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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8086 님의 서재입니다.

창녀와 광대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K8086
작품등록일 :
2014.08.06 07:20
최근연재일 :
2014.08.21 00:03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8,243
추천수 :
289
글자수 :
301,785

작성
14.08.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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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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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5쪽

6화

DUMMY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상당히 바쁜시간을 보내야 했다. 처음은 낯익은 얼굴로 부터


시작되었다.





"시장님... 다시 한번 감사드리러 왔습니다. 너도 어서 인사드리렴."





"앙주의 시장님을 뵙습니다."





부인은 젊은 청년을 나에게 소개하며 인사를 권했다. 나는 조금 흐믓한 마음으로 그들의 방문을 맞아들였다.


예상대로 일은 수월하게 풀려 몽고메리 가문은 가족회의를 진행하여 남작가의 후계자를 모든 가문의 공동 후계자로


지목하여 가문이 하나로 합치도록 결론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격하게 항의하고 협박을 늘어놓는 베드포드와 섬머셋의


사절단들을 영지에서 추방하고 더이상 간섭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다고 한다.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청년은 나오자마자 거대한 영지와 혈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 첫번째 행보로


이번일의 해결에 도움을 준 나에게 답례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받아달라고 청하는 그 지방 특산물인


염소 수십마리를 거절하고, 대신 마차 한가득 실어온 염소젖 치즈 중에 딱 한바구니만 받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리고 차를 다마셔갈 무렵 나는 뒤에 같이 동행한 한 청년이 안절부절하며 몽고메리의 후계자에게 눈치를 주는


것을 애써 무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부인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저어... 시장님, 큰 은혜를 입고선 이런 걸 말씀드리기는 뭐하지만... 저희 몽고메리에 먼 친척인 콘월에서 조금


복잡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혹시 누가 되지 않는다면 시장님을 좀 뵙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혹시 가능하실까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시간도 넘게 뒤에서 안절부절하며 기다리는데 안보겠다고 말할수 있을리 없잖은가. 나는


그제서야 그를 발견했다는 듯이 반색하며 말했다.





"네, 무례라니 별말씀을요. 어서 이리 오세요. 같이 차를 드시죠."





청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윽고 티파티에 끼어든 청년은 간곡하게 자신이 처한 처지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베드포드 가문이 얽혀있는 농노의 소유권 문제였다. 한참을 듣고 있던 나는 조금 망설이며 뒤에서 시립해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루이 첩보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사정은 알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수 있을지 없을진 모르겠지만 한번 알아는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그는 큰 도움을 받았다는 듯 얼굴이 환해지며 인사를 올렸다. 해가 질 무렵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뒤에 서있는 루이 첩보관에게 말했다.





"뭔가... 일이 자꾸 커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무슨 소린지도 잘 이해되지도 않는데, 덜컥 도와주겠다고 일만


맡아버렸네요."





"각박한 세상입니다. 잘도와주는 사람이 호구 취급받는 세상이죠. 원치 않으신다면 귀찮게 하지 않도록 손 좀


봐 놓을까요?"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확실히 선행이 천대받는 세상이긴 하죠. 하지만 그래도 저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게


좋아요. 굳이 엄마의 유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돕는 건 대가가 없더라도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목숨까지 내던지시며 앙주를 구하신건가요?"





"그건 그냥 우연히... 서로 타산이 맞았던 것 뿐이에요."





"그럼 앞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실때는 적당한 타산을 맞춰주시길 바랍니다. 농노들의 소유권 문제는


콘월의 주교령에 농노들의 소속을 옮기면 해결됩니다. 주교령에 속한 농노는 교회의 소유니 재산권을 빼앗기거나


강제로 끌려가는 일이 앞으로는 없을겁니다. 증빙서류는 안젤모 재무관에게 서편으로 공증까지 마쳐서 전달해


달라고 요청해 두겠습니다. 내일 사람을 보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나요? 그럼 왜 바로 말하시지 않고?"





"그냥 쉽게 말해주면 선의도 쉽게 봅니다. 단지 하루 늦게 말하는 것 만으로도 상대는 더 큰 고마움과 감사를 표하는


예의를 차릴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대가로 염소젖치즈 대신 이렇게 말하세요."





"당신도 제가 도움을 필요로 할때 저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맞죠?"





"알고 계시는 군요. 상대방에게 나중에 받을 큰 빚을 지게 하는 방법을..."





"네에... 거리 생활을 허투루 한건 아니니깐요."





"근데 왜 염소젖치즈를 받으셨습니까?"





"그야... 맛있어 보이니깐요."





"아... 네... 그건 동의합니다."





첩보관은 잉글랜드 치즈 치고는 제법이라며 평하며 한입 베어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바빠질것 같군요.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겠습니다."











"아, 글쎄 그놈이 우리 땅의 클레임을 조작해서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저런... 알겠습니다. 제가 대신 부탁드려보죠. 어떻게 분쟁은 그만두심이 어떨까요? 원하시는 땅이 목장이죠?


목장을 포기하시면 대신 앙주에서 양모 매수에 1순위를 드릴께요. 생산량을 늘리시는 대신 안전한 거래선을


확보하시는게 좋지 않으실까요?"





"흥, 그 땅은 원래 내 땅이 맞소이다. 하지만...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 조건 수용하리다."








"제 약혼녀가 예쁘다고 베드포드 공작의 5촌 조카가 자기 첩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제가 약혼녀분이랑 몇번 티타임을 가지고, 이 약을 드릴께요. 얼굴에 바르면 매독에 걸린것처럼 보이는 약이에요.


약혼녀분을 사랑하시고 잃지 않고 싶으시다면 나쁜 소문이 좀 도는 건 감수하실수 있으시겠죠?"





"이를 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지난 전쟁에서 목숨걸고 싸웠는데 약속한 영지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 섬머셋가의 외가쪽 친척에게 영지를 넘기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감히 섬머셋에게 대항할 힘도 없고... 가족들과 같이 거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공을 많이 세운 베테랑이시죠? 아마 장교님 말고도 병사들도 장교님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옛 전우들을 한번 모아보세요. 은근히 숫자가 될꺼예요. 그리고 그 영지 주인과 사이가 나쁜 영주에게


무기를 좀 빌려달라고 해보세요. 그리고 그 다음은..."





"안말해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앙주의 시장님. 이제야 전우들이 몸을 쉴 땅 한조각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한걸음에 달려가겠습니다."











나는 몇달간 복잡한 요청과 질문들을 각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처리해나갔다. 생각보다 기분은 좋았다. 옛날에


거리에서 몸을 팔때는 봉사를 하면서도 욕을 먹기 일수였지만 이렇게 남을 돕고 나면 항상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와


앞으로도 잘부탁한다는 여운이 남는다. 나는 엄마와의 약속을 상기하며 엄마가 남긴 말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생겼다. 그건 바로...





"너무 많아요."





나의 말에 루이 첩보관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어린아이 키만한 서류뭉치를 내려으며 말했다.





"짜증나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아요. 뭔가 잘못된거예요. 잉글랜드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나요? 대체 왜 토지 소송에, 상속


분쟁에, 정치의견 대립 같은거야 그렇다 쳐도... 사소하기 그지 없는, 암소를 잃어버렸다든가, 첫사랑을 찾아


달라던가, 맛있는 스튜를 만드는 법가지 저를 찾아와서 물어보는 거죠?"





"잉글랜드인들의 스튜라고 주장하는 토사물을 먹어보신다면 왜 물어보러 오는지 이해하실수 있을 듯 합니다만...


뭐 그건 농담입니다. 하지만 많은데는 이유가 좀 있습니다. 여기 오면 어려운 일들이 잘 해결된다고 소문이


너무 많이 퍼져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죠? 전 그냥 몇가지 귀족들의 사소한 분쟁을 해결했을 뿐인데."





"아? 모르셨나요? 지금 런던 시내에 동네방네 광고전단이 돌고 있습니다. 여기..."





루이 첩보관이 내민 서류를 보고 나는 입이 딱벌어졌다.





'미모의 해결사 조안, 당신의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드립니다. 억울한 클레임! 부당한 소송! 싸가지 없는 배우자!


못받고 계시는 돈! 저희에게 맞겨드리면 모두다 깔끔하게 해결해 드립니다. 연락처는....'





이게 뭐야...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누가 뿌린거죠?"





"안젤모 재무관입니다."





"아, 정말... 총독님 정말!!! 이게 무슨 짓이죠? 이런 광고를 뿌렸으니 그런 이상한 사람들까지 몰려오죠. 떼인


돈 찾아주긴 누가 찾아준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범죄조직도 아니고..."





"아, 몇건 시장님이 넘기신 일중에 비슷한 것도 있었습니다. 길드에 횡령 관련으로..."





"그만그만! 그런 일까지 맡아서 처리하시면 어떻게 해요."





내가 어이없어 하자 중간 보고를 위해 런던에 왔던 필립 재상이 말했다.





"그러게... 저에게 그 녀석 뒷통수를 찍을 권한을 주셨어야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미친듯이 날뛰는 녀석을


통제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뭐 이번 건에 대해서는 무조건 비난만 할건 아니긴 합니다."





"의외네요... 재상님이 총독님을 두둔하시다니..."





"당장 상회들이나 유력자들에 대해 우리의 신용도가 오르는 것이 실감나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작부의 밑에서 일하는 발정난 늙은이라는 소리가 다반사였는데, 요즘은 대우가 한결


정중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래저래 우리가 도운 이들의 우호적인 의사와 앙주에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는


경제력의 힘이 만만치 않은 것 같더군요. 덕분에 저번에 승인하신 앙주에서 금융업을 시작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자금이나 신용을 모으는게 쉽지 않을것 같았는데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었더군요."





"뭐어...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전단지에 시장님을 과하게 도발적으로 섹시하게 그린 그 녀석의 버릇을 고쳐주는 건 제 손에 맡겨주심이..."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라요... 우리에게 오는 도움의 호소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다들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요?"





"원래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게 현실이죠. 하지만...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현재 법률이 지나치게


엄격하단 것에 문제를 삼고 싶습니다. 현재 잉글랜드의 왕권은 절대적 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에 대비해 국왕의 영향력이 높지 않은 상황이죠. 그렇다보니 과도한 과세와 징집에 반발이 일어나고, 그와


관련된 복잡한 분쟁들이 일어나는 거죠. 거기에, 강력한 세력을 보유한 두 파벌은 그런 강력한 왕권을 무시하고


힘없는 군소 영주들을 압박하고 있으니... 다들 시장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간단하네요. 왕권을 약화시키면 이 많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있겠네요. 왜 그런 생각을


아무도 못한거죠?"





나의 그런 말에 필립 재상도, 루이 첩보관도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시장님... 왕권을 약화시킨다는 말은 좋은 동의어가 있습니다. 반란이죠. 지금까지 수차례 반란의 불꽃이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잉글랜드 영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국왕 폐하와 에드워드 왕자의 활약 덕분에 처참히


진압되어버렸죠. 이곳 런던 일대의 미들 식스와 몇몇 프랑스 지역에 영지밖에 없는 국왕 폐하께서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반란 기도를 용납하지는 않으실겁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을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 보면 안그래도 불안한 현재의


입지에 자신이 가진 권한마저 약화시키자는 의견을 쉽게 수용할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생각이 또 한가지


들었다. 왜 수용할수 없을까? 그건 두렵기 때문이다. 약화된 왕권을 계기로 수많은 봉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무시하려 드는 것을... 하지만, 반란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미 양대 대귀족 파벌은


그것과 무관하게 왕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독단적인 전횡을 일삼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이 나 스스로도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앙주의 시장으로 항복을 하러 갔던 것 보단


그리 어렵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필립 재상에게 말했다.





"의견을 한번 구해볼까 합니다. 준비해주세요. 왕궁으로 갑니다. 분명히 에드워드 왕자가 얼마전 요크의 반란을


진압하고 귀환했다고 했죠?"











열흘 후... 나는 긴장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긴 회랑을 걸었다. 다행히 저번에 크리스마스 파티보다는 불안감은


덜하다. 이런저런 일들을 몇가지 해주다 알게된 귀족분들도 아는체 해주었고, 나를 보며 이죽거리는 베드포드 파인지


섬머셋 파인지 알수 없는 귀족들도 피해가며 나는 내게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눈앞에는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좌석들이 백여개가 넘 가운데에 위치한 발언대와 왕좌를 둘러싸듯 놓여 있었다. 이곳은 바로 잉글랜드의 상원 의회,


웨스터민스터 사원이다. 나는 처음으로 의회에 참석하여 나를 경계하듯 수근거리는 양 파벌을 보았다. 잠시 후...





"국왕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전원 기립!"





시종장의 선언과 함께 국왕의 행렬이 입장했다. 왕은 양쪽에 윌리엄 왕세자와 에드워드 왕자의 보좌를 받으며


상원의 자리에 들어와 왕좌에 앉았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살짝 언짢은 표정... 나는 긴장되는 것을


느끼며 열흘전에 있었던 알현을 떠올렸다.





"놔라! 윌리엄! 내 친히 눈앞에 저 반역자의 목을 치겠노라."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네가 감히 나에게!!! 내거 너를 어찌 여겼거늘..."





왕은 분노하여 길길히 날뛰었다. 사전에 에드워드 왕자와 윌리엄 왕자와의 협의를 해두길 잘한것 같다. 만약에


그냥 들어왔다가는 그대로 목이 잘릴 분위기였다. 한참을 길길이 날뛰던 왕을 두 왕자가 겨우 말리고 눈앞에


자리에 앉히자 나는 여전히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왕에게 말했다.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전 폐하의 봉신이옵니다."





"그래, 내가 너를 봉했노라. 그리고 과실을 사과하고 충성의 보답을 받았고, 너희 행보를 기특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 감히 그런 반역의 선고를 이리도 당당히 내게 고한단 말이냐! 귀족의 반열에 들더니 벌써


베드포드와 섬머셋의 도당들과 같은 생각을 하기로 한것이더냐? 그 죽일 놈들처럼!"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죽이십시오."





"뭐?"





"죽이셔도 됩니다. 어렵지 않으십니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아직 사형수입니다. 사면받은 것이 아니라 집행 유예가


된것뿐, 원하시면 언제든지 기한이 없는 그 유예 통지서에 날짜를 적으셔도 됩니다. 폐하께서는 그렇게 하셔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겁니다."





어지간하게 흥분하던 왕도 내 말에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오나, 죽이시기 전에 저의 충언을 잠시만 귀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결코 다른 왕권의 약화를 노린 반역자의


마음이 아닌, 충심으로 고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가당치 않으시다면 날짜를 오늘로 적으시고 서명하셔도 됩니다.


저의 목숨을 걸고 폐하께 고합니다. 하찮은 목숨값으로 부디 폐하의 시간 10분을 사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왕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용히 내가 생각한 발상을 한참동안 설명하였다.





"...습니다. 다시 최종적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각 파벌의 리더들은 기존에 이 땅의 왕이던


시절에 만들어둔 각종 면책특권으로 왕권의 제약에서 아무런 방해없이 살아가고, 왕권이 요구하는 과세와 징병에


시달리는 것은 약소 영주들뿐입니다. 약소 영주들은 무거운 제약에 시달리다 결국 파벌에 도움을 청하게 되고


각 파벌들은 약간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세를 불려가고 그럴수록 충성하는 신하들은 줄어갑니다."





왕은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진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덧붙였다.





"내려놓으소서. 과도한 제약은 반발과 이탈만을 부를 뿐입니다. 관대함을 보여주소서. 그들이 폐하에 쉽게 다가올수


있도록 들고계신 검 대신 손을 내밀어 주소서. 부탁드리옵니다."





한참동안 왕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에드워드 왕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젠가... 저 녀석도 비슷한 소리를 광대의 연극으로 보여준적이 있다. 황금 대신 돌만 가득찬 궤짝을 들고


무거워서 어기적 거리며 큰소리치며 황금을 요구하면 바보들을 황금을 내놓지 못해 얻어 맞고 사기꾼들은 황금 대신


색칠한 돌을 건네주는 내용이었지."





에드워드 왕자는 어께를 으쓱했다. 왕의 말은 이어졌다.





"너의 주장에 한편으로 일리가 있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짐에게 도움이 되고 안되고의 문제 이전에


짐은 과연 성사가 될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 대해 논하고 싶다. 이전에 짐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그 연극을


보여준 저 광대 녀석도 그 점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 왕권을 낮추는 것은 단순한 의사 표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모든 귀족들이 참여한 의회에서 발의되고 결정되어야 할일이다.





하지만... 네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베드포드와 섬머셋의 파벌들이 그 발의에 찬동할리가 없지않느냐. 전통적으로


해당 왕권에 대한 변동의 채택을 위해서는 참석한 의원의 1/3의 찬성을 얻어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표는


영지에 기반하고, 많은 영지를 가진 베드포드 공작은 혼자서도 두자릿수의 투표권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발의한 제안이 지지를 받고 그들의 동의를 얻을수 있을 성 싶으냐?





그 자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들은 당연히 왕권의 수호를 외치며 자신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충신들인양, 너를 역적으로 비난하고 너에게 동조하는 자들을 역도들로 몰아붙일것이다. 네가 과연... 그런 그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 법안에 찬성하는 1/3의 찬성을 얻어낼수 있겠느냐?"





나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왔다. 지난 몇달간의 청탁들로 나에게 우호적인 세력들이 증가한건 사실이지만


과연 그들이 나를 지지해 역적이 될 위기를 무릎쓸만큼 나를 도와줄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이 표결의 1/3을


차지할수 있을까? 겨우 1인 1표밖에 권리가 없는 그들이? 그리고 나는 한사코 반대하던 나의 재상과 첩보관을 열심히


설득해 짜낸 한가지 방법을, 에드워드 왕자에게 동의한 그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결심하고 말했다.





"얻어내겠습니다.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미덥지 못하시겠지만... 저를 믿고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자신감에, 왕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미치겠군. 지금 내가 뭘 하는 건가? 내가 가진 왕권을 줄이려고 믿고 맡겨? 지금 내가 미친건가? 아니면 세상이


미친것인가?"





그리고 다시 열흘후인 지금으로 돌아왔다. 나는 간단한 개회사와 몇가지 서두에 국정보고가 진행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의회의 의장으로 참석한 윌리엄 왕자가 연석에 들어서며 나를 보았다. 눈빛이 오간다. 그도


긴장하며 나에게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지금부터 각 의원분들은 각 소규모 분과의원회가 시작되기 전, 의회법에서 명시한 전 의원의 동의를 요하는 중대


사안에 대한 발의를 진행해주시길 바랍니다."





침묵이 감돌았다. 양쪽 파벌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다행히...


누설되지는 않은듯 했다. 나는 일어서며 말했다.





"앙주의 시장, 조안입니다. 존경하는 모든 잉글랜드의 의원분들에게 발의합니다. 현재 절대적 수준으로 상향되어


있는 왕권을 낮출것을 발의합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아졌다. 그리고, 엄청난 소음과 함께 웅성거림이 일었다. 의장인 윌리엄 왕자는


정숙을 명하고 나에게 자세한 발의를 설명할것을 요구했다. 나는 정해진 대본을 읽으며 나의 발의를 정식으로 모든


의원에게 고했다. 표정들을 살펴보았다. 베드포드와 섬머셋의 잔인한 미소... 그리고 원수지간인 양 파벌간의


물밑 의사교환...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예상한대로 의견을 통일한듯 했다. 나를 지지하리라 예상했던 군소 귀족들은


창백해졌다. 아마도 그들의 입장에서 반역자의 오명을 쓰고 나를 지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듯 했다. 사법관으로


참석한 에드워드 왕자는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한바탕 날뛰자는 의사를 표하는 것이 느껴졌다. 왕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턱을 괴고 비스듬히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나의 발의가 마쳐지자, 관련 발의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반응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폐하! 저 반역의 도당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오오... 주여 저 배덕자를 어찌 살려두시나이까? 죽어 마땅한 것을


살려주어 분에 넘치는 자리를 주었더니 제 탐욕에 눈이 멀어 도당을 이끌고 반역을 도모하는 구나."





"섬머셋은 왕국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강력한 왕권을 지지합니다. 저희들의 충심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폐하를 수호하는 왕실의 처가, 저런 극악무도한 발의를 용납할수 없습니다."





논의라기 보다는 나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나의 발의가 반역이 아닌 현실적인 군소 영주들과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지만 그에 대한 호응은 미미했다. 나를 지지하리라 생각한 의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한편으로 나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지만 여전히 이 발의를 지지함으로써 뒤집어 쓸 반역자의 오명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듯 했다. 그렇게 논의가 마쳐가자 윌리엄 왕자가 말했다.





"논의는 대충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표결을 시작합니다. 각 의원들은 투표를 준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베드포드와 섬머셋은 잔인하게 웃으며 자신의 의사를 표하려 하였다. 포인트는 지금이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진 것은 사법관 자격으로 의회에 참석한 에드워드 왕자의 발언 덕분이었다. 에드워드 왕자가


말했다.





"왕권에 대한 표결은 기존의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해당 표결은 상원이 아닌 하원에서 처리됩니다."





뭔가 어리둥절해하던 영주들은 잠시 후 앗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둘러보았다. 에드워드 왕자의 말이


이어졌다.





"일반 안건은 귀족원인 상원에서 처리함이 맞으나 지금과 같은 왕권의 약화에 대한 발의는 잉글랜드의 모든 영지와


영민을 대상으로 하므로 각 영민을 대표하는 하원에서 처리됩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상원의원분들은 동시에 자신의


영지의 하원의원도 겸하시니 그대로 표결을 행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투표권에 대해서는 기존에 상원에서 하던


가진 영지에 비례하지 않고, 하원의 방식으로 모든 의원들이 1인 1표만을 가집니다."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우린 대귀족들이요. 우리가 겨우 1인당 1표라니? 그리고 그런 규정이 었단 말이요?


전례가 없는 일이잖소!"





"물론, 전례는 없습니다. 왕권의 약화를 전쟁터의 선전포고가 아니라 의회의 발의로 제안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전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국법에 분명 관련 법안의 처리를 하원에서 진행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귀족들이 한대 맞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몇명은 서둘러 법전을 뒤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썩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하원의원은 전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시장 의원들이


오지 않아 표결의 중단을 요구합니다."





대귀족들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이 나라에서 하원이 열린적은 많지 않다. 몇몇 자유 도시를 대표하는 소수의 하원


의원들의 불참을 그들은 문제삼았다. 그 말을 에드워드 왕자가 받았다.





"이것참 우연인가요? 마침, 모든 하원의 의원분들이 바깥에서 대기중입니다. 의사당으로 입장을 하셔서 출석을


확인하교 표결을 진행할것을 의장님께 요구합니다."





"허락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수십명의 의원들이 의사당에 들어왔다. 대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또한 우리의 작전 중에


하나였다. 루이 첩보관과 필립 재상은 무리라고 말리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명한대로 상원에 참석하지 못하는


하원의원들의 확보에 나섰다. 의외로 독립성이 강했던 자유도시의 시장들은 기존에 왕권으로 인한 상업 방해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이 대귀족 파벌을 엿먹이는 일이란걸 알게 되자 지지를 표해주었다. 그리고 은밀히


의회일정에 맞춰서 런던에 집결을 추진한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승산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기존에 나를 지지하는 귀족들과 합류해준 시장들,


그리고 일부 베드포드와 섬머셋에 기대되는 이탈자들을 합치면 간신히 1/3의 찬성을 이끌어 낼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순간... 베드포드 공작과 눈이 마주치며 웃음을 멈췄다. 뭔가 잔인한 미소...


그는 옆에서 법전을 들고 뭔가를 고하는 측근들의 얘기를 경청하며 나를 보고 비웃듯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가


손을 들어 발의를 청했다.





"좋습니다. 하원의 표결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투표방식도 완전히 하원의 방식으로 진행을 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공개투표로 말입니다."





아뿔싸...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상원의 표결은 비밀투표지만 하원의 표결은 누가 어디를 지지하는지 의사를


표시하는 공개투표다. 만약 이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기존에 베드포드파나 섬머셋파로 분류되는 일부 이 발의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뜻을 표할수 없게 되버린다. 나는 다시 한번 계산을 해보았다. 아슬아슬하다... 그들의 일부


이탈을 기대하고 계산한 표결인데, 이렇게 되면 발의는 무산되어 버린다. 이 점에 대해서만은 그냥 두리뭉실


넘어가길 바랬는데... 나는 에드워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왕자는 굳게 다문 입술을 깨물며 베드포드 공작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대책은 없는 듯 했다. 윌리엄 왕자가 말했다.





"...허락합니다. 잠시 휴식을 가지고 표결을..."





"바로 시작해주시죠. 티타임은 표결을 마치고 가지도록 하시죠."





잠시 작전 타임을 가지려던 윌리엄 왕자의 지연을 베드포드는 막아섰다. 윌리엄 왕자는 나와 왕을 한번씩 돌아


보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는 힘겹게 고했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모두 착석하시고, 이 발의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들은 일어서서 의사 표시와 표결을 진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적막이 흘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분위기가 의사당을 지배했다. 나는 분한 마음을 삼키며 치마단을 움켜쥐었다.


일어서자. 나혼자서... 그리고 모든걸 마무리 하자. 그런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존 몽고메리는 이 발의에 찬성합니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아보았다. 내가 도와준 몽고메리의 후계자는 여전히 두려운 표정으로... 하지만 용기를 내어


일어서 나를 지지해주었다. 그리고...





"콘웰을 대표하여 지지를 표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일어서며 지지를 표해주었다. 눈물이 날것 같았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발의는


잘못되어 통과되지 못하면 그대로 역적으로 몰려 탄핵으로 이어질수도 있는 부담이 있는 안건이다. 그들은 그런


무모한 모험을 설령 할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나를 동조해서 할 이유는 없다. 내가 도운 작은 성의에 대해 그들은


무모하리만큼 용기를 내어준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대를 보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발의에 대해 찬성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베드포드 공작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모습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그리고 결국... 나를 마지막으로 표결은 끝났다. 윌리엄 왕자는 착잡한


표정으로 에드워드 왕자에게 말했다.





"왕의 사법관은 결과를 발표하시오."





"...발표하겠습니다. 앙주 시장이 발의한 왕권 하향에 대한 제안 발의에 지지자는... 총 62명... 법률상 명시한


1/3의 찬성을 1표가 모자라서 통과하지 못해 부결되었습니다..."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베드포드와 섬머셋의 일파들은 잘난듯이 웃으며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는 것을 듣고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고, 나에게 동조해준 의원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미 그들은 압도적인


세력을 과시하며 하원 투표로 발의를 이끌어내는 꼼수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기세를 몰아 나에 대한 탄핵을 바로


발의할 분위기였다. 나는 깊게 한숨을 쉬며 결심했다. 나를 위해 용기를 내어준 사람들을 다치게 할수는 없다.


이 모든것은 내가 책임지고 가야 할일이다. 나는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하려 손을 들고 일어섰다.





"발언 기회를 요청드립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답한 것은 윌리엄 왕세자가 아니었다.





"허락하지 앉겠다. 자리에 앉아라."





왕이 일어서서 연단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두려움 같은것을 느꼈다. 그는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그래? 결과를 보니 어떻더냐? 너희들이 서있는 위치가 이제야 실감이 되느냐? 항상 말로는 쉽게 늘어놓는 일들이


실제로 해보니 어떠하더냐? 세상일이 너희 젊은 것들이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더냐?"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리고 왕의 그런 태도에 베드포드와 섬머셋의 의원들은 더욱더 희희낙낙하며 나를


벌하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은 그런 요구를 무시하듯 나에게 고개를 돌려 에드워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광대질과 진지한 국정의 일에 중심을


못잡고 떨어지는 거다. 못난 놈... 네 실수가 뭔지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고 망연자실하는 꼴이 보기 좋구나.


박수를 쳐주마. 네가 한 광대질 중에 가장 웃겼다."





"폐하... 무슨 말씀을..."





"멍청한 녀석, 아직도 모르겠다는 거냐? 네가 한 실수를? 당장 정신 차리고 살피지 못하겠더냐? 내가 네놈을 왕의


사법관으로 명한 건 절차를 지키라고 한것이지 무시하라고 한것이 아니다."





잠시 에드워드 왕자는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에? 그러면 폐하... 정말로?"





"신성한 의사당에서 헛소리는 그만두고 의정을 진행하라. 마지막 경고다."





에드워드 왕자는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왕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곧이어 얼굴가득 그 특유의


악동같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투표결과 발표를 취소합니다. 아직 투표하지 않은 의원이 있습니다."





그의 충격적인 말에 반응한건 베드포드 공작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미 끝난 투표를 무슨 억지로 불복하려는 것이요? 이미 모든 의원들이 의사를 표시했소."





"아닙니다. 아직 한사람이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누구요?"





그 대답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바로 짐이다."





왕의 선포에 어지간하던 베드포드 공작도 입이 딱벌어졌다. 왕이 말했다.





"잊고 있나 본데, 짐은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동시에 미들식스의 백작으로 상하원의 의원 자격이 있다. 짐 또한


이곳 의사당에서는 한명의 의원이다. 아직 짐은 투표하지 않았다."





모든 의사당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1표 차이로 부결된 발의다. 역전할수 있는 찬스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투표자가


권한을 제한당하는 당사자라니... 나를 지지한 의원들은 일말의 희망을, 그리고 그 반대쪽은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침묵을 깬것은 베드포드 공작이었다.





"폐하, 설마 폐하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저 불충한 무리들을 수용하시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저들은


역적이옵니다. 부디 눈을 크게 뜨고 보소서."





"호오? 그래?"





"그렇사옵니다. 위대한 잉글랜드의 봉신으로 그들은 세금과 병역을 거부하고 그들의 영지를 해외로 빼돌리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나이다. 그들을 허락하시는 것은 폐하를 독살할 스프를 끓이는데 장작을 하사하심과 같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있겠나이까? 세상 모든 이들이 비웃을 겁니다."





"비웃음이라... 하하하... 그렇지. 왕은 존엄해야지. 아무나 함부로 비웃으며 조롱당할것이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조금 궁금해졌네, 나의 충성스러운 봉신 베드포드 공작이여."





"무엇이 말입니까?"





"왕을 가지고 놀면 안돼. 그러면 목이 잘리거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이 잘려도 상관없으니 왕을 가지고


놀게 해달라는 녀석이 있었어. 어떻게 생각하나?"





"그... 그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제 목숨이 날아가도 상관없으니 날 가지고 놀겠다는데... 그럼


궁금해지지 않는가? 대체 어떻게 가지고 놀지를 말이야. 분명 시시하지는 않을꺼야."





"폐... 폐하..."





왕은 모든 의원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잉글랜드의 국왕이 말하노라. 짐은 성스러운 잉글랜드 의회의 의원으로서 앙주 시장이 발의한 왕권의


하향에 찬성한다."





에드워드 왕자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소리쳤다.





"63명의 찬성으로 발의 통과되었습니다! 자비로운 국왕 폐하 만세!"





그리고 내쪽에 모여있던 찬성파 의원들이 에드워드 왕자를 따라서 환호성을 질렀다.



"잉글랜드의 위대한 국왕 폐하 만세!"




여기저기서 함성소리와 언쟁과 난동이 일어났다. 윌리엄 왕자는 정숙을 명했지만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 또한 격한 감정을 숨길수 없었으니깐. 왕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려운 결정 내려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잘도 여기까지 일을 끌고 왔구나. 이제 죽던 살던 앞으로 전진할수 밖에 없다. 기억해두어라. 네가 발의했다.


너는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게 될것이다. 그 무게를 하찮게 여긴다면 대가를 치룰것이다."





"제 목숨을 걸고 폐하의 영광에 누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흥, 아무때나 쉽게 거는 목숨값이 얼마나 한다는 건지 원... 아무튼 믿고 지켜보겠노라. 그리고 이제 그대의 영지로


돌아가라. 더 이상 런던에서 그대가 무슨 난동을 부릴지 상상할수도, 감당할수가 없구나."





"명령 받들겠나이다, 폐하."





왕은 티내지 않고 내심 으쓱해하며 의사당을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많은 나를 지지해준 의원들이 몰려 들었다.





"감사합니다, 조안 시장님. 당신이 왕을 설득하셨군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모두 역적 도당으로 몰리는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영지로 돌아가셔도 우리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는 웃으며 그들의 찬사와 축복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런던에서의 일을 잘


마무리하고 드디어 그리운 고향에 돌아갈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마냥 즐거운 기분을 느끼며 나를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겸양의 인사를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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