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19 21:07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5,667
추천수 :
72
글자수 :
639,616

작성
24.01.22 07:10
조회
48
추천
1
글자
12쪽

26화. 고래 사이 새우

DUMMY

그 탓에 유송만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탈이 날지도 모릅니다.”

“탈? 나한테?”

“예,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인간관계가 두터운 사람입니다.”


초조한 얼굴이 변명 같은 말을 이었다.

댈 수 있는 이유라곤,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뿐이었다.


“일단 이모를 구하기 위해 사이비 교회까지 뛰어들지 않았습니까? 가족애가 깊지 않고선 힘든 일입니다.”

“흐음.”

“그렇게 끈끈한 가족이라면, 뒤탈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색하게 사라지면 실종 신고한 후, 끈질기게 파고들 겁니다.”


녹호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다시 교회를 향해 움직였다.


“그럴 일은 없어. 그쪽, 망가뜨려 놨거든.”


유송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살짝 긁어두니까 드러나더라고. 서로 이해도, 믿음도 없던 게. 하긴, 그러니까 사이비에 빠졌겠지만 말이야.”

“그런···.”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적어도 서주는 쟬 찾아 나서진 않을 거야. 목사가 한마디 한다면 더더욱.”


두 사람은 다시 교회로 들어갔다.

딱히 뒤진 건 없는지, 안은 나가기 전과 똑같았다.


“자, 다시 생각해 봐. 내가 치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


녹호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얼굴엔 태연스러움이 감돌았다.

처음부터 생각해둔 바가 있는 모양이다.


“···귀한 사람입니다.”

“귀한 사람?”

“예. 이해와 믿음이 없다고 하셨지만, 의리는 있을 겁니다. 방금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

“살려두신다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 겁니다.”


사납게 생긴 얼굴은 어느새 고민이 서린다.

계속된 설득 중 뭔가에 꽂힌 걸지도 모른다.

이미 따로 생각해둔 바가 있었는데도 저런 표정이라면.


“하, 귀한 사람이라.”


그러다 겨우 한 마디 중얼댔다.


“그래, 진짜 피녹호나 김예현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지?”

“그건···.”

“왜? 맞잖아? 설마 박인영이 그 둘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최소한 강간미수나 상습 사기는 안 저질렀잖아?”


피녹호는 강간미수.

김예현은 상습 사기.

도플갱어는 그 피해자였다.

자신의 몸이, 그리고 어머니가 다칠 뻔했다.

물론, 제대로 보복하긴 했지만 그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예···, 둘보다 훨씬 좋은 사람입니다.”


뭔가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 걸까?

유송은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뭔가가 터지기 직전이라도 되듯이.


“그래, 좋은 사람이면 죽으면 안 되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그럼 최악으로 떨어뜨리면 되는 거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예상도 못 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왜 그래?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한들, 그게 범죄자가 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범죄자는 죽어 마땅하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하면 답은 명확하잖아?”


아픈 과거가 있다고 모두가 범죄자가 되진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말한다.

가해자에게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엄벌주의로서, 사적제재로서, 혹은 자경 활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정신병 걸려서 사고를 칠 때까지 학대하면 되겠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왜 화를 내? 사고를 치게 만든다니까? 일단 죄를 저지르면 그다음엔 왈가왈부할 것도 없잖아. 그건 범죄자 미화니까.”


사나운 얼굴은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평범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리 없잖아?”


유송이 입을 몇 번 뻐끔거렸다.

하지만 당장 목소리를 내진 못했다.

반박을 하다간 제대로 된 이유를 요구받을 테니 말이다.


“그건···. 그러면···.”

“왜? 과해?”


그때, 녹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

“불편해 보여서 말이야.”


여유로운 얼굴은 여전히 답을 요구했다.


“네···. 죽이는 건···.”

“진짜 피녹호나 김예현은 죽어도 괜찮았지만?”

“두 사람은 아무 이유도 없이···”

“모르잖아, 그건. 넌 두 사람이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알아?”

“···네?”

“그 둘이 예전에 나 같은 사람한테 걸렸을 수도 있지. 그래서 삐뚤어졌을지도 모르고.”


진심으로 동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복수도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마냥 장난 삼아 하는 이야기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정상적으로 태어나서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으면 범죄자 안 됐지. 그런데 왜 그 둘한테 가혹하지? 걔랑은 다르게 말이야.”


대답은 느렸다.

아니, 울지 않는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저 인영을 구하고 싶었을 뿐인데, 온갖 물음에 시달리는 상황이니.


“그럴 리는···. 그게···. 적어도 진짜 피녹호는···.”

“뭐, 지금이라도 뒷조사하게? 그 두 사람 다 아무런 고난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그게 가능해?”

“······.”

“사실 그것도 졸렬하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판단했던 게 문제잖아. 나중에 조사한다고 해도, 지금 몰랐다는 사실이 사라져?”


하지만 반박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녹호는 자신을 궤변으로 변호하지만, 공세는 정론으로 펼친다.

그렇기에 문제에서는 자유로우면서도 질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단단했다.

어떤 대답을 해도 반박이라는 형태로 튕겨 나갈 정도다.


“···부탁드립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말했을 텐데? 인정에 호소하지 말라고.”

“부탁드린다는 말밖에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살인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당신을 위협한 사람한테까지 자비를 부탁드리진 않겠습니다. 마냥 착하게 살아가길 원하지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더는 타인을 밀어내지 말아주십시오.”


논리를 벗어난 부탁.

당연히 그 안에는 어떤 힘도 없었다.

그저 싫다는 말로 물릴 수 있겠지.


하지만 녹호는 곧바로 거절하진 않았다.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길 뿐이다.

진심은 진실이었고, 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었다.


“뭘 그렇게까지 해? 내가 진짜 악마기라도 해?”


그러다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네?”

“누구든 추락시킬 만큼 대단하진 않아. 너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아니잖아?”


그 미소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그래왔듯, 한기가 스며 있었다.


“하지만 녹호 씨는 돈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돈으로 강압하면 누구든 굴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압박하면 어떻게 범죄를 안 지르고 배기겠습니까?”

“뭐야, 귀한 사람의 기대치가 낮아졌네?”


예전에 유송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한들, 그게 범죄자가 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자연스레 바뀌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이고 아무 일 없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권력 앞에서 어떤 것도 확답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 공범이 되고 말았지.


“그럼 이제 내기가 되겠네.”

“내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녹호는 자기 자신이 악마가 아니라고 했었지.


“박인영이 귀한 사람이면 네 승리야. 그 반대면 내가 이기는 거고.”


하지만 누구보다 악마의 왕처럼 말했다.


“그럼···,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원한다면.”

“위해라는 말은 폭이 넓습니다. 직접 폭행 외에도 누군가를 사주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동시에 생계를 위협하는 것도 안 됩니다.”

“흐음? 그건 아예 모셔두라는 수준인데? 우리가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는 기억하지?”


유송이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귀한 사람의 허들이 너무나 낮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고난 없이 자라났을 때, 엇나가지만 않으면 된다니.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한들, 그게 범죄자가 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사실상 이 말을 거부한 꼴이나 다름없었다.

각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녹호가 작정하고 나선다면, 무너지지 않는 게 더 힘들 거라는 생각에.


“···악행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의 금력을 가지셨잖습니까?”


변명 같은 말을 내뱉으며 눈치를 살핀다.

다행히도 그 시선을 받은 얼굴에는 불쾌함은 보이지 않았다.


“뭐, 그렇게 하지.”

“정말입니까?”

“그래, 사람이 꼭 괴롭힘만으로 추락하진 않으니까 말이야.”


녹호는 시원스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악수라도 하자는 듯, 손을 뻗었다.


“내기 벌칙은 나중에 정하고, 지금은 응원이나 해두자. 우리의 ‘욥’을 위해서 말이야.”

“···‘욥’? 그게 뭡니까?”


두 사람이 악수했다.

내기가 성사되었다는 의미였다.


“뭐긴 뭐야, 고래 사이에 낀 새우지.”



***


하루가 지나고서 교회 집무실.

녹호는 의례복을 입고서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골격이 드러날 정도로 달라붙는 모습은, 정숙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해서.”

“목사복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유송이 한 말대로, 펑퍼짐하게 입는 옷이라 오히려 활동하기 편한 듯했다.

물론, 그게 제대로 된 사이즈라는 뜻은 아니었다.

곰 같은 덩치를 전혀 숨겨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목사도 야윈 체형은 아니라서 편하네.”


녹호는 그렇게 말하고서 책상에 얹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작은 지갑만 한 사진첩.

한 장씩 넘기자 녹호와 예현, 두오, 유송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장, 작은 육포 조각 여럿이 클립에 끼워져 있었다.


“앞으로 오버핏으로도 괜찮은 옷만 입어야겠지만.”


그중 하나를 입에 물고 다시 예현의 사진으로 옮긴다.

그러자 녹호에게서 변화가 시작된다.

키가 줄어들고 옷 품에는 다소 여유가 생긴다.

노란색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고, 옆머리에는 새치 몇 가닥이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사나운 얼굴은 중후하고 진중한 기운을 은은하게 뿜어낸다.


“이제 자네는 돌아가게. 신도가 보면 안 될 일 아닌가?”


예현이 유송을 바라보았다.

몰입이 끝났는지, 눈빛마저 온유했다.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그래, 살펴 가게나.”


유송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뒤로 물러섰다.

예현은 그 뒷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문서를 살폈다.

예배 순서와 해야 할 말을 준비한 내용이었다.


암기는 한참이나 계속됐다.

아니, 단순히 외운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동선을 떠올리며 표정과 몸동작까지 정비했다.

그건 아예 연극을 준비하는 것에 가까웠다.


“···아직 예배 시간은 아닐 텐데.”


갑작스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말이다.


“목사님, 들어가도 될까요?”


익숙한 목소리.

예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히 입을 열었다.


“들어오렴.”

“네, 목사님!”


문이 열리고 환한 미소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서주였다.


작가의말

정신병 걸릴 때까지 괴롭히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31화. 빚 +1 24.01.29 44 1 12쪽
30 30화. 모텔 +1 24.01.26 52 1 12쪽
29 29화. 이상 +1 24.01.25 44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44 1 13쪽
27 27화. 욥 +1 24.01.23 50 1 12쪽
»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49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54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59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60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70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3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8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6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9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00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7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3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7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10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8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5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60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5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05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66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75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28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28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