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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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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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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전쟁인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전쟁인간 개발 프로젝트>


너무나 생소했다. 군인도 게릴라도 전략무기, 특수병, 전사 등 귀에 익은 무엇도 아닌 ‘전쟁인간’이라니. 그러나 재영은 곧 그것이 유선과 자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니 팔짱을 낀 유선의 팔 아래 주먹이 꽉 쥐어져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박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둘을 향해 돌아섰다. 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2020년이었어. 여전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심각한 인구감소로 군 병력 자원이 줄어들면서 무인로봇 병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인구감소 상태에 있는 대부분 선진국들도 다 그랬어.


처음엔 기존의 고정형 무인경비로봇을 이동형으로 바꾼다든지 드론에 인공지능을 가미한다든지 탱크를 1인 조종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정도였어. 병력감소에 대응하는 조치로는 나쁘지 않았어.


나도 민간기업에 있다가 이 사업에 관심이 생겨서 2022년인가? 그때 합류했지. 연구는 재미있었어. 다들 실질적인 국방강화에 기여한다는, 일종의 애국심과 자부심에 충만했어. 자발적으로 밤을 새워 일하고 나름 역작을 남겨보겠다고 코피 좀 흘렸지. 그런데 거기에 독일에서 귀화한 비스마르크란 젊은 박사가 있었어. 아, 자네가 역사책에서 배운 그 비스마르크와는 당연히 아무 상관도 없어.


이 친구는 한국 유학생 여자 친구를 따라와 한국에 왔어. 물론 결혼했지. 음, 이런 얘기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그 친구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않아 보였어. 문화적 차이가 컸던 걸로 알아. 항상 투덜대며 독일의 목가적 풍경과 자유로웠던 삶과 기가 막힌 맥주를 그리워했지. 진짜 불쌍해보였는데 그 때문인지 집에 도통 가지를 않고 연구에만 매진했어.


그런데 이 친구가 일을 내고 말았어. 전자공학과 유전공학 학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이미 상용화되기 시작한 체세포 복제 과정을 전자적으로 통제하고 인위적으로 그 특성을 ‘조절’할 수 있게 한 거야. 아, 이쯤에서 엄청 감탄해줘야 하는데, 뭐 요즘은 당연한 건가? 쉽게 얘기해 줄게. 평범한 인간 유전체들을 조합하고 이를 전자적으로 통제해서 특정 부문의 슈퍼맨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야. 우리는 이걸 ‘전자생물학’이라고 명명했지.


비스마르크에게는 불행인데 새로운 이론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 영역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그야말로 전략적 생명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에 정부를 이를 외부에 공포하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이를 이용한 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어. 그때 프로젝트명이 바로 ‘전쟁인간 개발 프로젝트’였어. 생명을 다루는 데 있어 도덕성을 논하는 의견이 있긴 했지만 정부가 퍼부어주는 연구자금과 개별적 막대한 보상, 무엇보다 누구도 밟지 못한 신세계에 대한 욕구가 우리의 인간 존엄에 대한 엄격성을 현저히 떨어뜨렸지. 지금 비록 후회되지만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내가 그걸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싶네.”


“그럼 저는?”


“그래 유선 학생. 자네는 알파프로젝트의 37번째 전쟁인간인거야. 아마도 내 기억에 자네는 전천후 특공유닛일거야. 전투면 전투, 침투면 침투, 해킹, 전자전 등등 못하는 게 없는 강력한 개체인 거지. 요즘은 자네와 같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하이브리드와 재영 같은 순수 전자인간을 ‘유사인간’으로 통칭한다지? 이러나 저러나 자네들에게는 불쾌하겠지만 이건 그냥 다 사실이야. 내가 그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참여자이니 이보다 더 정확한 정보는 없겠지. 그리고 이것도 적절치 못한 말이겠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정적이 흘렀다. 유선도 재영도 박사도 쉽사리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옥경이가 오히려 당황한 듯 했다. 괜히 다 마신 찻잔을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훔쳐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우지끈! 유선의 왼발 아래 대리석 타일이 부서졌다. 그녀의 눈에는 푸른 살기가 감돌았다. 재영이 깜짝 놀라 일어섰고 옥경이도 노박사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대체! 뭐가 미안하단 겁니까?”


재영은 유선을 안았다. 막을 힘이 없다는 걸 알고 그녀의 분노 또한 알지만 막아섰다. 분노로 뜨거워진 그녀의 몸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노박사도 깜짝 놀라서 물러섰지만 곧 옥경이의 앞으로 나섰다. 그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재영은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박사님? 아까 하던 얘기를 더 해주세요. 제 코드넘버도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습니다.”


박사는 긴 숨을 허공에 날리고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두 사람에게도 앉을 것을 권했다. 유선은 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재영이 있는 힘껏 온몸으로 밀어서 겨우 소파에 앉게 했다. 박사는 중국풍 찻잔에 담긴 다소 식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옥경이에게 넘겨주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피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지 옥경이는 재빨리 찻잔을 넘겨받고는 사라졌다. 재영은 옥경이도 감정을 아는 안드로이드라고 추측했다.


“저 아이, 옥경이는 알파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 안드로이드야. 프로젝트의 초기 모델들은 상당히 덩치가 컸어. 어차피 전쟁용으로 만들다 보니 굳이 사람 크기여야 할 이유가 없었지. 아주 작은 친구도 있어.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잖아? 젊은 연구원 중 한 명의 실수로 프로젝트 정보가 밖으로 새어 버렸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나? 요즘은 지구 한 바퀴는 우습지.


선진국들 중심으로 UN을 앞세워 한국의 비밀스런 프로젝트를 공개할 것을 압박했지. 어떤 나라는 제2의 대량살상무기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어. 웃기지, 제1 대량살상무기도 거짓말이었으면서 제2라니. 사실 다른 나라들도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었어. 다만 우리의 아르키메데스 같은 우연한 발견이 없었을 뿐이지. 역사의 진보란 게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일어났을 뿐인 거지.


아무튼 반강제적으로 전자생명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UN에서 ‘공평’하게 전파해줬지. 대가로 터무니없는 액수의 로열티를 주긴 했어. 날강도놈들! 우린 그 돈으로 보란 듯이 안드로이드들을 만들었어. 멈출 수가 없는 거잖아? 세계가 달려드는데 기껏 창조해놓고 우리가 뒤쳐져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 특히 비스마르크 그 친구 엄청나게 분해하더군. 자기 조국도 이 비열한 일에 동참했다며 몇 날 며칠을 날뛰었어. 그러더니 집에서 아예 짐을 싸와서 연구실에 눌러앉아서 개발에 들어간 거야. 우리도 당연히 동참했지.


전과 같은 즐거움과 열정 같은 것이 아니라 쫓기는 짐승처럼 우리는 필사적이었어. 뭘 입증하려고 했는지는 솔직히 나도 몰라. 그저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 계속해서 새로운 알파 시리즈를 만들어냈지. 유선 자네 코드넘버가 30번대잖아? 그래 그 즈음에 우리가 분노를 쏟아내며 만든 걸작품이 특히 30번대지. 무자비한 돌격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전지전능한 전사를 만들어내겠다고 분투했어. 뉴스에 나온 영상을 보고 솔직히 기뻤어. 그 압도적인 힘은 정말 장관이었어.”


“잘 아시는 것 같으니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저는 인간입니까? 기계입니까?”


유선은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눈에는 당혹감과 분노, 슬픔, 끝도 없는 좌절이 담겨있었다. 뜸이라도 들였으면 좋겠건만 박사는 재빨리 입을 떼었다.


“유사인간.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의미는 사실 정확해. 자네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사실 장유선이라는 인간은 이미 죽었어. 우리 연구진은 사람이 죽고 뇌가 완전히 괴사하지만 않으면 뇌에 남아 있는 정보를 재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이 시대의 큰 거짓말을 알려줄까? 그건 인간과 기계가 아무 문제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그 수많은 광고, 뉴스, 각종 정보들이야. 잘 생각해봐.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완전히 다른 시스템 하에서 생성된 존재들이 하나가 된다? 그건 종을 뛰어 넘어 생명을 융합한다는 것인데 될 수가 없지. 아직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 ‘종의 기원’, 원래 한 뿌리라면 당연히 하나로 해서 생명이 이어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단순히 부분을 교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전면적인 교체를 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말하는 거야.


거짓말을 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주지. 영원한 생명, 생명 연장의 꿈 등등 운운하며 안드로이드 육체 교체 사업이 한참이지? 엄청난 수익과 엄청난 발전 가능성으로 다들 난리잖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 육체 교체를 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뭔지 알지? 바로 뇌 백업이야. 백업을 마치고 육체 교체를 할 때 *논렘수면(Step4) 상태에서 교체 수술을 한다고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사실은 이 과정에서 뇌는 완전히 포맷을 하고 뇌세포 복제를 통해 새로 뇌를 구성하게 되어 있어.


쉽게 말해. 죽는 거야. 죽고 새로 태어나는 거지. 새로 태어난 나는 나일까? 기억이 같다고 그게 나일까? 뭐 이건 논쟁거리이긴 한데 내 생각에 그건 이미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

* 논렘수면(Step4) : 잠의 깊이를 단계로 나눈 것으로 1953년 디멘트 박사(Dement W.C)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Step4 단계는 가장 깊은 잠의 단계, 즉 가장 느린 주파수인 델타파가 50% 이상이 되는 지점으로 흔들어도 잘 깰 수 없는 정도의 상태를 말한다.


유선과 재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선은 아예 할 말을 잃었다. 재영도 화가 치밀었다.


“그 무슨 무책임한 말입니까?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냥 박사님 개인 의견 아닙니까? 도대체 인간이 뭔데요?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그러시는 겁니까? 그냥 이렇게 살아 숨 쉬고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을 열망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면 그게 인간 아닙니까? 박사님 같은 의견이면 저는, 유선은 대체 뭔데요? 그냥 물건이라는 건가요? 우린 도대체 뭡니까?”


평소에도 상당히 음울한 느낌의 박사는 더욱 침잠해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게 내가 연구소를 나온 이유지. 동료들도 만류하고 정부에서는 협박도 했지만 나는 연구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어. ‘생명’을 다룰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자 다들 변해버렸거든. 더 강력한 무기와 전략자원으로 생명을 다루기 시작한 거야. 상상도 못할 계획들이 넘쳐나고 더 이상 생명의 가치 따위는 없어지고 말았어. 세계가 생명을 소재 삼아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 너희들한테는 할 말이 없구나. 내가…”


“됐습니다. 저희가 온 목적을 말씀드리죠. 박사님 재영이의 리미트를 풀어주실 수가 있나요?”


유선은 벌떡 일어나 박사의 입을 막았다. 그녀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는 듯 보였다. 박사는 유선과 재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재영의 리미트를? 그래 그렇구나. 할 수 있지. 너희들 상황을 보면 그래 그래야겠지. 내가 그 병원이라 불리는 곳에서 복제와 유전자조작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육체와 낡은 기억과의 불일치를 조절해주며 이렇게 좋은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정부의 감시 속에 살고 있단다. 마누라는 못 견디고 떠났지. 아이는 가끔 보는데 참, 이런 게 사는 게 아니지. 알았다. 일어서지. 리미트는 병원에 가서 해제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앗 깜짝이야.”


재영은 박사를 따라 일어서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인영에 기겁을 했다. 놀랍게도 나타난 것은 박사와 똑같은 박사였다. 외모며 키며 모두 똑같았다. 유선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박사는 픽 웃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순진한 사람은 아니라 연구소에서 나오기 전에 안드로이드 실험체 몇을 빼돌렸지. 정부에서 수시로 네트워크에 침투해서 보거든. 개인적인 일을 볼 때 종종 애용하고 있지 아, 물론 이 박사님은 너희들 같이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존재는 아니야.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친구야. 그리고 그 명령은 우리 옥경이가 하고 있어. 옥경이가 외모는 저래도 원래 다른 다수의 안드로이드들을 조종할 수 있는 지휘형 전략 안드로이드거든.”


재영과 유선이 돌아보자 옥경이는 짐짓 거만한 표정을 화면에 출력했다. 유선은 피식 웃었고 재영은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그건 아니라고 표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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