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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18
추천수 :
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3.22 06:00
조회
590
추천
12
글자
9쪽

Who am I?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살갗이 따끔거린다. 뇌를 관통하는 차가운 바람에 온 신경은 마비상태에, 턱은 주체를 못하고 딱딱거린다. 이 생생한 감각,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피부세포들의 비명. 눈물이 찔끔 속눈썹을 적셨다.

이게 다 가짜라니. 아니 내 인생이 가짜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현실일리가 없다. 어렸을 적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던 엄마의 살결, 하얗게 칠해져있던 골목들, 빛바랜 플라스틱 목마, 명절 아침 잠이 덜 깬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삼촌이 건내 주셨던 멋진 변신 로보트 장난감, 그리고 너무 붙어 다녀 결혼할거냐고 놀림 받던 내 단짝 고영아와 주고받았던 달콤한 이야기들 이 모든 것이 추억, 기억이 아니라 컴퓨터 언어로 만들어진 메모리라고? 그걸 믿으라고?


“재영아 문 좀 열어봐. 얘기를 하자. 엄마하고 얘기하자.”


재영은 침묵했다. 솔직히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마구 뛰었다.

엄마의 다급함, 감정을 억누른 흐느낌이 심장에 파고들었지만 몸뚱이는 침대에 박제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은 감성에 눌려 지리멸렬했다.

그의 과거 대부분은 부정되었다. 자랑스러웠던 기억들, 웃고 울었던 추억들, 행복으로 버무렸던 따뜻한 어린 시절이 조작되었다니 이건 명백한 재앙인 것이다.

어린 그의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며 지나갔던 고운 바닷모래의 감촉, 천국으로 가버렸다고 안타깝게 기억하는 치와와 ‘포겟’의 곱슬거리던 하얀 털, 그리고 끝내 고백하지 못했지만 언제까지고 기억 속에 남을 연상의 그녀.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재영아. 듣고 있지? 놀랐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엄마와 아빠한테 너는 영원히 사랑하는 내 아들이고 자랑스러운 우리 가족의 일원이야.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이제 문을 열어봐라. 응, 아들? 제발 문 열어 제발.”


엄마의 안타까운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고 벽과 벽 사이를 전전하다 이내 사그라들었다. 재영은 엄마의 말에 더욱 낙심했다. 부정하고 싶고 부정당해야할 현실은 점점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고심했을 것이다. 아마도 말할 시기를 놓쳤으리라. 재영은 논리적으론 이해를 했다.

어떻게 얘기하겠는가?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를 하루아침에 거짓이었다고 쉽사리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사랑받았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슬픔이 맹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자신이 그 뜨거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팩트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고위 경찰신분인 아버지와 유능한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를 둔 유복한 가정의 외아들. 그 자신도 올해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명문대에 학과 최고 성적으로 진학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완벽한 몰락을 위한 악랄한 소품이었다.

몰락을 몰고 온 ‘놈’은 평범했다. 놈은 훤칠한 키에 적당히 수다스럽고 사교성이 풍부한 서울내기였다. 붙임성이 좋은 놈은 재영에게도 살갑게 대해줬다. 붙임성이 선천적으로 결여된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덕분에 동기들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되었다. 고마움은 거기까지였다.

놈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정확히는 ‘유사인간’ 혐오주의자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놈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인공지능(AI) 발전에 따른 대량실업과 그 이후 정부에서 주는 기본소득 또는 생활임금이라고 부르는 급여(실직자들은 이를 Fire salary라 불렀다)를 받게 되면서 극렬 AI 혐오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유학까지 다녀와서 고급엔지니어이며 정밀화학공정 시스템관리자로 전도유망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실업자에, 더 심각한 것은 더 이상 사회를 위한 유의미한 부가가치를 생산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생계는 자연스럽게 중학교 선생님-교육은 인간이 전담하자는 국제적인 협약에 의해 인간에 의한 공교육 시스템은 살아남았다-인 부인의 봉급에 가족 세 사람의 기본소득을 합쳐서 별 문제 없이 살아가게 되었지만 AI와 관련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혐오하게 된 것이다.

이 분노는 이후 인간과 기계의 유기적 공존을 꾀한다는 계획에 의해 개발된 ‘유사생명체, 유사인간’의 등장에서 완전히 폭발하게 되었다.

다국적 기업들과 각 국가들은 인간의 친구라는 개념 하에 유전자 복제에 의한 인간, 개, 새 등의 유기체에 인공신경망을 결합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놈의 아버지를 비롯한 인공지능에 의해 일자리에서 밀려난 수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 발전을 비호하는 국가, 기업들, UN에 대항하여 강력한 시위와 반체제 운동을 하게 된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HN(Human Nation)을 결성하기에 이르는데 인공지능의 사용범위와 기능 축소, 연구개발 중단, 인간 노동권리 보장 등을 외쳤다.

하지만 대세를 뒤집기에 인공지능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편의, 자본주의와의 강력한 결합이 너무 강하고 너무 빠르게 성장하였기에 역부족이었다. 좌절에 대한 분노는 점점 커졌다.

놈은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을 뿐 아니라 본인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대학에 오기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HN연대의 집회에 정식멤버로 가입해서 활동해왔다.


놈은 어느 날 조잡하게 생긴 디지털측정장비를 들고 왔다. 자신이 속한 HN연대 한국지부에서 새로 개발한 유사생명체 판별 장비라고 떠들어댔다.

재영은 내심 불쾌한 기분이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집에 있는 애완견 ‘사랑이’는 3대째(원 생명체에서 3번째 복제) 복제견으로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녀석으로 단 한 번도 유사생명체라는 딱지를 붙여 괴물처럼 본 일이 없다. 사랑이를 기계생명이니 유사생명이니 해서 차별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인간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론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엔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다. 워낙에 점잖은 분들이 방송에서 유사생명체에 대한 차별에 대한 사소한 뉴스에도 매우 불쾌해하시며 욕까지 나오는 데에 재영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놈이 친구들을 상대로 스캔을 하기 시작했다. 사내 녀석들은 대부분 호기심에 어떻게 보이냐며 산출된 데이터에 관심을 보였으며 수술해서 인공기구를 몸에 넣은 친구는 유사인간률 10%가 나오자 모두들 낄낄거리며 놀림거리로 삼았다.

여자들은 혹시나 불쾌한 수치가 나올까 싶어 적극 거부했지만 놈은 평소와는 달리 무례하게 측정기를 들이대며 ‘통과’를 외쳐댔다.

썩소를 날리는 재영에게도 놈은 장비를 들이댔다. 그런데 같이 장비를 보던 놈들의 표정이 일순 변했다. 재영과 작은 모니터를 연신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았다. 놈은 손가락을 바삐 놀리며 장비를 여러 방식으로 조작했다. 놈과 놈들의 눈이 커졌다. 놈이 입을 열었다.


“야 재영이. 너 좀 웃기다?”


“뭐가?”


“하, 하하. 네 눈으로 확인해봐.”


“이것들이, 웃기지도 않는다 응?”


“보라고.”


믿기지 않는 현실이 조잡한 액정화면에 빼곡한 숫자들로 나타났다. 99%. 유사인간 확률 또는 인간이 아닌 확률.


“뭐야 이거? 재미없다고.”


“그래. 나도 재미없긴 해.”


녀석의 입술이 비죽거렸다. 친구라는 타이틀을 한 녀석들의 입술들이 일제히 수군거렸다.

조금 전까지 무례한 행위에 비난을 아끼지 않던 여자들도 모두 몰려와 판도라의 상자의 내용물에 강렬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에이 아니겠지? 설마! 오작동 아냐? 재영이 어딜 봐서 그런 소리를 해. 진짜면 대박이다 등등. 재영은 사방에서 내려 꽂히는 적의에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놈에게 경고했다.


“너! 이런 짓을 하고도 괜찮을 것 같아? 학교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거야.”


“그래. 나도 지금 이 정보를 믿어야 할지 당황스럽네. 하지만 이게 껍데기는 허접해도 안에 있는 분석 모듈은 국내 최고 권위자가 정부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기반해서 만든 거야. 실 테스트에서 99% 이상의 신뢰를 보였지. 그래 1%가 남아 있긴 하네. 1%의 오류이길 바란다.”


내뱉은 말과는 달리 놈의 입가엔 비릿한 웃음이 내걸렸고 눈가엔 승리의 쾌감이 번들거렸다.

재영은 누구 하나 나서서 놈을 제지하지 않는 것에도 화가 났지만 한 번 째려보는 것 외에 다른 학우들에게 별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친구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적이 되는 데에는 단 몇 분이면 충분한 일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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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자이언트 아담 18.04.30 10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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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알파와 오메가 18.04.27 92 1 16쪽
31 구출하라 18.04.26 114 1 8쪽
30 반격 18.04.25 88 1 11쪽
29 양복 18.04.24 99 1 17쪽
28 모르모트 18.04.23 108 1 7쪽
27 욕망의 크기 18.04.21 92 1 13쪽
26 인류대화합의 날(2) 18.04.20 91 1 13쪽
25 인류대화합의 날(1) 18.04.19 116 1 13쪽
24 전쟁 전야(前夜) 18.04.18 106 1 11쪽
23 승리의 피로 18.04.17 97 1 12쪽
22 아담(2) 18.04.16 139 1 10쪽
21 아담(1) 18.04.14 113 1 10쪽
20 승리의 함정 18.04.13 112 0 9쪽
19 영웅탄생 18.04.12 109 1 12쪽
18 첫 번째 활약 18.04.11 158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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