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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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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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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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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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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화. 게임

DUMMY

“얼마까지 했어?”

“분해는 끝났습니다. 튜브, 노즐, 전선을 따로 연결하면 대략 형태는 잡을 수 있습니다.”


물총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모터와 탄창이 보이는 덕에, 어떤 구조인지 금세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전선을 연결한다는 건, 배터리를 뒤로 뺀다는 소리야?”

“예. 원하시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선, 연료통이나 배터리는 등 뒤에 두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튜브만 팔을 따라서 가도록.”


녹호는 슬쩍 훑어보더니 느릿하게 몸을 낮춘다.

허벅지를 벌린 채로 주저앉은 자세는 꼭 질 나쁜 양아치처럼 느껴졌다.

워낙 인상이 사납고, 덩치가 큰 덕도 있겠지.


“여기 토치도 뜯어서 연결해야지. 불을 붙여야 하니까.”


가스와 건전지를 사용하는 물건.

전기는 스파크를 발생시키는, 점화기에 사용된다.

녹호는 여기서 토치 점화기만 물총 배터리에 연결하는 식으로 개조하려 했다.


“가스 부분은 제거해도 됩니다.”

“그래?”

“예. 오히려 배터리, 휘발유, 가스를 동시에 담아두면 번잡할 겁니다.”


두오는 토치를 요리조리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다음 점화기만 떼어내 노즐에 붙인다.


“이제 전선과 튜브만 연결하면 됩니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능숙하게 조립한다.

전선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피복 끝을 벗겨내고.

건전지를 스위치에 연결한 뒤, 스위치에는 점화기와 전동기를 달았다.

그런 과정을 녹호는 흥미롭게도 지켜보았다.


“전선 줘.”

“예?”

“다른 거 하고 있어.”


녹호는 빼앗듯이 전선과 니퍼를 가져왔다.

그리고 두오가 했던 대로 피복 끝을 벗겨냈다.

구리선이 숨풍 떨어져 나갔지만, 그런대로 쓸만할 정도로 해냈다.


“스위치는 손에 쥘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화염방사기가 빠르게 구조를 갖춰간다.

전선과 튜브가 연결되고 케이블 타이로 정리된다.

따로 케이스는 없지만, 그 덕에 오히려 날 것 같은 느낌이 확 풍겼다.

깔끔하기보다는 투박한 멋이 진한.


“버튼만 누르면 불꽃이 나올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염방사기.

연료 탱크와 배터리는 등 뒤에 맬 수 있었고, 기다랗게 나온 튜브와 전선은 팔에 묶어둘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위치는 손에 쥐고서 원할 때 누르면 된다.

그럼 아까처럼 불꽃이 주욱 쏘아지겠지.


“점화기만 끊고서 한 번 테스트하고···”

“그럴 필요 어디 있어? 내놔.”


녹호는 서슴없이 화염방사기를 등에 멘 뒤 스위치를 눌렀다.


“녹호 씨, 그러다 다칠 수···.”


화아아아아악···!


화염방사기에서 불꽃이 뛰쳐나왔다.

처음처럼 가로로 죽 나가는 모습은 정말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좋네. 이 정도면 사람한테 쐈을 때 눌어붙겠어.”

“좀 더 출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커다란 연료통에 압력탱크를 연결하면 됩니다.”

“그래? 그렇게도 만들어 봐야겠네?”

“다만, 설계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참고해야 할 자료도 모아야 하고.”

“틈틈이 해둬.”


녹호는 보기 드물 정도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 보이던 웃음과는 달리, 어린아이를 닮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이런 제안까지 할 정도였다.


“아저씨, 게임 한 판 할래?”



***


넓디넓은 방.

테이블 위에는 와인병 여럿이 있었고, 녹호와 두오는 소파에 앉아서 게임기를 쥐고 있다.

그 앞 모니터에는 격투 게임 화면이 요란했다.


“아저씨랑 이거 했던 적이 있었나?”

“도련님께서 어렸을 때는 자주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엔 다른 게임이었지만.”


캐릭터를 고르는 두 사람.

녹호는 밤에 혼자서 해봤는지 빠르게 골랐다.

반면, 두오는 느릿하게 캐릭터 면면을 살펴보면서 움직인다.


“아버지는 형한테만 관심 있었는데 말이야.”


그러다 녹호가 추억이라도 있다는 양 예전 얘길 꺼냈다.


“사장님께서도 힘드셔서 그랬을 겁니다.”

“그랬으면 안 됐지. 진짜 자식은 난데 말이야.”

“······.”

“뭐,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형한테는 뭘 해줘도 채워지지 않았을 테니까.”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캐릭터와 시리즈 초창기에 나온 오래된 캐릭터.

각각 누가 골랐을지 뻔히 보인다.


“아저씨도 그 사이에서 힘들었겠어?”


녹호가 고른 아바타가 움직였다.

신규 캐릭터가 으레 그렇듯, 화려한 이펙트로 주먹과 발을 쏘아낸다.

며칠간 익힌 기술도 있는지, 공중에 뜬 적을 계속해서 두들겨 패기도 했다.

두오도 한두 번은 막지만 금세 방어가 뚫린 채 게임 오버를 당했다.


“제가 힘든 일이 있었겠습니까.”

“왜, 나만 돌보진 않았잖아? 형이랑 나, 둘 다 챙겨야 했겠지.”

“······.”

“계속 지하에 음식 넣어주고, 심부름도 했지?”


두 번째 라운드도 비슷했다.

거한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3판 2선승제인 만큼, 전체 승패는 금방 정해졌다.


“예, 지하 일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역할에 충실했겠네.”


다시 캐릭터 선택창으로 돌아온다.

두 사람 다 딱히 바꿀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가장 익숙하기 때문일 터였다.

배경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구도로 게임을 시작한다.


“그렇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집에선 어때? 아저씨도 자식이 있잖아?”

“딸아이가 저번에 결혼했습니다. 제가 없을 때 어미를 돌봐주니,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진행은 비슷했다.

거한이 수수한 상대를 계속 두들겨 팼다.

그나마 두오도 익숙해져서일까?

막아내는 타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첫 번째, 두 번째를 연이어 진 탓에 승부가 결정된다.

각 경기는 아슬아슬했지만 말이다.


“자식 농사 잘됐네. 잘 키웠어.”

“제가 뭘 한 게 있겠습니까? 알아서 잘 자라준 덕이지.”

“그래?”

“예. 제 딸이지만, 참 믿음직합니다.”


게임은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캐릭터는 그대로인 채, 계속 그랬듯 녹호가 먼저 승리를 따낸다.

이번에도 이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이변은 두 번째 라운드에서 시작됐다.

수수한 캐릭터가 빠르게 공격을 쏟아냈다.

이에 거한은 당황이라도 하듯이 빈틈을 내주었고, 힘없이 공중에 떠서 그대로 KO까지 가버린다.


“그럼 내가 밉겠어? 그 귀한 딸한테 있을 시간을 뺏어가서.”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제가 누구 덕분에 딸을 키웠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 덕분이지, 내 덕은 아니잖아?”


세 번째 라운드.

둘 다 눈치를 보면서 타격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느린 템포는 두오에게 너무나 유리한 흐름이었다.

정확히 타격이 들어가고 연격이 뒤이어 들어간다.

빈사가 된 거한을 쓰러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큰 차이가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지금도 계속 신세를 지고 있잖습니까?”

“하긴, 그런 관계지. 필요하니까 엮인 것뿐인.”

“······.”

“편해서 좋네.”


침묵이 도는 와중에 캐릭터 선택창이 나타난다.

녹호는 섣불리 고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방향키를 눌러댔다.


“그저 일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캐릭터 선택창 위에서 움직이던 네모 아이콘이 잠시 멈췄다.

그러다 느릿하게 무기를 들고 있는 캐릭터를 향해 이동했다.

정통 격투 스타일이 아니기에, 유난히 더 낯설 터였다.


“글쎄?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정이라도 들었어?”

“굳이 따지자면···. 예, 그렇습니다. 도련님이나 지하에 계신 분이나, 남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새롭게 고른 캐릭터.

녹호는 반쯤 헤매듯이 단순한 공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두오는 쉽사리 대응하지 못했다.

모든 동작을 처음 보니,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탓이다.

몇 번은 방어하다가, KO를 당하고 만다.


“겨우 잔심부름이나 해주는 정도로 정이 생겨?”

“원래 인간관계가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라운드는 조금 더 박빙이었다.

여전히 무기를 든 캐릭터는 단순히 움직였지만, 두오는 그에 적응한 덕이다.

결국, 이번엔 녹호가 지고 만다.

그렇게 마지막 세 번째 라운드까지 오게 됐다.


“하긴, 십몇 년이면 그럴 만하지. 그게 누구든 간에.”


무기를 든 캐릭터는 어설프게나마 복잡한 기술을 쏟아냈다.

상대는 다시 나타난 낯선 동작에 반항도 못 하고 두들겨 맞는다.

아니, 어느 정도는 일부러 맞아주고 있었다.

그런 만큼 결과도 당연하게 흘러갔다.


“아저씨, 술 한 잔 하자. 와인 할 줄 알지?”


게임에서 이긴 녹호는 느긋하게 패드를 내려두었다.

그리고 와인 한 병을 들고서 두오에게 건넸다.



***


이틀 전에 완성했던 넓은 공간.

녹호와 유송은 그곳에서 강철로 된 용기를 매만지고 있다.

어떤 하나에는 휘발유를 넣기도 하고, 다른 하나에는 펌프질로 압력계를 높이기도 했다.


“후우, 이제 압력 탱크 연결하자.”

“정말 완성하실 겁니까?”

“여기까지 했는데 무슨 소리야? 기껏 펌프질도 끝냈는데.”


유송은 한숨을 쉬며 마무리 작업을 했다.

마감을 끝내자 물이나 바람을 땅으로 쏘아 날아오르는 도구, 제트팩을 닮았다.

녹호는 완성되자마자 화염방사기를 등에 메고선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리고 테스트라도 하려는 듯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다.


“잠깐만···”


유송이 다급히 말린다.

하지만 이미 누른 버튼은 되돌릴 수 없었다.


화아아아아악···!


시뻘건 화염이 신나게 앞으로 뛰쳐 나간다.

얼마나 출력이 강한지, 쏘는 입장에서 보면 시야가 완전히 가릴 정도다.

옆에서 본 유송은 10m 가까이 나아간 화염에 절로 뒷걸음질 쳤다.

뜨겁고 불쾌한 바람은 뒤이어 그 앞머리를 쓸었다.


“···더는 쏘시면 안 됩니다.”

“설마 내가 사람한테 쏘겠어?”

“누가 지금 모습을 촬영이라도 했으면 경찰 조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지금 모습으로는 안 해.”

“예, 지금 모습으로는···.”


유송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뭐라고 입을 열 찰나, 밖에서 차량이 들어온다.


“아저씨 오네.”


실내 주차장에 자리하는 승용차, 그 운전석에서 두오가 얼른 뛰어온다.

양손에 거대한 캐리어 가방 두 개를 끌고서.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당연하지. 내가 괜히 믿고 맡긴 줄 알아?”

“그런데 가방은 왜 챙기십니까?”

“저번에 말했지? 여행이나 떠날까 한다고.”

“여행 말입니까?”


녹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제가 보좌해야···”

“괜찮아.”

“예? 그럼 유송 양을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멍하니 있던 긴 머리카락이 화들짝 고개를 든다.

정말 단둘이 여행을 가냐고 묻는 듯했다.


“아니, 나 혼자 갈 거야.”

“혼자서 말입니까? 안 힘드시겠습니까?”

“날 너무 애 취급하는 거 아냐?”


녹호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래 갈 생각도 아니고, 귀찮으면 내일 당장 돌아올 수도 있어.”

“······.”

“오기 전에 연락할 테니까 그동안 편히 쉬고.”

“알겠습니다.”

“유송아, 짐 싸는 거 도와줘. 아저씨는 저기 화염방사기 정리해주고.”


많이 유해진 분위기.

정말 가족이라도 된 듯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자, 다소 친밀해진 감이 들었다.

두 수행원도 긴장을 풀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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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59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59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2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5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8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5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1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5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8 2 12쪽
» 10화. 게임 +1 23.12.29 126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1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5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3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01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62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68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20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19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71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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