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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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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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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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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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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선물 무더기

DUMMY

간단했다.

의리에 형체를 부여하면 된다.

동시에 그 두 사람과 같은 처지를 자처하면 더 확실해진다.

약점을 내어주어, 녹호가 자신을 휘두를 수 있게끔.


“앨범 안에 있는 사진, 휴대폰으로 찍어둔 거 아냐?”

“네, 그러긴 했어요.”

“너무 당당한데?”

“뭐, 안 찍었다고 해도 안 믿을 것 같아서요. 아마 평생 의심하겠죠. 기껏 넘긴 의미도 없이.”


인영은 역시나 당당하게 항변했다.


“그럴 바엔 찍었죠. 다만, 원본이랑 카피는 담긴 의미가 다른 법이잖아요?”

“확실히. 그래도 너는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잖아?”

“그것도 그래요. 앨범만이라면···, 포기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럴 거예요.”

“너는?”

“네, 다행히도 가족이 있어서요. 앨범을 포기 못 할 만큼 감성적인 가족 말이에요.”


서주를 위해서라도 앨범은 찾아야 한다.

납득이 가는 논리다.

인영은 서주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서주는 무르게 느껴질 만큼 감상적인 성격이니까.


“그래도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네. 유송이랑은 달리.”

“여기서 또 뭐가 더 필요한가요?”

“흠, 괜찮아. 어차피 비서를 더 뽑을 작정도 아니었으니까. 쓰임새가 다른데 굳이 더 요구할 필요는 없지.”


녹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자. 오리엔테이션 해야지.”

“합격···, 인가요?”

“그래. 아, 운전은 할 줄 알지?”


인영은 긴장이 풀렸는지 어깨를 살짝 늘어뜨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오리엔테이션.

우리말로 하면, 신입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지.

녹호는 유송마저 저택에 두고 나와, 단둘이 차에 있었다.


“분명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인영은 불안하게 운전하면서 나아갔다.

오죽했으면 옆에 나란히 가던 차량도 차선을 옮겨 저 멀리 떨어진다.


“그래, 뭐가 문제야?”

“백화점으로 가고 있잖아요. 도대체 이게 업무랑 무슨 상관···”

“그건 가보면 알아. 그리고 목적지가 백화점인 거랑 이 개떡 같은 운전은 무슨 관계가 있지?”


녹호는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리면서 물었다.

그만큼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게···, 그냥 면허만 따둔 거라···.”

“······.”

“제가 자가용을 살 일은 없어서요. 거기다가 비싼 차라 영 걱정되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이라면야, 이해는 간다.

가뜩이나 익숙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데 사고라도 나면 수천만 원이 깨진다.

긴장하지 않는 게 이상한 사람이겠지.


“그래도 여기 올 때까지 사고는 안 났잖아요. 아, 근데 주차는···.”

“맡겨두면 돼.”


그 말대로 백화점 직원 두 명이 나와서 녹호를 맞이했다.

지난번처럼 안내와 주차를 도와줄 인원이다.


“내려.”

“그럼 저기 있는 사람이 해주나요?”

“그래.”


인영이 쭈뼛대며 나서자, 직원 한 명이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바깥을 향해 손만 뻗으며 말했다.


“키 주십시오.”

“아, 네.”


당황해서 주차도 안 했는데 차 키를 뽑고 내린 모양이다.

그 사이, 다른 직원 한 명은 뒤이어 나온 녹호에게 다가섰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지난번처럼 VIP석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두 사람이 자연스레 발길을 옮겼고, 인영이 뒤늦게 따라간다.


“아니, 이번에는 천천히 둘러볼 거야.”

“그럼 따로 원하는 서비스가 있으십니까?”


그 말에 녹호가 고개를 돌렸다.

인영을 바라보는 눈길, 아마 오리엔테이션과 관련된 모양이다.


“따라다니면서 안내해줘.”

“안내 말입니까? 실례지만 어떤 제품군으로 모실지 얘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얘 옷 사줄 생각이야. 가방, 악세사리 먼저. 옷이나 신발은 그다음. 마지막으로 머리나 화장을 했으면 싶은데.”

“가방이나 악세사리는 옷에 맞춰서, 마지막에 구매하는 편을 추천합니다.”

“아냐. 그냥 내가 말한 대로 해.”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을 뻗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


명품 가방이 줄지어 있고, 녹호는 마음껏 골라 보라는 듯 턱짓을 한다.

아마 진심일 터였다.

집으면 집는 대로 다 사주는.


“저기, 정말 이걸 사준다고요?”

“얼른 하나 골라.”


인영은 이래도 되는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녹호와 시선을 한 번 더 마주하고선 결국 가방을 향해 다가선다.

슬쩍 살피면서 하나둘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유난히 조그마한 하나를 마지못해 들어 보였다.


“이거···.”

“작아. 티도 안 나고.”

“분명 고르라고···.”

“제일 크고 로고로 떡칠된 걸로 골라. 그래, 이거 좋네.”


녹호는 하나를 집어다가 인영에게 집어 던졌다.

엇 소리를 내면서 받는 모습.

하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계산을 마친다.


그다음은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층으로 향했다.

브랜드를 드러내긴 힘들지만, 사치를 보이기엔 좋은 물건이지.

온갖 귀금속과 보석을 대놓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화려한 걸로 골라.”

“악세사리는 알이 작아야 예뻐요.”

“······.”

“너무 크면 촌스러운데···.”


그 말에 녹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알아서 타협해. 되도록 있어 보이는 디자인으로.”


인영은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안에 들어섰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음, 귀걸이류가 있을까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점원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를 보여주었다.


“여기 있는 귀걸이를 가장 추천해요. 한정판으로 나온 건데, 디자인이 굉장히 잘 나왔어요.”

“너무 크고 화려한데···.”

“그래도 이쪽에서 골라 보세요. 남자친구분이 사주실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걸 차보겠어요?”

“남자친구 아니에요. 그리고 전 여기 깔끔한 디자인이 좋고요.”


인영이 가리킨 귀걸이는 깔끔했다.

은색으로 멋스럽게 세공되고 끝에만 푸른 보석으로 포인트를 준 물건이다.

착용할 사람과 어울리게, 고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이것도 좋죠. 화이트골드에 사파이어로 장식한 건데, 드라마에서···”

“잠깐만요, 화이트골드요?”

“네. 14k고, 금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줘요. 또, 은에 비해 변색이 안 되는 게 장점이고요.”

“그럼 얼마···.”

“120만 원입니다, 고객님.”


기껏해야 은인 줄 알았겠지.

그랬다면 3, 40만 원 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싼값은 아니지만, 부담은 덜한 가격인.


“됐어?”

“아, 조금만 더···”

“그걸로 줘.”

“감사합니다, 고객님.”


물론, 녹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비용이다.

가볍게 비유하자면, 한 끼 식사로도 날릴 수 있는 가격이다.

캐비어 알탕 한 그릇이 그 정도였으니 말이다.



***


옷과 신발도 비슷한 과정으로 구매했다.

이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할 차례였다.

녹호는 잠자코 준비가 끝나기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이 끝났다.


“어때요?”


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대충 길러둔 생머리는 온기와 윤기가 선명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돈된 느낌이다.

피부는처럼 도자기 빛났고 짙어진 입술은 생기가 느껴진다.


복장 역시 어느새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하얀 블라우스에 긴 다리를 자랑하는 바지, 그리고 그 위에 걸친 베이지색 코트.

예전부터 느껴졌던 위압감은 어느덧 고아함으로 변했다.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귀하게 자란 아가씨 같다고 할까?

길쭉한 옷걸이 덕분에 더 그런 느낌이 강한지도 몰랐다.


“괜찮네.”

“그런데 이런 걸 받아도 될까요?”

“직원한테 말해서 레스토랑 예약해뒀어. 가자.”


인영이 반짝이는 귀걸이를 매만지다가 황급히 명품가방을 집어 들었다.

멀어져가는 녹호를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얼마 걸리지 나란히 걷기 시작했고, 금세 백화점 밖을 나갈 수 있었다.


“어디로 가나요? 운전해서 가려면 힘든···”

“적당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느긋하게 가면 돼.”


두 사람이 길거리를 거닐었다.

애매한 시간대지만, 서울은 역시나 붐볐다.

근처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은 스칠 정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녹호와 인영을 맞이한다.

고개를 숙이면서 입을 여는 모습은 정중한 예의가 느껴졌다.


“예약하셨습니까?”

“6시, 피녹호 외 한 명.”

“확인했습니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은 창문이 있는 자리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시야가 유독 좋은 자리였다.


“···이런 데는 처음 와요.”


점원이 물러서자마자 인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저기 두리번대면서 분위기를 확인한다.

두 눈에는 경계심마저 서린 채였다.


고급 레스토랑.

벽은 갈색 고급 원목이었고, 하늘에선 주황빛 조명이 내린다.

들릴 듯 말 듯 클래식이 울려 퍼졌고, 이 작은 소리가 묻히지 않을 만큼 손님은 조곤조곤 대화한다.

교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곳으로 들어온 순간, 귀족이라도 된 것만 같은 분위기다.


“인영아.”

“네···, 네?”

“너무 당황하잖아. 난 그런 모습을 원하진 않았는데 말이야.”


그 말에 인영은 다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눈빛은 차가워지고 등은 꼿꼿하게 펴졌다.

우월한 신장은 다시 고상한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근처에 경계해야 할 사람이라도 있나 봐요?”

“바로 앞에 있잖아, 나.”

“의리로 연결됐는데, 동료 아닌가요? 갑자기 이러면 많이 섭섭한데요.”


능청스럽게 뱉는 말.

얼굴은 옅게 서운함마저 띄운 채였다.

꼭 진심이라도 된다는 듯이.


녹호는 그 모습이 재밌기라도 한지 크게 미소를 지었다.

제법 괜찮은 변명이라, 만족감이 샘솟은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사자도 한 가지는 눈치채지 못했겠지.

인영이 지금 하는 행동은, 자신이 진짜 녹호에게 압박받을 때 보인 반응과 굉장히 닮아있다는 사실을.


“동료라···.”


당연했다.

가르침이란, 자신이 배우거나 떠올린 생각을 전달하고 요구하는 일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그리고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

여기서 녹호는 스승이고 인영은 제자였다.

그러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길 수밖에.


“왜 그러세요?”

“얄팍해서. 어차피 혼자 착각해서 느끼는 동질감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죠?”


녹호가 미소를 꺼뜨렸다.

기대하지 않는 말을 할 생각이겠지.


“난 목사랑 연을 끊을 생각 없거든.”


녹호와 예현, 두 가지 신분이 연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장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우선, 배신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다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괜한 심력 낭비도 존재치 않는다.

심지어 내부 기밀까지도 거리낌 없이 공유할 수 있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과거 귀족이, 그리고 현대 재벌가에서 정략결혼까지 하며 연합할까?

심지어 지저분한 취미를 공유하며 커넥션을 유지하기도 하지.

오직 신뢰 관계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배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이비랑 사업을 하겠다고요?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예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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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1 1 12쪽
34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1 24.02.01 47 1 11쪽
33 33화. 맛있네요? +1 24.01.31 39 1 12쪽
32 32화. 캐비어 알탕 +1 24.01.30 44 1 12쪽
31 31화. 빚 +1 24.01.29 46 1 12쪽
30 30화. 모텔 +1 24.01.26 54 1 12쪽
29 29화. 이상 +1 24.01.25 46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46 1 13쪽
27 27화. 욥 +1 24.01.23 53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51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56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61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63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3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72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6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6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81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8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92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04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9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9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11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12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31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8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67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81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1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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