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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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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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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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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6화. 천선분식

DUMMY

***


천선분식.

허름하디 허름한 가게에 한 남녀가 들어간다.

딱히 인기 있는 곳은 아닌지, 손님이 없이 한적했다.

아무 자리에나 앉아도 될 만큼.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주인 아주머니가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에게 가볍게 턱 짓 했다.


“아, 네. 떡볶이 하나랑 김밥 하나 주세요.”

“남자친구는?”

“이분은 안 드세요.”


아주머니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선 남자에게 말했다.


“왜? 다이어트 중이세요?”

“그냥···.”

“김말이 튀김 서비스로 줄게요. 같이 먹어야지, 혼자 멀뚱히 보고 있으면 아쉬워요.”


남자는 사납게 생긴 것과 다르게, 아주머니를 껄끄러워했다.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말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음식 내올게요.”


아주머니는 얼른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사이 여자는 몸을 낮추면서 남자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녹호 씨, 어떻습니까?”


유송이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글쎄.”

“······.”

“음식이 나와봐야 알지.”


그런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딴청을 피워댔다.

유송은 그 대답에 김샌 표정을 짓다가, 이내 생각이라도 하듯 시선을 오른쪽 위로 향했다.

그리고 뭔가 깨달은 것처럼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녹호는 그 모습이 거슬렸는지,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왜 웃어?”

“아닙니다.”

“말해. 무슨 일인지.”

“그냥 녹호 씨가 민망해하는 것 같아서···.”


사나운 얼굴에 짜증이 한껏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당장 뭐라고 쏘아내려는 찰나,


“음식 나왔어요. 여기 떡볶이, 김밥, 그리고 김말이.”

“······.”

“맛있게 먹어요.”


아주머니가 음식을 가져왔다.

녹호 역시 별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주 보이는 눈가가 초승달처럼 휘는 걸 보고서도.


“빨리 비워.”

“알겠습니다.”


주홍빛 옛날 떡볶이와 참기름이 반질거리는 김밥, 그리고 노릇하게 튀긴 김말이.

유송은 당장 삼각형으로 잘린 어묵 하나를 입에 넣고선 천천히 우물거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건만, 신경 쓰지 않았다.


녹호도 포기하고선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창밖, 낡은 벽지, 페인트가 벗겨진 의자와 테이블.

그 모든 풍경을 외우듯이 살펴봤다.

그러다 흠칫 고개를 멈췄다.

먹나 안 먹나 감시라도 하듯이 보고 있는 아주머니와 시선이 마주친 탓이다.


“······.”


녹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김말이 튀김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

“혹시 모르실까 봐···.”


사나운 눈이 앞을 잠깐 째려봤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서 떡볶이 국물에 찍고서 입 안에 넣는다.

시선은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향한 채로.

입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음식을 한 번에 삼켜버린다.


“괜찮으십니까?”

“먹을 만하네.”


슬쩍 아주머니가 있는 쪽을 곁눈질로 살펴본다.

곧 빙긋 미소 짓는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말없이 김밥 하나를 집었다.


“···유송아.”

“왜 그러십니까?”

“시킬 일이 있어서.”


녹호가 신용 카드를 꺼내 건네준다.

한도가 아득할 정도로 높다는 건,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걸로 ·········.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녹호는 수저를 내려두고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유송은 그 모습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


며칠 후 저녁.

유송이 혼자서 천선분식까지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서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왔어요? 8시에 예약했죠?”

“네. 그런데 아무래도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또요?”


유송이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 군데에 예약했다가 당일 사장님이 원하시는 식당으로 가거든요.”

“그쪽 회사도 참···.”

“그래도 선결제하고 환불 안 하잖아요.”


녹호가 준 카드.

그건 회식을 빙자해서 분식집 매출을 올려주는 데에 쓰였다.

식재료도 소모하지 않으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당사자는 달랐던 모양이다.


“아니,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죠. 기껏 준비해뒀는데 속상하게.”

“···네?”

“음식 만드는 사람은 맛있게 먹어줄 때 제일 기쁜 법이잖아요?”


유송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녹호가 시킨 대로 회식을 결정하고 취소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저렇게 생각한다니,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아주머니 마음도 알겠지만, 저도 사정이 있어서···. 죄송해요.”

“아뇨, 아가씨가 죄송할 건 없죠. 미안해요, 괜히 생사람만 잡고.”

“······.”

“그럼 나중에 와서 포장해서 가는 게 어때요? 따로 챙겨둘 테니까요.”

“포장이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면 같이 일하는 부서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가져가서 나눠 먹어요.”

“아···. 감사합니다.”

“어제 예약했던 재료도 남았는데, 지금 음식 좀 포장해줄까요?”

“네, 그럼 5인분 정도만 부탁드릴게요.”


아주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유송도 테이블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


녹호가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겼다.

그동안 타자 연습이라도 했는지, 손이 제법 빨랐다.

이젠 십수 년을 잃어버렸다고 의심하기도 힘들었다.


“예현교회라···.”


천선분식, 예현교회.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중점에 두고서, 떠오르는 내용을 주르륵 써 내려간다.

밖으로 나가서 많은 일을 겪을수록 새로운 계획과 방책을 짜낸다.

마치 아르마딜로가 껍질로 몸을 둘둘 보호하는 것처럼.


“도련님.”

“아저씨 왔어?”


그런 와중에 두오가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여느 때와 같이,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배려해주신 덕에 손자와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잘됐네. 그날 봤던 건 잊은 기색이야?”

“예. 지우도 지하에 갇혔던 일을 더는 개의치 않습니다.”


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있어.”

“무슨 일입니까?”

“뒷조사. 예현교회라고, 그곳 목사랑 신도 뒤를 캐줘야겠어.”


사나운 눈이 차가운 빛을 뿜었다.

적이 될지도 모르는 상대를 경계하는 기색이다.


“가능은 합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교회 신도만 해도 최소 몇십 명일 텐데···.”

“목사를 중심으로 조사해. 심복처럼 보이면 자세히, 평신도처럼 보이면 대충.”

“알겠습니다. 이 외의 우선 사항이 있습니까?”


녹호는 노트북에 적힌 글자를 검게 덧칠해갔다.


“목사 외에 두 사람은 자세히 살펴봐. 한 명은 천선분식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다른 한 명은 웬 젊은 여자야.”

“젊은 여자라고 하면 특정하기 힘듭니다.”

“말랑말랑하게 생겼어. 가슴이 커. 엉덩이도 크고.”

“···아, 예. 조사할 때 얼굴 사진도 첨부하겠습니다.”


적나라한 묘사.

하지만 그렇기에 누군지 쉽게 알아볼 터였다.


“또···”

“녹호 씨, 분식집 음식 포장해왔습니다.”

“뭐?”


그때, 유송이 마침 저택으로 들어왔다.


“어머님께서 포장해서라도 가져가라고 해서···.”


녹호가 인상을 찌푸리자, 유송이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해댔다.

두오는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


늦은 밤.

녹호가 테이블 위에 음식만 바라본다.

잠이라도 잘 듯 미약한 불빛만 켜진 상태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집게손가락으로 김밥 한 조각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녹여 먹듯이 우물대는 입은, 값비싼 음식도 성급히 먹던 평소와는 달랐다.


“···하.”


그러다 숨을 크게 내뱉고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안, 녹호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


몇 주가 지나간다.

이는 바람에는 성큼 한기가 스며들었다.

가을이 깊어진 덕이다.

그동안 유송이 음식을 열심히 사다 나르기도 했다.


“오늘 분식집 좀 가자.”


그러다 녹호가 문득 그런 소릴 뱉었다.

유송은 그 말에 눈을 끔뻑이다가 화색을 보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곧 붉은색 스포츠카를 타고 천선분식으로 향했다.

이미 여러 번 향했던지라, 헤매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오세···, 또 왔네요?”

“네, 아주머니.”

“그리고 남자친구는 오랜만에 오네요?”


아주머니가 살갑게 말하자, 녹호가 조용히 대꾸했다.


“아닌데, 남자친구.”

“미안해요. 착각했네요.”


녹호는 벽에 걸린 메뉴판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 사이, 유송은 능숙하게 메뉴를 읊어댔다.


“김말이 튀김이랑 떡복이요.”

“매번 그것만 먹고 가네요?”

“네, 그 두 가지가 제일 맛있어서요.”

“···슬러시.”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는 와중.

갑자기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슬러시 먹는다고. 포도 맛.”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얼른 부엌으로 향했다.


“김말이, 떡볶이, 슬러시 포도 맛 맞죠?”

“네, 그렇게 주세요.”


녹호와 유송은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슬러시는 괜찮습니까?”

“거의 음료수니까.”

“음식을 안 시킬 줄 알았습니다.”


녹호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부엌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정말 말하실 생각 없습니까?”

“뭐가?”

“어머님···.”


은근하게 찔러보는 말.

친어머니와 통성명할 생각 없냐는 뜻이다.


“그때 이유 말해줬을 텐데.”

“······.”

“20년은 너무 긴 세월이지.”


물론, 녹호는 여전히 단호했다.

아직 어머니를 신뢰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유송 역시도 이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고개만 끄덕이고선 침묵을 지켰다.


“음식 나왔어요.”


그런 와중에 아주머니가 쟁반을 가져왔다.

떡볶이, 김말이 튀김, 그리고 보라색 슬러시.

시킨 음식 그대로였다.


“더 필요하면 말해요.”

“네.”


아주머니는 멀리 가지 않았다.

옆 테이블로 가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앉을 뿐이었다.


“회사 생활은 어때요?”


그러다 아주머니가 유송에게 물었다.


“회사요? 뭐, 그냥···. 다닐 만해요.”

“보통 사회생활을 하면 사람이 제일 힘들다던데, 그런 건 없고요?”

“마냥 편하진 않은데···, 괜찮아요.”


유송이 잠깐 녹호를 곁눈질하고서 답했다.

사회생활, 그 자체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불편해 보인 걸까?

아주머니는 넉살 좋게 웃으며, 조용히 주절댔다.


“미안해요, 여기에 들르는 직장인은 거의 없어서 내가 흥분했네요.”

“아···. 여기까지 잘 안 오나요?”

“네, 직장인보단 학생이 많이 오죠. 다들 이 동네에 살고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허름한 대신 값싼 분식집.

제대로 경제활동을 한다면 자주 들르지는 않겠지.

요즘은 배달 어플도 잘 되어 있고 말이다.


“아쉽네요. 참 맛있는데.”

“괜찮아요. 먹고 살 만큼은 버는데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몇 주 동안 꽤 자주 만난 덕이었다.

그런데 이 부드러운 리듬 사이에 삑사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요즘은 괜찮을 텐데? 몇 번 회식 예약한 덕분에.”


녹호였다.

어쩔 수 없게도, 평소처럼 반말로 툭 내뱉는다.

평소처럼 오만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많이 벌긴 했죠. 마진만 몇십만 원 남았으니까요.”

“오랜만에 포식했겠네.”

“뭐···.”


사나운 얼굴에서 무심한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조금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다른 데에 돈이 빠져나갔나 봐? 대출이라도 있었나?”


녹호는 놓치지 않고 캐물었다.

날카로운 눈은 은은한 안광을 내뿜는 채였다.


“별 건 아니고, 다니던 교회에서 급하다고 해서요.”

“···교회?”

“네, 저기 골목에. 복 받았으니까, 하나님께 돌려드렸어요.”


녹호는 그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작가의말

주인공은 돌다리를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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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8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7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4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6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1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4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0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7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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