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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8086 님의 서재입니다.

창녀와 광대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K8086
작품등록일 :
2014.08.06 07:20
최근연재일 :
2014.08.21 00:03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8,252
추천수 :
289
글자수 :
301,785

작성
14.08.0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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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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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38쪽

1화

DUMMY

눈을 떴을때는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11월, 평소보다 일찍 찾아온 겨울의 추위는 얇은 이불 한장으로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가만히 손을 뻗어 등을 보이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 가져갔다. 희미한 숨결이 느껴진다.


아아... 다행이다. 나는 덧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엄마가 일어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도 장사는 헛탕이었다. 먹을것이라곤 저번주에 손님이 돈대신 준 귀리로 끓인 죽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연료마저 부족해 처음 끓인 이후 데우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몸으로 죽그릇을 필사적으로 끌어 안아


보지만 온기를 나눠주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침소리...





"콜록콜록... 조안, 일어났니?"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되도록 명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엄마. 아침 먹어야지. 오늘은 죽이 너무 뜨거울까봐 일부러 식혀뒀어."





허망한 농담이었지만 엄마는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엄마를 바라보았다. 폐결핵을 오랫동안 앓아


수척해졌지만 여전히 엄마는 아름답고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힘들어도 견딜수 있는건


나를 기다려주는 엄마의 온기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와 함께 차가운 귀리죽을 먹고 일을 나설 준비를 했다.





코르셋을 아무리 졸라매어도 큰 의미는 없다. 한동안 배불리 먹은 기억이 없는 내 몸은 비쩍 마를대로 말라


있었다. 이래서야 거리의 여자로서 되려 손님에게 사기치는게 아닐까? 나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머리를 빗겨주며 말했다.





"우리 예쁜 조안... 오늘도 먼 동쪽 나라의 공주님 같구나."





늘 엄마는 딸을 과도하게 칭찬하신다. 저 말에서 그나마 맞는 부분이라면 돌아가신 아빠의 집시 핏줄로 이어진


가무잡잡한 피부가 그나마 동쪽에서 온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얼굴 가득한 주근깨와 푸석푸석한 머리, 그 어디를


봐도 공주님이라고 보긴 무리다. 되려 엄마라면 젊었을적에 그런 소리를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대답했다.





"엄마, 언제나 말하지만 그거 무리."





그러면 엄마는 나처럼 언제나 하는 말을 한다.





"아니야, 우리 조안은 동화속에 나오는 예쁜 공주님처럼 될수 있을꺼야. 지금은 못난 엄마 때문에 거리로 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항상 잊으면 안된단다. 공주님은 항상..."





"자신의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할것,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것, 사람들 앞에 한걸음 나서길 두려워 하지 말것...


항상 잊지 않고 있어. 그러니깐, 이제 일나가 보겠습니다. 바람이 차니깐 창문 열지 말고 집에 있어."





나는 엄마에게 미소를 보내며 집을 나섰다. 언젠가 어렸을적에는 엄마의 저런 동화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다짐이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물론 그 취향에 동화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아빠없이


일생동안 나를 키우며 가진 엄마의 삶의 철학이다. 엄마의 직업을 물려받은 입장에서 보자면... 딱히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닌 바른 이야기다. 어떤 손님이라도 성심성의것 자신을 위해 봉사하며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걸 싫어하진


않으니깐... 엄마의 말은 거리의 여자인 나에게 나름 현실적인 조언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최대한 그 원칙을


지키며 살고자 하였다.





내가 처음 병에 걸려 피를 토하는 엄마 대신 일을 나선건 3년 전이었다. 엄마 몰래 나간 일이었고, 처음으로 손님을


받고 받은 돈으로 엄마에게 빵을 사갔을때 엄마는 오열했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순 없었다. 엄마는 더이상 일을


할수 없었고 가족도 의지할곳도 없는 우리가 살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나는 애써 엄마를 위로하며 납득시켰다.


처음에는 한사코 말리던 엄마도 결국은 체념하였다. 그리고 얼마동안 우리의 삶은 괜찮았다. 이곳 앙주를 들리는


상인들은 어린 여자들에게 두둑히 챙긴 이익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나이가 어린 나는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지만 나름 꾸준히 일을 할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이곳 앙주에 지갑이 두둑한 상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경계라는 점 덕분에 상인들이


몰려들기 좋았던 입지조건은 동시에 전쟁이 나면 최격전지가 된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포위가 몇달을 끌지 않고 시장이 항복하여 봉신이 되거나 아니면 영지를


빼앗기고 추방당하는 것으로 전쟁은 종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성벽을 바라보며 잠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병사에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총독님? 오늘은 좀 전황이 괜찮은가요?"





초로의 병사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총독이 아니라, 도제라고 몇번을 말해야 알겠니? 잘들어라, 조안. 나는 그저 백작령을 다스리는 총독보다 한참


위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베니스의 전임 도제, 안젤모 로시니다. 잊지 말길 바란다."





안젤모 영감님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마을의 구두수선공인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였다. 옛날에 젊었을때는


고향에서 상인으로 이름을 날렸다는데 지금은 그저 마을에서 이런저런 허풍쟁이 노인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지만 나는 그가 싫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성당에서 미사드리는 것 조차 거부당하는 우리같은 여자들도


거리낌없이 대해주는 몇안되는 사람이니깐. 그리고 가끔 그가 들려주는 먼 세계를 모험한 이야기며 조금 복잡해


보이는 세금에 대한 주장은 그냥 듣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 도제님, 제가 또 몰라뵈었습니다. 실례를 용서하시길..."





"관대히 넘기겠다. 아, 그리고 전황은 변함없다. 이제 더이상 원군이 오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것 같구나.


여기저기 보이는 건 사자의 깃발들뿐... 백합은 겨울에 쉽게 피지 않는 법이지. 시장 녀석은 이제 슬슬 결정을


해야 할것 같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지만 절망적인 예상이었다. 포위가 진행된지도 벌써 반년, 여러차례 원군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도하는 원군은 오는 족족 미친 왕자가 이끄는 적의 기사들에게 박살이 나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물러나곤 했다. 외부에서 오는 물자가 끊긴지도 오래... 이제 나같은 거리의 여자가


아니라 병사들조차도 굶주리기 직전이라고 들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른 끝났으면 좋겠네요."





진심이었다. 이기든 지든 얼른 마쳤으면 좋겠다. 나는 귀리죽 몇모금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복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가던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안젤모 영감님이 소리쳤다.





"조안, 심부름 한가지만 해라."





"네? 무슨일인데요?"





"가는 길에 여기 쓰레기좀 버려다오. 포위해서 말려죽이려는 잉글랜드 놈들이 왜 성벽으로 온다는 건지, 이곳


경비대장의 텅빈 머리속이 궁금하지만, 어찌되었던 이곳을 비울수 없구나. 그리고 쓰레기를 두면 나중에


점호때 한소리 들을것 같다. 부탁 좀 하자."





"네 던지세요."





나는 손을 벌렸고 그가 꾸러미 같은 것을 던졌다. 길을 걸으며 그가 던진 넝마들 같은 걸 보았다. 문득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안에는 반토막난 빵이 하나 들어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등을 돌린채 성벽 너머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길을 걸었다.











시내에 나왔지만 손님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야간에 경비병들의 통금이 있어 함부러 늦게까지 일을 할수도 없다.


오늘은 영감님의 호의 덕분에 조그만 빵이라도 있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나는 길거리를 걸으며 손님들을


모으려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필립 선생님?"





의사 차림의 남자가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며 말했다.





"조안이구나. 여기서 뭐하는 거냐? 지금 시청 근처에 함부러 다니면 첩자로 몰릴수도 있단 소리 못들었느냐?"





"알고 있어요. 하지만 외곽에서는 도저히 손님을 찾을수가 없어서..."





"그래도 위험하다. 다짜고짜 체포되는 것 말고도 지금은 유행병도 돈다는 소문이 있다. 벌써 6개월째 이 미친


포위가 안풀리니 어쩔수 없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유행병까지 돈다면 모두 죽는 수 밖에 없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와 같이 있거라."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중년 남자의 이름은 필립. 마을의 의사였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들만 상대하던


의사들과는 달리 전에 성직자였다던 그는 우리 같은 거리의 여자들도 돌봐주는 마음씨 좋은 분이었다. 그는


망설이는 나를 걱정스럽게 보며 말했다.





"답답하겠구나. 그래, 너는 생계가 달린 일이니 맘대로 할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저 멍청한 시장 녀석만


죽어버리면 다 해결될 일인데 이 무슨 지옥인건지..."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그렇다. 사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영토 분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이 유독 이곳 앙주에서 이런 처절한 포위전이 되버린건 우리 시장의 탓이 컸다. 이곳 앙주는 원래


잉글랜드의 땅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물려받은 공작의 딸은 프랑스에서 온 왕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그 왕자를 지원하여 그가 숙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왕은 즉위 이후 연상이며


촌스럽고 간섭많은 잉글랜드 출신의 아내가 싫어졌다. 하지만 앙주의 영지를 잃는 것은 아까웠다. 그는 은밀히


첩보관을 보내 아내를 살해할 사람들을 모으게 했고 그걸 가장 주동적으로 나섰던 것이 우리 시장이였다고 한다.





계획은 발각되었지만 어찌되었던 왕비와 왕비가 낳은 왕자가 살해당하고, 그 영지를 손에 넣은 프랑스 국왕은


일처리를 주동적으로 해준 우리 시장에게 앙주 백작령을 주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잉글랜드를 분노하게 했다.


앙주 공작의 유복자로 태어나 모진 고생을 하고 늦은 나이에 잉글랜드의 왕이 된 그는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누이의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초기 잉글랜드는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첫 출전한 잉글랜드의


8번째 왕자, 소위 미친 왕자라 불리던 그의 대활약으로 프랑스군을 연달아 물리치고 앙주의 대부분을 탈환했다.





두려움에 가득찬 우리 시장은 이곳 앙주의 성에 틀어박혀 농성전을 벌였다. 평소라면 어차피 경계에 있는 영주들이


다들 그렇듯이 잉글랜드에 항복하고 그의 봉신이 되는 걸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살해당한 누이와 각별한 사이였던


잉글랜드 국왕은 우리 시장은 절대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하하고 앙주를 겹겹이 포위하였다. 처음에는 시장은


물론 앙주의 시민들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본토에서 멀리 원정을 나온 잉글랜드군이 오랫동안 포위를 유지하지


못하리라 여겼고, 지척에 있는 프랑스의 원군이 오면 곧 퇴각할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원군들은 도착하였다. 하지만 포위는 풀리지 않았다. 복수를 다짐하듯 앙주를 포위하고 있던 잉글랜드군은 미친


왕자의 지휘하에 도착하는 원군들을 연달아 격파했고, 어느새 시간은 6개월이 지나버렸다. 예상치 못하게 오래


포위전이 이어지자 식량이 동나기 시작했고, 결국 한계를 느낀 시장은 강화을 청하는 사자를 보냈다. 하지만


잉글랜드 국왕의 말은 앙주에 절망을 안겨주었다.





"강화? 개소리 집어치워라. 앙주가 택할 유일한 선택은 오로지 무조건 항복뿐이다. 만약 올해가 가기전에 앙주의


시장이 앙주의 항복을 의미하는 성문의 열쇠를 들고 혼자 와서 항복한다면 그놈의 목숨으로 항복을 허락하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년에 이 앙주에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살아남지 못할것이다. 서기관! 기록해라. 이것은


잉글랜드의 국왕이 전시에 정식으로 선포한 군령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어길수 없도록 기록하여 반드시 실행


되도록 성문화시켜라!"





앙주의 고위층들은 다들 아연실색했다. 결론적으로 영주가 제발로 항복을 하러 오면 영주만 죽고 끝나지만 오지


않는다면 앙주의 모듬 백성이 죽는다. 참사회의 각료들은 그 말을 듣고 시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은 분노하며 경비병들에게 자신의 주변을 철통처럼 지킬것을 명하고 방에 틀어박혀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몇일후면 12월이다. 올해가 끝나가고 있다. 나는 그럴 의무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시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살짝 두둔하며 말했다.





"시장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죠.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그래도 저희 같은 여자들에게 관대하신 분입니다."





"흥, 그냥 호색한일 뿐이다. 그 녀석이 정말 너희같은 불쌍한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너희들을 돕도록 시의


행정을 정비해야지, 매춘부를 집무실에 들이는 짓으로 적선하는 걸 도덕의 귀감인양 말하지는 않을것이다."





여전히 냉소적인 필립 선생님의 말에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말이 너무 심하시군요. 필립 선생님."





그곳에는 6개월째 포위당한곳에서 보기 드물게 살집이 있고 멋진 드레스를 걸친 여자아이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 마틸다."





"안녕, 조안. 늘 그렇듯이 꾀죄죄하구나. 옷꼬라지 하고는... 그리고 필립 선생님, 옛 정을 생각해서 지금 하신


말씀을 경비대에 고하지는 않겠지만 말조심해주세요. 시장님은 선생에게 그렇게 모욕당할분이 아니세요. 지금은


좀 상황이 안좋아 겁먹은 새처럼 제 품에서 위로 받으시고는 있지만 곧 기력을 되찾고 일어서실 꺼예요."





그녀의 이름은 마틸다. 앙주에서 제일 잘나가는 창부이자 내 어린시절의 친구였다. 어렸을때 많이 돌봐준 필립


선생에게 더는 함부로 대들지 않지만 그녀의 태도는 위압적이었다.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녀는 나처럼 돈 몇푼에


뜨내기들에게 몸을 파는 거리의 여자가 아니라 시장의 공식적인 정부였으니깐. 나는 시장의 눈에 띄어 출세한


이후 옛날과 달라진 그녀의 태도를 조금 섭섭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행복하고 풍족하게 잘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필립 선생님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쯧쯧쯧... 마치 백작부인이라도 된것처럼 구는구나. 마틸다, 충고하건데 시장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거라. 그


녀석 건강이 안좋다는 소문이 들리더구나. 잘못해서 사고라도 났다가는 너도 화를 입을수 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선생님은 그만 신경끄시고 길거리에 뒹구는 걸인들이나 챙겨보시죠. 여기저기 토사물이


넘쳐서 제대로 걸어다닐수가 없을 정도니... 그럼 전 이만."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시장의 관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두른 예쁜 드레스와


장신구들을 부러워하다 필립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선생님의 말처럼 거리에는 여기저기


토사물들이 널려 있었고 몸이 안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조금 일찍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오늘은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다행히 총독님이 빵을... 엄마!!!!!!"





엄마는 침대가 아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온통 토사물과 검붉게 토한 피가 웅덩이를 이뤘다.


나는 엄마를 부여안고 필사적으로 일으키며 상세를 살폈다. 의식은 없다. 하지만 다행히 희미하게 숨을 쉬고는


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필사적으로 토사물들을 딱아내고 엄마를 침대에 올린


다음 밖으로 달려나가 필립 선생님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선생님은 빈민촌에서 금방 찾을수 있었고, 몇몇


급한 환자들을 봐준 뒤 고맙게도 엄마를 위해 왕진을 달려려와주셨다.





하지만... 엄마를 진찰하는 선생님의 표정은 무거웠다. 그리고 무겁게 말씀하셨다.





"지금 유행하는 병과 동일한 증상이다. 역시 오염된 식수가 원인이었나 보군. 어제까지만 해도 소문이었는데


오늘 잇달아 환자들이 발생했다. 너무 오래 포위되고 시체와 오염된 물이 주변에 널려 있던 탓이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낫죠? 엄마를 살려주세요. 부탁드려요..."





"약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어설픈 허브들이 아닌 제대로 제조된 약이..."





"그걸 어디서 구할수 있나요? 알려주세요."





"시장관저에도, 시립병원에도, 경비대의 의료소에도 있다. 하지만 구할수는 없단다. 얼마 남지 않은 약이어서


쉽게 내주지도 않으려고 하고 있고, 내준다고 해도 우리같은 가난뱅이들은 상상도 할수 없는 비싼 금액을


부르고 있단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절망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선생님은 미안한 표정으로 환자를 돌볼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몇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어렵게 발걸음을 때셨다. 나는 의식이 희미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부디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엄마만 살려준다면 그 무엇이든 받치겠습니다. 일생동안 교회에 발을


들일수도 없었던 더러운 몸이지만 부디 저를 벌하시고 엄마에겐 구원을 주세요..."





엄마가 무의식속에 살짝 내 손을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내게 쉽게 허락되지 않는


기적을 간절히 바라며 엄마의 몸을 끌어안고 밤새 울었다.








거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몸이 안좋은 엄마를 두고 다시 거리로 나와야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절박했다. 이제는 끼니가 아닌 약을 살돈이... 그것도 아주 큰돈이 필요했다. 선생님이 말해준 금액은 내가 일생


쥐어본적도 없는 엄청난 돈이었다. 몸을 대체 몇번을 팔아야 그 돈을 손에 쥘수 있을까... 길거리에 여기저기


스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을 깨닭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불만과 원성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할, 포위만 풀리면 이런 약따위 얼마든지 들일수 있잖아."





"아니, 애초에 포위가 되지만 않았으면 이런 상황이 되지도 않았어."





"시장 녀석, 제 목숨만 보전하려고 시민들을 모두 죽일셈인가? 다 지가 저지른 일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조금이라도 건강한 사람들은 모이면 다들 시장과 도시의 참사회를 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사도


쉽게 되지 않는다. 저런 분노한 사람들에게 어설픈 유혹따윈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솔직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엄마는 항상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남을 위해 사록 남들보다 한발작 내딛는걸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무엇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봐! 들었어? 시장이 죽었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녀석이 몰래 잉글랜드에 가서 항복하고 목이라도 잘린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그 녀석 어제 나이 어린 정부랑 뒹굴다 돌연사해버렸데."





"이런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참사회에서 광장에 시민들에게 모이라고 공고했어. 어서 가보자. 뭔가 발표하려나봐."





"그래? 어서 가보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광장을 향해 몰려갔다. 나도 멍한 정신에 사람들의 인파에 휩쓸려 어느새 시청앞의 광장에


다다랐다. 이미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시청앞의 연단을 보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뒤에서 누군가 등을 치는 것을 느끼고 돌아봤다.





"아, 총독님."





"도제라니깐! 넌 항상 틀리는구나, 조안. 너도 그 돼지 새끼가 죽은거 구경하러 온거냐?"





안젤모 영감님은 비번인지 평상복 차림으로 나를 보며 냉소적으로 시장을 욕하고 있었다. 나는 영감님에게 물었다.





"혹시 그러면 바깥에 잉글랜드군은 어떻게 되나요? 항복을 요구한 시장이 죽었으니 이제 포위를 풀고 집에 돌아


가나요?"





"흥, 그럴리가 있냐? 조안, 너는 높은 자리에 있는 녀석들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알량한 명예를 위해서라면


짐승같은 짓도 거리낌없이 하는 놈들이 귀족들이란 녀석이다. 죽은 시장을 살려서라도 항복하러 오라고


요구할지도 모르지."





"설마 그렇게까지 할려구요?"





"일단 기다려 보자. 이제 곧 참사회에서 발표를 하려나 보다."





고개를 돌려 다시 연단을 바라보자 일군의 사람들이 연단에 오르고 있었다. 좋은 옷에 장신구들... 도시의 귀족들인


참사회의 의원들이다. 그중에 대표로 선 사람이 부담스러운 수많은 시민들의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한걸음 나가


소리쳤다.





"어제, 시장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사인은... 차마 밝히기 창피하지만 어린 정부와 정사를 나누다 갑자기


돌연사 해버린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야유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곧 연단에 마틸다가 공꽁 묶이고 산발이 된 머리를 나부끼며 끌려왔다.


사람들은 마틸다를 욕하고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마틸다는 퉁퉁부은 눈으로 엉엉울며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그녀를 시장의 정부가 아닌 남자들의 생명을 갈취한 요괴 취급했다. 그리고 한동안 소란이


일다 잠잠해지자 어느 시민이 물었다.





"그러면, 잉글랜드군의 항복 요구조건은 어떻게 되는 것이요? 항복할 시장이 죽었으니 이제 포위가 풀리는


것이요? 이제 전쟁과 포위가 끝나는 것이요?"





내가 궁금하던 것도 그것이었다. 연단의 앞에선 참사회의 대표는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잉글랜드왕의 요구는 성문화된 전시명령으로 요구되었습니다. 그는 항복하고 저항할 대상을 앙주의 시장으로


지명했습니다. 그 명령은 전시에는 수용되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반대 급부로 내건 조건, 즉 우리 앙주의


멸절로 이어지지 항복할 사람이 없다고 철회되지 않습니다."





순간 시민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참사회의 대표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이미 포위는 한계에 달했습니다. 시장님은 경비대의 힘을 빌어 항복하러 나가 처형되는


것을 거부해왔지만... 새로운 시장은 더 그럴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항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깥에


잉글랜드왕에게 항복을 하러갈 새로운 시장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 모인 시민 여러분. 그 누구라도 좋습니다. 혹시 이 위기에 빠진 앙주를 위해 새로운 시장이 되실 분이


없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광장안에 욕설들과 아우성이 울려퍼졌다.





"빌어먹을 시장 새끼! 책임지고 죽어야 할것 아냐!"





"거기 있는 참사회 녀석들은 뱃대지가 기름이 찼잖아. 온갖 사치를 다 누린 네놈들이 책임져!"





"어떤 미친 녀석이 죽을게 뻔한 시장직을 맡으러 간단 말이야! 제정신이야?"





광장안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참사회를 향해 난동을 부렸고 경비대가 필사적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시민들의 분노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참사회의 대표는 여전히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군가 시장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몰살될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 다 죽을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자격도 요구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자신이


시장이 되겠다고 의사표시만 해주시면 됩니다. 만약에 그렇게 해준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나와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발걸음을 돌리려고 한 순간 나는 멈춰서야 했다. 만약에... 터무니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시장이 된다면? 내가 지금 시장이 된다고 나서면... 어쩌면 엄마의 병을 고칠 약을


얻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퍼득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연단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도 시장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내가 나선다면?


내가 시장이 되겠다고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를 살릴수 있다면... 내게 다른 방법 따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돌아가자, 조안. 저런 빌어먹을 난봉질을 보기 역겹구나. 어서 집에 돌아... 조안! 너 지금 뭐하는 거냐!"





총독님이 소리쳤다. 그리고 잠시 그의 놀란 목소리에 광장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됐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내 앞에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길이


열리고 여기저기서 들리던 고성이 낮아져갔다. 그리고 한층 수월하게 연단의 앞에 걸어간 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참사회의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시장을 하면 안될까요?"





의원들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묵이 휩쌓인 군중들도 나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없었다.


나는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가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금 똑똑히 물었다.





"주제넘은 짓인것 같지만... 아무도 원치 않으신다면, 그래서 가능하다면, 제가 앙주의 시장을 해도 괞찮을까요?"





겨우 정신을 차린듯 참사회의 대표는 대답했다.





"지금... 시장이 되겠다고 했습니까? 진심이신가요? 분명히 우리는 설명했습니다. 시장이 되면 목숨이..."





"네 진심입니다. 제가 시장이 될께요. 그러니깐... 그러니깐... 부탁드려요. 저에게 약을 주세요. 엄마의 병을


치료할수 있도록 약을 주세요."





그는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시장을 맡겠다는 겁니까? 겨우 약을 구하려고? 겨우 그런 이유로 목숨을 버리겠단 겁니까?"





나는 그의 경악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좀 부족하다는 의미인가? 다른 것도 더 들어줄수 있다는 뜻인가?


나는 그런 그의 기분을 배려하고 싶었지만 워낙에 다급하여 다른 생각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침 내 시선에 들어온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가능하다면 쟤도 좀 풀어주세요. 그럼 되나요?"





엉망진창이 된 마틸다는 참사회의 대표와 다름없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참사회의 대표는 잠시


머리를 잡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참사회장으로 잠시 오시죠."





그는 나를 이끌었고 나는 군중들의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소리를 뒤로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건 당신 개인의 목숨뿐이 아닌 앙주의 시민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나는 참사회장의 화려한 회의장에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서 나를 둘러싼 참사회 의원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어떤 의원은 나에게 시장 수락의 의사를 계속 확인하는 대표를 억지로 만류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다들,


일말의 의심과 안도와 우려가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행여나 목숨을 구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시장을 수락하는 순간 사형은


확정된거나 다름 없습니다. 본인이 아니라고 우기거나, 여자라고 해서 잉글랜드의 국왕이 봐주리란 생각은


버리는게 좋을겁니다. 그리고... 직면한 죽음의 순간에서 시장임을 부인하거나 억울하다고 소리치면 당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앙주가 몰살될수도 있습니다. 우린 그런 상황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앙주를 위해


희생할 생각이 없다면 지금 그만둬 주시길 바랍니다."





그의 우려는 이해할만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죄송해요. 전 그냥 천한 거리의 여자라 그런 복잡한 건 모르겠어요. 다만, 전 병에 걸린 엄마를 살리고 싶어요.


설사 그것이 제 죽음을 대가로 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엄마가 죽는건 두고 볼수는 없어요. 지금 이 시간에도


엄마는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우려하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제가


시장이 되서 잉글랜드의 왕에게 가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약을 주세요. 부탁드려요."





나의 말에 그는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말했다.





"제 이름은 루이 느베리, 앙주의 첩보관입니다. 앙주의 참사회를 대표하여 당신을 앙주의 7대 시장으로 정식으로


인정하고 당신에게 예를 표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내게 깊게 목례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 모든 의원들도 그를 따라 모자를 벗고 예를 올렸다.


왠지 대신 죗값을 치루기 위해 된 시장이지만 조금은 부담스럽고 조금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약제창고에서 시장님이 원하시는 약재를 내어드려라."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곧 부담스러울 만큼 엄청나게 많은 약봉지와 그것을 든


참사회의 직원들은 애써 마다하는 나를 따라 집까지 들어다 주겠다며 동행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서둘러 의원들


에게 인사를 마치고 참사회장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군중들은 해산하지 않고 모여 있었고 나를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중에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것은 마틸다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녀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여전히 산발인 머리로 나를 부여 안고 울먹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포위가 아니면 그분이 나같은 걸 상대나 하셨을리가 없었겠지. 그래서 총애를 받으면서 나쁜 마음을 먹었어.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말기를... 그와 같이 있으면 나까지도 괜히 귀족이 된것 같았으니깐. 그래서 널


무시했어. 널보면 자꾸 옛날의 내 초라한 모습이 떠올랐으니깐... 그래도... 진심으로 널 미워하진 않았어.


날 살리려고 네가 죽길 바라지도 않았어..."





나는 그런 그녀를 도닥이며 말해주었다.





"그러게 언니들이 가르쳐준대로 나쁜 남자한테 너무 빠지면 신세 망친다니깐... 나는 괜찮지만 동생들한테는


좀 잘해주면 좋았잖아. 그리고, 내가 시장을 하겠다고 한건 널 살리려고만 한건 아니야. 그러니 너무 미안해할


필요없어. 나 없으면 대신 거리의 동생들 좀 네가 잘 돌봐줘."





그녀는 더 크게 오열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 다가온건 총독님이었다.





"이런 처죽인 프랑스 놈들... 지들이 잘못하고 너한테 모든 잘못을 다 뒤집어 씌우겠다는 수작을 부리더냐?


이런 양아치 같은 짓거리는 제노바 놈들도 안해. 가자! 조안, 이런 개같은 시장자리 니가 책임질 이유 없다.


이건 명백히 부당계약이야. 어서 참사회에 가서 안하겠다고 해버려!"





"총독님... 누군가는 책임져야 해요."





"총독이 아니라 도제다. 그렇다면 내가 해주지. 내가 이 망할놈의 저주받은 도시의 시장을 해주겠다. 나같은


늙은이라면 죽는것도 별 문제는 안되겠지."





나는 흥분해서 소리치는 그의 손을 가만히 쥐며 말했다.





"이미 많이 받았어요. 고마워요 도제님... 이제 저도 한가지쯤은 보답해야죠... 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마음은 고맙지만, 그 뜻은 거둬주세요."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울먹이며 말했다.





"이런 망할...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같으니... 이런게 어딨어."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며 그를 도닥이며 잠시 밀어두고 말을 건건 필립 선생이었다.





"이탈리아 영감, 예를 갖춰라. 이제 시장님이시다. 그리고 조안, 아니 시장님... 진심이십니까?"





"네... 제 의지로 결정한 일이에요. 그리고 약을 구했어요. 같이 가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는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웅성거리는 군중들과 나를 위해


슬퍼해주는 몇몇 지인을 뒤로 하고 필립 선생과 함께 집으로 달려갔다. 이제 엄마를 살릴수 있다. 나는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엄마를 살릴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황급히 달려 집에 도착하고 계단을


올라 문을 박차듯 밀고 들어갔다.





"엄마, 약을 구했어. 어서..."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약을 떨어뜨렸다. 엄마의 상태는 의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푸르게 변색되어가는 피부, 딱딱하게 굳어버린 팔다리, 그리고 집안에 도는 죽음의 기운...


나는 망연자실해서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았다. 뒤이어 달려온 필립 선생은 서둘러 엄마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피고


이런저런 손을 쓰려하고 있었지만... 이미 결과는 결정되었다. 너무 늦어 버렸다. 왜였을까? 갑자기 엄마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아니야, 우리 조안은 동화속에 나오는 예쁜 공주님처럼 될수 있을꺼야. 지금은 못난 엄마 때문에 거리로 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항상 잊으면 안된단다. 공주님은 항상..."





"자신의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할것,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것, 사람들 앞에 한걸음 나서길 두려워 하지 말것...


항상 잊지 않고 있어. 그러니깐, 이제 일나가 보겠습니다. 바람이 차니깐 창문 열지 말고 집에 있어."





엄마... 나 사람들 앞에 두려움 없이 나섰어. 나보다 엄마를 위해... 근데... 너무 늦어 버린것 같아.











장례식은 화려하게 치뤄졌다. 시의 참사회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듯 아낌없이 돈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장례식을 치루도록 도와주었다. 원래대로라면 거리의 여자였던 엄마가 교회의 무덤에 들어가는


건 상상할수 없겠지만 그것도 특별히 허락되었다. 그리고 매장을 마치고 망연자실하게 무덤가에 서있는 나를


향해 참사회의 의원들이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대표였던 루이 느베리가 입을 열었다.





"고인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지금 많이 마음이 혼란스러우신줄은 알지만... 다시 한번 확인을 드려야 할듯 합니다.


이제 항복의 기한이 몇일 남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바꾸거나 번복하는..."





"내일..."





"네?"





"내일 나가겠습니다. 잉글랜드의 왕에게 항복의 뜻을 전하러. 준비해주세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뒤에서 의원들의 안도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마 내가 시장이


되길 거부하리라 우려했던 듯 하다. 물론, 안젤모 영감님은 당연히 시장직 수락도 무효라고 길길이 날뛰셨지만...


그건 내쪽에서 바라지 않는다. 이제 너무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혼자서를 살아갈 이유를


찾을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을 택하는게


좋을 것이리라. 그렇게 마음먹자 기분이 한결 편해졌다.





다음날 나는 평생동안 한번도 입어본적이 없는 비단으로 된 깔끔하게 재단되고 다려진 드레스를 차려 입었다.


그리고 간단한 화장과 장신구... 거울을 본 내 모습은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를 도와주던


마틸다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목걸이는 너 주고 갈까? 어차피 목잘리는데 목걸이는 필요없잖아."





하지만 내 농담은 그녀를 더욱더 통곡하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녀를 애써 달래주며 방을 나섰다. 아마도 거의


모든 앙주의 시민들로 짐작되는 군중들이 성문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대단히 불편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으로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나에게 미리 기다리고 있던 루이 느베리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한가지 물건을 건냈다. 둥근 철판에 자루 같은게 달린... 마치...





"좋은 프라이팬이네요. 근데 이걸 왜?"





"앙주의 성문 열쇠입니다."





"아, 실례... 평소에도 이걸로 문열고 닫았나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앙주의 시정을 모두 총괄한다는... 실제로 성문에 열쇠구멍 같은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몇몇 사람들이 애써 키득거리는 웃음을 참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다른 제가 준비할것이나 알아둬야 할것이 있나요?"





"딱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모든 앙주의 시민을 대표해서... 시장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그 말을 마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말이 마치기 무섭게 뒤에 있는 모든 의원들도


그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도 독같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나에게 예를 표했다.


뭔가 장관이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내 밑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 정말로 시장이 된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성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마음의 동요를


다잡았다. 그리고 엄마의 말을 상기했다.





'주어진 일을 충실히 행할것.'





나는 시장이니깐... 임시이긴 하지만...





'나보다 다른사람들을 위해 살것.'





내게 주어진 책임을 지고 시민들을 살려야겠지?





'사람들 앞에 한걸음 나서길 두려워 하지 말것.'





그러니깐... 가는 거야. 처음의 한걸음을... 수많은 사람들보다 먼저...





나는 한걸음을 내딛었다. 별 의미없이 한발짝 내딛은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뭔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고 큰 일을


해낸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한걸음 한걸음이 곧 엄마를 다시 만나는 지름길이 되겠지?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며 아직도 무릎을 꿇은 모든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모두들 좋은 아침, 다녀오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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