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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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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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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950

작성
24.01.2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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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모텔

DUMMY

***


집 정리.

그건 생각보다 거대한 작업이었다.

녹호가 쓰던 방도 옮겨야 하는데, 가구만 해도 유별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허풍 조금 보태서, 이사를 하는 것과 다름없을 지경이다.


실제로 사용인 대부분이 힘써서 짐을 나르고 있다.

컴퓨터, 옷장, 침대, 소파 등등.

여기에 드레스룸이나 개인 창고까지 합치면, 웬만한 집구석 세간살이만큼은 됐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물론, 당사자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녹호는 사용인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유송이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넨다.


“좀 도와주셨으면···”

“내가 고용을 왜 했는데? 싫으면 사표 쓰고 나가.”


얄미운 반박이지만, 맞는 소리였다.

온갖 일을 대신하라고 고용한 것이니까.


“저희는 밥도 못 먹지 않습니까? 녹호 씨가 식사할 때 보좌해야 해서.”

“······.”

“보통 이사할 때 도와주면 자장면이라도 시켜주는 게 예의입니다만···.”


두오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변덕스러운 녹호 때문에 둘은 식사를 챙겨 먹기가 힘들다.

코스 요리를 서빙하고 중간중간마다 시중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니, 갑자기 바꿀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두 사람 이외의 사용인은 분명 의아함을 느낄 테니까.


“드셔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자장면은 정말 맛있습니다. 누구나 좋아할 정도로···”

“하아, 더럽게 쫑알대네.”


녹호도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아서 시켜. 오늘은 점심 차리지 말고.”

“감사합니다! 곧 끝내겠습니다!”


그 말대로 끝이 보이던 와중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계속 일한 덕분이다.

30분 정도만 더 하면 끝나겠지.


유송도 신이 나서 속도를 냈다.

두오에게 던지는 시선에는, 나 잘하지 않았냐는 물음이 서려 있었다.

대답 역시 미미한 미소로 돌아온다.


“아, 미리 시켜둬야 하는데···.”


그러다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짐을 옮기면서도 한 번 눈치를 본다.

아니, 불편할 정도로 계속 곁눈질을 한다.


“그냥 알아서 해.”


녹호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계속 나불대는 것이 귀찮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 요리 종류 시켜도 됩니까?”

“······.”

“사주신다기에···. 요리류는 함부로 시키지 않는 게 예의기도 합니다.”


녹호는 별말 하지 않았다.

불편한 표정과 함께 인상을 쓸 뿐이다.

두오 역시 눈치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장면만 시키겠습니다.”


그 말에 녹호는 결국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음대로 먹어. 종류별로 다 시켜버려. 그냥 아예 잔치를 하든가.”


유송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리고 전화를 들고 조용히 구석으로 향했다.



***


녹호가 새로 완성된 자기 방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꼭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듯.

생각해보면, 그럴 곳이 한 군데 있긴 했다.


바로, 박인영.

얌전히 연락처를 받아갔건만, 아직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예현과 녹호가 같은 사람인 줄 모르는 만큼, 기싸움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텁!


녹호는 휴대폰을 뒤집어버리고선 책을 뒤적인다.

가만히 기다리길 포기한 모양이다.


“녹호 씨, 들어가도 됩니까?”


책을 막 펼칠 무렵,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 카드 가지고 있잖아. 알아서 결제해.”

“음식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들어가도 되지 않습니까?”


문틈으로 하얀 얼굴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질끈 묶은 포니테일이 찰랑이며 방 안팎을 오간다.


“안 먹으니까 가져가.”

“예? 식사 안 하십니까?”

“그래.”

“그럼 배고프지 않겠습니까?”


유송이 어느새 안으로 들어왔다.

두 손은 아예 레스토랑에서 볼 법한 카트를 끌고 있었다.

그 위에 얹어진 건 중국집 음식.

자장면, 짬뽕, 유산슬, 깐풍기, 탕수육 등등 종류별로 알뜰히도 덜어왔다.


“너 바보야?”

“예?”

“모습을 바꾸면 그 상태로 변한다고. 그런데 내가 굶주림을 겪겠어?”


식사는 작은 육포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그 이외에 먹었던 일은 죄다 유흥이었을 뿐이다.

오랫동안 주는 음식만 먹어왔기에.


“그래도 가져왔는데 드시지 그러십니까?”

“도로 가져가.”

“갑자기 식사를 안 하시면 다른 사용인이 이상하게 보지 않겠습니까?”

“입맛 없다고 해.”

“먹어보니 맛있습니다.”

“그래, 축하해.”

“그···, 버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버려.”


꼭 시골집 할머니처럼 어떻게든 먹이려는 유송.

그게 고까웠는지 어떻게든 거부하는 녹호.

둘은 탁구라도 하듯이 말을 툭툭 주고받았다.

그러다 유송이 눈치를 보며 회심의 한마디를 던졌다.


“어머님께서 음식 남기는 걸 안 좋아하십니다.”


녹호도 두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그게 아니라···, 분식집에서 매번 음식 포장해오는 것도 그 탓입니다. 기껏 준비한 식재료를 다 버리니 안타까우시다고 해서···.”

“······.”

“원래 어르신 중에 그런 분이 많습니다. 못 먹고 살 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너무 낭비가 심하지 않습니까?”


유송이 변명처럼 주절댔다.

당연한 반응이다.

녹호가 부모님 얘기에 얼마나 예민한지 알기 때문이다.

항상 결정적인 키워드였지만, 그런 만큼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몰랐다.


지금도 녹호는 찌푸린 인상으로 말을 아끼는 중이었다.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혹하는 마음 반대편에는 불쾌감도 있겠지.

그러다 결심이 섰는지 자세를 고쳐잡는다.

입을 벌려 무슨 말을 쏟아내려고 한다.

정말 그러기 직전이었다.


지이이잉!


진동이 울렸다.

녹호는 뒤집힌 휴대폰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두고 가.”


유송은 이때다 싶은지 잽싸게 음식 카트를 밀었다.

책을 치우고 음식을 주욱 늘어놓는다.

테이블 위는 금세 다양한 그릇으로 가득 찼다.


녹호는 그 모습을 보면서 느긋하게 휴대폰을 집었다.

당연하게도 기다렸던 이름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면을 바라봤을 터였다.


“······.”


하지만 그 표정은 곧 기묘하게 바뀌었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반기는 기색도 아니다.

다름 아니라, 그 위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서주’


해결됐다고 생각한 인연이 먼저 손길을 뻗어왔다.



***


한적한 커피숍.

중앙에 있는 자리에서 서주가 불안한 듯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어색하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옷매무새를 다잡는 게, 꼭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 서주를 향해 녹호가 다가왔다.

귀찮아 보이는 얼굴이, 꼭 마지못해 나온 모양새다.

아마 그게 맞겠지.

다 끝난 일인 줄 알았건만, 혹여 변수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거래 끝났을 텐데? 무슨 일로 불렀지?”

“다 끝났다뇨, 저는 약속받은 일이 결실을 못 맺었는데.”


귀찮은 발걸음.

그 끝에 이런 얘기를 듣자, 녹호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헛소리도 적당히 하지? 그날 따로 목사랑 만났잖아?”

“그건···.”

“뭔 일이 있었는지 들어나 볼까? 제대로 조목조목 말하면···. 그래, 정상참작은 해줄게.”


서주가 입을 벙끗하다가 말았다.

예현이 입단속을 했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은 일을 말하면 부정이 쌓인다고.


녹호도 그걸 알기에 꺼낸 소리였다.

직접 축복을 내려줬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화가 나기도 하겠지.

거짓말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시간 낭비를 하고 말았으니까.


“분명 성과는 있었을 거야. 그런데 나한테 투정을 부려?”

“그게···.”


그 서슬에 서주도 결국 꼬리를 말았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죄, 죄송···”

“하. 짜증나서, 진짜.”


한마디가 더 나오자 크게 움찔하고 말았다.

제 목을 졸라왔던 순간을, 이제야 떠올린 걸지도 몰랐다.

두려움을 심어줬는데도 이렇게 불러냈다니.

녹호는 이 모습을 경멸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상한데.”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꾼다.

뭔가 거슬리는 점이 있는 모양이다.

녹호는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겁먹을 거면서, 왜 이딴 거짓말을 했지?”

“······.”

“이상한 일이지. 잊었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잖아?”


공포란, 아무런 문제 없는 일에도 몸을 사리게 만든다.

천적 앞에서는 어떤 동물도 바짝 얼어버리는 게 순리다.

그런데 이 겁많은 여자가 갑자기 그 아가리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건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지.


“그래, 망각이라는 말은 안 어울리지. 제대로 부르자면···, ‘눈에 뵈는 게 없다’? 이 정도 아니겠어?”


이유는 하나였다.

더 커다란 일이 겪었고, 그로 인해 불안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공포마저 외면하고서, 녹호에게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읊어 봐. 무슨 일인지.”

“······.”

“그래, 말하기 싫으면 됐어. 인간관계 복잡한 거, 귀찮은 일이니까.”


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련 따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 복잡한 거, 귀찮은 일이니까.’


어차피 예현인 상태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모습으로 서주를 붙잡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면 위험성만 늘어난다.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니까.


“잠깐만요!”


그러자 다급해진 사람은 서주였다.

따라서 일어서더니 두꺼운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죄송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놔.”

“사실대로 말할 테니까···.”


예전에 녹호가 그렇게 말했지.

‘사람을 벌하는 건 악함이 아니라 멍청함’이라고.

그런 말을 한 당사자답게, 영리했고 또 단호했다.


이참에 인간관계를 확실히 끊으려는 듯, 손을 뿌리쳤다.

성큼성큼 문 쪽으로 향했다.

그만큼 착실히도 서주에게서 멀어졌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미안해요! 제발···.”


서주가 어느새 달려와 그런 등 뒤를 힘껏 껴안았다.

큰소리에 주변 시선 역시 순식간에 몰렸다.

조용히 떼어두고 가기는 그른 상황이었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계속 달라붙을지도 모르고.


“하아···, 일단 놔 봐.”

“저랑 얘기 계속해주신다고 약속해주시면···”

“알았으니까 놓으라고.”


녹호는 부둥켜안은 몸뚱이를 밀어내고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내부는 너무나도 조용해졌다.

싸운 연인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개중엔 동영상으로 찍으려는 사람도 몇 있었다.


“이래선 방송을 켜놓고 얘기하는 거랑 다를 바 없겠네.”


짜증 서린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끝났다고 생각한 일이 너무나 요란하게 흘러갔다.


“자리 옮기지.”

“네···.”


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만 대화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어요.”



***


은은한 조명.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분위기가 중요한 장소인 탓이다.

하지만 녹호는 오히려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설마 직접 모텔로 끌고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작가의말
이번주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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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장천선 24.02.25 24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6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1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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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0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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