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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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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389

작성
18.03.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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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새벽 열차를 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재영은 이른 새벽에 집을 빠져나왔다. 차갑고 어두운 공기가 잔뜩 여민 외투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지난 밤 엄마는 울기만 했고 아빠는 말이 없었다. 그제 저녁 잠시 여행을 떠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엄마는 겁이 덜컥 났다. 아들이 딴 마음을 품을까 싶어 가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아들은 마치 타인처럼 생경한 표정으로 떠나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말릴 수가 없었다. 팔목을 잡은 남편의 손아귀에서 전해지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 첫 열차를 탔다. 하이퍼 초고속 자기부상 열차나 에어고속버스는 피하고 노인들의 추억 및 유람을 위해서 하루 몇 편만 오가는 밀레니엄 추억 열차를 선택했다.

열차 안에는 등산을 가려고 화려한 원색의 기능성 등산복을 입은 노인들이 두런두런 젊은 날을 자랑하고 있었고 열차 앞쪽 좌석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카키색 바탕에 각진 무늬의 조끼는 아들을 위한 것일까?

IEC(Intelligent Efficiency Cloth)라고 하는 인공지능 탑재 옷들이 보편화된 시대에 열차 안은 시대의 진보가 멈춘 곳 같았다. 재영은 2000년대 초의 역사 동영상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창밖의 풍경은 천천히 흘러갔다. 무인초고속교통시대의 바깥 풍경이란 대개 추상화처럼 뭉개져서 그 실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저속의 여행은 삶의 궤적 하나하나가 또렷이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과거의 향수를 그리는 문학작품 속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시대의 모습이라고 추측했다.

최첨단의 인공물인 자신이 이런 풍경을 공유하는 것이 죄가 아닐까 생각했다. 젊은이가 타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런지 이따금 재영을 보며 속삭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은 슬며시 다가오더니 재영의 손에 귤을 쥐어주며 해외에 있어서 보기 힘든 큰손자와 닮았다며 애정 어린 인사를 건냈다.

재영은 궁금했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제품이라는 것을 밝히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유사인간 같은 건 뉴스나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사람들이 실물이 코앞에 있을 때의 반응이 궁금했다.

알아본 결과로는 금속형 안드로이드는 부지기수이지만 유기조직형 휴머노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개체수가 100기 이하였다. 평범한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라면 방송에서도 본 사람이 그닥 없을 것이다.

과도한 기술진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이가 들수록 많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영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권장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외톨이라는 자각이 가슴 한구석으로 서늘한 바람을 몰아 왔다.


아침 첫 차를 탔건만 해운대역에 도착한 것은 점심 즈음이었다.

진공튜브 안에서 달리는 하이퍼루프 여객을 이용했다면 저멀리 중동의 두바이에 도착할 시간에 겨우 서울서 500km 남짓 떨어진 부산이라니 객관적으로 극히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재영은 생각했지만 차장을 스쳐가는 풍경과 그 무료하면서도 편안한 감흥을 시대의 효율을 맞바꾸는 일은 그야말로 인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지개를 켜며 내려서니 코끝에 걸리는 것은 겨울답지 않은 선선한 바람과 비릿한 바다 냄새였다. 자신의 고향이라고 지금껏 알고 있었던 곳의 친숙하지만 생경해진 냄새인 것이다.

매년 부모님과 부산에 내려왔던 터라 해운대까지 걸어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호텔과 관광객들, 여전히 남아 있는 재래시장과 쌓여 있는 관광 상품들 사이로 왁자지껄 활기가 넘쳐흘렀다.

그러다 마주친 것은 카트 안드로이드. 신화의 켄타우루스 같이 인간형 상체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카트에 바퀴가 달려 있었다. 아마도 물건을 카트에 실으면 자동으로 무게가 측정되고 비용을 입금하면 원하는 곳까지 배달해주는 시장 내 소화물 배달용 로봇일 것이다. 녀석은 재영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손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배송이 필요하신가요? 해운대 시장 근처라면 언제든지 저렴한 가격으로 모십니다. 계약된 인근 호텔로도 배송 가능합니다. 배송 물품을 카트에 올려만 놓으시고 액정에 표시된 가격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현금, 카드, 송금 모두 가능합니다.”


“네가 부럽다.”


“네? 손님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 아니야. 다음에 이용할게.”


“네 손님 다음에 꼭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쪼르르 시장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카트 안드로이드를 지켜보았다. 프로그래밍된 것만 수행하면 될 것이기에 근심도 염려도,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존재의 무게감을 따질 필요도 없고, 감정에 휩쓸려 혼란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재영은 시장바닥을 헤매는 보잘 것 없는 먼 동족(?)에 대해 진심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딱 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자신과 같은 고등 하이브리드 유사생명체를 만들어놓고 나몰라라 하는 창조주들은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을 예측하지도 않고 무대책하게 내어놓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짙은 안개 속 비관과 원망 사이를 헤매다 보니 어느새 해운대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있었다.

하얀 유령이 스윽 지나가며 끼룩 울었다. 아유 깜짝이야. 복잡했던 머릿속은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찰싹 찰싹 매만져주자 한결 편안해졌다. 타올랐던 울분은 냉기를 품은 바닷바람에 잦아들었다.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연인이 파도와 백사장 이루는 경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고전적인 사랑놀이에 빠져있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랑이란 완전한 인간만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우울감이 밀려왔다. 어린 연인들은 지치지도 않고 깔깔거리며 인간의 미래를 밝히고 있었다.


“어? 얘. 재영이니?”


“응? 아, 썬이잖아? 깜짝이야.”


썬의 본명은 유선이었다. 친구들은 한글자인 이름을 강조해서 ‘썬’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예쁜 얼굴에 큰 키와 멋진 옷 센스로 단연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그렇지만 도도한 가시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곁눈질로 훔쳐볼 뿐 제대로 다가가는 사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가간 남자들도 일정 이상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그녀의 철벽 앞에 다들 무릎을 꿇은 지 오래이다.

특히 스킨십에 있어서는 단호한 정도를 넘어 혐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재영 또한 학기 초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떤 남자라도 그녀의 첫인상에 호감을 품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아예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연모의 감정을 숨겨버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그 경쟁에 끼기 싫었다. 그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경쟁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경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했다. 20세기 자본주의가 키워낸 가장 혐오스러운 단어였다는 논리적 포장 외에도 경쟁 상황에서 사람들이 외면의 껍데기를 벗고 번들거리는 탐욕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목도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덕에 그는 ‘좋은 사람’, ‘무색무취’ 등의 평가를 받아왔다.


“얘 너는 사람 앞에 세워놓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응? 아 미안. 그게···”


“뭐 넌 자주 그러곤 하자. 낯설지 않아. 설마 내가 반갑지 않은 건 아니지?”


“아니지. 아니야. 그 반대야. 그냥 너를 여기서 만나니 너무 놀라워서.”


“그래? 싫은 건 아니네.”


“당연하지. 왜 웃어?”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재영의 가슴은 왠지 모를 예감에 두근거렸다.


“우리 여기 좀 앉을래?”


“여기? 그래, 어 잠깐만.”


그는 허둥지둥 가방에서 작게 접혀있던 바람막이 옷을 꺼내 모래사장에 펼쳤다.


“여기 앉아.”


“나 그냥 앉아도 되는데. 너무 잘해주는 거 아냐?”


“아니. 차가워. 전에 비슷한 날씨에 와서 그냥 앉았다가 엉덩이에 며칠 동안이나 감각이 사라진 적이 있었어. 생각보다 습기도 많고 차갑거든.”


“그래? 알았어.”


그녀는 생긋 웃으며 기분 좋은 얼굴로 그가 펼쳐놓은 자리에 경쾌하게 앉았다. 그는 속으로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좀 비굴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조심스럽게 모래와 닿는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또 웃었다.


“뭐야?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앉아. 모래에 닿잖아. 이리 가까이 와.”


“어? 어 난 괜찮은데.”


“난 괜찮지 않거든? 그리고 나 해변에서 계속 걷느라 추워?”


그는 못이기는 척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주먹 하나 들어갈 사이까지 다가가자 가슴이 더욱 빨리 내달렸다. 심장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설상가상 그녀는 그런 그의 소심한 간격을 단 번에 좁혀버렸다. 이제 거리는 없다. 단지 옷과 옷 사이의 거리는 전달되는 36.5도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전까지 인생의 고뇌란 고뇌는 다 짊어지고 있던 축 처진 어깨는 단 번에 힘을 얻었고 죽음을 품고 있던 검푸른 바다는 햇살을 받아 눈이 시리도록 반짝거렸다. 너무나 극적인 반전에 얼떨떨했다.

이렇게 간사할 수가! 자책도 잠시 온 신경은 그녀와 맞닿아 있는 부분에 집중되었다. 체온의 전도는 비정상적으로 강렬했고 그의 심장이 만들어내는 온도 또한 그녀에게 전달될 터였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현실의 시간과 공간은 시시각각 너무 빨리 흘러가는 듯 했다. 이것이 상대성 이론일까? 그녀의 체온에 놀라서 유체이탈한 그의 사고가 엉뚱한 이론놀이를 하는 사이 그녀는 기습적으로 어깨를 기대어왔다. 그는 그녀의 암살음모가 아닐까 했다. 왜 이러지? 심장이 아프도록 뛰었다. 200미터를 전력질주하면 이렇게 뛸까?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건 대체?


“재영아. 많이 힘들었지?”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잠시 그의 뇌는 상황을 분석해내지 못했다. 심장박동이 빠르게 제 자리를 찾아갔고 그녀를 만나기 바로 전 자신의 상황을 기억해 내었고 그녀가 동기들로부터 들었을 각종 정보와 소문, 비난까지 생각해내자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던 체온은 급격하게 떨어져버렸다.

재빨리 어깨를 빼고 주먹 하나만큼 몸을 떨어뜨렸다. 따뜻했던 만큼 주먹 하나 사이로 더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들었니? 그렇겠지. 알아봤어. 나도 몰랐는데 확인해보니 사실이더라. 하하. 웃기지?”


부러 크게 웃으며 어색한 상황을 이겨내 보려 했다.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다 이해한다는 눈빛.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재영은 그녀가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실은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맙지는 않았다. 동정심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 동정심은 때로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법이다. 게다가 좋아했던 여자애 앞에서라면 더욱. 방금 전까지 바닷물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던 햇빛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불길한 검은 구름을 품은 파도가 발밑까지 다가왔다. 그는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었다.


“밀물인가 보다. 우리 밥이나 먹을까? 점심때가 훌쩍 지났네. 전에 아빠가 알려주신 맛있는 복집 알거든? 따뜻하고 시원한 국물이 최고던데.”


그녀는 바닷물이 발 아래까지 밀고 들어왔지만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신 더 따뜻한 미소를 그에게 보여줬다. 그 미소는 다시금 그의 심장을 파고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순식간에 식어버린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녀는 신비한 존재였다. 그녀는 미소를 뒤로 하고 갑자기 외투 오른쪽을 벗더니 오른팔을 걷어올렸다. 갸냘픈 팔은 햇빛은 한 번도 쬐지 않은 듯 하얗고 투명했다.

왜? 라고 묻기도 전에 그녀는 팔꿈치와 팔이 접히는 부분을 5초 가량 꾹 눌러주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팔꿈치부터 시작해 팔 전체, 피부 밑에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밝은 연두빛을 중심으로 여러 색들이 선 형태로 나타났다. 바닷물이 밀려오건 말건 재영은 다시 그녀 곁에 앉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슬픔이 떠올랐다.


“너와 좀 다르기는 해도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야. 피하지 않아도 돼.”


“어? 어? 그렇구나. 진짜 그렇네.”


바보같이 우물거리는 그에게 그녀는 활짝 웃어 보였다. 재영은 ‘사랑스럽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 배고파. 밥 사 줘.”


“기꺼이. 명령만 하세요. 프린세스.”


그녀는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깔 웃었다. 재영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켰다. 아슬아슬하게 다가 온 바닷물과 백사장의 경계를 따라 아까 보았던 어린 연인들을 흉내 내며 파도 끝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달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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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의 조건(2) +1 18.03.28 204 3 22쪽
5 인간의 조건(1) 18.03.27 206 4 11쪽
4 그녀의 정체 +1 18.03.26 279 4 12쪽
» 새벽 열차를 타다 +2 18.03.24 30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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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o am I? +5 18.03.22 593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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