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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8086 님의 서재입니다.

창녀와 광대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K8086
작품등록일 :
2014.08.06 07:20
최근연재일 :
2014.08.21 00:03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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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1
추천수 :
289
글자수 :
301,785

작성
14.08.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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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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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28쪽

4화

DUMMY

"오랜만에 뵙는군요."





"말씀을 낮추십시오. 왕자님..."





1년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앙주가 다시 활기차던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며 조금은 잊고 있었던 나의


끝이 다가왔다. 왠지 느낌이 그가 올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오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1년전과 마찬가지로 알듯말듯한 미소를 머금은 그리스 신화속에서 나올법한 미소년, 미친 왕자,


에드워드 사법관을 앙주의 성문 앞에서 맞아들였다.





주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 1년동안의 시간이 마치 꿈인 것 처럼, 겨우 조금은 살게 되었다고 생각할때


들이닥친 집행유예의 심판자가 그들은 달갑지 않은 듯 했다. 나는 그를 안내하여 참사회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수행한 내 시장으로서의 업무와 참사회 각료들의 노력과 그 결과로 생각보다 주민을 쥐어짜내지


않았는데도 나름 전쟁전 납세액을 살짝 넘어가는 중앙 정부로 보낼 세금을 그에게 보고했다.





그는 신중하게 서류를 살펴보았다. 타고난 광기와 예측 불허의 경거망동한 행동으로 미친 왕자라 불리고는 있지만


그는 부족함이 없는 왕의 사법관이었다. 그는 꼼꼼하게 서류와 기록들을 대조해서 살펴보고 이상한 점을 나와


각료들에게 문의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서류책을 덮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의 사법관으로 판단해보건데 앙주의 시장 조안은 왕이 명한 기한동안


앙주의 정식 시장으로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음을 인정합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간의 노력이 허사는 아니었던듯 했다. 그리고 이제 앙주의 모든 시민들은 목숨을


구제받았다. 그리고 나도 엄마와의 약속을 지켰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자. 이제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처분을 말하려고 했다. 그때 먼저 선수친 사람이 있었다.





"왕자님, 저는 앙주의 재상 필립 카페 입니다. 왕명의 무거움은 알고 있으나 자비를 간청드립니다. 조안 시장님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이어서 안젤모 영감님이 말했다.





"돈 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군사나 영토? 여자들도 가능합니다. 필요하신건 뭐든 준비하겠습니다. 앙주는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부디 거위의 배를 갈라 알을 꺼내려 하지 마시옵소서."





루이 첩보관도 나섰다.





"시장님을 선처해주시옵소서. 사실 제가 이 일의 원흉입니다. 차라리 저를 벌하시고 시장님은 용서를..."





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야, 너도 좀 가서 간청해봐. 너 왕자님 부하였다며?"





"자꾸 말낮추지 말랬다! 그리고 지금 간청하려면 타이밍이..."





마틸다의 독촉에 에라드경은 난처해했다. 요즘 부쩍 사이가 좋아져서 흐믓해하던 두 사람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절대 부정하며 잉글랜드 망나니와 프랑스 화냥년이라고 욕하는 사이였지만. 그러나 그런 그들의 간청에 에드워드


왕자는 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야, 마음만으로는 얼마든지 사면해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왕의 사법관입니다. 왕명을 함부로


제가 곡해할수는 없는 노릇이죠. 아쉽지만 처분은 정상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확인을


드리겠습니다. 조안. 당신은 진정 앙주의 시장이 맞습니까? 이 대답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마치겠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모든것을 끝낼 말을 했다. 모두의 만류하는 기분을 느끼며...





"저는 앙주의 시장입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에드워드 왕자가 웃었다. 나는 가능하면 편한 방법으로 보내주길 바라며 그를 보다 뭔가 그의 얼굴이 조금은


얄미운 악동처럼 변하는 것을 보았다. 뭐지?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앙주의 시장, 조안님 당신의 처분을 시작합니다. 손을 내미세요."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와 동행해 왔던 종자들이 나의 손목을 묶었다. 아주 느슨하게? 이건 뭐지?





"나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2세의 사법관 에드워드 몽포르는 앙주의 시장 조안님에게 자의 동행을 요구합니다."





"자의 동행이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분명히 사형..."





"그건 전시 명령에 의거한거죠. 아시다시피 잉글랜드의 왕법은 전시와 평시의 적용기준이 다릅니다. 전시에는


국왕명은 전시 명령으로 간주되어 법률과 판례에 준하는 효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화시입니다. 물론


전시명령은 평화시에도 소급적용되어 당신의 처형은 유효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게 뭐죠?"





"지금은 당신이 정식 앙주의 시장이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앙주의 시장이라면 잉글랜드의 법적 지위에서 당신은


백작에 준하는 대귀족, 선거 상속제를 도입할 경우 선제후의 지위에 해당합니다. 대귀족에 대해서 전시에는 일반인과


동일하게 즉결처분이 가능하지만, 평시에는 집행을 위해 왕의 최종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저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왕에게 처형당하러 가는 길에 스스로 동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은 당신이 이미 대귀족이기 때문에 당신은 이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그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킬 권리 또한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왕의


사법관과 자의로 동행하여 처분을 받으러 가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으로 몇몇은 고개를 저으며 만류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나는 죽으러 가는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을 다시금 되새기며 대답했다.





"동의... 합니다. 에드워드 왕자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말씀 낮추시길 바랍니다. 대귀족인 당신은 작위가 없는 저보다 고위직이십니다."





나는 1년전과 마찬가지로 몇가지 준비를 마치고 프라이팬 처럼 생긴 성문 열쇠 대신 여행가방을 손에 들고 왕자를


따라 런던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다들 성문 밖에서 나를 배웅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울먹이며 나를 데려가지 말라고 말해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뭔가 여러번 겪는 일인듯 난감해했다. 난 여전히 눈물로


나를 배웅하며 나와 동행하게 된 에라드경에게 욕을 퍼붓는 마틸다에게 인사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아... 왠지 얼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던것 같은데. 일단은... 잘 다녀오겠습니다. 없는 동안 도시 잘부탁드려요."





다행히 눈물바다가 되거나 모든 사람들이 무릎꿇는 일은 다시 일어나진 않았다. 다소 밋밋한 기분으로 나는 왕자와


동행하여 길을 떠났다.











바닷물을 만져보자 냉기가 올라왔다. 처음으로 타보는 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 사형을 승인받으러


가는 죽음의 길에 맥이 빠지게도 왕자는 사법 시찰을 이유로 중간에 몇몇 영지들을 방문했고, 그런 영지들이 다들


멋진 경치가 있다거나, 음식이 끝내주게 맛있었다는 건 그냥 기분탓이길 바랬다. 하지만 나름 좋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본 바다에서 그 기분은 한결 날아갈것 같았다.





손목의 결박은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 첫날만 차고 있었고, 다음날부터는 그냥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았고


나름 대귀족이라고 사람들의 태도도 마지못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나름 공손했다. 아아... 사망선고 받으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나들이라면 참 좋은 기분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주정도 후... 나는 템즈강을


거슬러 런던에 도착했다. 뭔가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도시의 장면이 나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최종 종착지, 왕궁에 도착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듯 왕궁에 장식들이 아름다웠다.


나는 왕궁으로 안내되어 에드워드 왕자와 둘이서 긴 왕궁의 복도를 걸었다. 저 끝에 왕의 집무실이 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런 나를 보며 에드워드 왕자가 말했다.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네에... 이제 종착이지만요. 생의 마지막으로 나쁘지 않은 추억이었습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건 너무 슬픈 말이잖아요."





"제게 희망이란게 있을까요?"





"알수 없죠. 모든것은 왕의 의사에 달린것...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아나요? 갑자기 오늘 점심이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지신 왕께서 자비를 베푸실지도..."





"후흣...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위로의 말 감사드립니다."





그는 어께를 으쓱하며 문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외곽에 굵은 기둥들이


서있고 중심에는 책상과 책들과 서류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그 안에서는 왕과 한 청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왕은 분노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의자에 앉은 차분해 보이는 청년은 그런


왕을 애서 달래려 하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은 듯 보였다. 왕자가 말했다.





"윌리엄 형님이 또 진담 빼시는군요. 우리 꼰대... 아니 폐하는 정말 못말리신다니깐. 잠시 기둥뒤에서 기다리세요.


간단한 사전 보고를 하고 부르면 들어와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고 방안에 기둥에 몸을 숨기듯 뒤로 들어갔다. 왕자는 문을 조용히 닫고 들어갔다. 왕은 여전히


분노에 차서 누군가를 저주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래서야 기분이 좋아서 자비라는 건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왕자가 다가갔다.





"오오... 저기 성난 남자를 보라, 코는 붉고, 갈기같은 머리를 휘날리며, 강철같은 육체와 사자의 용맹으로 적들을


도륙하니 이는 아마도 선술집의 허풍쟁이 주정뱅이 아니면 나의 왕이시로구나! 누가누가 우리 춘부장의 콧털을


건들였습니까? 여기 왕의 광대가 왔나이다. 말해보소서. 물구나무를 서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겠나이다."





"이 광대 녀석, 말버릇하고는..."





"에드워드 왔구나."





왕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윌리엄이라고 불린... 아마도 소문으로 듣던 왕세자가 동생의 등장에 반색을 하며


일어서서 맞아주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윌리엄 왕세자의 손길을 받고 잠시 후 왕자는 왕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사법 시찰은 잘 마치고 왔습니다. 보고서는 오는 길에 염소밥으로 주었으니 똥을 잘 파해쳐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보다는... 어떤 불충한 놈들이 우리 폐하를 노엽게 하였습니까? 소자에게 말해보소서."





"내 속을 뒤집는데 너보다 더한 녀석이 있단 말을 믿을수 없구나. 하지만, 오늘은 명백히 네가 아니다. 오늘 짐을


노하게 만든 것은 이 배은망덕하고 염치없는 노서벌랜드 백작 놈이다."





"오오... 그 거위닮은 대머리 말이군요.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했나요?"





그의 질문은 윌리엄 왕자가 답했다.





"탈세가 엄청나게 들통났다. 뭐 그거야 영주들이 관행적으로 저지르는 일이니 그렇다 쳐도 사과하고 일부라도


납세하라는 요구에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려다 체포되었다. 근데 문제는 이것 때문에 그의 일족이 다들 난리르


치고 있다는 거지. 평소에는 서로 악귀처럼 치고 박던 귀족 놈들이 왕의 정당한 집행에 똘똘 뭉쳐서 그의


석방과 복권을 요구하고 있는 거지."





그말을 들은 내가 든 생각은... 뭐? 납세를 안해도 사과하고 일부만 내도 된다고? ...였다. 뭐지? 난 그거 안하면


정말 죽는줄 알고 했는데. 에드워드 왕자가 형의 말을 받았다.





"흐음... 그 거위 녀석은 노르망디 가문이니 베드포드 공작이 뒤에서 사주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뭐...


그래도 흔한일 아닌가요? 귀족 녀석들이 뭉쳐서 왕을 겁박하는게 어디 어제 오늘일인가요? 딱히 더 화를 내실


이유는 없다고 보입니다만."





"문제는 이번에는 좀 그 녀석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폐하를 골탕먹일 계획을 세웠다는 거다. 크리스마스의


왕실 파티에서 녀석들은 모두 짜고선 국왕이 처음으로 춤추길 권하는 퍼스트레이디에 모든 참석한 여성들이


거절해서 망신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네에? 헛, 참... 그런 재밌는... 아니 사악한 생각은 저나 할수 있을줄 알았는데 나름 머리를 썼군요. 확실히


기발하긴 하네요. 폐하의 권유를 모든 레이디들이 거절한다면 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닐테고... 그렇다고 불참하면


그 또한 왕의 권위에 의심을 받을거고 참석대상자가 확실한 대귀족들 뿐이니 아무나 춤춰줄 자격없는 사람을


부를수도 없고... 어라? 근데 그러고 보니 그 돼지 아줌마는요? 돼지 아줌마도 춤안춘다고 했나요?"





윌리엄 왕자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에드워드... 왕비마마시다. 네 모친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면 안된다고 몇번을 말해야 하니. 마리아 왕비도


아마 거절할것 같다. 평소엔 노르망디 가문이랑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던 웨섹스 가문도 이번만은 동참하기로


결정한것 같다. 그 노섬벌랜드 백작이 사실 노르망디랑 웨섹스가 화해하려고 결혼시킨 정략 결혼 대상자들이잖냐."





"아아... 그랬죠. 기억납니다. 거위와 하마의 환상적인 사랑의 이중창이었었죠. 아직 같이 살고 있더래요?"





그 말을 대답한것은 윌리엄 왕자가 아니었다.





"불충한 놈들, 배덕한 놈들, 사악한 놈들... 이런 놈들이 판치니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가 이 땅을 유린해도 제 놈들은 자기 영지나 배불리며 배에 기름이나 채울것이다. 오오... 주여 왜 저런


놈들을 내버려주시나이까!!! 내 마누라라는 년을 포함해 모두 저주받아라."





왕은 여전히 분노하여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으로 마구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에드워드 왕자는 그런 왕의 안색을


잠시 살피더니 기회를 봐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특유의 뭔가 꾸미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그만 고정하시옵소서. 소자가 왔잖습니다. 폐하의 고민을 다소 덜어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상심해하지


마시옵소서. 다들 간신배같은 놈들만 판치는 이 세상에도 중앙에 내는 세금을 전쟁전과 동일하게 맞춰서 성실히


납부한 충신도 있습니다."





그의 말에 왕과 윌리엄 왕자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그게 그렇게 놀랄일이야?





"뭐? 성실히 납세를 해? 그것도 전쟁정과 동일한 세금 할당액으로? 아니, 세상 어디에 그런 바보... 아니 충신이


대체 어딨단 말이냐? 믿을수가 없구나."





"혹시 기억나십니까? 지난번 전쟁때 앙주에서 폐하한테 막말했던..."





"기억나지 않는다!"





왕이 대노해서 소리쳤다. 기억하고 있구만 뭘...





"그런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에 있었던 시장을 사칭하던 계집은 기억난다."





"사칭이 아니라 진짜 시장입니다. 폐하께서 임명하셨습니다. 1년간 스스로 시장임을 증명하라고."





"그래, 그래서 증명했다는 거냐?"





"네. 훌룡히 증명했습니다. 도시는 안정화되어 있고 번창하고 있습니다. 중앙에서 요구한 세액도 성실히 납부하여


자신이 진짜 시장임을 증명하였습니다."





"것참... 이런 세상에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다니. 그럼 지금은 어디쯤 내뺐겠구나. 증명을 하면 사형이라고 내가


선언했던걸로 기억한다만."





"아니요. 내빼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곳에 와있습니다."





"너 지금 대체 무슨 소리하냐? 아니, 지금 시장이나 되는 녀석이 제발로 죽여달라고 내 왕궁에 왔다고? 그건 어느


망한 희극극장에서 나오는 얘기더냐?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녀석이라면 이곳에 올리가 없잖느냐. 있다면 어디


내 앞에 데려와 보너라."





"조안 시장님! 폐하께서 알현을 명하십니다."





나는 뭔가 맥빠지는 대화에 실망하다가 화득짝 놀라 옷매무새를 갖추고 왕에게 다가갔다. 1년만에 보는 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조안이 폐하를 뵙습니다."





그러나 왕은 심하게 당황한듯 했다.





"저... 정말로 왔다고?"





그러나 그런 왕을 아랑곳하지 않고 에드워드 왕자는 나에게 말했다.





"시장님, 그간의 있었던 일들을 폐하께 아뢰시길 바랍니다."





나는 담담하게 지난 1년간 내가 참사회를 구성하고 각료들을 선발하여 앙주를 복구한 이야기를 보고하였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마치자 왕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에드워드 웡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그러니깐... 이런 말이냐? 도시를 1년안에 복구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그걸 훌룡히 수행한 다음 자기 죄도 아닌데


처형을 명령받은 짐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제발로 이곳까지 찾아와서 처분해달라는 신하를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말이냐?"





"뭐...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왕과 윌리엄 왕자의 시선이 나에게 맞춰졌다. 마치 무슨 불붙은 보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다. 왕이 말했다.





"아니, 젠장... 내가 어쩌자고 그런 짓을..."





에드워드 왕자가 대답했다.





"처분 승인하시죠. 아시다시피 이것은 판결이 아니라 동의 절차입니다. 처형이 집행된다는 승인만 거칠뿐 재심은


없습니다. 이미 경과를 들으시고 본인이 하신 왕명임을 인정하신 시점에서 처분은 바로 수행되어도 상관없는


절차를 갖추었습니다."





"아... 아들아. 그러니깐 내 말은..."





"그러게 제가 전쟁터에서 말씀드렸죠. 그렇게 함부로 복수를 법으로 못박으시면 안된다고. 제 말을 안들으시더니


이렇게 되신겁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어쩌면 폐하의 유일한 충신일지도 모르는 신하를 처형하신 겁니다. 이제


속이 시원하신가요?"





왕은 말을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윌리엄 왕자가 말했다.





"폐하께서도 사람이시다. 실수를 하실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 조슬랭이 허무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무모한


왕명을 발한것을 폐하는 몹시 후회하셨다. 그리고 네 말을 듣지 않은 것도. 그러니 이제 그만하거라."





그러나 에드워드 왕자는 어께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남자답게 폐하께서도 성의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명을 개똥으로 아는 놈들이


판치는 세상에 지난 1년간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왕께 충성을 다한 이에게는 합당한 대우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짐의 과오였다. 그대, 앙주의 시장에게 사과한다. 그대의 충심을 모르고 의심하고 욕되게 하였구나. 부디 짐을


용서하고 변함없는 충성을 보내주길 바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일국의 가장 고귀한 자가 얼마전까지 거리의 여자였던 나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 나는


조금 감격하여 목이 메이는 것을 느끼며 그의 사과를 받았다.





"신은 폐하의 변함없는 봉신이옵니다. 충성으로 섬기겠습니다."





살짝 세금 좀 덜낼껄 하는 생각이 든건 안자랑. 그리고 왕은 에드워드 왕자를 바라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자, 네가 말한대로 왕으로서, 아비로서, 남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였다. 짐의 광대여. 너의 기발한 발상을


짐에게 고하라. 내 봉신을 모순된 주박에서 구할 방법은 무엇인가?"





에드워드 왕자는 그제서야 모든것을 마쳤다는 듯 흐믓하게 웃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특별사면하세요. 크리스마스잖아요."











1시간 후 나는 왕궁 밖에서 사면장 한장을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지난 1년... 참 이렇게 쉽게 사면될거 무엇을


위한 고생이었던가? 왕자는 이미 다 계획을 했던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몇번 생각했던 것이지만 죽는다는 건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면장을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사면장이 아니라


무기한 집행 유예 통지서다. 지난 1년의 집행유예를 왕이 고지할때까지 무기한 연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냥 주어진것도 아니었다. 집행유예에는 사소한 대가가 따라왔다. 나는 너무 쉽게 해결방안을 말해 어이를


잃던 침묵을 윌리엄 왕세자가 깨며 했던 말을 기억했다.





"아, 그러고 보니 폐하...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조금전까지 고민하시던 문제... 이거 해결될 방법이 눈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응? 크리스마스 파티? 어라... 그러고 보니... 웨섹스와 노르망디에도 속하지 않고, 파티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대귀족이고, 짐에게 충성을 다하는 여성 봉신... 지저스 크라이스트! 저를 버리지 않으셨나이까? 감사합니다.


성 니콜라우스여 선물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받으시기에는 좀 나이가 많지 않으세요? 딱히 착하게 사신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나의 어이없음


에도 왕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순식간에 눈앞에 에드워드 왕자가 미리 준비해뒀다는 듯 바로 내민 무기한


집행유예 통지서를 내 눈앞에 내밀며 말했다.





"충성스런 나의 봉신 앙주 시장이여. 그대를 사면하는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다. 짐을 위해 몇일후에 있을 왕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여 짐의 퍼스트레이디로 춤춰줄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짐은 그대에게 이 사면장에 왕의


서명을 해서 넘겨줄것이다. 어떤가?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딱히 필요하지 않으니깐 그냥 사형 집행하시죠... 라고 말했다가는 너무 분위기를 깨버릴 것 같아서 그냥 분위기에


적당하게 말해버렸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왕은 기뻐서 춤이라도 출것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을 골탕먹이려는 봉신들에게 되려 한방먹있을 있음을 신나게


외쳤다. 그리고 그런 왕을 축하하는 윌리엄 왕세자가 눈빛으로 이만 퇴거를 해도 좋다는 의사와 고맘단 표시를 하자


나는 그대로 듣는둥 마는둥 신나하고 있는 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궁을 나왔다.





뭔가... 무지하게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엄마의 약을 구하려고 주제넘게 나선 일이 어떻게 여기까지 와버린


걸까? 거기다 고민거리까지 하나 더 얹어서 와버렸다. 크리스마스 파티의 참석이라고? 어째 일은 웃음을 팔던


시절과 딱히 달라진것도 없는건가. 이렇게 말하니 살짝 우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나를 움직인건


엄마와의 약속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일에 충실히, 그리고 사람들 앞에 나서길 두려워 말자. 어찌되었건


제멋대로 사형을 언도하고 제멋대로 사면해버린 왕이지만 날 필요로 하는 것은 틀림없는 듯 했다. 그렇다면...


이제 죽음의 그림자는 피한 시점에서... 살아갈 궁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눈깨비가 이는 궁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다가 경비병들에게 제지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엄마보다도 훨씬 나이 많아 보이는 나름 기품있는 귀족 차림의 부인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행운이다. 저렇에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왕을 뵙기를 원하지만 못만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왕의


알현을 하고 사면까지 받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파티의 준비를 고민했다. 그리고 당분간 앙주로 돌아가지


못할수도 있으니, 사면받은 소식을 알리고 여기서의 일을 도와줄 사람도 불러야겠다.











몇일후 앙주에서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마틸다와 루이 첩보관이 런던에 도착했다.





"정말 다행이야. 앙주의 시민들도 네가 가고 나서 다들 우울해했어. 지난 1년간 정신없고 힘들기는 했지만 나름


살만한 시간이라고들 생각했으니깐..."





"그냥 세금 좀 꼼수 부리려고 한짓들인데 뭘... 그리고 그나마도 다 나보다는 각료분들이 고생했고."





"응... 그래도 네가 제일 수고했잖아. 다 공평하신 주님의 은총인가봐. 그 망나니 놈만 빼고."





마틸다는 짐짓 화난듯 날 적극적으로 두둔하지 않은 누군가를 욕하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에라드경도 나름 노력하셨어. 알고보니 감시보고서를 몇번이고 나에 대해 우호적인 내용으로 고쳐써서 사법부에


제출한걸 봤어. 처음에는 불평이 많았지만 그도 이젠 훌룡한 앙주의 참사회 의원이야."





"하, 제 목숨도 걸렸으니 그랬겠지. 뭐 하여간에... 오는 과정에 얘기는 들었어.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고?


우와... 멋지다. 이제 조안 네가 정말 귀족이 된거야? 이 나라의 모든 귀족들이 참석하는 파티에 가게 된거란


말이지? 정말 멋지다."





그러나 루이 첩보관은 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마틸다양, 그건 그렇게 즐겁기만 한 자리는 아닙니다. 오면서 그간의 사정을 캐보았습니다. 지금 시장님은 상당히


미묘한 위치에 계시더군요."





"네에... 첩보관님. 저도 조금은 느끼고 있었어요. 높은 분이든 비천한 이들이건 모두가 짜고선 한명을 골탕먹이려는


상황은 항상 심각한 문제를 만들죠."





"맞습니다. 내일 있을 파티는 이 나라의 정치적 암투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질 일종의 결투장이 될겁니다. 현재


잉글랜드는 두개의 파벌이 존재합니다. 전 왕비의 가문인 노르망디 가문의 베드포드파와 현재 왕비의 가문인


웨섹스 가문의 서머셋파가 그 파벌입니다. 각각의 가문은 이미 오래전 잉글랜드의 국왕을 여럿 배출한 현재의


왕가보다도 명문들이고, 현재의 국왕폐하는 그런 두 파벌간의 오랜 전쟁의 타협점으로서 즉위한 상황이라


입지가 많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국왕께서는 가문들을 그때그때 서로 경쟁시켜서 자신의 위치에 활용하는 방법으로 정국을 안정시켜 왔는데


지난번 전쟁의 승리로 권위가 높아진 국왕 폐하에 대해 각 가문들이 위기를 느낀듯 합니다. 이번 노섬벌랜드 백작의


탈세 문제를 계기로 오랜 원한을 잠시 잊고 국왕을 골탕먹이기로 가문들간에 암묵적인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흐음... 상황은 대충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과도 다르지 않네요. 결국은 바지 사장을 둔 조직의 실세들간의 암투랑


비슷한거네요. 그리고 바지 사장이 자기 자리를 찾으려 하자 상징적인 방식으로 경고를 하려는 거구요.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저도 좀 입장이 간단하지는 않겠네요."





"맞습니다. 시장님께서는 현재 고립무원의 국왕 폐하의 구원 요청을 응한 중립 세력이 된겁니다. 이 상황은 국왕


폐하를 골탕먹이기로 한 두 세력의 입장에서 결코 곱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뭔가 다양한 방법으로 시장님의 기를


꺽거나 골탕먹이려 들거라 생각됩니다."





"과연... 알겠어요. 그래서 첩보관님과 마틸다를 이곳에 모신거예요. 딱히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탁받은 일을 어설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게 도발을 할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일단은 몇가지 예상되는 것들에 대해 대비를 좀 해두고... 그리고 당장 파티의 참석을


준비해야 할것 같아요. 우선은 드레스네요."





내 말에 마틸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여자들의 자존심 싸움이 일어나는 파티에서 기를 확 누르려면 역시


화려한 드레스가 필요한데... 문제는 예산이 너무 없어. 안젤모 영감태기한테 혹시 몰라서 경비 좀 넉넉히 달랬는데


의외로 거절당했어. 그런 방식은 역효과라나 뭐라나. 하여간 남자들이란... 화려한 파리풍의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들이 얼마나 비싼줄 모르나? 거기다 지금은 최고로 화려하게 참가해야 겨우 수준을 맞출수 있을텐데..."





"잠깐만... 그런 방식은 역효과? 그리고 뭐 다른 말 안하셨어?"





"어어... 그러니깐, 뭐 이렇게 말하긴 했어. 거긴 잉글랜드라고. 그걸 누가 모르나? 그리고 잉글랜드 여자들은


뭐 눈도 없는줄 아나?"





"아니야... 의외로 그 말이 맞을수도..."




"응? 무슨 소리야?"





"이렇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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