나 넌.”



아이들은 태수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다. 학점이나 등수가 그리 높지 않은 그 친구(발표 전문가)가 팀플이나 발표 수업마다 만점을 받는다는 사실은 정태수가 발로 뛰며 알아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정태수는 이렇듯 항상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챙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누가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사랑한다고 했던가?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연애하는 시간은 그에게는 아깝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애 상대 선택의 기준은 두 가지.


첫째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거나

둘째 그녀로 인해 내가 돋보이거나.


첫 번째 대상들은 보통 과에서 공부를 잘하거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빠삭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연애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는 것이 많이 생긴다. 그렇게 얻은 지식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언젠가 인생에 도움이 된다.


두 번째 대상들은 과, 또는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학생들. 그런 학생들과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구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는 높아진다.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내 위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을 동시에 충족할 때 자연스레 생긴다. 하지만 그건 분명 사랑의 감정은 아니었다.


개인을 포기하면서 투자할 가치가 있느냐라는 생각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인생에서 기회비용을 최소화하여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즐기는, 그것이 그의 연애 방식이었다.



경쟁심 많고 계산적인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잘못된 인생을 살아왔던 의미는 아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양쪽 모두 이득을 얻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또한 계산된 행동 방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누군가 태수의 속내를 들여다본다면 분명 무채색일 것이다.

정반대의 보색이 섞여 만들어지는 색.

정확히 무슨 색을 섞었는지 분별해내기 어려운 색.

그렇지만 그 어떤 컬러보다도 상당히 안정된 색.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색.


그런 색이다.



몇 십년지기 친구들이 보더라도 그럴 것이다.




***



또다시 거리를 배회한다.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난다.

항상 나한테 냉정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말씀은 다 옳았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나에게 뭐라고 하셨을까?



“아들아. 인생을 살면서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그 일들을 겪을 당시에는 미칠 듯이 행복하기도, 죽을 듯이 아프기도 하겠지만,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감정은 네 전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슬픈 감정은 겸허히 받아들여 소멸시키고 행복한 기억은 오래오래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분명 이렇게 말하셨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 영혼인데 어쩌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아버지. 저 왔습니다!”



우렁차게 불러본다.



“저 오늘 친구한테 배신당했습니다. 여자친구까지 덤으로요. 아버지도 태수 아시죠? 어렸을 때 우리 집에 가장 자주 놀러 왔었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수가 오늘 제 뒤통수를 아주 세게 쳤습니다. 꽤 얼얼하더군요.

그런데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무슨 잘못을 했던 걸까요?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 살아갈 수는 있을까요?”




***



포장마차 앞에 도착했다.

우울할 때는 역시 혼 술이 짱이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시끌시끌-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시끌시끌-



“여기 소주요 소주!!! 참이슬 후레쉬~! 없으면 처음처럼도 괜찮아요~!!!”


“이모, 여기 소주 한 병이요~”



강현재보다 성량은 작지만 또렷한 여학생의 목소리.



“어휴 이쁜 언니들이 왔네. 잠시만요~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도. 소. 주. 한. 병. 이. 요.!!!”



서럽다.



“아줌마, 여기 계란말이 하나 추가요.”


“네 손님~ 금방 해드릴게요~”



진짜 서럽다.



“내 목소리 좀 들어주세요... 정말 다들 아무것도 안 들립니까···? 나도 술 먹고 싶은데. 술 한잔 정도는 먹어도 되는 거잖아. 이런 개 같은 날 소주 한 잔 못 먹게 할 거면 나를 세상에 왜 어나게 한 건데!!!”



슬픔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알 수 없는 속성의 눈물이 눈에서 한 방울 떨어진다. 이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으아아아아악!!! 으헉... 으허헝ㅎ엉...”



정말이지 다 때려 부수고 싶···



퍼억-



“오잉?”



방금 누군가 뒤통수를 후드려 갈긴 것 같다.

근데 나는 영혼인데 아무도 나를 만질 수도 때릴 수도 없을 텐데.


정태수 그 개자식한테 맞았던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한 건가?


아무튼.



“으허허헝허엉...”



퍼억-



“응?”



“병신같은 자식 왜 태어나게 했냐니. 널 태어나게 해주신 감사한 부모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이제 환청까지 들린다.

목소리도 꽤 익숙한 것 같다.

정말 단단히 미쳤나 보다.


마저 울자.



“으허허어ㅓ헝. 으흐흐헉. 으흫헣어허헝...”



퍼억-



세번 맞으니 느껴진다.

이것은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느껴지는 얼얼함이 아니다. 날렵하면서도 묵직한 무언가 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5초 전 내 뒤통수를 갈겼다. 그것도 아주 있는 힘껏 세차게.


불어터진 눈으로 뒤를 돌아본다. 얇고 하얀 다리와 정장 바지가 보인다. 서서히 시선을 위로 올려다보니 왠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이세진씨...?”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

어마무시하게 큰 상처를 선사한 이세진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아니다.

환청에 이어 환영이다.

이세진이 내 앞에 나타날 리 없다.



“착각은 뭔 착각. 그만 쳐 울고 나 똑바로 봐.”



번쩍-



껌뻑 껌뻑.

다시 봐도 이세진인데.


요리보고 조리봐도 앞모습을 봐고 옆 모습을 봐도 암만 봐도 분명 이세진인데.



근데...



“잠깐 이세진씨. 지금 당신 눈에 내가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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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세계(1) 20.11.06 24 0 12쪽
26 등장밑은 어두웠고 믿었던 사람에 통수맞았다 20.11.05 25 0 11쪽
25 안녕, 내 찬란했던 인생아 20.11.04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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