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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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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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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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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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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96. 제냐의 경우

DUMMY

*


퀘스트의 중심에 있는 제냐 킴은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일단 보스몹을 척살했다.


퍽.


비스트 슬레이어는 그 이름대로. 짐승을 때려잡기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아이템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강력한 몬스터들을 잡아먹으면 먹을수록 점차 검이 강력해진다는 점이다.


검이 몬스터를 ‘잡아먹는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냐가 느끼기에는 마치 그렇게 여겨진다. 한 마리 한 마리, 베어나갈 때마다 마치 경험치를 얻어 플레이어 레벨이 상승하듯이 검의 스탯 역시 높아지고 있었으니까.


무기의 스탯은 공격력과 내구도로 이루어진다.


그 외 스탯들이 여러가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두 가지이다.


‘공격력’ 스탯을 자세하게 까보면, 복잡할 정도로 상세한 수치들이 들어가 있었다. A의 힘으로 내리쳤을 때. 가로로 베었을 때. 대각선 베기를 했을 때. 찔렀을 때.


어쨌건 숫자가 높은 게, 좋은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무기의 공격력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리고 개중에서, 사용자가 주로 사용하는 공격 방식들이 조금 더 굵은 글씨로 보여지게 된다.


보통


[비스트 슬레이어 : 3급


공격력:2307.422

내구도:81]


위와 같은 항목들이 아이템의 상세 스탯 창을 열면 나오게 되어 있었고.

개중에서 공격력 란을 클릭해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욱 상세한 데이터가 주룩 나열된다.


[비스트 슬레이어, 공격력


상하참 : 3101.45

좌우참 : 1704.311

우좌참 : 1701.305

하상참 : 1474.51


좌상단-우하단 : 3211.78

우상단-좌하단 : 3104.45

우하단-좌상단 : 1484.11

좌하단-우상단 : 1499.12


일점 찌르기 : 4104.987]


각 방향별로 베는 공격을 할 때, 찌르기 공격을 할 때의 공격력이 모두 달랐다. 그리고 스킬 따위를 덧씌웠을 때의 공격력이 또 달랐고.

복잡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아이템의 공격력은 사용자가 누구냐, 그리고 사용자의 검술 스킬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에 따라서 계속 달라지는 셈이었다.


여러 방식의 공격법들 중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격 방식은 굵은 글씨로 강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공격 방식의 ‘공격력’ 수치가, 가중치를 더욱 얻어서 평균값을 낼 때 더 많이 반영이 되는 식이었다.


만일 비스트 슬레이어를 가지고 제냐 킴이 찌르기 공격만을 사용한다고 한다면. 다른 공격법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비스트 슬레이어의 현재 공격력은 일점 찌르기의 공격력 수치인 4104.987이 적용이 되어 정확히 일치하게 되리라.


각종 스킬을 사용했을 때의 공격력 수치 역시 적용이 되었고.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때의 공격력 변화 역시 아이템 스탯에 영향을 미쳤다.

한 아이템의 공격력치는 그런 식으로 정밀한 계산을 통해서 정해지게 된다. 좋은 무기와 좋은 사용자. 두 가지가 있어야 궁극적으로 강력한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내구력 역시 중요했다. 내구력 수치 역시 상세 스탯 창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양하게 세분화된 항목들이 주루룩 나열이 된다.


쉽게 이해하자면, 상황별로 어느 정도의 충격을 검이 버틸 수 있는가였다. 이 또한 전체적으로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정확히 말해 100에 가까울수록 좋았다. 80을 넘는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강도를 자랑하는 셈이었다. 이 또한 플레이어 스탯과 마찬가지로 높이 오를수록. 내구도 수치 1이 오르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90 이상을 기록한다면, 분명 전설의 무구 따위로 알려지게 되리라. 장비들 중에서 그러한 내구도 수치를 갖는다면.


내구도가 약하면, 명목상 보여지는 공격력 수치가 그 높음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통상적으로 4, 50이상만 되더라도 공격력 수치에 적혀 있는 위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었고. 그보다 높다면 보다 과격하게 아이템을 사용하고. 스킬들 따위를 덧씌워서 명목상 수치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뽑아내는 일 역시 가능했다.


80이라는 건 아주 준수한 수치였다. 충분히 양질의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었고. 제냐가 마음 놓고 파이어 인챈트니, 썬더 인챈트니를 사용하면서 뇌검과 화검으로 스킬을 써먹을 수 있는 이유였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투박하게 생겼지만 상당히 예리했고. 또 단단했다. MP를 머금는 반응성, 수용성 역시 뛰어난 편이었고. 그것은 아이템 창에 수치로서 나오는 건 아니었고. 직접 플레이어가 사용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면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아이템의 희귀도를 뜻하는 ‘급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MP에 대한 반응성이 좋을 확률이 높았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에서는 희귀한 광물이 가치를 갖고. 또한 그런 소재가 MP를 수용하는 수용성, 혹은 반응성이 높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논리는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그럴싸하게 맞는 확인법이다.


“후.”


가,


볍게 숨을 뱉는다.


제냐는 아직도 멸망하지 않은 세계에서 보스 몬스터 한 마리를 죽인 참이다.


칼날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게임을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한 가지 행위를 반복하다보면 점점 기술이 는다. 좋든, 싫든.


나이를 먹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분야에서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한맺힌 울음을 지으며 반박할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할테다. 그저 계속하는 것만으로 실력이 늘지 않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반론을 다시 제기하자면. 불가능한 말이다. 사람이라는 건 계속해서 집중해서 반복하면 학습을 하게 되어 있다. 좋든, 싫든.


실력이 잘 늘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감각이 늘어나는 실력을 감지할 수 있을만큼 좋지 못하기에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실력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는 걸 원한다면. 그만한 시간을 투자하면 될 일이며.

세계에서 놀고는 하는 여러 예체능 분야의 기술자들은. 대개 가용한 시간을 전부 어떤 분야의 작업에 투자해서 연습에 연습을 반복한다. 그 시간이야말로 실력이 늘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다른 길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비련의 시나리오 역시 마찬가지이고. 게임에 대한 컨트롤 실력. 게임 내의 수치가 아닌 외부적인 피지컬 요소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건 제냐는 게임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집중력도 좋은 편이고. 재능도 좋은 편인 모양이었다. 그 자신은 그 사실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말이다.


게임에 재능이 있다거나 높다거나. 그게 어디에 써먹을만한 사실이겠는가. 사실 게임에서 나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얘기에 불과했다.

로그아웃을 하면 현실이 펼쳐져 있다. 그는 지금 여전히, 자신의 원룸 방 안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면 어쩐지 섬뜩하게까지 느껴진다. 죽어서 차갑게 누워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제냐의 육신은, 온도가 잘 유지되는 난방된 방 안에 있었고. 그가 누운 캡슐형의 하드웨어 역시 사용자의 체온을 보존하는 기능이 있었다. 최소한의 건강 관리 기능 따위가 있었고. 나름대로 인체 공학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기술력 역시 발전을 한다. 이전 시대에는 그런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을 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가격이 책정되었겠지.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그 소프트 웨어의 가격이 어마무시하게 저렴한 것처럼. 하드웨어 역시 저렴한 편이었다. 그 사실에 감사한다. 각지, 선진국이던 아니던. 그리고 부자이건 아니건 비련시 온라인에 접속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셈이었다. 제냐 또한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의 세계는 그 좁은 방 안이었다. 그가 히키코모리는 아니었지만.


캡슐형 기기의 좁은 누울 자리 안. 그리고 자신의 원룸 방 안. 그리고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하는 그 생활 반경의 안.


그것이 제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얼마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그렇게 잘 먹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정신이 갇히면 그것만으로도 고립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며, 굳이 탈출을 하지 않는다.


훈련된 코끼리가 자신의 발에 걸린 족쇄를, 성체가 되어서도 풀지 못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자신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능력에 대한 고민, 염려들 따위가 취업을 슬슬 준비해야 하는 말학년의 제냐 킴, 김서원을 옥죄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름대로 고민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재미가 있는가.


게임을 할 때 재미있기는 했다.


쩌걱.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박살이 난 고블린의 대가리에서 제냐는 비스트 슬레이어를 꺼내들었다. 뇌수가 흐른다,


는 말은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짓말이다. 아마 NPC들의 감각에서 보자면 그렇게 보일 테였다. 제냐의 눈에 보이는 건 단지 흐르고 있는 빛의 입자들 뿐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이 세계는 현실과 달랐다. 무언가를 부수어도, 현실과 꼭 같은 장면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물론 다행인 점이다. 사냥을 할 때마다 피를 보고, 내장 따위를 구경해야 했다면 진즉에 미쳐버렸을 지 모를 일이다. 사냥 좀 한다고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가, 할 수도 있지만.


이건 게임 속 세상이 아닌가. 몬스터를 잡으면 잡을수록 경험치를 주고.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극적인 경험을 시켜주는 세상이었다. 이 속에서 레벨링을 하기 위해서 전투 클래스의 플레이어들은 사냥에 매진하기도 한다.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전쟁과도 같은 경험이고. 계속해서 피가 묻어있고, 칠갑이 되어 있는 채로 게임 내를 활보해야 한다면 약한 정도로라도 트라우마가 생길지 몰랐다. 현실에서는 그다지 볼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 모습이 선정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기괴하게 생기고, 이질적인 형상의 몬스터라면 문제가 없지만. 또 인간 NPC나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일 때 그런 장면들이 현실적으로 묘사가 되었다면. 아마 대부분은 플레이를 하지 못했으리라. 게임은 게임 다울 때 재미가 있는 법이었다. 멋대로 현실을 가져다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모두가 게임을 악몽으로 인지할 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현실성을 기르기 위해서. 전쟁의 참상이나 참혹함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어떤 인간들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해서. 그런 참상을 막으려는 교육적 목적으로 잔인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가 있기는 하다만.

비련시 온라인 자체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지어진 것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정신적인 충격에도 한계가 있었다. 사람은 체력과 마찬가지로 정신력이라는 게 있어서. 늘 소모를 하면서 살게 마련이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리고 체력이 그러하듯. 깎일 때가 있으면 늘어나거나 회복될 때도 있어서. 쉽사리 체감하지 못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상황들만을 마주하고. 혹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장면들만을 목격한다면 정신이 붕괴하는 일 역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고문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육체적 고통 역시 고문의 주요한 점이지만. 정신적으로 희망의 존재를 없애버리고 누군가를 절망의 바닥에 패대기 치는 것 역시 고문의 주요한 부분이었다.


제냐는 멀티 플레이어다. 멀티 스탯을 찍고, 동시에 올리고 있는 플레이어라는 말이었다. 여러가지 클래스가 있었고. 대개는 전투 클래스에 집중되어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세분화하면 궁술사이며, 검술사이며, 동시에 초상술사인 셈이다.


제냐는 어둠숲을 배회하면서 무수한 몬스터들을 잡아 죽였다. 시간이 남는 탓이었다. 산슈카에 아직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공가의 병력들이 어둠숲 내부로 그들을 잡기 위해서 오지도 않았고. 바깥의 소식은 아직 모른다.


라이엔이 접속을 할 때나 바깥과 교류를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다른 헌터즈 길드원들이 그녀를 사용하라고 양보를 했다. 딱히 궁금한 건 없었다. 심심하기는 했지만.


제냐는 비스트 슬레이어에 묻은 흰 빛의 입자를 털어내면서, 그것을 다시 허리춤의 검집에 넣었다.


방금 막 잡아 죽인 몬스터는 ‘프린스 오브 고블린’이었다. 고블린 왕자 말이다. 얼핏 들으면 귀여워 보일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아주 흉악한 놈이다. 이전, 고수급의 기준 언저리에 있을 때는 최태현과 함께 갖은 고생을 하며 잡았던 녀석이다.


이번의 개체는 ‘저주의 나뭇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얻을 수 있다면 상당히 비싼 가격에 팔아먹을 수도 있을만한 희귀 아이템이었는데. 일단 개체가 가지고 있어야 전리품 목록에 들어가게 된다고 알고 있었다. 굳이 공략법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게임 내에서 열심히 플레이를 하고, NPC던 플레이어던 교류를 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었다. 제냐가 찾아보지 않은 걸 최태현이 알려줄 때도 많이 있었고.


지금은 헌터즈 길드원들 중··· 호아킨과 최태현, 그리고 라이엔이 접속해 있는 와중이었다. 릿샤는 조금 바쁜 모양이었다. 태현은 자신과 다른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고. 라이엔은 호아킨을 데리고 사르삿에 좀 다녀온다는 모양이다.


가서, 그들이 대공가를 습격한 이후에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좀 소상하게 알아보라고 말을 하기는 했다. 호아킨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가장 대공가의 수색망을 잘 피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할 테였다. 어쨌거나 변신술사였으니까 말이다. 그는 오로지 사자 따위의 모습만을 대공가에서 보여주었을 뿐이다.


대공가가 제냐 일행에 대한 정보를 미리 다 갖고 있을 수도 있었다. 헌터즈 길드를 대놓고 적대시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럴 때 보통 수배지 따위를 뿌리고 각 길드와 공조를 하고.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에 릿샤나 태현이 세슈칸에 다녀왔을 때는. 그런 흔적이 없다고 했었다.


대공의 꿍꿍이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면이 있었다. 쉬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인간, 아니 NPC는 분명 아니었다.

제냐 일행에게 그만큼 시간을 쓸 수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벌이는 일이 있어 경거망동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제냐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대공은 왕실과 공조를 한다거나 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일을 대대적으로 키우지 않는 것 뿐이기는 했다. 왕실에게 감사관이 나와서 사태를 설명하는 것조차 세르게이 알사드는 꺼렸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나 용병 길드. 그리고 공적인 기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대공가의 정보 요원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의 양과 질은. 결코 공적 기관에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공 스스로도 각 도시와 마을들, 산슈카 내의 여러 지역들을 뒤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대공으로서도. 그리고 대공에게 부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일단 왕실에서도 제냐 일행을 찾고 있었는데. 그들의 종적조차 제대로 발견하질 못했다. 사고를 치고서 곧바로 어둠숲같은 마경의 심부에 들어갔으리라 생각을 못한 모양이었다.


덕분이었다. 산슈카라는 지역의 특수성이 없었다면 일이 조금 더 어려웠으리라. 아니면 제냐 역시 국경을 넘어서 아예 다른 곳에 몸을 숨길 계획을 세웠으리라.


벨베르에는 일단 이 정도 수준의 마경이 없다. 전체적으로 몬스터 포화도가 낮다고 할 수 있었고. 밀도가 낮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마물이 적다는 말도 된다. 전체적으로 몬스터의 평균 레벨이 낮고. 사람들의 도시가 번성했다.


그 대도시와 체제 안에서 여러가지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었고. 사람들에게 벨베르 공화국은 분명 플레이할만한 장점이 여럿 있는 스타팅 포인트였다. 산슈카는 비교적 대도시들이 거대한 규모로 잘 자리를 잡았지만. 중간중간 황야 지대라거나. 어둠숲이나 데슈칸 산맥같은 마경들이 존재를 했다.


원없이 전투 클래스의 캐릭터를 한 번 키워보겠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선택해봄직한 곳이었다.


콘란드 대륙의 여러 스타팅 포인트가 있었지만. 산슈카 왕국은 썩 나쁜 곳이 아니었다. 초보자를 위한 마을이나 도시 등 기반 시설도 충분했고. 초보자 레벨 때부터 고수급까지 여러 계층에게 사냥당할만한 몬스터들이 폭넓게 있었으니까. 초보자 존만 형성이 되어 있다면 고수급 이상부터는 다른 사냥터를 찾아야만 했고.


반대로 초보자 존이 없다면 초기에 레벨을 올리는 게 지극히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사냥만이 전투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으니. 부단히 훈련을 한다거나. 혹은 야생에서 서바이벌 체험을 한다거나. 혹은 사람 간의 대련이나 전투를 벌인다거나 해서 초기 경험치를 채워야만 했다. 그런 경우에는.


제냐는 산슈카가 어쨌든 플레이하는 곳으로서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현실의 그는 취업 문제 때문에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까.


아니,


솔직히 김서원의 마음을 말하자면 ‘살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었고 고민이 있었다.


살까. 살아야 할까.


별다른 이유는,


누군가가 묻는다면 아마 없다고 말하리라.


그런데.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현대에서의 삶이라는 건 피곤하고, 어려운 법이었다. 정신적인 고독함과 괴로움은 사람을 말려 죽이기도 한다.

예전 시대에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독하게 어려웠고. 또 몸을 움직이다보면 쓸데없는 생각이 모두 사라져서 이런 류의 고민이 많지 않았겠지만.


근대화, 현대화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삶은 달라졌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적들의 찌름도 더욱 고도화가 되었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아무리 법치 국가가 들어서고, 제도가 완성이 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악인들은 여전히 존재를 하게 마련이었고. 적敵들은 언제나 존재를 한다. 다짜고짜 부연 설명도 없이 적이라고 말을 하는 건. 중학교 2학년생의 망상처럼 들리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무슨 일을 하던. 당신이 아마 어떤 종류의 정확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그에 반대되는 입장의 인물들이 언제나 있을 테였다.


당신이 옳을 수도 있고, 혹은 틀린 위치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쟁과 분란이라는 건 영 끝나지가 않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편 갈라먹기를 잘 하는 편이었고. 개중에는 악인도 있고 선인도 있다. 악인이라고 보기에는 뭣하지만, 선인이라고 보기도 뭣한 인간들도 있었고. 극악한 놈들도 있었고.


살다보면, 사는 게 그저 힘들어지고 권태로워지는 때마저 있었다.


쉽사리 타인의 죽음을 바라는 집단들도 있었고.


조금 더 알기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평범하게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도 거지같은 새끼들이 있어 김서원의 목을 옥죈다거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위로 북한이 있던 자리는 이미 사라졌고, 통일 대한민국의 시대를 살아가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이전의 독재적 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가 쪼개져서 조금이나마 위세를 잃었지만.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었어도 여전히 사회에는 이리와 같은 자들이 존재를 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타인의 안위나 삶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승냥이같은 자들.


그런 자들에게 둘러 싸여서. 지능적으로 목이 옥죄어지다 보면. 그냥 살기 싫어지는 순간도 있다.

꼭 다른 이를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그냥 스스로 그럴 수도 있었고.


어려운 삶이었다. 이유를 정확하게 말,


하고 싶지조차 않은.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싶지조차 않은.


뭐 그런 삶도 있는 법이었다.


제냐, 김서원은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도 없었고. ‘사연’이 존재하노라고, 입에 담을 생각조차 사실은 없었다.


타인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지내는 것 역시 그런 속내 때문일지 몰랐다. 게임 내에서 만났던 이들과는 그래도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서 잘 지내고 있었지만.

ken-whytock-OY1Z18YDWYE-unsplas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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