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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37
추천수 :
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4.10 12:00
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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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자각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유선은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어났다. 안드로이드 몸을 얻은 후 비정기적으로 같은 꿈을 꾸어 왔다. 어렸을 적 각종 신화에 빠져 살았던 탓이라 생각했지만 매번 가위에 눌리니 잠에 들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고 생각했다. 형벌을 받은 신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대의명분이라도 있지 왜 자신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쫓기고 비난을 받고 차별이 일상화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노라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항의했다. 신이 만일 있다면 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벌을 주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신에게 반항하며 신이 되고자 하는 저 반역자들을 왜 가만두는지 모르겠다며 그녀는 항변했다. 간신히 입 밖으로 새어나온 고통은 이내 허공으로 흩어졌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노박사였다.


“네 박사님 무슨 일 있나요?”

“유선양 나와 보게. 재영군이 흥미로운 일을 벌이려는 것 같아. 여기 사람들도 많이들 모였어.”


얼마나 잠들었던 것일까?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지하세계는 그녀가 들어왔던 때와 같았다. 깜빡 잠들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깜박 잠든 것치곤 피로가 너무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박사는 그녀를 낡고 큰 나무 문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강단이 밑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스타일이어서 한 눈에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숨을 죽여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감탄하는 사람, 머리를 감싸 쥐는 사람,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무대 중앙에 있는 재영과 여러 홀로그램 브라우저에서 중계되는 보안 전투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유선을 발견한 오영은 그녀를 데리고 구석자리로 갔다.


“잘 잤어? 72시간 연속 수면이라니 이거 대단한 잠꾸러기인데?”


“72시간? 거짓말. 나 안드로이드 몸을 가진 후 그렇게 잘 수가 없는데. 내장된 자율관리프로그램이 바이오리듬 관리를 위해 9시간 초과해서 잘 수 없게 하거든요.”


“아마 내가 생각하기엔 너 최근 여러 가지로 무리했잖아? 네 몸이 스스로 치료를 한 건 아닐까 싶네. 안전한 곳에 왔으니 말이야. 실제 우리 의료진이 네 몸을 제대로 치료할 수가 없었어. 자가치료시스템이 우리 의료프로그램의 접근을 막고 스스로 치유하는 쪽으로 진행하더라고. 봐. 벌써 그 많던 상처들이 대부분 보이지도 않잖아? 넌 정말 대단한 몸을 가졌어.”


마지막 문장에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몸을 두 팔로 가렸다. 오영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아 미안. 내가 실수를. 그런 얘기 아니란 것 알지?”


“그건 그렇고 지금 재영이가 뭘 하는 거죠?”


“아 그렇지. 햐, 네 남자친구, 맞지? 대단한 녀석이야.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뭇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잖아. 녀석의 도발에 넘어 가 사상운영부 부원들과 각 부서 에이스급 개발자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도전하고 있는 거야. 이런 일들 그동안 전혀 없었으니 이렇게들 모여서 흥분하는 거지. 외부활동 인원들과 시스템운영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인원 빼고는 다 모였어.”


“엑? 재영이가 그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일종의 해킹대회라고 할 수 있어. 심재영 저 친구 지금 1:17로 싸우고 있는 거야. 상대방이 개발계(주: 개발서버)를 중심으로 각종 모바일, PC, 웨어러블(주:Wearable, 몸에 착용하는 기기) 장치들로 이루어진 보안 클라우드로 철옹성을 쌓고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고 의기양양하게 시작했는데 정말 말 그대로 순식간에 뚫려 버렸어. 진짜 나와 섭외부장이 고생고생해서 모셔온 내로라하는 친구들인데 지금 다 울상에, 저 벌게진 얼굴 좀 봐. 이것 참 너무 충격 받으면 곤란한데 말이야. 반면 네 남친은 얄미울 정도로 여유가 넘치잖아. 이 상황은 정말, 인간의 영역이 아니거든. 우리가 나름 유사인간도 인간이라고 크게 외치는 사람들인데 이 현장은 결코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가 없겠어. 노박사님은 자신과 동료들이 만들어 낸 작품 때문에 만면에 미소가 하나 가득이군. 당신들은 대체 뭘 만들어 낸 거야? ‘저건’ 이미 사기잖아?”


“저거?”


오영은 또 한 번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장내에서 큰 환호성이 일어났다. 결국 17대 1의 싸움은 1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고 17이 패배를 인정하는 선언에 다들 경탄을 숨기지 않았다. 재영은 환하게 웃었고 구석에 있는 유선과 오영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유선도 화답으로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오영에게 똑똑히 얘기했다.


“재영이나 나나 또 여기에 있는 누군가는 ‘저거’ 같은 게 아니죠. 인간이 만든 새로운 인간일 뿐입니다. 여기에서마저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으면 어쩌라고요.”


오영은 거듭 사과했다. 이상하게도 유선 앞에만 서면 실수가 많아지는 자신의 멍청함에 허공에 한숨을 푹 쉬었다. 오영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강당 안은 재영을 둘러싸고 흥분한 사람들이 전쟁의 향방을 바꿔줄지도 모르는 인재의 등장을 찬미하고 있었다. 재영 또한 승리자의 입장을 만끽하며 사람들의 환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만 보안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상운영부의 지노부장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개발자 출신으로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그의 성품을 아는 오영은 손을 들어 그에게 괜찮다는 표시를 해줬으나 이미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그는 황급히 몸을 돌려 강당을 빠져나갔다.


유선은 재영을 보며 복잡한 심경이었다. 소심하고 유약한, 정체성으로 인해 받은 상처로 가득한 그가 삶을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살기를 바라고 격려했는데 막상 변해버린 그는 생각과 달리 너무 멀어보였다. 상처를 공유했던 그가 아니라 강자의 여유를 즐기는 상처 주는 자로 바뀐 듯 했다. 반면 환호 받고 사람들의 중심에 선 그를 보니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멋진 일인 것이다. 그 멋진 일에 완벽하게 같이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이 속이 좁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상을 알리는 신호음이 장내에 퍼졌다. 즐겁게 떠들던 사람들은 일제히 멈췄다. 홀로그램 브라우저가 장내에 나타났다. 동영상이 하나 열리자 다들 탄성을 질렀다. ‘1급 타겟 최철호 법무부장관, 장소는 남대문전통시장, 3시간 후’ 어수선하게 떠들며 즐기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사분란한 군인이 되어 각자 맡은 장소로 사라졌다. 오영은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재영과 유선에게 손짓을 했다.


“자 바쁘게 되었으니 간단하게 설명을 할게. 최철호 장관 알지?”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재영은 시선을 외면했다. 정치가 따위 관심도 없었다.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오영은 씩 웃었다.


“뭐 이제부터는 관심을 가져야 할 거야. 쉽게 말해 현 대통령 바로 다음 실력자라고 할 수 있어.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걸 고려하면 실질적인 넘버1이라고 할 수 있고 게다가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이미 낙점되어 있는 상태야. 그런데 이 인간이 아주 문제가 많은 자이지. 법을 수호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우리가 파악하기론 법을 이용해 악랄한 짓이란 짓은 다 하고 있어.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어 정적들과 시민들을 농락하는 것이지. 뭐 예전 고전영화의 제목으로 얘기하자면 공공의 적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너희들에게나 우리 조직에게 중요한 것은 이 자가 최근 HN의 중요한 후원자가 되어 유사인간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불러 일으켜 정치이슈화하고 있다는 거야. 국민들에게 공포를 유발하고 그 불어난 공포로 권력을 불리는 짓을 하고 있어.”


유선은 마른 침을 삼켰다. 각오는 했지만 처음부터 스케일이 예상보다 컸다. 시민운동이라고 했지만 조직과 시스템의 크기, 그리고 상대 자체가 말하는 것은 본격적인 ‘반정부 활동’인 것이다. 정말 여기에 발을 들여놓아야 할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재영을 돌아보았다. 기대와 달리 그의 눈빛은 흥분과 기대감, 알기 힘든 가열찬 욕망으로 뜨거워보였다. 오영은 그런 재영의 눈빛을 바로 읽어냈다.


“재영동지. 두렵지 않아?”


“하하 처음 상대가 장관이고 다음 대통령 후보라니 상상이 가질 않네요. 두렵지요. 두려운데 상대가 크니 제 안에 무언가도 덩달아 커지는 것 같군요.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제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할까요?”


“재영 동지는 확실히 자질이 있군. 그건 의로운 일을 할 때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반응이야. 당연히 두렵지. 하지만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의지가 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흥분이 되는 거야.”


“뭐 제가 그런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얼마 전까지 겁쟁이 대왕이었는데요. 그건 그렇고 동지라는 말 듣기 좋네요. 고맙습니다. 제 임무는 어떤?”


“분명히 자질이 있어. 내 눈은 정확하거든. 동지의 임무는 말이지, 사실 처음에는 견학 정도에 머물러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고 최근에 우리 작전 중에 보안망이 뚫려서 곤란한 상황들이 많았어. 우리 카리옷 부장을 비롯한 보안팀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역부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 동지 몇도 잡혀가고 어떻게든 방법을 냈어야 했어. 동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적의 해킹 방어와 적 경호네트워크 교란이야. 우리는 오랫동안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왔고 그 결과 알파와 오메가 프로젝트의 기획서를 손에 넣었고 오메가 오리지널이 그 방면으로 사기캐에 가깝다는 정보를 획득했지. 그런데 그런 동지가 제 발로 걸어왔으니 우리에겐 일종의 기적이었던 거야. 아까 그런 급조된 해킹 이벤트를 한 것도 환영회 성격도 있지만 다들 궁금해 해서 말이야.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동지들의 얼굴에서 확인되었지. 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 말길 바래. 아주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우린 폭력을 쓰지 않아. 쓰더라도 안전한 회피를 위한 최소한의 것만 사용하지. 오늘 현장에서도 대단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 유사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할 뿐이야. 이런 공식행사에 들이대야 겨우 언론에 나올까 말까 하니 위험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오늘은 가서 놈들의 네트워크에 침투가 가능할지 정도만 봐줘. 기본적으로는 현 보안팀이 역할을 하니깐 말이야. 아 그리고 유선은 일단 대기팀으로 재영과 같이 행동해줘.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재영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주면 될 것 같아. 물론 앞으로 활약에도 기대하고 있어.”


유선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했지만 재영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다. 소박하고 백지장처럼 순수하던 재영의 마음 도화지에 이제 섬뜩하고 냉혹한 현실과 분노와 권력의 검붉은 칠로 덮일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오영과 AHU는 이미 두 사람의 사용법까지 결정하고 있었다. 오영은 그녀가 알았던 불투명한 구석은 있지만 순수한 열정과 의로운 분노를 품고 있던 그런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노련한 정치가였고 재영을 달콤한 올가미로 얽어맬 적임자였다. 무슨 수를 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전에 없는 열정과 욕망으로 빛나는 재영의 눈이 그녀를 낙담케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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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노박사 18.04.03 132 1 12쪽
10 도피 18.04.02 145 2 18쪽
9 그녀는 강했다 18.03.31 141 2 14쪽
8 기다림 18.03.30 154 1 12쪽
7 18.03.29 163 3 13쪽
6 인간의 조건(2) +1 18.03.28 205 3 22쪽
5 인간의 조건(1) 18.03.27 206 4 11쪽
4 그녀의 정체 +1 18.03.26 279 4 12쪽
3 새벽 열차를 타다 +2 18.03.24 307 6 13쪽
2 진짜 이름 +4 18.03.23 390 10 8쪽
1 Who am I? +5 18.03.22 593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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