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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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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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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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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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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달동네

DUMMY

유송이 슬픈 표정으로 녹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더는 그래선 안 됩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안타까움에 짜낸 진심이었다.

착한 사람이 으레 할 법한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녹호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유송의 멱살을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읍!”


커다란 손은 옷이 찢어져라 잡아당겼다.

사나운 입은 집어삼키기라도 하듯 격렬히 움직였다.

힘으로 억지로.


유송은 당황해서 굳어있다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얇은 팔로 넓은 가슴팍을 밀치기도 했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컸다.

녹호가 놔주기 전까지, 아무런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우당탕탕!


주변에 있던 잡동사니가 몸에 부딪혀서 떨어진다.

질끈 감긴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입술에 옅은 핏물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웁! 켈록, 켈록!”

“하. 별로네, 생각보다.”


그러다 두 사람 간 연결이 끊어졌다.

녹호는 손등으로 분홍색 타액을 닦아내고선, 냉담한 눈으로 유송을 바라보았다.


“이런 짓은···”

“억울해? 알고 고용 당했으면서?”

“······.”

“인간을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고? 정작 너도 수단으로 여기 팔려 왔잖아. 그런데 그 말에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유송이 원망 서린 눈동자로 녹호를 바라보았다.

입을 벌려 몇 번이나 뻐끔댔다.

항의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뿐이었다.

반박할 만한 말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을 터였다.

녹호가 말한 대로, 모든 부조리를 견디는 걸 조건으로 고용됐다.

반항조차 해선 안 될 처지였다.


“하.”


녹호가 비웃음을 터뜨리고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대화는 의미 없었다.

여느 때처럼 손 하나를 휘적대면서,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

“······.”

“내일 아침부터 바쁠 거야. 오늘 밤을 새우면 힘들 정도로.”


유송은 입술을, 그리고 눈가를 벅벅 문지른 뒤 돌아섰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은 수치심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


이른 아침.

녹호가 거실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자는 것 같기도,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태도다.

그런 와중에 두오가 깔끔한 차림으로 현관에서 들어왔다.


“안 주무셨습니까?”

“어.”


녹호는 느긋하게 고개를 돌렸다.


“며칠 동안 문제없게 해뒀어?”

“예. 제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겁니다.”

“얼마나 걸려?”

“일단 사흘로 생각합니다만, 원하신다면 더 일찍 돌아오겠습니다.”

“아냐. 일주일 넉넉하게 갔다 와. 애가 어제 있었던 일 까먹게 할 겸 가는 거잖아.”

“감사합니다. 그럼 넉넉히 쉬다가 오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두오가 방으로 들어갔다.

자는 아이를 깨우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다른 한 명도 현관을 통해 들어온다.


“···안녕하십니까, 녹호 씨.”

“일찍 왔네.”


유송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지만, 녹호는 얼굴도 보지 않았다.

자기 할 말만 할 뿐.


“그럼 그냥 일찍 출발할까?”

“어디 가실 예정입니까?”

“그래. 차 준비해.”


커다란 몸은 성큼성큼 차고로 향했다.

마치 거인이 움직이기라도 하는 듯 묵직하게.



***


좁은 도로를 승용차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정확히 어디입니까? 더 들어갔다간 주차할 곳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걸어야겠는데.”

“도대체 어딜 찾으시는 중입니까?”


유송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차 자리를 찾았다.


“여긴 흥미로워하실 만한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달동네라고 부르는 곳인데···.”


반질거리는 차가 금세 자리를 잡았다.

유송도 안전 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지도입니까?”

“그래.”


녹호는 A4용지로 뽑은 위성지도를 들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보면 될 일···. 아, 사진이 더 있었습니까?”


말 그대로 지도 뒤에, 인쇄된 풍경 몇 장이 존재했다.

확실하지 않은 곳을 더듬더듬 가려는 모양.

아니나 다를까, 녹호는 무작정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말했지? 아침부터 바쁠 거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등산도 포함이야.”


달동네.

각기 사정으로 인해 서울에서도 개발하지 못하는 지역이다.

당연하게도 오래된 집이 많았고, 지형마저 가파른 곳이 대부분이다.

남루하게 드러난 시멘트와 콘크리트 때문에 회색 일색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잿빛 산으로 느껴질 정도로.


“후우, 후우.”

“체력 키워둬. 거치적거리면 내가 치워버릴지도 모르잖아?”

“···알겠습니다.”


유송은 숨을 헐떡이면서 열심히 따라갔다.

그나마 가을이 아니었다면 크게 고생할 뻔했다.


“흐음···.”


녹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을 살피기 여념 없었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탓이다.

갈림길에서는 지리를 확인하듯 제자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덕분에 잠깐 유송이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녹호가 뭔가를 깨달은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느린 발걸음이었지만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유송이 뛰다시피 해야 할 정도로.


“허억, 허억···. 어디로 가시는···.”

“······.”

“노, 녹호 씨···.”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던 유송이 곧 충격에 비틀댔다.

갑작스레 멈춘 등판과 부딪힌 탓에.


쾅쾅쾅!


녹호는 앞을 막고 있던 대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얇은 철판이라, 유독 소리가 크게 울린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손을 휘둘러댔다.


쾅쾅쾅!


“아, 문 다 부서지겠네!”


그러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녹호도 두드리기를 멈추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곧 끼익 소리와 나타나는 꾀죄죄한 남자.


“누구신데,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 서려 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태도다.

물론, 녹호가 움츠러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럴 성격도 아닐뿐더러, 체격은 이쪽이 훨씬 컸으니 말이다.


“여기 사는 사람 어디 있어?”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인데, 무슨 소리야?”

“거짓말하지 마.”


어떤 상황에서도 고자세를 유지하는 사람.

그것이 피녹호였다.

그건 지금 상황에서 굉장히 나쁜 일이기도 했다.

유송은 자칫 싸움이라도 날까, 다급히 앞으로 나서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여기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뭐···, 3년 됐지.”


다행히 집주인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웬 괴한과 싸우는 건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럼 전에 집주인 분은 어떤 분이셨어요?”

“아, 전 집주인 찾아오셨구나? 그냥 아주머니였지. 한 마흔 정도 됐을까?”


그 말을 듣고서 유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녹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맞습니까?”

“···어쩌면.”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유송이 다시 집주인을 바라보았다.


“혹시 연락처를 알고 계시나요?”

“그건 모르지. 이사 간 지가 언젠데.”

“아···.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옆집 사람한테 물어보든지.”


집주인 남자가 문을 닫고 물러나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내 멈칫하더니 덧붙이듯 한 마디 내뱉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교회에 다니고 있었어.”

“교회···, 말입니까?”

“그래, 저 밑에. 이사 오고 난 다음에도 두고 간 십자가나 성경이 많아서 기억나.”


녹호가 그 말을 되뇌이자, 유송은 감사 인사를 전하고 물러났다.



***


저택.

녹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소파만 두드린다.

유송은 그 모습에 눈치만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현금을 만들어야겠어.”


그러다 녹호가 한 마디 중얼거렸다.


“현금 말입니까?”

“그래.”


삐딱하게 소파에 기댔던 몸이 앞으로 기운다.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다.


“교회에 못 들어가셔서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건 돈만 가지고 될 일이···”

“아무것도 쥐여주지 않으니까 다들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하잖아.”

“아···. 정말 몰라서 답하지 않은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 돈만 쥐여줬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알아 왔겠지.”


녹호는 오늘 내로 누군갈 찾는 것에 실패했다.

교회 문은 닫혀있었고, 수소문도 딱히 성과는 없었다.

현금을 마련해야겠다는 말도 그런 맥락이었다.

당장 누군가에게 건네줄 돈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그건 맞습니다만, 좀 그렇지 않습니까?”

“왜?”

“모르는 사람한테 대뜸 돈을 쥐여주고 뭔가를 시킨다는 건데···. 녹호 씨라면 이상하게 생각 안 하시겠습니까?”

“······.”

“범죄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상입니다. 요즘 그런 중계책도 많은 편이라, 더욱 위험할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받는다면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흠, 돈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유송은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돈만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저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던 탓이겠지.


“이래서 고용관계가 중요하구나?”

“그렇다기보다는···.”

“너도 나한테 고용됐으니까 말을 듣는 거잖아.”


하지만 녹호가 도달한 결론은 더욱 염세적이었다.


“그냥 돈은 힘이 없어. 맥락이 있어야 효과적이지. 그래, 고용관계처럼 말이야.”

“······.”

“회사가 필요하겠네. 돈을 권력으로 바꾸려면.”


재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결심.

유송은 그런 녹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녹호가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꼭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다 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차가 멈췄다.

녹호가 먼저 내렸고, 유송이 작은 가방 하나를 가지고 따라 내린다.

그렇게 발걸음이 향한 곳은 허름한 건물이었다.

‘예현교회’라고 적혀있지 않았다면, 그 정체도 모르고 지나갔을.


“무슨 교회가 수요일, 일요일만 영업해?”

“영업이 아니라···. 아마 가난한 동네라서 그럴 겁니다. 신도도 다 바쁠 테니 말입니다.”

“직원도 몇 없겠네.”


그 말과 함께 녹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 시작보다 한참 이른 시간이라, 안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처음 오시는 거죠?”


그러다 젊은 여자 한 명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곱슬기가 있는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모양새.

그 덕에 작은 얼굴과 풍성한 가슴께로 시선이 집중되는 감이 있었다.


“여기 목사를 만나고 싶은데.”

“약속은 하셨어요?”

“꼭 해야 하나?”


그 말에 여자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목사님이 보고 싶다고 아무 때에나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적어도 약속은 하셔야죠.”

“이 작은 교회에 바쁠 일이 있어?”

“말이 심하신데요.”

“목사도 막 돼먹었네. 직장이 이렇게 초라하면 열심히 일할 생각을 해야지.”

“저기요···!”


막 다툼이 일어날 찰나였다.

녹호가 유송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눈치 좋게 쥐여주는 봉투 하나.


“헌금이야. 이래도 안 돼?”


녹호는 봉투를 기울여서 돈다발 끝자락이 보이도록 했다.

척 봐도 오만원권이 가득했다.

어림짐작으로도 300만 원은 가뿐히 넘었다.


“돈은···. 중요한 게···.”

“그걸 판단할 위친가 봐?”

“······.”

“그래, 됐어. 어차피 여기 목사만 손해지.”


녹호가 몸을 돌렸다.

여기밖에 답이 없건만, 망설이지 않고 등을 보였다.

커다란 보폭은 빠르게 멀어졌고 금세 교회 밖으로 나왔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작가의말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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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59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59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2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5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8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7 2 12쪽
» 14화. 달동네 +1 24.01.04 95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1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5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8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5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1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5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2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00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62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68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20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19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71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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