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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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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6
추천수 :
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3.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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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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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기다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유선은 망연자실해서 낯선 골목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홀로그램 전화패널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동영상 프로필로 저장된 재영은 특유의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면 그녀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그렇지만 아무리 연결을 시도해도 그는 응답이 없었다. 벌써 며칠 째 그는 온라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 거야 온다고 하더니 왜 아무 말이 없어. 빨리 전화 받아. 제발.”


5일 전 재영이 돌아온다는 연락에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이 일단 열리니 얼마 되지 않은 기다림이 고통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재영이 전국을 여행하던 두 달 동안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아프고 말았던 치통에, 극심한 두통에 생리불순, 비염까지 도졌다. 기계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 아파왔다. 나중엔 ‘이 나쁜놈 올라오기만 해봐라.’ 당혹스러운 고통의 원인이 재영이라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기계 육체에는 나노의료유닛이 장착되어 몸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치료를 실시하게 되어 있다. 외부의 충격에 의한 심각한 외과적 수술이 요구되지 않는 한 아플 일은 없었다. 그것이 정상인 것이다.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가보았지만 유기조직, 기계조직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으니 잠을 충분히 자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처방만 돌아왔다. 그녀에게 스트레스라면 역시 재영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통화했지만 통화는 짧았고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었으며 그녀가 전화하기 전에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남성성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걸까? 그의 전화를 기다리다 조바심에 먼저 전화하게 되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그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그에게 빨리 닿고 싶었다.


어머니가 억지로 데리고 간 한의원에서 더 확실해졌다. 기계 몸에 한의사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지만 그래도 가보라고 억지로 떠밀어서 간 한의원에는 이제 쇠퇴해버린 한의학의 마지막 고수처럼 생긴 할아버지 한의사가 예의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폈다. 그러더니 맥도 잡지 않고(사실 기계 몸이라 잡을 수가 없다) 대뜸 정답을 던졌다.


“사랑병이네. 좋을 때야. 하지만 너무 마음을 쓰면 진짜 몸까지 상할 수가 있어. 인간을 복제하고 기계로 몸을 대체하고 순식간에 육체를 고치고 개조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고 놀라운 개체이자 이해불가의 부조화의 산물이야. 백억분의 일에 불과한 단순 한심한 머시마(주:사내아이) 하나 좋아하는데 왜 대체 몸이 아픈 거야? 그렇지 않아? 하지만 그래서 인간이고 이 뻔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존재하는 거야.”


그리고 비싼 화병약을 권했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점쟁이적인 약 팔기 기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약은 기막히게 잘 들었다. 어머니는 거 보라며 의기양양했다. 그 할아버지가 사짜(?)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사람 고치는 데는 도가 텄다며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약을 다 먹을 무렵 병의 근원인 재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이제 돌아간다. 밤을 새워 너하고 얘기하고 싶다.’ 그녀는 백 번도 넘게 문자를 보았다. 짧은 문장 이미 다 외웠는데도 또 보고 싶었다. 기계로 중무장한 그녀에게 사랑 따위는 위협거리도 아니라고 장담했는데 견고해보이던 마음의 장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 허탈했다. 뭘 위해 그렇게 마음을 꽁꽁 싸매고 있었던 건지, 그냥 두려웠던 걸까? 하룻밤이 아니라 열흘 밤이라도 세워서라도 그와 못 다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의 연락이 끊어졌다.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걸까?


계속 연락을 시도하던 중 방송에서 재영과 비슷하게 보이는 사내가 복합몰에서 유사인간 박멸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보았다. CCTV는 추격전의 속도 때문인지 쇼핑객과 여행객으로 뒤덮인 인파 때문인지 제대로 소동의 전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쫓기던 남자의 신병은 끝내 확보되지 못했고 소동을 벌인 인공지능 혐오자들의 악다구니는 음성 지원 없이 보여줄 뿐이었다.


정부는 사회 안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는 엄벌만이 있을 뿐이라는 엄포와 함께 유사인간이 위험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강하게 비호했다. 어쩐지 과하게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재영과 그녀 자신의 안전을 국가가 보장해준다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영의 안전이었다. 쫓기는 자가 정말 재영이었다면 그는 위험한 상태일 것이다.


그녀는 이내 부정했다. 재영이나 자신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방송에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한의사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놈의 사랑병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장면에 그를 투영시킨 것이 분명하다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계속해서 연결을 시도했다. 실패가 계속되자 답답해졌다. 답답한 나머지 동급생 비상연락망에 적힌 재영의 집까지 찾아갔다. 슬픔에 가득 차 현관문을 열었던 재영의 어머니는 친구라는 말에 반색하며 그녀를 집에 들였다. 어머니는 곧 돌아오겠다는 애매한 문자만 받았다고 했다. 아들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여인에게 방송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정성을 다했다. 게다가 비슷한 처지라는 얘기까지 들으니 유선을 꼭 품어주었다.


“미안하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너희들에게 고통만 안겨주는구나.”


유선도 어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인생에는 누구의 탓이 아닌 고통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해서 생겼을 뿐인 고통은 어떻게 치유해야할까? 언젠가는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았다. 한참을 어머니와 대화하고 집을 나선 그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나쁜 놈아. 여자들 울릴래? 빨리 연락해. 너 진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이 화상대화를 걸어왔다. 불법 광고 내지 후킹, 또는 변태일지도 몰랐다. 해킹은 디지털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얘기처럼 흔한 일이다. 그녀는 신고 버튼을 누르려다 귀찮아서 그냥 번호차단을 하려는데 가면이 화면에다 손가락으로 뭔가를 표시했다. 뭐지? 그녀는 호기심에 가면의 손가락을 자세히 보았다. 이니셜이었다. YS(유선).


그녀는 정보가 인지되자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가면을 살짝 벗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재영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눈에서 뜨거운 물이 자꾸 나오는 걸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재영은 다시 가면을 썼다. 재영도 좀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카운트되는 통화시간만이 통화가 계속 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 재영이 입을 열었다.


“거기는 아무 일 없지?”


“무슨 일 있어? 혹시 누가 찾아왔어?”


그녀는 화가, 뜨거운 것이 확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 있지. 대체 무슨 일이야? 왜 그런 걸 뒤집어쓰고 얘길 하는 거야.”


“아직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래. 아무래도 나 쫓기는 것 같아.”


“쫓겨? 누가? 왜? 설마 방송에 나온 게 너야?”


“응. 놈들에게 내가 타깃이 된 것 같아.”


“네가 왜?”


“너 정의 그 녀석 알지?”


“알지.”


“놈이 방송에 소동을 피운 무리 중에 있었어. 내 정보를 자기들 조직에 자세히 알린 모양이야.”


“걔는 미친 것 아냐? 아니 대체 왜? 그것도 같은 과 친구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미쳤다고 생각하면 편해. 미친 것이겠지. 그리고 내가 숨어서 그간 있었던 뉴스나 커뮤니티에서 정보들을 검색해보니 HN(Human Nation) 알지? 놈들의 단체에 거물 정치인들도 가세한 모양이더라고. 유사인간이나 인공지능 체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기반으로 실직한 사람들 중심으로 세를 넓히다보니 이제 정치적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다다른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놈들이 적으로 분류한 리스트의 상단에 있는 것이 분명해보여. 유사인간-내가 이렇게 부르니 웃기는군-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없으니 어렵게 얻은 표본을 확실하게 확보하려는 거겠지. 잡히면 해부라도 당할지 모르겠어.”


“해부? 말도 안 되지. 그건 살인이잖아.”


“놈들에게는 난 단지 일개 기계일 뿐이니까. 게다가 법적으로 인간인지 기계인지도 불분명하고 나 같은 경우 부모님께 소유권이 있지도 않다고 들었어. 길고양이 정도의 권리라도 있을까 모르겠어.”


“심재영. 잘 들어. 넌 분명히 사람이야. 누가 뭐라고 하든지. 어깨 펴. 남자가, 이런 표현은 성차별적이지만 위축되어 있는 남자 매력 없어. 당당하게 맞서. 놈들이 틀렸고 네가 옳아. 겁은 나더라도 굽히지 마. 내 남자는 씩씩해야지.”


“그래. 응? 방금 뭔가 중요한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마지막에 뭐라고?”


“취소! 다 들었으면서 응큼하게.”


“뭔가 엄청 달콤한 표현이 담겼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됐거든? 지금 이 위급한 상황에 하여튼!”


“하하. 그래 유선 보고 싶었어. 여행하는 내내 네 생각 했어.”


“어머 어머. 너 어울리지 않게 왜 이래? 나 지금 완전 심각하거든? 방금 전까지 축 쳐졌던 인간이 태세전환이 엄청나다 너.”


“그러게. 심각한 상황이긴 하네. 그럼 이 갑작스런 들이댐은 다음에 이어가는 걸로 할까?”


“야야야. 누구 마음대로. 거 참 남자 마음 갈대라더니.”


“하하하. 왜 이랬다 저랬다 해.”


“누가? 난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거든?”


“내가 문제인건가? 그래 그런 것 같다. 남자 마음은 갈대지 암.”


“됐고 어디서 볼까?”


“어? 지금 쫓기고 있다는 말 못 들었어? 위험해. 조금 지나서 상황을 보고···”


“보고 싶다고. 꼭 이렇게 얘기해야 알아들어?”


그녀는 단호한 말과는 달리 화면에 비치는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 차올랐다. 설명할 필요 없는 충만한 감정이었다. 그녀의 넘치는 그리움은 재영의 가슴으로 이내 차올랐다. 가면으로 감정을 들킬 염려는 없었지만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뭐야 너 우냐?”


“울기는 기침이 나오려고 해서. 가면 썼잖아.”


“에이 울었구만.”


“하아 낭만 없는 이 여인을 어찌할꼬? 그래 그건 그렇고 어디서 볼까?”


“헤헤. 그래 어디서 보지?”


“학교에서 보자.”


“학교? 위험하지 않을까?”


“뭐 방학 때이기도 하고 혹시 기억나? 철학 교양수업 받았던 대강당?”


“아 거기? 음대 공연장으로도 쓰는 강당?”


“응. 거기. 1학기 때 거기서 철학 교양수업 들었잖아. 학교에서도 제일 변두리에 있고 공연이나 수업 있기 전엔 잘 가지 않는 곳이니 안전할 거야.”


“그래. 알았어. 그럼 지금 바로 갈게.”


“그래. 보고 싶다. 빨리 와라.”


“어머 어머 너 오늘 꽤나 남자답다? 센 척 하기는.”


그녀는 기쁨을 억지로 감추며 전화를 끊었다. 재영의 입에는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는 전화 및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넷박스를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 후미진 골목에서 가면을 벗고 그녀에게로 걸음을 재촉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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