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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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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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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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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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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독대

DUMMY

질문받은 사람이 당혹감 서린 얼굴로 대꾸했다.


“어···, 목사님 지인분이신가요?”

“그렇지, 뭐.”

“약속은···. 아니, 그래도 곧 예배 시간인데···.”


지인이라는 말만으로도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인다.

예현이 교회 내에서 얼마나 높은 권위를 쌓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 물어나 보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닐 텐데?”

“아···.”

“안 가?”


그 말에 막 몸을 돌려 목사를 찾아가려고 한다.

서주가 보였던 반응과 같았다.

높은 사람, 심지어 지인으로 보이니 목사에게로 판단을 미뤄야 했다.


“그럴 필요 없다네.”


하지만 예현이 먼저 나왔다.

꼭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여유로운 발걸음이었다.


“이번엔 안 도망갔네? 예배하기 직전에 와서 그런가?”

“도망이라니. 내가 뭐가 무서워서 그러겠는가?”


당당한 목소리.

역시나 나름대로 준비한 모양이다.


“글쎄? 맞으면 피 나고 아파하는 거? 다른 사람한테 평범한 반응을 보이긴 싫겠지.”


그에 녹호 역시 냉소를 지어 보인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이다.


“고행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네.”

“고행?”

“아버지께서 다 뜻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고행.

그런 말로 포장한다면, 방금 그 협박도 힘을 잃는다.

종교지도자가 희생을 내보일수록 권위는 높아질 테니까.


“하, 재밌네.”


녹호는 여전히 스산한 미소를 유지했다.

딱히 심경에 변화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다.


“괜찮아. 어차피 깽판 치려고 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

“한 명 데려갈 사람이 있어서 왔어.”


그렇게 말한 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다름 아닌 서주를 향해.


“가자. 오늘 하루는 예배 빼먹고 놀아야지.”

“···네?”


어린시절 교회 간다는 친구에게 할 법한 말.

그럴 때라면 가벼운 일탈이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다.

어른에게 혼이야 조금 나겠지만.


하지만 여기서 건네기에는 부적절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곳은 순수함이 허락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종교는 무거웠고 교회는 절대적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는 말은, 이곳에서만큼은 이뤄질 수 없었다.


“어차피 주일도 아니잖아? ”


녹호가 얇은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이끌린 당사자는 얼떨결에 일어났고, 주변 아주머니는 당혹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는 탓이다.


오직 이 남자만이 태연하게 굴었다.

지금도 자연스레 팔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어제 그랬듯, 허리에 손을 얹는 선까지.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주도 그 행동에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잘 있으라고. 예배도 잘하고.”


평소처럼 거만하게 주위에 말한다.

분위기도 어수선해졌고, 당혹스러워하기만 했던 신도들도 표정이 다소 무너진다.

분탕을 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예현이었다.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탓에, 안면 근육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봐도 정색하는 얼굴이다.

언뜻 인간성이 내비치기도 했다.


녹호는 이런 반응을 즐거이 훑고선 밖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서주는 허리를 감싼 팔을 의식했는지 손으로 짚었다.

물론, 힘으로 떼어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오히려 다정하게만 보일 뿐이다.


“도대체 어디로···.”

“글쎄? 가방이나 보러 갈까?”

“비, 비싸지 않을까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이, 명품일 터였다.

이 대화를 듣는 신도 모두가 시샘하겠지.

서주가 내뱉는 목소리에서 풍겨오는 불안함 따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그건 예현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태연함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고개는 두 사람 쪽을 향해 약간 치우쳐진 상태였다.

천천히 멀어지는 둘을 바라보고 싶은 것처럼.


“비싸? 나한테? 한 2, 30개 고르려고?”

“그게···.”

“괜찮아. 그만큼 골라도 돼.”


퍽 다정하게 들리는 대화.

게다가 녹호라면 분명 저 말대로 해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예현은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서주가 너무나도 든든한 후원자에게로 간다.’


당사자를 아낀다면 축하를, 혹은 걱정을 하겠지.

혹여 쥐구멍에 볕들 날이 온 걸지도 모르니까.

혹여 사자에게 물려가는 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누구 말대로 유용한 도구나 고깃덩이쯤으로 본다면,

그랬다면 예현은 그런 박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겨우 삼키기 직전까지 만들어둔 먹잇감이 멀어진다.’


중후한 얼굴에 다급함이 서린다.

있을 자리에 껴안긴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지금껏 내보인 선지자로서의 모습은 저버린 채, 급박한 목소리를 내지른다.


“독대는 예배 이후에 하도록 하지!”


녹호가 그토록 바라던 사항.

그런 만큼 꺼려왔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용한 고깃덩이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떤가? 만족하는가?”


녹호가 발걸음을 멈췄다.

사나운 입가에는 찢어질 듯한 미소가 걸렸다.

얼마나 흉흉한 웃음인지, 옆에 있던 서주는 흠칫 몸을 떨 정도였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녹호가 서주 쪽으로 몸을 돌려, 자연스레 어깨에 팔을 걸친다.

향하는 시선이 따가운데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즐기는 듯, 시원한 미소만 내보일 뿐이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다네. 아니면 어수선한 상황을 원하는가?”

“난 그래도 상관없는데?”

“이건 확답할 수 있다네. 그랬다간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거라고.”


작은 으르렁거림.

‘예배까지 저버리게 만든다면, 이쪽도 가만히 있진 않겠다.’

예현은 그런 뜻을 은연히 전하고 있었다.

이 이상 양보한다면 위엄에 손상이 가기 때문이겠지.


“그래. 예배하는 모습, 직접 봐둘 필요가 있겠어.”


녹호는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서주를 끌고 자연스레 남는 자리에 앉았다.



***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현은 중후한 목소리로 달콤한 소리를 내뱉는다.


“······.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을 사랑한다네. 당신께서 지으신 낙원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지. 지금도 이 미욱한 아들이 그대들을 데리고 오기를.”


목자로서 신도를 이끌어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말.

평범한 신자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였다.

원래 그런 종교니까.


하지만 강조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이끌 길잡이가 오로지 목사뿐이라면, 그 자체로 권력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그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니.


모든 사이비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사람에게 외길만은 보여주며 자기 자신을 내어놓길 강요한다.

그렇기에 ‘없는 사람’에게는 더 달콤해 보이기도 했다.

눈앞에 있는 선지자에게 의존한다면, 손쉽게 ‘있을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아멘.”


녹호는 예배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중간에 분탕을 치지도, 서주에게 집적거리지도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끝까지 관찰했다.

꼭 공부라도 하는 모양새다.


“끝인가?”


신도가 하나둘씩 일어나자 녹호도 몸을 풀었다.

오랫동안 앉아있어 찌뿌둥한 듯했다.

예현 역시 숨을 크게 내쉰 후 발길을 옮긴다.

이제 약속한 대로 독대를 해야 할 시간이다.


“오래 기다렸다네. 안으로 가지.”

“다른 사람은 안 물려?”

“신경 쓰지 말게나. 다들 바쁜 만큼, 금방 빠질 테니.”


녹호는 그 말을 듣고서 서주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들었지?”


같이 따라가려던 서주는 화들짝 놀라며 위로 시선을 올렸다.


“약속은···.”

“왜?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

“만족하고 돌아가.”


예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녹호도 서주를 두고서 그 뒤를 따랐다.

이전에 봤던 응접실 안으로.


“앉게나.”


여전히 잘 꾸며진 공간이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황금 십자가까지 벽에 걸렸으니 말이다.


예현은 그런 흔적이 들켰는데도 태연히 움직였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붓는다.

그런 여상스러운 모습은 속을 긁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동안 수입이 좋았나 봐?”


녹호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돈의 출처를 짐작하는지, 입가엔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열성적인 신도 덕분이라네. 교회 이전 문제로 연락하니, 적극적으로 도와줬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지.”


뻔뻔한 소리에 그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담이 작은 사람이라면 불안함을 느낄 만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예현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네? 새 교회 지으라고 준 돈을 함부로 횡령한 걸.”


종이컵 두 잔을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온다.

싸구려 믹스커피와 원래 있던 과자 몇 봉지.

그게 손님 대접의 끝이었다.


“벌써 밖이 꽤 조용해졌네만.”


가볍게 운을 띄운다.

말 그대로, 문밖에 뚜렷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부분 눈치를 보고서 빠르게 빠져나간 듯했다.


“그래, 완전히 독대지. 너도 할 말이 있을 텐데?”

“용건이 있는 사람은 자네가 아닌가?”


그 천연덕스러운 말에 녹호가 코웃음을 쳤다.


“하, 그래. 그렇지···.”

“······.”

“근데 상도덕도 모르는 빡대가리였나? 정말로?”


눈매가 한결 더 사나워졌다.

계속 지지부진하게 끌었다간 사단이라도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녹호가 교회에 찾아왔을 때 일을 알고 있다면, 결코 태연할 수 없었다.


“···악마를 낳았다던 여인은 항상 죄책감에 시달렸다네. 제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예현도 새로운 이야기를 풀었다.

더 탐색하려고 해봤자, 얻을 것도 없을 터였다.


“그때 당시엔 죽은 아이를 얘기하는 줄 알았지. 왜, 기형아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끔찍하게 태어났을 뿐인데 악마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었지.”

“······.”

“그런데 이렇게 20년 후, 갑자기 한 청년이 찾아왔다네. 그 여인을 찾고, 돈까지 쥐여주면서. 그렇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는가?”


‘서로 알 만큼 알고 있다는 사실.’

그건 각자에게 예민한 부분이기도 했다.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무기로 쓸 수도 있었다.


“아이가 죽었다기보다는, 입양을 보내야만 했다는 편이 합리적이지.”


역시나 예현은 이를 무기로 사용했다.


“그래서? 뭘 어쩌려고?”

“어쩌긴. 그 여인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겠나? 아들을 그토록 그리워했는데 말일세.”

“···하. 그게 협상 조건인가?”


녹호는 진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 좀 더 큰 걸림돌이겠지.

아무리 도플갱어라고 한들,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야말로 아픈 곳을 찔리고 말았다.


“조건이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미에게 진실을 알려야지.”

“그래, 알겠어. 그럼 뭘 요구할 생각이야?”


예현은 느긋하게 믹스커피를 홀짝였다.

갈색 액체가 입을 지날 동안, 당연하게도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자연스러운 침묵, 동시에 완전히 계산된 정적이다.

녹호를 짓누르기 위해 계획했겠지.


“나도 사람인데 어쩌겠나? 둘 중 가까운 신도 편을 들어줘야지.”

“······.”

“하지만 나는 자네도 신도라고 생각한다네. 처음 교회로 온 날에 헌금도 했으니 말일세.”


신도는 두 명이고, 둘 중 가까운 이를 선택한다니.


“···하.”


녹호가 종이컵을 쥐고서 빙글 돌려댔다.


작가의말

본격 악역이 걱정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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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 20화. 독대 +1 24.01.12 73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6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9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8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6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2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6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9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8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4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6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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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27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72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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