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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44
추천수 :
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4.03 06:00
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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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노박사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재영과 유선은 연희동 주택가 모서리에서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뜸했고 오래된 저택들은 담이 무척 높았다. 고관대작들이 즐비하게 살았다는 옛 명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오래된 저택들을 개조해서 사는 유명인사들이 많은 동네였다. 둘은 한 집을 주목했다. 유선은 팔을 뻗어 가리켰다.


“저기라고? 확실해?”


“응. 어렸을 때, 아니지. 그냥 내 안에 있는 기억 상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 다니면서 의사선생님 댁에 몇 번 왔던 기억이 있어. 재작년에도 잠깐 방문했었지.”


“그래? 사람이 많을까?”


“아닐 거야. 그때 분명히 혼자 산다고 했거든.”


“저런 큰 집에 혼자? 무서울 것 같은데.”


“집사 및 가정부 안드로이드가 있더라고. 상당히 고가의 인간형이었던 것 같아.”


“아 그래? 그러면 쉬워지지.”


“뭐가 쉬워져? 어? 어? 유선. 뭐하는 거야?”


유선은 갑자기 성큼성큼 의사선생의 집으로 걸어갔다. 말리는 재영에게 조용하라며 검지를 입술에 대보이더니 그대로 저택 현관 앞에 다다랐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지문과 혈관을 검색하는 출입보안검색기 화면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재영은 놀란 토끼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적막했지만 금방이라도 괴한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반면 유선은 담담해보였다. 눈까지 감았다.


그런데 검색기 화면 반응이 이상했다. 일반적인 통과반응이나 거부 반응이 아니고 알 수 없는 데이터가 나타나고 화면색이 폭죽이라도 터트리는 것처럼 번쩍거렸다.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던 그녀의 왼쪽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현란하게 왼쪽 허벅지를 두드렸고 입은 알 수 없이 나지막한 소리로 무엇인가를 읊조렸다. 흡사 신비한 영감에 휩싸인 예언자 같았다. 그녀는 딴 세상의 사람처럼 보였다. 재영은 그녀와 해운대 바닷가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 거리감을 느꼈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것일까? 겨울바람이 품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어왔다. 옷깃을 여미는데 그녀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더니 ‘찰칵’ 문이 열렸다.


그녀는 그를 돌아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재영은 그것도 놀랐지만 그 다음에 더 놀랐다. 유선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재영의 모습에 익살스럽게 뿌듯한 포즈를 취했지만 재영이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손가락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보니 커다란 - 산 같은, 여자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한 가정부 복장의 안드로이드가 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머? 네가 옥경이니? 반가워. 우리는 노박사님께서 미리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왔어.”


옥경이는 유선과 재영을 바라보며 분석을 하는 듯 했다. 얼굴은 디지털화면으로 되어 있었고 무표정한 것이 음산스러웠다. 복장은 매우 풍성한 레이스가 달린 코스프레용 메이드복장을 하고 있었다. 옥경이는 유선에게 말했다.


“네 보내주신 영상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박사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으셔서 제가 박사님께 연락을 드려 한 번 더 확인하려고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래? 하지만 이렇게 손님을 이렇게 서 있게 하는 건 실례인 것 같은데 들어가서 쉬어도 될까?”


유선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거대한 옥경이의 손이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엄청난 긴장이 흘렀다. 옥경이는 거대한 몸집이 어색하도록 빠르고 단호했다. 물론 유선은 전혀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팽팽한 긴장감에 재영은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며 안절부절했다. 대결은 없었고 유선은 다시 문을 열 때와 마찬가지로 무아지경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눈을 마주치고 있던 옥경이도 유선과 눈을 떼지 못하고 동작을 멈추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이 곧 끝났고 옥경이는 말없이 길을 비켜주며 유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영문을 몰라 우물쭈물하는 재영의 손을 잡아끌고 유선은 집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박사의 집 안은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듯 가구, 집기, 구조 등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단순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았다. 전시 작품처럼 완벽하게 짜 맞춰진 터라 재영은 곡선은 완전히 배제된 소파에 앉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반면 유선은 신이 나 보였다. 여기저기 구경하며 집들이라도 온 것처럼 보였다. 재영은 머리 두개는 더 큰 옥경이가 신경 쓰여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커다란 손에 멱살이라도 잡히면 다시 아침 해를 보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남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선은 여전히 신이 난 표정이었다.


“이봐. 남친. 여기 진짜 좋지 않아? 우리 나중에 이런 집에 살면 좋지 않을까?”


“미안한데 지금 그런 얘기하긴 적절해 보이지 않는데? 그리고 난 적당히 어지러운 걸 좋아해. 이건 너무 숨이 막히잖아. 아 이 옥경인지 뭔지 거인은 왜 자꾸 따라다니는 거야?”


“야 너 방금 내 얘기 듣긴 한 거야?”


“왜? 방금 듣고 대답했잖아.”


“어휴. 이런 건 딱 남자네. 알았어. 그리고 옥경이는 가사 안드로이드니 시중들려고 따라다니는 게 당연한 거지. 옥경아 우리 마실 것 좀 가져 다 줄래?”


유선의 요청에 옥경이의 다소 무섭게 보이던 무뚝뚝한 디지털 표정이 순간 방긋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명령을 내려줘서 기쁜 것일까?


“네 요청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음료수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커피, 차, 과일음료, 주류까지 가능합니다.”


“난 홍차. 여기 이 친구는 바나나오렌지 쥬스로 부탁해.”


부산에서 딱 한 번 들었을 뿐인데 유선은 재영이 좋아하던 음료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재영은 고마움이 욱하고 올라왔다. 대명천지에 그녀는 유일하게 그를 기억해주는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비록 무지막지한 괴력의 소유자이지만 그에게는 감싸주고 싶은 연약한 내 여자인 것이다. 그는 리미트 해제를 통해 그녀보다 더 강한 힘을 얻고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녀가 그를 보호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대한 빨리 상황을 역전시키고 싶었다.


그녀는 그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애써 외면했다. 평소처럼 닭살 돋는 눈빛 치우라고 쏘아 붙일 만도 하건만 어쩐지 그녀는 부끄러웠다. 싫지 않았다. 그와 집이라는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고양되는 것 같았다. 너무 앞서가는 얘기지만 같이 같은 공간에서, 사소한 언쟁과 소소한 기쁨과 소박한 행복을 나누었으면 하고 그녀는 바래보았다. 지독한 현실이 그를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재영과 함께 삶을 나누는 미래에 대해 신께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보고 계시지요? 오랫동안 불행하다고 그렇게 투덜거렸는데 불현듯 행복의 잠자리가 날아와 제 어깨에 앉았네요. 하지만 감사할 겨를도 없이 이렇게 쫓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행한 평안보다 행복한 고통이 더 낫습니다. 재영이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한 고통도 고통인지라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습니다. 이 연약한, 사실 별로 연약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연약한 소녀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함께 하도록,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평생 이렇게 간절하게 구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작은 행복을 지켜주십시오.’


“뭐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응?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하하하.”


그녀는 부러 큰 소리로 웃어보였다. 재영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추궁해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난처했지만 때마침 나타난 옥경이의 등장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옥경이가 내어놓은 홍차와 쥬스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화려한 중국풍의 접시에 쵸코렛으로 장식한 과자세트에 담긴 전문가의 솜씨는 경탄을 자아냈다. 맛있는 다과 때문일까 둘은 깔깔 호호, 마치 자기 집에서 편안한 저녁 한때를 보내는 것처럼 즐거웠다. 이를 바라보는 옥경이의 얼굴 액정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당신들 누구야!”


잠깐의 행복은 집주인의 고함으로 깨어졌다. 현관에는 노박사가 작은 눈을 있는 대로 치켜뜨고서 노려보고 서 있었다. 경계와 당혹감으로 가득한 눈은, 그러나 곧 익숙한 얼굴에 놀람으로 바뀌었다.


“아니 너는?”


“안녕하세요? 노박사님. 저 재영입니다.”


“뭐? 재영? 너 괜찮냐? 방송에 네 얼굴로 도배되고 있는 것 알아? 아! 저 친구도 알아. 같이 나왔어. 맞지?”


노박사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더니 옥경이가 가져온 냉수를 들이키고서야 겨우 제정신이 된 듯 했다. 그는 재빨리 한쪽 벽으로 다가서더니 가슴 높이의 특정 부분에 손바닥을 밀착시켰다. 그러자 벽이 열리며 커다란 모니터와 벽면을 빼곡하게 수놓은 작은 화면들이 나타났다.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등장이었다. 큰 모니터는 저택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의 얼굴 같은 것이었고 각 작은 모니터는 저택 주변을 샅샅이 비추고 있었다.


“말순아. 집주변 뿐 아니라 동네 인근을 모두 검색해봐. 평상시와 다른 수상한 움직임은 없는지. 아, 경찰들 동향도.”


재영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는가 했지만 말순이는 저택을 종합 관리하는 인공지능의 이름이었다. 노박사의 작명센스에 유선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말순이는 일반적인 인공지능처럼 보이지 않았다.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경찰 서버 및 국가감시망에도 접속해서 인근 지역의 동향을 보고해주었다. 재영은 노박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노박사는 말순이가 인근 지역이나 경찰 및 국가기관의 저택 주변에 대한 특별한 동향이 없다고 확인해주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소파에 기대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섰다.


“아니 그런데 대체 너희들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야?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곳인데. 옥경이는 대체 뭘 했고? 정부기관 애들도 물리적인 수단이 아니고는 여길 들어올 수가 없는데 말이 되질 않잖아?”


옥경이는 슬픈 표정을 내보였고 커다란 몸으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황과는 달리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유선은 뭔가 말해보려는 재영을 제지하고 나섰다.


“박사님.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유선이고요. 재영이의 학교 동기입니다. 다른 구구절절한 소개를 제외하면 제 대부분 몸은 안드로이드고 코드넘버는 ALPA 2016 - 37 입니다.”


유선이 코드넘버를 얘기하자 노박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서 비틀거리며 소파로 가서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번갈아보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그러니 보안락이 다 뚫리지. 재영아 너는 네 코드넘버를 알고 있니?”


재영은 병원에서 알아 낸 2033-QHM-097을 언급했지만 박사는 그것은 일종의 제품일련번호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재영 넌 OMEGA 2032 - 1 이야. 아이고 이걸 어쩌나. 내 업보로구나. 내 죄다.”


“박사님은 뭘 아시는군요. 저희들의 정체에 대한 것인가요?”


재영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질문하는 유선의 용기가 부러웠다. 언제나 주저하고 숨고 어중간한 데서 머무르는 자신을 자책했다. 노박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말순이에게 유선의 코드넘버 검색을 명령했다. 곧 화면에 보고서 형태의 프로젝트 화면이 떴다. 디자인 작업이 된 화려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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