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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님의 서재입니다.

유사인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jinos73
작품등록일 :
2018.03.19 17:52
최근연재일 :
2018.05.11 12: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35
추천수 :
92
글자수 :
234,389

작성
18.03.29 06:00
조회
162
추천
3
글자
13쪽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DUMMY

재영은 여행을 끝내기로 했다. 누구도 그의 정체성에 대해 대답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확실해진 것은 자신이 인간은 아니라는 것, 인간의 욕망 속에서 충동적으로 태어난 인간도, 짐승도, 기계도 아닌 규정되지 않은 존재 정도가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새로 알게 된 것은 자신에게 생체병기라는 확인되지 않은 또 다른 정체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영하의 날씨 보다 더 차가운 외로움에 오한이 엄습해왔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몇 년간 엄청나게 변덕스러운 일기에도 불구하고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고 여겼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어린시절 잔병치레 했다고 여긴 기억들은 세상을 떠난 ‘오리지날’ 심재영의 기억이었을 뿐이다. 유선이 못내 보고 싶었다. 기계를 입고 있는 그녀는 이제 세상에서 자신을 이해해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라도 붙잡지 않으면 당장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서울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도저히 새로 건물을 올릴 곳이 없어보였지만 시야 닿는 곳 어디서든 공사하는 모습이 보이고 무표정한 사람들이 자신의 쳇바퀴에서 튕겨나가지 않으려 맹렬하게 앞으로만 전진하고 있었다. 숨 쉴 틈 하나 없이 틀에 맞춰 돌아가는 거대한 도시는 그 자체로 거대한 기계가 아닐까 싶었다. 재영 자신은 그 거대한 기계가 만들어낸 부산물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격하게 몰려드는 우울감, 하지만 그 우울감도 진짜 우울감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바뀌어 버렸다. 찬란하게만 보였던 미래는 더 이상 그의 것일 수가 없다. 다른 면으론 ‘인공’으로 뒤덮인 도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NNT(Neuron network transport system)의 홀로그램 캐릭터 ‘마시멜로’가 오두방정을 떨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워낙 복잡한 서울 교통망에서 많을 때는 수만 명씩 발생하는 교통 미아들을 위해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한 고객에 한해 길안내를 하기 위해 3년 전부터 교통망 내에서 고객을 따라다니며 정보를 제공하는 홀로그램 서비스가 시행중이었다.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면 멋진 연예인 캐릭터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재영은 딱 봐도 조악한 디자인의 무료 캐릭터인 마시멜로를 사용했다. 마시멜로는 방방 뛰며 길을 벗어났다고 붉은 경고빛을 번쩍거렸다. 가뜩이나 엉성한 디자인이 더 추해보였다. ‘비용절감’이라고 써 붙여 놓은 것만 같은 공기업의 만행이었다.


그가 길을 잃은 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큰 환승센터인 신도림 그랜드복합센터였다. 150층에 이르는 거대한 원통형 빌딩에는 온갖 교통라인과 수십 개의 쇼핑센터, 수천 개의 회사, 전시장, 영화관이 끝도 없이 늘어선 도시 밀림 자체였다. 특히 원통형 빌딩 내부에는 하늘이 까마득히 보이는 비어 있는 원통형 공간이 또한 있는데 이 공간은 수많은 연결통로와 교통망이 뒤엉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마시멜로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현재 장소는 제23 쇼핑구역 피트니스 구역입니다. 목적지로 가시려면 뒤로 도셔서 오던 길로 57미터 직진 하신 후 좌측 환승라인으로 가셔야 합니다.”


“많이도 지나 왔네. 제대로 경고해줘야 할 것 아냐?”


마시멜로는 말 대신 자신이 지속적으로 경고했음을 동영상 클립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재영은 딴청을 피웠다.


“그냥 해본 소리야. 아, 이왕 왔는데 자전거 펌프나 사볼까?”


“고객님 쇼핑을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제품과 가격대를 원하시는 대로 지정하시면 가장 가까운 이동경로를 자동으로 산정해서 제가 안내해 드립니다.”


친절한 안내인의 모습을 한 마시멜로는 사실 호객꾼이었던 것이다. 복합몰이라는 미로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료처럼 보이는 친절을 제공하며 욕망의 소굴로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것이 녀석의 진짜 목적인 것이다.


“영악한 자본주의의 앞잡이 같으니라고.”


“네? 고객님?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소리인지 알잖아.”


“물론 그 의미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고객님들께서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말씀하실 때 제가 함부로 뜻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알았다 알았어. 무슨 소리인줄은 알지만 대답하기 싫다 이거지? 똑똑한 놈 나보다 대답을 더 잘하네 하하.”


마시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천경로와 신상품, 추천상점 등을 나열해주었다. 재영은 유선의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한 것을 고민하려니 난감한 그였다. 결국 마시멜로에게 20대 초반의 여자에게 줄 선물 추천을 부탁했다. 마시멜로는 키워드 선택을 요구했고 키워드를 여러 개 선택하자 상점들의 진열 DB에서 추천상품들을 보여주었다. 마시멜로는 근사한 손지갑을 추천해주었으나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도자기로 만든 목걸이를 선택했다. 처음 선물인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일단 아기자기한 도자기 목걸이를 한 그녀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선택을 하자 마시멜로는 즉각 반응했다.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밖에 다른 상품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이렇게 많은 선물용 상품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오늘은 이 도자기 목걸이로.”


“단호하시군요.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약 2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시는 길에 둘러 볼 상점들을 소개해 드릴까요?”


“너 참 집요하고 성실하구나. 이러니 요즘 알바 자리가 없지. 필요 없어. 정확히 도자기 목걸이 있는 상점으로 부탁해.”


“네 고객님.”


그가 도자기 목걸이를 사 들었음에도 계속 상품을 추천하는 성실한 마시멜로의 영업활동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복합몰과 도시교통네트워크의 인공지능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이지만 정말 성실하고 적극적인 세일즈맨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돈을 더 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출퇴근, 불성실, 배신, 심지어 먹고 입는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원이라니! 사장 입장에서는 최고의 사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마시멜로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입맛에 철저하게 복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어긋남도 용납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기에 ‘인간 이외’의 어떤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마시멜로는 해운대 시장에서 보았던 카트 안드로이드와 같은 세계에 사는 명백한 자동기계로서 맡은 바 책임을 행복과 불행의 경계 밖에서 성실히 감당하고 있었다.


경계에 서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그에게는 부러운 일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폐부 깊은 속에서 숨을 뽑아내었다. ‘재영아 힘내자’라고 스스로 되뇌었는데 갑자기 지나가는 넓은 복도 한쪽에서 소란스러운 구호가 들려왔다.


“유사인간을 지옥으로!”


재영은 멈칫했다. 무슨 소리지?


‘정부는 유사인간 계획을 전면 폐기하고 우리 인류 고유의 권리를 보장하라’


‘괴물들을 불태우자’


‘인간을 대체하려는 악마들을 제거하라’


‘모두들 정신을 차리십시오. 당신들 바로 곁에 악마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게 현실인가? 재영은 멍하니 소란스러운 곳을 바라보았다. 남녀가 뒤섞인 20~30명 가량의 무리들이 홀로그램 피켓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인류수호’라는 문구가 새겨진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홀로그램 피켓에는 외치는 구호들이 요란한 색깔로 번쩍이고 있었다.


재영은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악마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멈춰 서서 낯선 시위대의 메시지의 정보를 파악하려 했다. 일부는 찡그리고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으며 박수를 치는 이도 있었다. 재영은 박수 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멀쩡한 사람이었다. 말끔한 신사도 있었고 커다란 가방을 멘 학생, 쇼핑하러 온 부인 등이었다.


‘왜 박수를 치는 거지? 당신들이 만든 거잖아? 우리를 만든 건 당신들이라고.’ 외치는 소리는 목젖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시위대는 곧 재영의 옆을 지나갔다. 박수 치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는지 시위대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재영은 토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을 외면하며 현장을 벗어나려는 순간,


“어? 야, 너 심재영. 심재영 맞지?”


극히 불길한 목소리가 재영의 귀에 들려왔다. 천천히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놈’이었다. 평범했을 자신의 인생을 조잡한 유사인간 판별기 하나로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놈’ 바로 그 놈이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왜?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곧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놈은 놈들에게 자신이 발각시켜서 보고까지 했던 자랑스러운 전과가 눈앞에 있음을 다급한 목소리로 알렸다. 순간 재영의 심장이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주위의 모든 소음을 잡아먹어버렸다. 놈들의 고개가 일제히 재영을 향했고 주변 구경꾼들의 시선도 시차를 두며 재영에게로 모두 향했다. 놈들은 일제히 손가락을 들고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눈빛을 하며 요동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재영의 뇌는 소리를 쳤지만 다리는 이미 놈들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재영의 뒤로 구경꾼의 비명소리들이 들렸고 사냥꾼들의 저주가 등 뒤에 꽂혀왔다. 당당하게 놈들에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공포가 이성을 압도했다. 미친 듯이 달렸다. 놈들의 아우성은 도무지 멀어지지 않았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밀치고 그의 인생 전체, 또 다른 재영의 인생까지 더해 남들에게 피해 준 것의 몇 십배의 피해를 주고도 놈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저승사자들의 헐떡이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고개를 돌려보니 야차들은 침을 흘리며 코앞에 다가온 먹이에 흥분하고 있었다. 재영은 계속해서 뛰었다. 야수들을 따돌릴 수 없다는 패배감이 그의 목을 죄어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리는 떨리고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이제 바로 등 뒤에서 짐승들의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끝이구나 코너의 기둥을 이용해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려던 손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결국 그의 다리가 풀려버렸고 경련마저 느껴졌다.


생체병기라더니 이 무슨 나약함인가? 주저앉아 놈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물, 아니 이상한 액체가 그의 얼굴에 쏟아졌다. ‘놈’이 나타나 알아보지 못할 어떤 언어들이 적힌 물병에 있는 어떤 것을 그에게 끼얹은 것이었다. ‘놈’의 눈에는 괴랄한 희열로 번득였고 그것은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닌 소름끼치는 무엇이었다. ‘놈’과 놈들은 이제 무력해진 먹잇감에게 승리자의 여유로움으로 전리품을 물어뜯으려 천천히 다가섰다.


그때 커다란 덩치 몇이 소동의 한복판으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소동을 추적해온 복합몰의 경비안드로이드들이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전투형 안드로이드였다. 2미터에 육박하는 키와 두꺼운 전면가슴과 어떤 장애물도 부술 것 같은 강인해 보이는 팔은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안드로이드들은 이미 전투태세였고 폭도들에게 체포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먹잇감 앞에 이성을 잃은 야수들은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다. 몇몇이 품에서 플라즈마충격기를 꺼내 경비안드로이드의 관절에 충격을 주자 제일 앞에 있던 안드로이드가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곧 기둥을 사이에 두고 전투가 벌어졌다. 야수들은 제법 용맹하게 날뛰었으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 앞에서 이빨은 부러지고 몸은 구속되고 머리는 바닥에 처박혔다. 짐승답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지만 그뿐이었다. 관심의 밖에 있던 재영은 쥐가 난 다리를 고통스럽게 끌며 자리를 벗어났다.


“야 심재영. 거기 서. 이 악마야!”


안드로이드 다리 사이에서 ‘놈’은 바닥에 처박혀 악을 써댔다. 재영은 잠시 어린 짐승과 눈을 마주쳤지만 이내 몸을 돌려 마비된 다리를 재촉했다. 그리고 몇 걸음 못가 생각이 났다. ‘놈’의 이름. ‘윤정의’가 놈의 이름이었다. 다시 돌아보았다. 정의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놈이 가지고 있기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는 절뚝거리며 서둘러 놈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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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3.29 16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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