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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천하제일미인을 마누라로 둔 남자 (원희전)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신유(愼惟)
작품등록일 :
2024.05.27 22:14
최근연재일 :
2024.07.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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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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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제31화. 조조정벌위해 힘을 모으다.

DUMMY

어느새 하북에도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보리농사가 대풍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많이 수확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그 덕분인 듯싶었다.


보리를 베어낸 밭은 수수, 조, 밀이 자라고 있었고, 뭔지 모를 작물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귀찮아서 묻지 않았다.


‘하북이 정말 풍요로운 땅이로구나.’


태행산맥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이어지는 수많은 물줄기가 하북평원을 풍요롭게 만드는 젖줄이었다. 이 풍요로운 평원 덕분에 군량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십니까?”


두기였다. 난 가만히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뜨거움이 사라지면 전쟁을 시작해야지. 내 머릿속은 온통 조조토벌밖에 없다네.”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둔은 어찌할까요? 이제 군사훈련에 집중해야 합니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둔을 통해 더 많은 군량을 생산하는 것보다,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게 옳다. 두어 달 훈련하면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조조군영은 어떤가?”

“장병을 훈련시키고, 신병을 선발하는 등 난리입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번 가을에 전쟁이 난다는 걸 알 테니까요.”


당연하다. 업성에 엄청난 숫자의 장병이 모여 훈련하고 있는데, 천하태평하다면 그건 조조가 아닐 것이다. 기습이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장병 10만이 움직이려면 군수근무지원에 투입되는 장정은 최소 15만이었다. 이런 거대 무리가 움직이는데, 무슨 수로 기습하겠는가?


더군다나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5만 이상이었고, 기병만 해도 3만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럼 이를 보조할 장정은 20만 정도다.


중국에서 대전투가 벌어지면 수십만이 출동했다고 기록되어 있던데, 아마 장정들까지 포함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군대란 게 돈을 쪽쪽 빨아먹는 집단이라서, 수십만을 유지했다가는 나라 전체가 휘청거린다.


백성이야 어찌 되든 갈아 넣는다는 생각이면 가능하겠지만, 그래선 절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오환에서 연락이 왔는가?”

“9월에 기병을 보낸다고 합니다. 1만은 확실한데, 확실한 숫자는 그때 가봐야 알 거 같습니다.”

“독촉하지 말게.”

“예.”


더 주면 고맙겠지만, 1만이면 충분했다. 그냥 잡기병도 아니고, 무려 오환기병이었다. 오환기병은 특히 돌격에 능해서, 한漢에서는 그들을 오환돌기라 불렀다.


‘조조 이놈, 가을에 내가 지휘하는 기병을 보면 기겁할 것이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기병이 질과 양에서 우수하다고 승리하는 건 아니지만, 유리한 건 분명했다. 이걸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두기와 좀 더 대화를 나눈 후, 돌려보냈다. 그리고 기병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곽원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말을 몰며 대화를 나눴다.


“전차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전차라니요?”


곽원이 고개를 갸웃하자, 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말이 끄는 전투형 마차라고 보면 되나? 아무튼 열심히 설명했더니, 곽원은 알아들었다.


“아, 병거를 말씀하시는군요.”


병거라니. 이름도 거지처럼 지었다. 전차가 훨씬 마음에 들고, 입에도 착착 감기는데.


“기병의 기동성과 효율성이 훨씬 좋아서 병거는 사라졌습니다.”


곽원은 차분하게 병거의 비효율성을 강조했다. 병거는 말 세 마리가 끌고, 병사 셋이 탑승하는 전차였다. 하여 땅이 고르지 못하면 운용이 어려웠고, 방향 전환도 불편했으며, 무엇보다 느렸다.


‘셋이라니 너무 많이 타는군. 한 명만 탑승하면 안 되나? 안 되겠지. 한 명은 말을 몰아야 하고, 한 명은 싸워야 하니 최소 두 명이야.’


“별 소용없겠군.”

“아무래도 기병이 워낙 강력하니까, 그걸로 밀어붙이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아쉬웠다. 전차는 충격력이 워낙 좋아서 보병대열을 흐트러트리는데 최고인데.


“적을 당황하게 하려고 사용한다면 모를까? 비용에 비해 효율이 떨어집니다.”

“할 수 없지.”


난 깔끔하게 전차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역시 아니었다. 내가 이 시대 전투에 대해 잘 모르는데, 굳이 내 방식을 고집할 필욘 없었다.


“만약에 말이야.”

“예.”


입을 다물고 좀 달리다가 속도를 늦추며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조조도 대군을 이끌고 올라올 테니, 자칫 전선이 고착화될 수 있어.”

“아마 그럴 겁니다. 관도전투에서도, 백마전투에서도 그랬습니다. 물론 백마전투는 관중전투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없긴 했습니다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기병만 이끌고 과감하게 허도로 진격하는 방안은 어떤가?”


전투복안을 슬며시 꺼냈다. 내 생각엔 매우 효율적이었다. 보병으로 조조군을 붙잡아두고, 우수한 기병을 이용해 허도를 친다. 허도를 걱정한 조조군이 물러날 때, 보병을 이용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면 전투가 유리해질 것이다.


또 유비가 도울 테니,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게 허도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가능한 전술인지는 곽원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기병지휘능력이 풍부한 그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장기화되면 군량보급에 차질이 생깁니다. 군량을 제때 보급하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럼, 군량을 확실하게 보급한다면 문제없겠군.”

“그렇습니다. 업성에서 허도까지는 평야지대니, 조조로선 간담이 서늘해질 겁니다. 그런데 방법이 있습니까?”


곽원은 조심스럽게 질문하고는 급히 되물었다.


“설마 약탈로 보급하려고 하십니까? 약탈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나도 알고 있네.”


난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약탈이라니? 그걸로 제대로 된 보급이 이뤄질 리 만무했다. 며칠이라면 모를까? 말도 안 되는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이쪽은 버릴 땅이 아니라, 장차 내가 지배할 땅이었다.


“군량을 남양군으로 미리 공급해 놓으면 되잖은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곽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병에 이어 군량, 건초까지 내어주었다가 유비가 배신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내가 내어줄 군량과 건초는 좌장군(유비)이 1년은 사용할 양이니까. 분명 욕심이 날 거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 분노를 정통으로 얻어맞겠지. 조조를 포기하고 곧장 남양군으로 쳐들어갈 수 있으니까. 비록 하북이 타격받는 한이 있더라도.”


난 단호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그런 식으로 호구 잡혔는데, 응징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이 내게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이다.


설령 이 상태로 어찌어찌해서 조조를 정벌하고, 제국을 세운 후, 원소를 황제에 앉힌다면 천하 각지에서 거센 반발이 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내 뒤통수를 친 자는 모질게 응징해야 한다. 한漢을 멸망시키고 난 후, 백성과 호족이 이해해 주길 바랄 순 없다. 힘으로 억눌러야 한다. 오직 힘으로.


“자칫 하북이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최대한 빨리 조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모험도 해야지.”


난 쓴웃음을 머금었다. 원소가 오래 산다는 보장만 있다면 좀 더 여유 있게 전략을 구상할 텐데. 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었으니까.


“한번 좌장군을 만나야겠어.”

“그가 업성으로 올라오겠습니까?”

“올라오지 않겠지. 중간지점인 하동군이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신야현까지 내려갈 수는 없으니까.”


이 정도면 내가 많이 양보한 것이다. 나와 유비의 세력 차이는 크니까. 그렇다고 업성으로 올라오라고 하면 오지 않을 테니까, 중간지점으로 양보한 것이다.


“좌장군으로선 큰 기회를 잡는군요.”

“사람에겐 누구나 기회가 오는 법이지. 그걸 잡느냐 놓치느냐는 그의 능력이지.”

“그것도 능력입니까?”

“행운을 놓치지 않고 잡는 게 가장 큰 능력일세. 자네가 원씨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후계자가 되었겠지. 안 그런가?”

“감당키 어려운 말씀입니다.”


곽원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기에, 그걸 부정하는 발언을 하면 뭇매를 맞는 건 물론이고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태어날 때 아버지를 선택할 수 없지만, 선택받은 자는 모든 걸 얻지.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행운이 올 때, 무조건 잡아야지. 좌장군은 분명 내 뜻을 알아차리고, 기회를 꽉 움켜쥘 거야. 기회를 놓칠 그런 위인이 아니니까.”

“너무 일찍 주시면 안 됩니다.”

“적절한 때에 줘야지. 너무 내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조조를 토벌한다. 이게 제일 중요하지.”


난 다시 한번 조조를 토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전차나 기병운용에 관해 토론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이것도 필요했다.


*


하동군 포판현.

한여름의 뜨거운 기세가 조금 꺾일 즈음, 난 호위기병을 대동하고 하동군으로 넘어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장군의 뜻을 전달하고, 협조를 끌어내겠습니다.”

“부탁하네. 이번 일만 잘된다면 내가 마씨를 크게 들어 쓸 것이야. 그리고 금성군의 한씨도 설득해 주시게.”

“예.”


마초는 즉각 복명하고는 내 친서를 춤에 넣고 마등이 있는 우부풍으로 출발했다. 난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동군에 온 목적은 유비를 만나기 위함이었지만, 마초를 통해 서량을 안정시키고, 가능하면 기병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자를 찾고 있었다. 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커질수록, 조조를 지지하는 세력이 위축될수록, 내가 승리할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그걸 위해 나는 하동군까지 내려왔다.


그때 남쪽에서 뿌연 먼지가 일었다. 기병 무리였다. 그들은 황하 건너편에 멈추더니, 전령을 보냈다. 난 그 무리가 유비일행임을 깨닫고는 기병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배를 타고 가 황하 중간의 모래섬으로 향했다. 비록 동맹이었지만, 우린 어떤 친분관계도 없었다. 하여 그가 편하도록 무인도에서 독대하기로 했다.


“거기장군. 처음 뵙겠소. 신야현 유비요.”


유비는 좌장군이란 직책을 던져버리고 간단히 이름으로 언급하며 유연하게 허리를 숙였다. 눈빛이나 몸에서 풍기는 기운과 다르게 그의 말투는 정중했고, 따뜻함마저 느껴졌다.


일부러 속내를 숨기고 거짓으로 인생을 사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자란 느낌이 들었다.


“좌장군. 반갑소. 한번은 직접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구려. 자, 이리로 앉으시오.”


난 그에게 자리를 권한 후, 의자에 털썩 앉았다.


“관중이 예전의 관중이 아니오.”

“예전으로 돌리려면 적어도 20년은 필요할 것이오. 동탁, 이각 이 죽일 놈들이 아주 망가트렸소.”

“관중을 기반으로 삼아 고조(유방)께서는 천하를 얻었소. 참으로 격세지감이 드오.”

“그 후손들이 나라를 똑바로 운영하지 못해 한漢이 이 꼴이 나지 않았소.”


후대 황제의 실정을 언급하자, 유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방계지만 황족이고, 황제로부터 황숙으로 불렸으니, 내 말이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다시 표정을 풀었다. 이런 걸 보면 영웅은 영웅이었다.


조조라는 강적을 토벌하기 위해 이런 영웅을 토벌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걸 눈 감아 줘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분명 골치 아픈 적이 될 게 틀림없는데.


현재 나만큼 유비를 잘 알고 두려워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와 손잡고 조조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거기장군.”“말씀하시오.”

“친서는 잘 읽었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분명 주공은 북쪽이고, 조공이 남양군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소. 내 생각이 맞소?”

“주공은 업성에서 남하하는 것이오. 다만 조공의 역할을 강화하고 싶소. 그저 후방교란에 그치지 않고, 허도를 점령하고 싶소.”

“초반에 조조의 숨통을 끊어버리려고 하는군.”


유비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더니 불쑥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정중했던 표정은 위험해 보였고, 눈빛 깊은 곳에서는 집요함이 이글거리는 듯싶었다. 그러더니 그는 뒤로 물러났고, 푸근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내가 잠시 착각했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관도전투가 일어나기 전, 업성에 들렀을 때 거기장군을 보았는데, 장군께선 마치 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군요. 그리고 성격이나 모든 게 너무 달라지셨고.”

“사람이란 변할 때가 되면 달라지는 법이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잖소.”

“그럼, 무엇이 중요하오?”

“우리 원씨가 조조를 무너뜨리고 중원을 차지하는데, 도움을 준 대가. 좌장군은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소?”

“우하하하하.”


유비는 고개를 젖히고 대소를 터트렸다.


“이거야 원. 마치 대장군(원소)과 대화하는 느낌이오.”

“그리 생각해 준다면 고맙소. 자, 우리 솔직하게 대화해봅시다. 무엇을 원하오.”

“형주.”


유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노골적으로 형주를 욕심낼 줄은 몰랐다. 대화하다 마지못해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


문득 역사가 떠올랐다. 조조가 형주를 침공할 무렵, 유비는 여러 번 형주를 차지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주를 욕심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백성을 이끌고 도주하다가 대패하는 수모를 당했었다.


아마 이런 기억 때문에 유비의 대답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때는 형주를 받더라도 조조의 공격으로부터 지키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형주는 그에게 쓸모없는 땅이니,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백성을 데리고 떠난 건 형주 백성과 호족의 인심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생겨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면, 그때는 백성과 호족이 유비를 지지할 테니까.


욕심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유비의 능력에 새삼 존경심마저 일었다. 나라면 저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저렇게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정치를 가장 잘하는 이는 원소가 아니라 유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도와주겠소. 단.”

“단?”

“익주는 욕심내지 마시오. 만약 익주를 욕심낸다면 곧장 군대를 돌려 형주를 침공하겠소.”


유비의 표정이 흠칫하고 굳어졌다.


“설마 익주까지 욕심내셨소? 그건 너무한 거 아니오. 적당히, 분수껏 욕심내시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처음으로 유비의 얼굴에 당황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천하삼분지계는 제갈량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유는 천하이분지계를 손권에게 상주했었고. 유비는 그런 생각 했으니, 제갈량의 계책에 감탄했을 것이다. 수없이 전장을 떠돌며 50이 다 되어서야 그걸 생각했는데, 융중에 처박혀 있던 젊은 제갈량이 그걸 생각했으니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역시 연의 최대 피해자는 유비였다. 이런 자를 그저 눈물 많고, 우유부단하며 제갈량·관우·장비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으로 표현했으니 참 나관중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주는 생각도 안 했소.”


유비는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하지만 난 더욱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난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오. 그래서 약속한 건 지킬 생각이오. 또 조조를 토벌하고 그곳을 안정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오. 그래서 좌장군의 형주점령을 묵인하고, 도울 수 있으면 돕겠다는 것이오. 하지만 익주를 넘보는 순간, 내 최대의 적은 조조가 아니라 좌장군이 될 것이오. 우리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명심하시오.”


유비가 살짝 뒤로 물러났지만, 난 오히려 한발 다가서며 그를 압박했다. 유비가 형주에 머물러 있다면 기회를 봐서 토벌할 수 있지만, 익주로 숨어들면 정말 곤욕스러워질 게 뻔했다.


좀 지나쳤다고 생각했지만, 내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익주를 공격하는 순간 모든 걸 뒤로 하고, 형주로 곧장 진격할 것이다. 이 결심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러면 난 골치 아파질 것이다. 조조의 영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테니까. 하지만 나를 배신할 자를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유비를 이용만하고 바로 뒤통수를 쳐서 멸망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유비가 그리 호락호락한 자도 아니었고, 조조를 무너뜨리고 방대한 세력을 말소하는 과정에서 동맹 세력을 뒤통수치는 바보짓을 할 수 없었다.


“조조를 무너뜨립시다. 반드시.”


유비는 실망감을 접고, 조조정벌만 언급했다. 역시 영리했다. 이후 양쪽에서 종사관이 배를 타고 건너왔고, 우린 합의서를 작성했다.


남양군을 먼저 토벌하여 그곳을 내 땅으로 만든 다음, 조조를 양면에서 공격하는 건 어떨까? 그 생각도 이내 접었다. 남양군을 점령하는 순간 유표와 척지게 된다. 유표와 조조를 상대로 동시에 싸우는 건 바보짓이었다.


이런 걸 보면 유비가 기가 막힌 곳에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조조정벌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진 후, 헤어졌다.


어쩌면 이번 전투의 최대 승자는 유비가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는 모르지만, 난 그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놓았다.


제갈량을 확보해 내정을 부실하게 만들었고, 익주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 그럼 결국에는 내가 천하를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세력이 강해진 유비를 토벌하는 게 조조토벌만큼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유비가 익주로 기어들어 가지 않으면 해볼 만했다.


난 가만히 서서 유비가 기병을 이끌고 물러가는 걸 지켜보았다.


‘정말 쫓아가서 죽이고 싶군.’


물론 마음뿐이었다. 때론 대의를 위해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내게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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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쓰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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