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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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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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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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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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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92. 벨케임의 고뇌(2)

DUMMY

“말씀드렸듯 많이 놀라신 듯 보입니다. 기색이 어두우셨고 편찮으신 듯 하다고···. 정보관이 많은 걸 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대공가 내부로 들어간 왕실 관리의 말에 따르면 왕가에 보고되지 않은 시설물들이 제법 있었고···. 또한 대공가 부지의 내외內外를 가르는 경계선에 왕실의 것에 비견될 정도의 아티팩트와 스킬들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흐음.”


그 정도로, 대공의 의도를 불순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벨케임 왕은 숨을 뱉으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듣는 소리가 있으니. 영 찝찝한 상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최근에는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의 연속이었다.


지방에 있는 사대고가 중 하나, 로멜리아 가가 난데없이 습격을 당하지 않나.

그것은 조기에 알아채고 왕실의 병력을 보내어 진압했다고 한다. 어쨌든 같은 사대고가로 묶여 있는 처지이기에. 아무리 한미한 처지라고 하더라도 로멜리아 가문을 위한 마음은 있는 상황이었다. 왕실로서도.


거기에 더해 지방, 외곽 지역에서 도적떼들 따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이 정보 조직을 통해서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몬스터들이 난리를 피우고 병력이 부족한 마을이나 소도시들 따위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화신 사막 쪽에서는 부족들 간에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말이 있다.


가장 먼저 안 것처럼 벨베르 공화국에서는 군사 기지가 통째로 날아가는 일이 있었고. 이슈칼은 아무런 말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전략적 요충지가 산화하는 일이 있었다.


벨베르에서 왔던 사신단 역시 대공가에서의 소란을 접했으리라. 그 정도로 큰 일이라고 한다면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었다. 대공가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의 입을 전부 단속할 수가 없는 것이니.

용병이나 상인들처럼,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생업을 하는 이들 또한 있지 않은가. 영주민들만 있는 상황이라면 대공령의 상세한 처지와 상황이 바깥에 알려지지 않을 수 있겠으나.


대공가 부지 내에 괴한들이 침입하여 대단위 폭격과 더불어 전투를 벌이고 나갔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왕이 공식적인 루트로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과 그리 크게 시차를 두지 않고. 주변에 있는 귀족이나 관리들도 모두 소식을 알게 되리라.


어쨌건 대공은 정통파의 수장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인물이며···. 그의 고난은 곧 정통파에 속한 여러 인물들의 고난이 되기도 한다. 아마 왕실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 그의 휘하에 있는 다양한 세력이 움직이게 되리라. 대공가를 건드린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광의廣義로써 산슈카를 건드린 셈이었고. 협의狹義로써도 산슈카 국내 정치가들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왜 그러했는가, 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벨케임 국왕은 정보 요원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순간 고민을 시작했고. 아직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관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고. 그 사이에 대공령에 보내두었던 왕실의 관리를 통해 상황이 보고된 참이었다.


대공령에는 정보 요원을 비밀리에 보내기도 했고. 지금 하이딘 하이거 경이 보고를 건네받았던, 행정관을 보내두기도 했다. 비밀 임무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정관 역시 되도록이면 정체를 들키지 말고, 대공가를 염탐하라고 말을 해두었었는데.

차마 그 명령을 지킬 수 없을만치 대단한 사건이 벌어져서 이렇게 공식적인 보고가 올라오게 된 셈이다.


아마 보고를 올릴 행정관이 로얄 가드의 책임자를 만나서, 전언을 부탁했으리라. 넓은 왕실 부지에서 자신이 직접 달리거나, 감히 말을 끄는 것보다 로얄 가드의 충신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 테니까.


하이딘 하이거는 사색이 된 얼굴로 보고를 부탁한 행정관을 보고. 그 자신도 놀라서 왕궁으로 와 이렇게 보고를 했을 테였고.


“대공가에서 파악한 신상은 고도로 단련된 워메이지, 초상술사 하나. 그리고 아마 변신술사인 듯 보이는 자 하나와···. 거대한 매를 다루는 강력한 테이머. 거기에 기력술사와, 활잡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구성을 가진 길드Guild나 무력 단체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바가 있나? 달리.”

“대공가에서는 짚이는 구석이 어딘가 있는 듯, 보였다고 합니다. 다들 일사분란하게 사태를 수습했고 또 보복을 위해서 준비하는 듯 했다고···.

저희로서는 왕실의 행정관들에게 물어 용병 길드에 등록된 이들 중에서 그와 같은 자들이 있는지 확인해보려 합니다···.”

“흠.”


벨케임 왕은 수염을 매만졌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오곤 하는 습관이다.

머리를 굴려본다. 범인, 흉수는 누구인가. 둘을 생각해야 했다. 한 가지는 벨베르 공화국과 이슈칼 국의 군사 시설을 날려버린 테러리스트의 범인이고. 한 가지는 지금 대공가를 습격한 이들의 정체이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이미 늘, 하고 있던 것이니 차치하고. 두 번째에 집중을 한다. 산슈카 내의 귀족 중 한 명일까? 게으른 대공이 왕실, 곧 벨케임 왕의 시야 바깥에 있었던 이유는. 그 자가 완벽하게 처신을 하고 숨어 있었던 탓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는 인물은 아니었다.


최근, 로멜리아 가문이 얽혀 있는 재판 과정에서 운트 작힘 백작을 두둔한 바가 있다고는 했는데···. 그것만으로 어떤 사실을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왕으로서는 말이다.

벨케임 왕은 뛰어난 이였지만. 왕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모조리 파악하지는 못한다. 신이 아니었으니까. 모르는 것도 존재하고. 아니, 도리어 모르는 사실들이 훨씬 많으리라.


세르게이 알사드는 처세에 능한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원한을 사지도 않고. 적대를 하지도 않는다. 신진파의 귀족들과도 척을 지지 않으며. 도리어 베풀었으면 베풀었을 위인이다. 그는 타인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듯한 인간이다.


현재의 대공, 알사드 가문의 가주는 벨케임 왕과도 오래도록 본 사이였다. 연배로 따지자면 대공의 나이가 벨케임 왕보다 조금 더 많을 테였다. 왕실의 입장, 신분의 차이. 뭐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보자면 이웃의 친한 형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겠다. 너무 많은 비약과 생략이 있는 관계의 표현이기는 했지만.


어쨌건 그 인물 자체에 대해서 보아온 시절이 길다. 세르게이 알사드는 속모를 인간이었다. 언제나 예의가 발랐고. 꿍꿍이를 감추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행동하는 것 자체는 산슈카 국에 딱히 해가 될만한 점이 없었기에.

적극적으로 국정에 참여를 한다거나. 정치적으로 왕가의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실 심정적으로는 늘, 왕실의 편에 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적극적으로 뽑고 길러낸 인재들을 왕실에 보내고, 여러 행정 업무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하다. 대공가 산産의 인재들은 어딜 가나 평이 좋은 자들이었다. 적청赤靑의 늑대 기사단들 역시 솜씨가 아주 좋았고. 왕실 기사단과도 비견이 될만치 병력의 질이 높은 단체였다.


대공가의 병력과 기사들은 산슈카 각지에서 활동을 하며, 왕실군이 해야 하는 일들을 대신 처리하기도 했다. 지방의 귀족들간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 끼어들어 중립군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고.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정도 이상 늘어나고 왕실군의 대처가 늦을 때 먼저 지원을 가서 토벌군으로 일하기도 했다.


대공의 평가와는 정반대로. 그 휘하에 있는 자들의 능력과 일솜씨는 호평이 자자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게으른 대공이라는 작자가, 별명과는 달리 누군가의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공을 감히 누가 욕하겠느냐, 하겠지만. 일을 잘못 처리한다면 왕실이라 할지라도 원성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민생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도 했다. 왕이건 백성이건, 목숨 하나라는 건 똑같은 진리였으니까.


대공이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그가 가진, 타고난 권력과 위세. 여러가지 힘들을 잃어버리진 않았을 테였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으리라. 많은 견제와 눈총을 받으면서 삶이 조금 불편해지기는 했으리.


대공은 단적으로 말해 산슈카에 유익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정통파의 수장직을 역임할 수 있었고. 왕실의 후의를 받을 수 있었고. 신진파의 정치가들, 귀족들 역시 지나치게 그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런 산슈카의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이, 갑자기 와서 대공을 흉수로 지목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그 뿐이라면 그저 듣고 흘리겠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멘토Mentor, 대신관 역시 그런 이야기를 왕의 귀에 흘렸다. 벨케임은 고민이 깊어간다.


대공의 진의, 저의는 무엇일까. 알사드 대공이 정말로 인접국의 기지를 폭파시키는 일을 벌였는가. 만일 그랬다면, 그럴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세르게이 알사드는 어떤 인물인가.

그런 세르게이 알사드를 적대시하고 공격을 한 의문의 습격자들은 대체 정체가 무얼까.


알사드 대공과 인접국에서 벌어졌던 폭파 사건에 대해서 엮어 생각을 하는 건, 벨베르 측의 인물들과. 또 그 이야기를 함께 들은 노신관 정도였다. 그 외에는 왕이 달리 이야기를 흘린 바가 없었다. 아무리 측근에 두는 신하라고 하더라도.


‘습격자’는 이런 일련의 논리적 흐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가. 대공이 어떤 모종의 범죄, 궤계를 꾸미고 있고. 그것을 알아챈 누군가가 대공을 견제하기 위해 습격을 했을까.


그런 일이 아니라면, 사실 대공가를 습격할만한 이유는 조금도 없다. 대공이 누구인가. 말했듯, 게으르다는 이명을 제외하고는 적이 달리 없는 인물이었다. 정치적인 세력도 상으로 보더라도, 대공을 적대시하는 자들은 짐작되는 바가 없다.


그럴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야, 백작위 이상의 고위 귀족들이라거나. 대규모의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민간 길드의 영수들 몇 명. 대장군 요드먼 정도.


왕실 또한 ‘가능’은 하지만. 왕실의 수장이요 통치자는 그 자신이었다. 그는 로얄 가드도, 왕궁의 전술사단이나 초상술 연구회의 어떤 인원도 운용한 기억이 없다. 왕가의 명을 받지 않고 인원들이 몰래 움직였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왕립 기사단과 로얄 가드들. 초상술 연구회의 술사들과 전술사단의 워메이지들은 모두 어디에 있고, 어떤 임무를 맡고 있는지가 왕의 귀에 보고되는 자들이다.


가장 주요한, 최정예 병력이자 인적 자원들이었으니까. 만일 전시에 준하는 위급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가장 먼저 대응을 할 수 있는 수手들이기도 했다. 왕국군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지만. 덩치가 큰 만큼 한 번에 빠른 대처를 하기에는 모자란 면이 있었다.

이 시대에는 초인과 술사들이 실존을 했고. 그들의 힘을 빌리고 잘 다룬다면 과학적 발전을 이룩한 지구의 병기에 준하는 성과들도 낼 수가 있었다.


인적 자원들의 관리 뿐만이 아니라. 전쟁에 사용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아티팩트들과. 초상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다양한 광물 자원, 소재들 역시 철저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공가에서 벌어졌다고 들은 대규모의 파괴와 술식전戰을 생각하면. 상당한 자원이 투입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워메이지 몇 명이 몰래 빠져나가 단독으로 일을 벌일 수도 없거니와.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원의 출납이 철저하게 기록되고 있는 왕실의 사정상 그만한 규모의 파괴 행위를 자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리라.


아무리 시간이 있고. 준비를 할 여력이 있어서 MP를 모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축적시킬 배터리가 없고, 엔진도 뭣도 없으면 초상술사로서 화력전을 펼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왕실의 입장에서 셈할 수 없는 제3의 인물들이 대공가를 타격했다는 말이 되는데. 말이 되는 인물들은, 결국 집계되지 않는 무수한 용병들이다.

그들의 수효는 산슈카 국내에 있으나 셀 수 없을 정도이니까. 용병 길드와 모험가 길드가 그들을 집계하지만. 제대로 집계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다. 두 길드 모두 왕정인 산슈카 국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왕명이 있다면 그들의 자료를 빼내어 길드원들의 명부를 살필 수는 있었다.


두 길드가 거대한 세력이며 콘란드 대륙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변방의 지부에 불과한 곳에, 거대 길드의 본부 세력이 올 리가 없잖은가. 본부는 먼 법이었고. 산슈카국은 가까웠다. 어떤 체제 내에서의 협조보다는. 산슈카국이 신분제 사회이며 왕정이었기에 길드원들 역시 국민으로서 통치를 받아야 함이 옳았다.


그러나 문제는 길드 역시, 모든 길드원들을 통제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최근 시기에 폭발적으로 급증한 프리랜서Freelancer들이다. 귀족가, 어느 공식적인 집단에 속하지 않는 유랑하는 전사들. 대부분 수준이 높은 자들은 어느 곳에든 들어가 충분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게 되기는 하지만.


간혹 자유 용병들 중에서 기사에 준하거나 혹은 뛰어넘은 실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정체를 감추고, 실력의 일부만 보이면서 활동을 한다고 한다면 왕실의 입장에서도 모든 국민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유 연맹의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필리아 대륙 중남부 여러 국가들 간의 여행이 아주 쉬워지게 되었다. 범죄를 저지른 인물 역시, 각국의 협조적 수사 아래 더욱 잡히기가 쉽게 되었지만.

만일 어떤 범죄의 전력이 없는 인물들이라고 한다면. 쉽사리 근처 다른 국가들을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경을 넘을 때 최소한의 절차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불가해한 세력이 필리아 대륙을 떠돌고 있는 것이 실정이었다.


그 ‘불가해’에 대해서, 콘란드 대륙의 주민인 벨케임 국왕은 깊이 문제를 느끼진 못한다. 비현실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억 단위의 새로운 주민들을 게임 속 세상에 풀어넣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극적 허용이라고 하는 게 나으리라. 비현실적이었지만.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대충 극 내에서 납득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이다. NPC들은 개발진들의 의도에 따라, 그러한 현실적 사정에 의거한 부자연스러움들을 자연스럽게 여기게끔 되어 있었다.


어쨌건 왕은 그만한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논점을 두고 고민하진 않았다. 그러나 변화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대응을 해야,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마땅할 테다.


그 프리랜서들은 나라에 실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말했듯 어둠숲이나 데슈칸 산맥같은 지형들은 기존의 왕국군으로도 차마 정복하지 못하고 내버려두고 있었던 버려진 땅이었는데.

기존에 있던 용병들에 더해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해서 마경魔境 속을 탐험하고 몬스터들을 잡아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길드에 의해서 현상금 따위가 걸린 도적들이나, 광야의 몬스터들 역시 계속해서 토벌되고 있었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산슈카 국의 치안 등 국익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이들 중에서, 대공을 노리고 습격을 저질렀을까. 왕은 깊이 고민을 한다. 어찌나 깊이 생각에 빠졌는지. 알현실에 하이딘 하이거를 세워두고 한참이나 말도 없이 제 수염만 만지작 거리면서 있었다.


크흠.


로얄 가드는 감히 말은 걸지 못했지만. 아주 작게 인기척을 낼 수는 있었다. 평범한 신하였다면 그럴 수 없었을 테였고. 만일 산슈카 국의 왕실 분위기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그마저.

그러나 로얄 가드가 놀고 있는 직책은 아니었고. 그 역시 행정궁의 경비 책임자로서 맡은 바가 있었다. 잠시 왕에게 가는 급보를 맡아서 자리를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해야 하는 관리자로서의 업무가 있었다.


누가 왕실을 침범을 하고 침입을 하겠냐만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고 늘 생각하며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군인의 올바른 자세였다. 이미 사태가 발발한 뒤에 부랴부랴 움직이는 건 늦지 않겠는가. 아무도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대비하고 있는 것이 바른 경계다.


산슈카 국의 왕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아티팩트와 스킬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아마 자연 재해가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는 몰라도 어느 정도 그 파괴력으로부터 빗겨가기는 할 테였다.

지금과 같은 태평기에 왕궁을 도모할만한 미친 작자나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고.

그러나 그럼에도. 하이딘 하이거는 맡은 바를 다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로얄 가드들이 벨케임 왕에게 가지는 충성도는 높은 편이었다. 어느 시대나 그러했다. 왕실 기사단들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자. 정신적으로도 수양이 바르고, 학식이 있고. 또 왕가에 대한 충심 역시 높은 인물들을 가려 뽑아서 로얄 가드로서 임명을 하니까.


왕실 기사라는 영예 위에 더해지는 영예였기에. 산슈카국에 몸을 담은 기사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개중에서도 퍼스트 소드라고 불리는 인물은 따로 있었지만. 같은 로얄 가드라고 해도. 하이딘 하이거는 동시대에 왕국제일검을 이길 생각은 없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벨케임 왕 역시, 역대 왕들이 그러하듯. 로얄 가드들에게 가지는 신뢰도가 상당히 높았다. 왕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보구, 아티팩트들 중에서 신하의 충심을 시험할 수 있는 물건이 있었기에 말이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단순한 전승도 아니었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물건이었지만 아직도 기능을 했고. 사람의 속내를 전부 알 수는 없어도,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어떤 단면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로얄 가드의 위位를 받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례적 절차들이 있었는데. 개중 하나가 그 아티팩트를 이용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벨케임 왕이 로얄 가드로 뽑힌 인물들을 믿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티팩트에 대한 것은 비밀에 가까웠다. 왕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다. 그러나 혹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정통파의 몇 개 가문들. 그리고 사대고가와 같은 집안에는 알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최근의 정보를 막았다는 것이지. 예전의 정보를 통제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한 고가古家들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들이 개별적으로 있다면. 그와 같은 자료들을 왕실이 함부로 어찌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신하의 주권을 지나치게 침해해서도, 또 문제가 생기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왕이라는 건 어찌보면 참으로 고달픈 자리이기도 했다.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옥좌에 올라보면,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건 분명 실패한 왕일 것이다. 시작도 전에 이미.


벨케임은 그러한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산슈카의 국민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권력과 같은 것들. 세상에 있는 여러가지 ‘좋은 것’들에는 꼭 그와 같이 상응하는 이면이 있었다. 승자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서 피땀을 흘리는 고된 고련이 있어야만 했고. 권력의 보좌에 앉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신경 쓰고, 정확하게 대비를 하며 대처를 하는 용단과 다양한 능력들이 필요했다.


머리 둘 곳 하나 없이 계속해서 헤엄을 치는 어느 어류처럼. 사람의 삶도 본질적으로 계속해서 채찍질을 하며 달려나가는, 고달픈 레이스나 다름이 없었다. 가장 미천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종이나, 왕이나 그건 사실 다를 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건 그런 법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생을 꿰뚫는 올바른 통찰이리라. 그러한 최소한의 통찰도 없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말이다.


로얄 가드의 위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정말로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다는 묘사가 우스울 정도의 훈련과 실전을 거친 소수의 인물들만이 로얄 가드의 자리에 오르니까.


로얄 가드들은 왕의 방패이자 검이다. 굳이 실제적 관계를 따지자면 기력술사인 ‘가드Guard'들이 방패의 역할을 하고. 전술사단의 워메이지들이 창이나 검의 역할을 맡기는 한다만.


벨케임은 오랜 시간 침묵을 하다가. 헛기침을 슬쩍 하는 그를 보며 말한다. 자신의 검에게 가볍게 명령을 내렸다.


“알았네. 일단 물러가게. 갑작스레 전언을 하느라 고생했군.”

“이를 말씀이신지요. 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둘 바를 모를 뿐입니다.”


하이딘 하이거는, 로얄 가드다운 말을 남기면서 무릎을 꿇어 부복해 보이고, 몇 초 정도 후에 절도있게 일어나 알현실을 떠났다.


왕은 바깥에 있을 누군가를 목소리로 불렀다.


“게 있느냐.”


로얄 가드, 하이딘 하이거가 알현실을 떠남과 동시에 바깥에 있던 경비병 중 하나가 들어섰다.


“예, 폐하.”

“궁내부의 행정관 중 아무나 하나를 불러오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경비병은 알현실 근처의 방에서 시종을 찾아 말을 전할 테였다. 시종이 곧 행정궁에 들러 아무나 관리를 데려올 테였고.


궁내에서 무장을 허락받은 이들은 모두 왕실에 충성을 맹세한, 왕국군과 왕실 기사단 정도 뿐이다. 알현실은 특수한 공간이라 그런 자들도 보통 무기를 내려놓고 들어오지만. 하이딘 하이거는 일을 보며 머무르는 처소에 아예 무기를 두고 왔다. 반짝거리는 로얄 가드의 판금 갑옷을 입은 채로, 그는 재빠르게 움직여 본궁, 높쇠매 궁을 벗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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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325. 전쟁, 한창(3) 24.05.22 11 1 19쪽
325 324. 전쟁, 한창(2) 24.05.21 8 1 14쪽
324 323. 전쟁, 한창 24.05.20 9 1 15쪽
323 322. 몸을 부대끼며 24.05.19 7 1 14쪽
322 321. 어느, 한 명의 탈락 24.05.19 6 1 13쪽
321 320. 전쟁(5) 24.05.19 6 1 18쪽
320 319. 전쟁(4) 24.05.18 6 1 18쪽
319 318. 전쟁(3) 24.05.18 7 1 16쪽
318 317. 전쟁(2) 24.05.15 8 1 14쪽
317 316. 전쟁 24.05.15 7 1 16쪽
316 315. 호출 24.05.14 7 1 14쪽
315 314. 건너가는 24.05.14 10 1 11쪽
314 313. 로그, 아웃. 24.05.13 10 1 11쪽
313 312. 요식업자 24.05.13 8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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