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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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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4
추천수 :
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3.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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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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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그녀의 정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그녀의 육체는 90% 이상이 ‘제조’된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오작동을 일으킨 무인택시에 의해 5미터 높이까지 하얗게 날아올랐던 그녀였다.

친구들은 나비처럼 사뿐 날아올라 사고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장기와 사지가 모두 망가져버렸다.

의사는 다행히 손상되지 않은 뇌와 척수를 적출해내었고 그녀는 당시 가장 안정성이 입증된 세라믹 나노 세포체로 구성된 안드로이드(C-NCA3)에 자신을 ‘장착’시켰다.

그녀의 부모는 재영과 같은 체세포 복제 방식을 원했지만 당시엔 아직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생산체제가 워낙 소규모라 너무 비싼 가격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다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체세포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이후에 다시 시술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날씬한 몸매였지만 몸무게는 75KG이나 되었다.

체중계 근처에도 가지를 않았다. 체중계가 싫어 중등과정은 홈스쿨링을 통해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병원 - 정비소라고 해야 어울리는 - 에 가는 것이 제일 싫었다. 각 특정 부위를 누르면 나타나는 빛의 선들은 정확한 정비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었다. 인정하기 싫은 그녀의 정체성을 낱낱이 확인하는 과정이 너무나 싫었다.

정비소에 가기 싫다고 버티는 그녀와 부모의 실랑이는 일상이었다. 특히 담당 안드로이드 전문 의사 - 닥터가 아니라 기술자라고 불어야할 것이다 - 인 닥터 최는 정말 싫은 인간이었다.

그는 그녀가 방문할 때마다 파워리미트를 풀어주면 그녀는 일반 여성은 꿈도 꿀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생길 거라며, 원더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과장된 제스처를 해대며 혼자 신나서 판타지 소설을 쓰곤 했다.

결국 나중에 닥터 최는 환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코드까지 알려주었다. 그녀는 혐오스런 닥터 최의 유혹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코드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만약 힘이 생기면 닥터 최부터 창밖으로 던져버리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가장 민감하고 변화가 많을 나이에 그녀는 철저하게 외톨이였다. 신체의 대부분이 기계인데 자신을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지, 실체를 알고 나면 자신을 좋아해줄 남자가 있을지, 인공지능 혐오자들이 자신도 미워하지 않을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반적으로 늙어서 죽는 평범한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 그녀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미로에 빠져서 5년을 보내고 정말 용기를 내서 대학에 왔지만 그녀의 인간관계는 그닥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은 그녀의 이미지를 폐쇄적이고 차가운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남자들에게 더욱 차갑게 대했다.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이트를 하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 남자가 용기를 내서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 아니 과감하게 자신을 안았을 때 피부 아래에 있는 차가운 기계를 들킨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날도 그랬다. ‘놈’은 교실에서 병아리 감별사처럼 등급을 매기려고 했다. 불쾌감과 두려움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더러운 놈.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온 거친 언사에 본인이 놀랐다. 어찌 처신해야할 지 몰랐다. 처음으로 닥터 최가 알려준 코드를 기억해냈다. 턱 아래 작은 몽우리 같은 정보입력용 스위치에 손을 가져갔다. 일종의 모르스 부호 같은 간단한 패턴만 입력하면 국가대표 레슬링 헤비급 선수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낼 것이라고 했다.

놈의 장비를 부숴버리고 놈의 가냘픈 몸뚱이를 메다꽂고 그리고 그녀의 인생도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도대체 사람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이런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과 구역질나는 모멸감을 감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녀와 단짝인 친구가 놈의 행사가 역겹다며 과감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 주었다. 최근에 부쩍 불은 몸 때문이었겠지만 어쨌거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위기를 벗어난 그녀는 앞장 선 친구에게 학교 카페에서 파는 가장 비싼 커피를 대접했다.

둘이서 ‘놈’에 대한 뒷담화를 신나게 하는 동안 재영의 사건이 일어났고 곧 그녀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다른 친구들의 악의에 찬 호기심과는 달리 내심 반가웠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존재의 어긋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친구가 아닌가? 게다가 항상 조용하고 베일에 가려있어 보이던 재영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어쩐지 속 얘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호감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재영은 종적을 감춰버렸고 그에 대한 소문과 소설만 무성했다. 그녀는 아쉬웠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눈앞, 해변가 좁은 식당에 무릎이 닿을만한 거리에 있었다. 그녀는 우연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꽤나 가슴 한켠이 요동하는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숫기 없는 재영은 식당 다른 곳에 연신을 눈을 돌리다가 웃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왜 웃어?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신기해서. 어떻게 대한민국 넓은 하늘 아래서 그것도 저 길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해변에서 널 만났을 까 싶어서.”


“그건 그래. 진짜로 깜짝 놀랐어. 무슨 일로 내려온 거야?”


“몰랐구나? 나 부산이 고향이야?”


“그래? 사투리 전혀 쓰질 않아서 생각도 못했어.”


“호호. 엄마가 서울 사람이다 보니 이래 뵈도 서울말 부산말 2개 국어 능통하시지 에헴.”


“어허 이 친구 이거 어디서 귀여움질이야.”


“아하하하하. 왜 이래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사실 내 귀여움은 역대급이거든.”


“어 얘 봐. 헐이다 헐.”


재영은 웃으면서도 내심 놀랐다. 언제나 차갑고 도도해보이던 그녀에게 이런 모습은 의외였다. 그녀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 동안 힘들었지?”


재영이 무심코 던진 질문이 유선의 가슴 깊이 비집고 들어왔다. 질문 속에 깃든 공감이 고마웠다. 같은 길에서 같은 고민과 같은 고통과 같은 눈물을 흘려본 자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는 법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너 지금 울려고? 그러지 마. 안 돼.”


“우는 것 아냐. 그리고 왜 내가 내 눈으로 울고 싶을 때 울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


“여자가 울면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러지.”


“흥. 모르면 배우면 되지. 그리고 뭘 할 필요도 없어. 그냥 누군가 들어주고 같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잖아. 지금이 그런 때야. 그리고 힘들었어. 계속 피하고 피하다가 연예인 누구처럼 당당하게 행동하겠다고 결심하고 집밖으로 나왔는데 전혀, 정말 손톱만큼의 자신감도 생기질 않더라고.”


“연예인 누구?”


“애슐리 강 알지? 미국계 한국인이었지? 나하고 비슷하게 큰 사고를 당하고 신체 대부분을 안드로이드화했어. 커밍아웃하고 많은 편견과 적의에 뒷담화를 겪고도 참 당당했지. 물론 그 과할 정도의 몸매가 그녀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녀는 장난스레 애슐리의 큰 가슴을 두 손으로 과장하며 보여주었다. 재영은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야 넌 여자애가 못하는 짓이 없어.”


“뭐 어때서. 내숭 떠는 것보단 나은 거 아닌가? 그리고 나도 몸매는 좀 되긴 해. 그러지 말라는 데도 우리 담당의사가 신체 조정하면서 자꾸 몸매를 너무 그런 쪽으로 가져 가. 아무래도 변태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어.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시키려는 음모가 느껴져.”


“크크크. 너 진짜 깬다. 이미지 완전히 박살나버렸어. 대박이다.”


“왜. 새초롬하니 도도하고 쌀쌀맞은 여자애 생각했지? 아니거든? 우리 과 몇몇이 접근해서는 그런 이미지 나한테 덧씌우려고 하더라고. 확 깨줬더니 자기를 싫어하면 싫어한다고 하라느니, 그러면 안 된다고 웃기는 소리하는 녀석이 있지 않나. 웃기잖아? 왜 내가 지들 생각에 맞춰줘야 해. 우리 집에선 나 별명이 장군이야. 유 장군.”


“푸하하하하.”


“왜 실망했냐?”


“아니 아니. 반대야. 너 진짜 괜찮다.”


“진짜?”


“진짜. 마음에 겹겹이 두꺼운 빌로드 장막을 친 내숭쟁이들은 나한테 너무 힘든 존재거든. 그런데 장군이라니. 하하. 너 진짜 귀여워.”


귀엽다는 말에 유선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별명이 유장군 말고도 유멀대, 유깡패 등등 많거든? 귀엽다는 말 우리 부모님도 하지 않으시는데 너 웃긴다.”


“하하하. 별명도 많네. 솔직히 얘기할까? 넌 귀여운데다 정말 사랑스러워.”


“어머머. 넌 남자애가 무슨 그런 얘기를 거침없이 그러냐? 하여튼 서울 아들은 입만 살아서.”


재영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뜨겁게 끌어 올랐다. 자칫 기계인 부분이 신경계의 과부하로 오작동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다. 오랫동안 빗장을 걸어놓았던 감정의 보가 한 번에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화장실로 피신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은 평소와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도저히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노골적으로 흘렀다. 자신에게 나지막이 경고했다.


“야 유선. 너 웃긴다. 진정해라. 재영이와 실제로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야. 볼썽사납게 이러지 마. 너 자존심 빼면 시체 아니냐? 잘 해라. 가볍게 보이지 말고.”


스스로에게 단단히 다짐을 하고 화장까지 고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재영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의 눈웃음에 다시 무장해제를 당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잡았다. 그녀는 그에게 우리는 실제로 개인적인 관계로 만난 건 처음이고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감정은 믿기 힘들고 관계란 천천히 진행해 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점을 알려주려 했지만 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선. 우리···”


“우리 뭐? 설마 엉뚱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선수를 쳐 보았다. 뭔가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입을 막는 건 부당하고 무례한 일이 될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데,


“나 원래 너 좋아했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왜.”


“우리 사귀자.”


그 뒤로 유선의 머릿속은 정보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재영이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감정에 대한 것들을 말한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사귀자’라는 말만 코언저리를 시큰하게 맴돌았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열지 않았고 단단한 벽을 쳐 왔는데 재영에게는 도무지 벽을 칠 수 없었다. 그리고 억지로 벽을 친다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고 둘은 해변으로 나갔다. 석양이 하늘을 온통 황금빛으로 만들고 있었고 바다는 그 빛을 담아내느라 일렁였다. 이제 그의 ‘남자’가 된 사람의 어깨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신기하게도 그 어떤 불쾌감이나 긴장이 없었다. 옷 너머에서 전해져 오는 체온이 원래 내 체온인양 자연스러웠다. 바다는 역시 마법의 공간이었던 것일까. 기계도 인간도, 실존이 무너지는 황금빛 경계에서 사랑만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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