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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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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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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4.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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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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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탈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재영은 기억 속을 헤매고 있었다. 지난 5년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이윽고 어떤 병실 같이 보이는 장면이 나타났다. 시선은 천정 사각에서 내부를 보는 식이었다. 어머니가 울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계약서처럼 보이는 서류가 보였는데 아버지는 좀처럼 서명을 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등을 돌리고 가슴을 치며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자제시키고 있었다. 재영은 계약서 내용이 궁금했다. 마음이 가자 계약서가 클로즈업 되었다. 녹화된 동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계약서 제목이 보였다.


<OMEGA 2032 - 1 개발 및 심재영 유전자 제공 제반 계약서>


재영은 심장에 통증을 느꼈다. 주요한 내용은 이랬다.


1. 교통사고로 죽은 심재영의 부모 XXX, XXX은 정부의 인류의 근본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부의 프로젝트에 호응하여 오재영의 유전자 일체를 제공한다.


2. 오재영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조성된 OMEGA 2032 - 1의 소유권은 정부에 귀속되며 오재영의 부모는 양육권을 가진다. 단, 본 양육권은 동산 및 부동산 등을 다루는 임대 및 물권법의 규정을 따른다.


3. 국가는 OMEGA 2032 - 1가 위탁되어 있는 동안 오재영의 부모에게 적절한 금전적 지원과 의료 지원을 실시한다.


4. 국가의 중대한 필요가 있을 시, 또는 국가 위기 상황이 있을 시 OMEGA 2032 - 1과 심재영의 부모는 OMEGA 2032 - 1의 차출에 즉시 응해야 한다.

이 계약과 관계된 모든 것은 국가의 최고 등급의 보안사항에 해당되며 이를 발설 시 그에 따른 처벌과 계약 기간 동안 지원한 지원금에 대해 완벽한 반환을 실시해야 한다.


아버지는 결국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사인하고 지장까지 찍었다. 재영은 온몸으로 막고 싶었다. ‘나를 거래하지 마세요.’라고 외치고 외쳤지만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정부 측 인사의 냉정한 미소에 절망이 시커멓게 덮쳐왔다.


빨리 감기를 하는 것처럼 어지러운 장면들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한 장면이 나타났다. 완전히 어린애도 아니고 청소년이라고 하기엔 모자란 아이가 건물 옥상 그늘에 앉아 두꺼운 책을 들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재영은 본능적으로 그 아이가 진짜 심재영임을 알 수 있었다. 영리하면서도 어딘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젊고 날씬한 엄마가 나타났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기억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멋지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들이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였다.


“어머? 테스 보니? 이야 이제 우리 아들이 동화책은 떼었구나. 좀 이르다 싶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 책을 보니 무슨 생각이 드니? 읽을 만해?”


“네 읽을 만해요. 조금은 어렵고. 그런데요 엉뚱한 질문인데 세상은 공평한 건가요?”


“공평하냐고? 어머나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면, 참 곤란한데.”


“몰라요?”


“아마 아빠가 대답해주지 않을까? 아빠도 잘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어렵죠? 그럴 것 같아요. 그냥 계속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 집은 이렇게 엘리베이터도 없고 옥탑방까지 걸어 올라오면 다리가 뻐근해지죠. 옥상 아래를 보면 저기 저 집은 엄청 넓어서 잔디에 파라솔, 작은 연못도 있네요. 저쪽 집 봐요. 우리집 보다 더 가난한 할머니가 살아요. 몇 번 인사드렸는데 매일 폐지며 고철 같은 거 줍고 계세요. 기계들과 경쟁해서 얻은 전리품을 고철가게에 넘기면 얼마나 받으실까요? 이 책을 보면 테스라는 여자가 여자로 태어나서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엄마도 힘들었어요? 어떤 식으로든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요?”


엄마는 이 세상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초라한 옥탑방에서 펼쳐지는 고상한 대화는 그러나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새 작은 빛이 되었다.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따뜻하고 진지했던 대화는 소중함으로 다가왔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 기억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기분이었다. 좀 더 아득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행복감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찢어지는 굉음과 진동에 그는 눈을 떴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박사는 무언가 고함을 지르며 재영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것들을 풀어냈다. 다급해보였다. 파편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불똥이 박사의 흰 가운에 부딪혀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재영은 잠시 비틀거렸으나 이내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유선이었다. 그녀는 지하로 내려오는 입구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머리에서 내려오는 피가 흰 블라우스를 붉게 물들였다.


그녀가 이쪽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귀 기울였다. ‘도망 가. 뒤따라 갈 테니 먼저 가. 빨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둔한 사람이라도 그녀가 희생을 각오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재영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목젖을 넘지 못했다. 대신 갑자기 심각한 두통에 감전이라도 된 것 같았다. 악! 단말마 소리와 함께 그는 주저앉았다. 박사도 당황했고 유선은 재영이 신경 쓰여 제대로 싸우질 못했다. 결국 그녀는 경찰 안드로이드에 일격을 맞고 재영이 있는 곳까지 밀려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흥건했다. 재영은 그녀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머리를 찢을 듯 몰아닥치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박사는 공포에 질려 울고 있었다. 경찰들은 일제히 재영들에게 무기를 조준하며 다가섰다. 아마도 승리를 직감했을 것이다.


재영은 갑자기 시야를 덮쳐오는 총천연색의 기하학적 문양들에 숨을 죽였다. 두통은 사라지고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처럼 시야에서 저절로 움직이는 영상에 입을 벌리고 몰입했다. 문양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니 어떤 영상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린시절, 대학교 입학 첫날, 좋아하던 여자애, 부모님과 여행하던 장면, 덕유산 꼭대기에서 만났던 염장 커플, 바닷가 할머니, 그리고 유선. 수많은 영상이 춤추는 영상을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옛 브라운관 화면이 꺼지듯이 빛은 중앙의 한 점으로 몰려들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적막.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고 그 시간은 1초일 수도, 1억년일 수도 있었다. 순간과 영겁 사이의 시간이 흐르고 그의 눈에 다시 화면이 돌아왔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의 정보가 그에게 빨려 들어왔다.


경찰 안드로이드들의 식별코드와 설명(Description)이 그들의 팔꿈치쪽 태그 표시와 함께 보였다. 유선을 보았다. 그녀의 코드도 보였고 좀 더 자세히 보자 상처 입은 곳도 보였다. 하지만 초점을 약간 바꾸자 그녀의 속옷과 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시야에 잡혔다. 그는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얼굴은 약간 붉어졌고 그녀도 뭔가 알지 못한 느낌이 있어 괜히 옷깃을 여미었다. 그녀는 그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


재영이 벌떡 일어섰다. 서서히 다가서던 경찰들은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고 뒤늦게 HN 멤버들과 나타난 윤정의도 일어선 재영을 바라보았다. 놈은 비열한 웃음을 옛 급우에게 지어보였으나 어쩐지 재영은 그 웃음에 전혀 무감각한 반응을 보였다. 놈도 재영이 뭔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알 수는 없지만 전의 그 나약함이나 왜소함, 만만하게 느껴지던 그런 기운이 아니었다. 뭔가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많은 병력에 둘러싸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단지 체포되고 질질 끌려갈 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더러운 유사인간에게 창피와 모욕을 줄 생각에 놈은 충만하게 차오르는 승리의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영의 입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여!”


뭐? 생각할 시간도 없이 최고의 전력이며 가장 강력한 우군이던 경찰 고성능 안드로이드들이 돌아서더니 경찰들과 이쪽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것이 아닌가? 경찰들이 우수수 쓰러졌고 놈은 기겁을 하고 몸을 던져 책상 밑으로 숨어들어 바들바들 떨었다. 끔찍한 비명들과 의혹에 찬 질문들이 쏟아지더니 곧 조용해졌다. 놈은 조심스럽게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연구실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일어선 사람이 없었고 안드로이드 경찰 둘이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한 후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곧 둘 다 맥없이 쓰러졌다. 놈도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발걸음 소리에 다시 조심스럽게 동태를 살폈다. 재영이 다친 유선을 부축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섬뜩한 느낌에 그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그가 아는 재영의 눈빛이 아니었다. 사냥꾼의 그것처럼 냉정하고 탐욕스러웠다. 재영은 오른손을 들어 총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을 하더니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총잡이 흉내를 내었다. 그리고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다음에는 반드시 네놈의 목숨도 땅바닥에 뒹굴 거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근거는 연구실 바닥 가득히 널브러져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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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의 조건(2) +1 18.03.28 205 3 22쪽
5 인간의 조건(1) 18.03.27 206 4 11쪽
4 그녀의 정체 +1 18.03.26 279 4 12쪽
3 새벽 열차를 타다 +2 18.03.24 307 6 13쪽
2 진짜 이름 +4 18.03.23 390 10 8쪽
1 Who am I? +5 18.03.22 593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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