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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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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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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2화. 캐비어 알탕

DUMMY

***


아침이 밝았다.

허름한 집에서 두 사람은 아침을 맞았다.

인영과 서주, 둘 다 편치 않은 모습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같이 가자.”


화해하자는 의미가 담긴 말.

하지만 서주는 듣지 못한 척 먼저 밖으로 나가버린다.

늘 그렇듯, 철문이 힘겹게 휘다가 철컹 열리는 소리를 울리면서.


“하아···.”


혼자 남은 인영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따라 나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없이 닫힌 문이 다시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린다.


하지만 곧 멈칫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내밀었다.

시선이 빠르게 제 이모를 뒤쫓았다.

서주는 혹여 누가 따라올까 하는지 빠르게도 멀어져 갔다.


“빚을 졌다고 했지?”


인영은 확인이 끝나자마자 나가려던 발걸음을 되돌렸다.

당장 신발을 벗고서 빠르게 옷장으로 향한다.

곧장 어제 집어넣었던 쇼핑백, 역시나 유명 브랜드가 몇 개씩이나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샤X, 구X? 잠깐, 이건 또 어디서 만든 거야?”


유명 브랜드는 죄다 집어온 모양이다.

이름도 모르는 명품은 보나마나 녹호가 집어넣었을 터였다.

정말 상류층만 입고 다니는, 미쳐버린 가격표를 가진 것 위주로.


“잠깐, 이건 목걸이네?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서? 분명 빚이 있다고 했는데?”


영수증이라도 찾으려는 듯 뒤적였지만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무언가 깨달은 듯 조용히 중얼댔다.


“빚···, 명품···?”


곧 힘이 풀리기라도 한 듯, 물건을 내려뒀다.

완전히 상반된 두 단어였다.

한쪽은 빈곤함을, 반대편은 부유함을 나타내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 둘이 함께 있는 상황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흔하디흔한, 그런 비정상 말이다.


인영은 안색을 창백히 굳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잇조각을 꺼냈다.

김예현이 건네준 명함이자,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릴 폭풍이었다.

어영부영 시간을 끌다간, 연락할 명분마저 사라지게 될 돌개바람이기도 했다.


“······.”


하얗게 변한 손가락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눌러 메시지를 작성했다.


‘김예현 목사님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언제 한 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


이른 아침.

유송이 저택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별관에 시선이 닿았는지, 달리듯이 나아간다.


이 안도 만만찮게 넓은 곳이긴 했다.

그렇지만 익숙하게 갈 수 있는 장소는 한 군데뿐이었다.

바로, 영화관.


“녹호 씨, 여기 계십니까?”


다행히 찾던 사람은 여기서 느긋하게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어, 영화 보고 있어.”

“휴대폰이 꺼져 있어서 한참 찾았습니다. 따로 드시고 싶은 식사 있으십니까?”

“아침은 됐어. 꽤 바빠서.”


유송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건은 이것 하나였던 모양이다.


“전화도 안 받으시고 식사도 거르시다니, 영화가 재밌으십니까?”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 음, 지금 영화는 너무 별로네.”

“명작만 찾아보시면 되잖습니까?”

“진작에 그러고 있어. 그런데 최근 작품일수록 명작은 호들갑으로 만들어져서 문제더라고.”


녹호는 결국 영화를 꺼버리고선 태블릿을 잡는다.


“다들 좋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개연성 박살에, 주제나 생각할 거리도 없어. 얄팍하게 있어 보이는 척하다가 마지막에 감동 코드만 넣고 끝. 이딴 걸 어떻게 명작이라고···.”

“아까 그 영화,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만.”

“그럴 순 있지. 그런데 그걸 명작이라고 추천하면 안 되지. 박수를 쳐준다고 똥이 작품으로 변하는 줄 알아?”

“큼큼.”

“그리고 마을회관 대학살 씬이 나오긴 해? 그것 하나만 믿고 계속 기다렸는데···, 하아아.”


녹호가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낚는 사람만 있고 낚이는 사람은 없는 영화에서, 도플갱어 한 마리만 가련하게 펄떡였다.

옆에선 웬만한 건 다 재밌어하는 누렁이가 헥헥 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점심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유송은 눈치를 보면서 화제를 돌렸다.


“뭔, 벌써···.”

“원래 아침에서 점심까지는 금방 아닙니까?”


녹호는 영화 평점 사이트에 들어가 댓글을 남겼다.

‘마지막 마을회관 대학살 씬은 전율마저 흐른다’며, 아무도 속지 않을 사기 행렬에 동참했다.


“몰랐는데, 몇 시간 전에만 말하면 바로 활어나 갓 도축한 육류도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게 뭐?”

“냉장고에 쌓인 식재료보다 훨씬 맛이 좋습니다. 물론, 지금도 최고급으로 다 구비는 되어 있습니다만···.”


태블릿에 메시지 알림이 눈에 들어왔을까?

상단 표시줄을 휙 당긴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라, 관심조차 없는 눈빛이다.

그저 지우기 전에 확인이라도 하려는지 한 번 툭 누른다.


“그렇게 식재료가 쌓였다고?”


녹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냉장고에 가득하다는 말이 심기에 거슬렸는지.

그렇지만 곧 메시지를 확인하고서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냉장고 꽉꽉 채워둘 필요 있어? 그러다 버리는 양이 얼마야?”

“네? 그렇긴 하겠지만···.”

“알탕 끓여. 알 많이 남았잖아? 그리고 앞으론 괜히 종류별로 꽉꽉 사두지 말라고 전해둬.”


기분 좋아진 목소리.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갔기에 내비치는 기쁨이겠지.

그런 만큼 깊은 속마음 역시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래, 도플갱어의 친어머니는 음식 버리는 걸 싫어했다.

어깨너머로 들은 말을 이렇게 실천하는 모양이다.

그때 먹은 알탕을 끓이라면서 말이지.



***


“주방장님, 냉장고에 알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 거 없어요. 제가 요리산데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요?”

“녹호 씨가 밤에 확인해봤다고 하셨는데···. 혹시 최근에 버리시기라도 했나요?”

“아니, 알탕거리 자체를 안 사요. 여기 와서 해본 적도 없고요.”

“아···.”


유송이 고개를 숙이고 주방을 나섰다.

도도도 달려가서 본관을 나가, 별관으로, 영화관 안으로 들어왔다.

녹호는 이제 책을 읽으며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에 물어봤더니, 알 같은 재료는 없답니다.”

“아냐, 있어. 내가 어젯밤에 확인했어.”

“주방장이 없었다고···.”

“직접 가서 있으면?”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말에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도도도 달려간다.

별관을 나가고 본관으로, 식사실을 지나고 부엌까지 도착했다.


“어젯밤에는 알이 있었대요!”

“그게 있었을 리가 없는데? 냉장고는 어제 그대로예요.”

“다시 확인해보면 안 될까요? 분명 있다던데요?”

“아니, 진짜 없는 걸···. 정 못 믿겠으면 식자재 현황표 확인해봐요.”


주방장이 냉동창고를 가리켰다.

그 말대로 문짝에는 현재 식재료가 화면에 떠 있다.


“다 보고 도련님한테 전달해줘요. 진짜 없다고.”

“네.”

“그나저나 아가씨도 참 바쁘겠네요.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 도련님 성격 진짜 나쁜데.”

“어쩔 수 있나요, 참아야죠.”


유송이 대답하면서 스크롤을 내린다.

고급 식재료가 주르륵 지나간다.

이름만 들어본 식재료, 듣도 보도 못한 것들, 마지막까지 가서야 평범한 채소류가 나온다.

리스트는 그렇게 바닥까지 도착했다.

주방장이 말힌 대로 알로 끝나는 단어는 없었다.


“음···.”

“진짜 없죠?”


곧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그 대신 스크롤을 다시 맨 위로 올렸다.


“혹시 이거 아닐까요?”


그러다 목록 중 하나를 가리켰다.

주방장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달려왔다.


“있을 리가···, 어···, 으음.”

“저도 아니길 바라는데···.”

“맞···, 겠죠? 그런데 도련님이 나쁜 놈이긴 해도 미친놈은 아니셨는데···.”


그 말에 유송이 잠시 멈칫했다.


“그···, 원래도 제정신은 아니셨어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서 슬쩍 눈치를 살핀다.

다행히 주방장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라도 직접 보좌한 사람 말이 옳다고 여기는지도 몰랐다.


“혹시나 모르니까 전화해보세요. 또 뛰어갔다가 오지 말고요.”

“아, 지금 독서 중이시라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셨어요.”


유송은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별관을 향해 도도도 달려가기 시작했다.



***


녹호가 느긋하게 식탁 앞에 앉았다.


“넉넉히 준비했지?”


유송은 주방에서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여느 때처럼 레스토랑 카트를 끌고 움직인다.

그 위에 뚝배기를 얹고서도, 그건 똑같았다.


“네, 안에 더 있습니다. 있는 알을 다 부어서 끓인 덕에···.”

“잘했어.”

“그런데 정말 이게 맞습니까?”


조심히 내려두는 뚝배기.

분명 새빨간 국물은 알탕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둥둥 떠다니는 건···.


“캐비어 알탕은 진짜 아닌 것 같습니다.”


뚝배기 안.

시꺼먼 동그라미가 알알이 떠다닌다.

시뻘건 걸쭉함이 묵직하게 기포를 터뜨린다.

겉모습만 본다면, 태양초 버블티나 한여름 대구의 아스팔트가 떠오를 지경이다.


“왜? 알탕도 보통 생선알 쓰잖아.”

“그···, 이번 생선은 너무 비범하지 않습니까?”


철갑상어 알탕, 다른 말로 캐비어 알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정말 범상찮은 음식이긴 했다.

아니, 그래서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영화에 ‘한우채끝 짜빠구리’ 대신 나올 만도 했을 텐데.


“알이 까맣다고 생선도 아니라니?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다 같이 헤엄쳐서 살아가는 처지에 그렇게 구별해야겠어?”

“···아마 얘는 양식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녹호는 태연하기만 했다.

수저로 시꺼먼 알을 떠먹고선,


“음, 확실히 비싼 값을 하네.”


입맛에 맞는지 밥까지 넣어서 푹 말아먹는다.

하긴, 맛없을 리 없겠지.

호텔 주방장급 요리사가 조리한 음식이니 말이다.


게다가 캐비어 외의 재료 역시 귀하기 그지없었다.

알탕에 떠다니는 고춧가루는 색소라도 넣은 듯이 선명했다.

아마 시골에서 암거래해서 구한 모양이다.

특상품을 넘어, 차라리 밀수품이라고 해야 할까?


“앞으론 괜히 코스 요리 내오지 마. 이쪽이 훨씬 간단하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간에 만족스러운 식사였던 듯했다.

이 비싼 한 그릇을 깨끗이도 비워냈다.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더 드시겠습니까?”

“됐어.”

“그럼 얼려두라고 하겠습니다.”

“아니, 놔둬.”


유송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빈 그릇을 정리하러 움직였다.

달그락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래, 발걸음이 낮게 이곳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손님이 왔습니다. 약속하고 왔다는데, 맞습니까?”


두오가 갑작스레 다가와 물었다.

이 저택에 누군가 방문한 모양이다.


“그래, 여기로 모셔 와.”

“알겠습니다.”


미소를 짓는 녹호는 꽤나 즐거워 보였다.


“유송아, 너도 식사해. 손님 몫까지 2인분 준비해서.”

“예? 알겠습니다.”


작가의말

명작 호들갑 얘기는 사실 영화가 아니라 게임 얘기였습니다.

그 겜 유저들이 ‘모바일 게임 역사상 최고의 스토리’라면서 시끌벅적하길래 유X브로 스토리를 주욱 봤는데, 정말 별로....

오히려 해당 영화는 본 적이 없는 만큼 비판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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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캐비어 알탕 +1 24.01.30 44 1 12쪽
31 31화. 빚 +1 24.01.29 46 1 12쪽
30 30화. 모텔 +1 24.01.26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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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51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56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61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62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2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72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6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6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81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8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91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03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8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7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10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11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30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6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6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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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배때기 +1 23.12.26 20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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