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713
추천수 :
72
글자수 :
836,950

작성
24.01.01 15:10
조회
134
추천
2
글자
12쪽

11화. 의심

DUMMY

***


오후 세 시.

한창 더울 때 녹호가 대문을 나선다.

유송은 따로 시킨 일이 있는지, 두오만 나와서 배웅하는 중이다.

밖에서는 미리 불러둔 콜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래, 나 없을 땐 느긋하게 지내. 유송이랑 일정 얘기해서 조율하고.”

“알겠습니다.”


녹호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이끌고 막 타려고 했다.


“영 자리가 안 나겠는데?”


하지만 가방이 문제였다.

하나는 트렁크에 넣는다고 하지만, 다른 하나는 들고 타야 하니.


“아저씨, 이거 하나는 도로 가져다 놔.”

“없어도 되겠습니까?”

“괜찮아, 어차피 옷 정도라. 모자라면 백화점 들르지, 뭐.”


녹호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가방을 건네고선 택시에 탔다.

차량은 곧 넓은 길을 따라 주욱 나아간다.

완전히 모습이 사라지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우···.”


두오는 택시를 끝까지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받은 가방을 질질 끌면서 다시 저택으로 들어갔다.

본관 앞에 오자, 마침 유송도 나오고 있다.


“선배님, 그 가방은···.”

“도련님께서 두고 가신다고 해서요.”

“그럼 저한테 주세요. 방에 두고 올게요.”


두오가 잠시 입을 닫았다.

이내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제가 두고 오죠.”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오늘은 일찍 퇴근하셔도 돼요. 도련님도 허락하셨으니.”

“아, 네.”


유송이 잠시 길을 비켜섰다.

두오는 태연하게 문으로 들어섰다.

가장 넓은 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열어봤다.

짐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


택시가 넓은 장소에서 멈춰 섰다.


“다 왔습니다.”

“여기.”


녹호는 카드로 계산을 치르고서 밖으로 나섰다.

트렁크 안에 있는 짐도 빼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의 모습이 그 시야에 담긴다.


“가까워서 좋네.”


녹호는 자연스럽게 터미널 밖으로 멀어지며 전화를 걸었다.


“어, 유송아. 해야 할 일이 생겼어.”



***


두오가 중얼댔다.


“평소대로이신가.”


가방 안에 있는 옷.

대부분 옷걸이에 걸어둔 채로 대충 집어 넣어뒀다.

여행을 위해 짐을 압축한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무관심하고 투박한 모습이 녹호다웠다.


두오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보였다.

금세 옷을 정리하고선 정해진 옷장에 걸쳐놓는다.

마지막으로 다른 짐이 있는지 확인하고선, 가방마저 적당한 장소에 밀어 넣었다.


“유송 양?”


두오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곳엔 뒤늦게 현관으로 들어오는 유송이 보였다.

조금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데, 왜 짐 정리를 할 동안 사라져 있었을까?

차라리 퇴근을 했으면 이해라도 가건만.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전화 받고 왔어요.”

“누구한테요? 도련님?”


유송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 꺼리는 기색이다.


“별 얘긴 아니었어요.”


두오도 억지로 캐내려고 하진 않았다.

그저 흘려보내고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유송 양은 이만 가봐도 돼요. 도련님이 오시는 날에 다시 출근하세요.”

“네, 그런데 오늘은 퇴근 시간 채우고 갈게요.”

“오늘 내로 돌아올 것 같아서 그래요?”

“그것도 있고, 녹호 씨가 맡긴 일도 있어서요.”

“맡긴 일이요?”


유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야 할 영화나 음악 리스트를 만들어달라고 해서요. 이왕이면 끝내고 가려고요.”

“예, 그럼 내키실 때 퇴근하세요.”

“선배님은···.”

“제 업무는 저택 관리니까요. 퇴근 시간까지 있다가 갈 예정이에요.”


두오는 할 일이 있다는 듯, 계단을 올라갔다.

유송도 금세 자기 일을 하러 방을 찾아 들어간다.



***


두오가 어딘가에 통화 중이다.


“예, 선생님. 저 지우 외할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제가 데리고 가려고요.”

-아, 지우 어머님이랑 얘기가 끝난 상태인가요?

“만나서 얘기할 생각입니다. 딸아이 번호로 전화가 갈 겁니다.”


시간을 내서 손자를 찾아가겠다는 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외할아버지가 같이 사는 손주를 하원 시킬 수도 있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두오는 자상한 가장이었으니.


“곧 찾아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이내 두오는 서둘러 병원 복도를 가로질렀다.



***


유송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끝냈을 즈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할 게 있어요.

“네? 피녹호 씨 전화 아닌가요?”

-예, 맞아요. 그런데···, 알잖아요?


그 말에 유송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고서 대꾸했다.


“네, 압니다.”


간단한 말이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먼저, 사용인 모두 퇴근했나요?

“아뇨, 선배님은 그대로 계십니다.”

-그래요? 그럼 그분을 잡아두세요. 아예 바깥에는 시선도 못 돌리도록.

“그건 힘든데···, 얼마나 버텨야 합니까?”

-10분이요.


전화에서는 비밀지령이 나왔다.

두오를 10분만 붙잡아두라는.

양심에 걸릴 뿐, 어려운 일은 아니다.


“끝나면 바로 퇴근해도 됩니까? 선배님이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도록 하세요.

“그럼···.”


유송은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기운을 떨치지 못 했다.

그렇다고 반항할 수도 없는지라 계단 위로 올라간다.


“선배님? 어디 계세요?”

“왜 그래요?”


두오는 꼭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왔다.


“혹시 바쁘신가요?”

“아니요, 괜찮아요.”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 하나를 꺼낸다.


“아까 화염방사기, 잘못하면 불꽃이 역류하지 않을까요?”

“아마 노즐 분사라서 괜찮을 거예요.”

“노즐 분사? 그게 뭐예요?”

“노즐이라는 게, 입구가 좁아지는 구조물을 말해요. 그 덕에 튜브 안까지 공기가 들어올 수 없어요. 당연히 불꽃은 그 안까지 올라오지도 않을 거고요.”


두오는 다소 피로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낯선 일이었다.

오늘 일찍부터 일하기도 했지만, 매사에 친절한 사람이다.

이건 꼭 일부러 귀찮음을 내비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배터리 위치라도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설계도 주세요. 다시 살펴보죠.”


하지만 유송은 눈치가 없는 척, 두오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


두오가 저택 내부를 걸었다.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지하실.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서 그 두꺼운 철문 앞까지 도착했다.


그래, 단단히 닫힌 감옥.

두오는 입을 꾹 닫고서 자물쇠에 손을 뻗었다.

으레 자연스러운 손길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고리를 쥐었다.

그리고 몸통 부분을 뒤집어서 새까만 뒷면을 살핀다.


“······.”


분명 거멓게 칠해졌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검은 잉크 중 일부는 벗겨져서, 반질거리는 광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말은···.


“조용히 있으렴.”


두오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그다음, 품을 뒤적여서 열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


유송이 설계도를 끄적이면서 얘기했다.


“네, 그럼 다음에 화염방사기를 꺼내면 이렇게 구조를 바꾸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그런데 그냥 둬도 상관없을 거예요. 도련님은 뭔가에 금방 싫증 내시니까.”

“아···.”

“이제 할 일은 끝났나요?”


두오가 한 말에 유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말인데, 퇴근해도 될까요?”

“그러도록 해요.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날은 문자 줄게요.”

“그럼 그동안은···.”

“휴가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뵐 때까지 몸조심하세요.”

“그래요, 잘 돌아가세요.”


유송이 방 밖으로 나선다.

두오는 그 모습을 보다가 곧 창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확실히 저택 대문 밖을 나가는지 두 눈으로 확인한다.


“······.”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서서, 3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이내 낯설지 않은 방 앞까지 도착했다.

지난번에 녹호를 마주했던 보안실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모니터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CCTV 화면을 사방에 띄웠다.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모든 영상을 뒤로 감고.

당연하게도 유송이 옆으로 새지 않고 나가는 모습이 거꾸로 흘러간다.

빠르게 돌린 탓에 시간 감각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은···.”


오래지 않아, 자기 자신이 캐리어 가방을 끌고 저택을 오가기도 한다.

딱히 중요한 광경은 아니었다.

화면은 흘러가게 두고서, 폴더를 열어본다.

원하는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없어?”


그렇게 확인한 파일에는 지난 시간이 없었다.

으레 CCTV가 그렇듯, 일정 기간 보관할 텐데.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녹호나 유송이 파일을 건드렸다고.


“설마···. 아니, 이틀 전 자료는 있어.”


두오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댔다.


“CCTV를 뒤늦게 깨닫고서 부랴부랴 지운 거야. 나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아직 내가 의심하는 줄은···.”


사라진 영상 파일.

이 하나만으로는 녹호가 자신을 의심한다고 볼 수 없었다.

증거 인멸은 어차피 해야 했을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녹호가 자리를 비운 지금, 이만한 기회가 언제 올지 몰랐다.

두오로서는 다급하게나마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휴대폰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김 사장님, 지금 통화가 가능하십니까?”

-아, 두오 씨. 왜요? 따로 조사할 게 있으세요?

“예. 최근 삭제된 영상 파일을 복구해야 합니다.”


녹호와 그 아버지, 두 명을 걸쳐서 수행원 노릇을 한 사람이다.

다른 이였다면 난감해했을 일도, 두오는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적절한 인맥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따로 연락을 준 걸 보면, 급한 일이신가 봐요?

“예.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합니다.”

-흠. 누군가 몰래 처리해야 하나 봅니다. 당연히 비밀로 해야 할 테고.

“······.”

-우선, 복구할 메모리 들고 찾아오세요. 일정은 봐야 견적이 나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찾아뵙겠습니다.”


낯선 일이 아니다.

그만큼 대화는 빠르게 끝났다.

하지만 두오는 지치기라도 한 듯 몸을 뉘었다.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을 얼룩덜룩 묻힌 채로.


“후우···.”


그러다 다시 몸을 일으켜 마우스를 달각거렸다.

과거를 보여주던 화면은 곧 왼쪽 아래에 현재 시간을 나타냈다.

두오는 모니터를 다시 한 번 훑어보고 난 후, 품에서 겹쳐진 종이를 꺼냈다.

지하실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분명히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일 터.

녹호가 유송과 흔적을 지운 후이기도 했다.

두오는 한참을 모니터와 사진을 번갈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나치게 깨끗해.”


의심.

동시에 확인하지 못한 확신이었다.


작가의말

해피 뉴이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6 66화. DJ뭐야 +2 24.03.02 34 0 12쪽
65 65화. 달란트 24.03.02 30 0 12쪽
64 64화. 탈출 +1 24.03.02 28 0 12쪽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25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4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8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0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8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8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7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4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6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1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4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0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7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8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8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9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1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3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5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