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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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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5.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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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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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584,829

작성
24.01.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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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화. 악마를 낳았다

DUMMY

그 순간, 여자가 다급히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선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빨리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후, 어딘가로 뛰듯이 사라진다.

아마도 목사가 있는 곳으로 가는 중이겠지.


“생각보다 신앙심이 없었나 보네.”


녹호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느긋하게 의자를 찾아 주저앉았다.

유송은 그 말을 곱씹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십니까?”

“자존심 부렸잖아. 골수까지 목사한테 충성했으면 안 그랬겠지. 망설이지도 않았을 거야. 어쩌면 처음부터 알겠다고 하거나, 여기 목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을 수도 있지.”

“어쨌든 지금은 달려가지 않았습니까?”

“이번 기회에 자존심을 팔아서 신앙심을 산 거지. 아니, 충성심이라고 해야 하나?”


유송은 잠자코 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좋은 일 맞습니까?”


합당한 의문이었다.

맹목적으로 변했다는 말, 그게 여자에게 좋을 일일 리 없다.


“목사에 따라 다르겠지. 아니, 아예 자신을 놓아버리면 마음은 더 편할 걸?”

“그게 무슨···”

“목사님이 뵙자고 하세요!”


유송이 반박하려는 찰나, 여자가 달려왔다.

안쪽으로 안내라도 하듯이 이끌어간다.

그나마 고급스러운 문이 막고 있는 방으로.


“여기예요.”


여자가 문을 열자, 깨끗한 내부가 녹호를 맞이했다.

나무 테이블 위에는 녹색 부직포와 유리가 깔려 있고, 의자는 반질거리는 가죽이다.

벽면에는 커다란 예수님 그림이 걸려 있으며,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책장에는 두꺼운 고서와 상장패 같은 것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오서오게. 할 말이 있다고?”


언뜻 보면 중견기업 회의실이나 접객실을 떠올릴 수 있는 방.

그곳 테이블 상석에서 중년 남자가 녹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그래. 여기 목사야?”

“그렇다네. 이 교회를 이끄는 ‘김예현’이라고 하네.”


목사, 김예현.

중후하게 생긴 것이, 언뜻 염소가 떠오르는 인상이다.

털을 잘 곱게 가다듬은 커다란 염소 한 마리가.


“다른 사람은 물렸으면 좋겠네만.”


목사가 먼저 운을 띄웠다.

유송과 여자를 내보내고 싶다는 뜻이다.

아마 비밀스러운 대화라고 짐작하는 모양이다.


“그러든가.”

“괜찮으시겠습니까?”

“가방만 두고 가.”


녹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하자, 다른 두 사람도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난다.


“그래, 헌금을 했다고?”

“어.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종교는 있는가?”


예현이 뜬금없이 질문했다.

아니, 그전에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데도 서로 반말로 대화를 나눴다.

서로 연극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목사는 어색할 정도로 예스러운 말투를 쓰고 있으니.


그래서인지 녹호는 냉소를 품으면서도 눈빛을 흉흉하게 빛냈다.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상대를 관찰한다.

꼭 맹수가 싸움을 나가기 전에 승률을 가늠하는 듯했다.


“사람을 한 명 찾아야 해. 40대 초반인 여자.”


하지만 그 시선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용건이 있는 만큼, 나지막이 으르렁댈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날을 세우진 못하고.


그 모습에 예현이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겠지.

자신감이라도 생겼는지 허리를 꼿꼿이 편다.

녹호가 워낙 거대한 덩치인지라, 겨우 눈높이나 맞추는 수준이었지만.


“사람이 궁금하다니, 좋은 징조라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일이지.”

“저 꼭대기에 살았다가 3년 전쯤에 이사 간 것 같던데.”


녹호는 이리저리 재지 않고 말했다.

이번엔 예현이 입을 닫고 있었다.

함부로 대답해서는 안 됐다.

그 순간 떠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탓이다.

동시에 어설프게 회유했다간 먹히지 않겠지.


“왜 하필 이 교회를 찾아왔나?”


적당한 거리를 돌아가는 질문이다.

화제와 완전히 떨어지지 않으면서 직접 단서를 주지 않는 선이기도 했다.


“여기 다녔다고 알고 있거든.”

“신도 정보를 팔라는 뜻인가?”

“이제야 알아듣는 분위기네.”


녹호는 가방 안 내용물을 테이블 위로 쏟아냈다.

그러자 노란색 현금다발이 두 사람의 안광 위로 아로새겨졌다.


“안 세어봐서 얼만지는 모르겠네. 그래도 이 정도면 차고도 넘칠 거야.”


예현이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턱을 매만진다.

많은 돈 앞에서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고 체면을 지키려고 한다.


그 덕에 언뜻 현명한 종교지도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관리 잘한 덕이기도 하겠지.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중후한 중년 배우라고 착각할 외모였으니까.


“신도 정보를 함부로 넘길 순 없다네.”


당장 내뱉은 말은 거절.

녹호도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래, 그럴 수 있지.”

“······.”

“사실 흥신소를 이용하는 편이 더 깔끔해. 그쪽에 일을 맡겨둘 사람이 며칠 후에 오거든. 그거 기다리기 싫어서 여기 왔건만···, 쓸데없는 짓이었네.”


녹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너머로 기다리고 있는 여자와 유송이 보였다.


“돈 챙겨.”

“알겠습니다.”


유송이 테이블로 가서 가방을 정리한다.

예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있진 않지만, 눈가를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신도가 멀리서 보고 있으니, 체면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현금 가득한 돈 가방은 갈무리되고 있다.

코앞까지 다가온 먹잇감이 멀어진다.


“다 챙겼습니다.”


유송이 발을 옮겼다.

기다리고 있던 녹호도 같이 등을 돌렸다.

교회를 나서는 방향으로.

예현은 아무 말 없이 정면만을 응시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듯했다.


“···‘악마를 낳았다.’”


갑자기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진.


“뭐라고?”

“악마를 낳았다던 여자가 있었다네. 일요일마다 기도를 참 열심히 했었지.”


녹호가 안광을 번뜩였다.

사람이라도 죽일 듯, 흉흉한 빛마저 맴돌고 있었다.

예현은 그 모습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급하게 던진 수가 먹혀든 덕이다.


“맞나 보군. 그렇다면 말해줄 수 있다네.”

“······.”

“내가 보기에도 참 안타까운 사람이었지. 그런데 이사라···. 정말 깜빡하고 있었다네.”


예현은 여유롭게 대화를 끌었다.

녹호는 작게 코웃음을 치고선 유송을 바라보았다.


“아···.”


녹호가 턱 짓을 하자, 유송이 가방을 다시 테이블 위로 가져갔다.

그러자 예현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이사를 갔다네. 일하는 가게를 왕복하기에는 관절에 너무 무리가 가서.”

“그래서?”

“지금은 가게에서 먹고 자고 하는 중이지. 이름이 ‘천선분식’이었나?”

“천선분식?”

“그렇다네. 아, 곧 올 때가 됐군.”

“···뭐?”


녹호는 바깥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예배를 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사람이 보인다.

노인, 부모 손을 잡고 오는 아이, 그리고 한 아주머니.

이 모습을 보다가 유송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자.”

“예?”


녹호가 발길을 옮겼고, 유송이 뒤늦게 따라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바쁘게 교회를 나섰다.

예배하러 들어오는 아주머니와 스쳐 지나가면서.



***


녹호는 교회에서 돌아온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생각에 빠진 듯이 두 눈을 감고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서는.


“저···.”


유송만 불편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았다.


“왜?”

“어머님을 용서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부모를 찾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을 봤다면 누구라도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유송도 원망을 내려두고 걱정을 내비쳤다.


“무슨 소리야?”

“주제넘는 말 같지만, 어머님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정체를 밝히시고···”

“주제넘는 소리네. 나한테 그딴 얘길 하고.”


녹호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얘긴지, 눈살을 찌푸렸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유송은 눈치를 보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머님을 만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묘하게 바꿔 말하지 마. 나쁘게 살아도 벌 받을 일 없다는 뜻으로 말했지, 그딴 식으로 징징댄 적 없어.”

“예. 그편이 똑똑하게 사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감정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시지 않습니까?”


며칠 뒤면 올 마두오.

하지만 녹호는 이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굳이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갈망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감정에는 그리움만 있는 게 아닌 걸까?

정작 어머니가 교회에 들어온 순간, 모르는 척 스쳐 지나갔다.

죄를 지은 것도, 이쪽을 알아볼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녹호 씨.”

“···아예 내가 도플갱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지 그래?”


녹호는 차분히 대꾸했다.

복잡해 보였던 속은 상당히 가라앉은 듯했다.

감정이 아닌, 고민으로 행동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일이 아니야. 걸리는 순간, 나는 재산을 몰수당하고 어디 실험실에 끌려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머님께서 배신할 리는···”

“그건 모르지. 더군다나 배신은 아니어도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실수 말입니까?”

“벌써 전과가 있지. 믿지도 못할 사람을 곁에 둬서, 자기 자식도 못 지킨다거나 말이야.”


친아버지의 외도, 가정폭력, 심지어 자식을 팔아버리기까지 한 일.

녹호는 이 모두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자신이 어머니조차 믿지 못할 근거로 말이다.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닥쳐오는 불행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괴로운 사람은 오히려 유송이었다.

아이 앞에 선 어른만이 잘못된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원망하십니까?”

“감정은 접어두자고, 그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난 조심하는 것뿐이야. 사람을 벌하는 건 악함이 아니라 멍청함이니까.”

“그래도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 않습니까?”


속상함과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안한다.

어차피 걸릴 일은 없지 않냐고.

신분을 바꾸는 능력은 지금을 위한 것이 아니겠냐고.


“어차피 어머님은 못 알아보지 않습니까?”

“······.”

“그냥 한 번 들르는 정도는 상관없을 텐데···.”


녹호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소파에서 자는 듯 아닌 듯 눈만 감고서는 시간만 죽였다.

유송은 이 모습을 눈치 보듯이 살폈다.

시간은 흘러갔고 햇빛이 붉어진다.

멀뚱히 제자리에서 서 있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퇴근 시간 됐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녹화와 달리, 보통 사람은 잠도 자고 휴식도 취해야 했다.

이제 포기하고서 몸을 돌렸다.


“···그래, 괜찮겠지. 한 번 보는 것 정도는.”


그때,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허탈한 발걸음은 잠시 흠칫 멈추더니, 곧 경쾌하게 저택을 벗어났다.


작가의말

재벌 되면 할 일 리스트

1. 놀기(o)
2. 과거 찾기(  )
3. 과거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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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5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8 2 13쪽
»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4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1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5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8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5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1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5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2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199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59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64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14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12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6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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