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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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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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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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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화. 가정 파탄

DUMMY

어금니를 짓씹으면서 하는 말.

당장이라도 사단을 낼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예현은 오히려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곤란하다네. 이만 돌아가 주겠나?”

“당장 데려오라고.”

“다시 말하겠네. 돌아가게.”


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한쪽은 맹렬한 분노가 이글거렸고, 다른 쪽은 속을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비쳤다.

마치 고함과 침묵이 공존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모순은 성큼 발걸음에 깨져나갔다.


“이모, 어디 있어? 이모! 이모!”


인영이 무작정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대화하기보다는 찾아서 데리고 나오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만하는 게 어떤가. 때가 되면 돌려보낼 테니.”

“이모!”

“······.”

“이모! 어디 있어? 여기 안에 있는 거지?”


예현이 하는 말은 듣지도 않았다.

잠시 교회 내부를 헤매다가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 뿐이었다.

목사 개인 생활 공간이 있는 곳으로.


“···인영아?”


안으로 들어가기 전, 소란을 들은 서주가 먼저 나왔다.


“이모, 여기서 나가자.”

“아니, 잠깐···.”

“빨리 나가자고!”


창백한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하얗던 피부에서 핏기까지 사라지자, 동정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인영이 더욱 화내는 이유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라네. 스스로 결정하게 두게나.”


그런 상황에서 한 마디가 부유했다.

서주를 끌어당기던 손길은 잠시 멈추더니, 예현을 향해 두 눈을 흘긴다.


“적당히 하세요.”

“얼굴을 보면 알지 않는가? 잠시 쉬었다가 가는 편이 좋다는 걸.”

“지금 이 꼴을 만든 게 누군데···!”


결국, 화까지 내고 만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이 교회는 사이비였고, 제 이모는 피해자였으니까.


“이모를 좀 더 존중할 생각은 없는가?”

“존중? 말은 제대로 해야지. 가지고 놀 수 있게 비켜달라는 거잖아?”

“그만···.”


서주가 붙잡힌 손목을 아래로 꾸욱 눌렀다.

강하게 저항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단지 이 상황이 불편해 보일 뿐이다.


“갈 테니까 그만···.”

“이모도 적당히 해! 언제까지 저 목사한테 휘둘릴 거야!”

“알겠으니까···”

“진짜 쪽팔리게 왜 이러는 거야.”


서주가 눈빛을 흐렸다.

생기라고는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눈동자였다.

그렇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당겨진다.

조카 손을 통해 교회 바깥으로.


“···그만 좀 해.”


그러다 괴로운 목소리가 작은 입을 비집고 나왔다.


“뭘 그만해? 여기서 이모가 무슨 꼴을 당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서주가 손목을 뿌리쳤다.

목소리에는 서러움과 악다구니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건 언뜻 피투성이가 된 짐승이 우는 것처럼 들렸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하라고···!”


인영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몸으로 무결하다고 외치는 모습은 너무나 안쓰러웠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느끼겠지.


하지만 사이비 교회에서 빼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동시에 그걸 도와줄 유일한 가족은 한 사람뿐이기도 했다.

그래서였겠지.

돌연 손을 뻗어 서주의 가슴을 움켜쥔 건.


“뭐, 뭐···.”


의례복이 봉긋하게 눌렸다.

푹신한 살덩어리가 그리는 굴곡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영이 뻗은 손아귀 안에 쥐어져서는.


서주는 멍하니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지친 머리로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는 듯이 제 조카를 올려다보면서.


“속옷도 없이 목사복만 입고 있잖아. 그런데 믿으라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뭐···.”

“속상하게 왜 이래, 진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손을 휘적였다.

그건 머리를 거치지 않은 반사적인 부정이었다.


“하아···. 가자.”

“아니, 진짜···.”

“가서, 옷 갈아입고 약국도 들르자.”


계속 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영이 한 말은 서주의 머리를 쾅 내리쳤다.


“···약국?”

“어. 될 수 있는 한 빨리 가는 편이 좋으니까.”

“······.”

“이모.”


아무 일도 없었을 거라 믿기는 힘들다.

목사는 사이비였고, 차림은 궁색했다.

누구나 끔찍한 짓이 있었다고 생각했겠지.

서주를 아낀다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잘못했다간 평생을 후회할 테니까.


그래,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합당한 일이다.

적절한 조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틀어진 상황이었다고 지적하고 끊임없이 반박한다면, 사이비 교회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


“왜···.”


문제가 있었다.

그런 방식은 망설임도, 그리고 한 번의 오답도 없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영은 처음부터 틀리고 말았다.


예현은 주변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빴고, 서주는 전혀 그럴 몸 상태가 아니었다.

걱정하던 일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전제가 틀렸던 만큼 설득력은 약해졌고, 듣는 입장에선 억울하기까지 했다.

아니, 그걸 ‘억울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순 없겠지.


‘약국’


하지도 않은 일에 그런 단어 들었다.

그건 은밀하고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발가벗겨져서 길거리 한복판에 던져진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지.

심지어 그 얘길 유일한 가족한테 들었다면···.


“왜 안 믿는···, 켈록켈록!”

“이모?”

“웨액···.”


갑작스러운 헛구역질에, 인영은 당혹감이 서린 얼굴로 다가갔다.


“우웩···.”

“잠깐만 기다려. 내가 화장실로···”

“가···, 켈록켈록···.”


하지만 서주가 밀어냈다.

두 눈에는 왜 자신을 믿어주지 않냐는 원망도 담겨있었다.

마치 부모에게 버려진 자식이 보일 만한···.


그래, 늘 같은 얘기였다.

‘있을 자리’.

믿지도 않는데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가족이 아닌데 집이 ‘있을 자리’가 될 순 없었다.


“인영 양, 저기로 가보게나.”

“당신을 어떻게 믿고···”

“서주 양이 입었던 옷이 있다네. 어제 교회 환경 조성을 돕다가 붉은 물이 들었지.”


예현이 담담히 빨랫줄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몇 시간 그늘에서 널어뒀으니, 습기가 여실히 느껴질 걸세. 하루 남짓한 시간밖에 안 지났으니.”

“···방금 준비했겠지. 내가 오는 걸 보고.”

“아쉽겠지만, 불가능한 일일세. 천을 골고루, 습기만 남는 수준으로 적시긴 힘들다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 있었겠는가?”


거짓말이 아니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꼬리가 밟히면 몸통 전체가 끌려오는 법이니까.

예현은 악인이지만, 멍청이는 아니었다.


“아직도 믿기 힘들다면, 서주 양이 몸을 추스른 후 집으로 데려가게나.”

“당연히···”

“목사님, 제발···.”


인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서주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만큼이나 제 조카와 같이 있기 싫은 듯했다.


“불신하기로 결심했거늘, 어떤 증거를 들이밀던 의미가 있겠는가? 단지 시간 낭비일 뿐일 테지.”

“······.”

“목사님···.”


예현이 서주를 인영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그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대신 아주 다정하게도 서주를 다독였다.


“옷 때문이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그 대신 충분히 진정하고서 움직이렴. 다치지 않게.”


이 조언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봐도, 목사에게 더 의지하는 모습이다.

인영은 그 모습에 참담하고도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을 완전히 빼앗긴 탓에.



***


인영은 서주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둘 사이에 대화는 딱히 없었다.

한쪽이 지나치게 경계를 하는 탓이다.


그 반면, 예현은 느긋하기만 했다.

성경을 펴서 필사하고 공부하듯이 되뇌고 있다.

언뜻 참된 종교인으로 보일 정도다.

사실 처음 읽는 거라, 이제야 외우는 중이겠지만.


“목사님, 이제 가볼게요.”


그러다 서주가 예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진정이 됐니?”

“···네.”

“그래. 그럼 조심히 들어가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교회 밖으로 나간다.

인영 역시 마찬가지로 그 뒤를 따랐다.

화해하지는 못했는지, 일정 거리를 둔 채로.


예현은 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성경을 필사했다.

종이는 어느새 오래된 말로 빽빽해졌다.

그만큼 집중력이 최고조로 오르기도 했다.

코앞까지 누군가 다가와도 모를 만큼이나 몰입한 상태였다.


“녹호 씨···, 맞으십니까?”


유송이다.

미리 가져와 달라고 연락을 받았는지,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고 왔다.


“그렇게 보이는가?”

“그건 아니지만···.”

“그런 물음은 녹호라는 사람이 나를 닮았다는 뜻 같다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청년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의구심이 들지 않겠나?”


필사가 다소 느긋해졌다.

동시에 유송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는 말을 들어보니 녹호가 맞겠지만, 뭐라고 대꾸할지 갑갑한 모양이다.


“···목사로 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녹호 씨가 위험을 감수할 리 없으니, 본인이 맞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보는 눈이 있는가 확인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고 편안하게 대화할 순 없으십니까?”


그 말에 예현이 빙긋 웃어 보였다.


“간단하게, 앞으론 사진과 육포를 내밀게나. 다른 사람은 의심하지 못할 테고 나에겐 충분한 신호가 될 테니.”

“아, 네.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유송이 품에서 그 두 가지를 꺼냈다.

예현은 받은 사진을 보면서 육포를 물었다.

작지 않던 덩치가 우득 소리를 내며 자라났다.

피부에도 생기가 생기고 머리카락 역시 밝게 빛이 난다.


“역시 관리해도 젊은 몸은 못 이기네.”


녹호가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투 역시 얼굴과 함께 완전히 바뀌었다.


“말씀하신 대로, 제일 큰 캐리어 가방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져오라고 하신 이유가···.”

“잘했어. 이리 줘.”


대답도 하지 않고 캐리어 가방을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유송은 손잡이를 꾹 잡고선 놓아주지 않았다.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다.


“뭐야?”

“아까 그 얼굴의 주인은 어디 있습니까?”

“글쎄? 확인하고 싶어?”


곧바로 어두워지는 표정.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그게 오히려 흥미로운 걸까?

녹호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유송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놀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어머님께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과 함께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여전히 그에게 아킬레스건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살인 역시 그래서 시작됐지.

기껏 쥐여준 돈을 교회 헌금으로 뜯어낸 것에 분노해서.


“주제 넘는다는 생각 안 들어?”

“······.”

“이젠 알 텐데? 너 하나 죽이고 없던 일로 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라는 거.”


작가의말

세상에 피카레스크도 참 많지만, 쓰레기짓이 개그 요소가 아니라 다큐로 나오긴 힘든데...

여러모로 참 대단한 주인공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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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장천선 24.02.25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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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화. 성역 24.02.24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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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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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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