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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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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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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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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비뇨기과

DUMMY

놀랍게도, 들려온 목소리는 차분했다.

술이나 분노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안 때릴 테니까 애랑 같이 나와봐.”

“······.”

“여보!”


정말 오랜만에 나온 호칭.

그 말에 어머니는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거기 있었어?”

“······.”

“애랑 갈 곳이 있어. 옷 입혀.”


태도가 갑작스럽게 변했다.

그토록 바라왔었던 일이기에,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아이는 어머니가 입히는 대로 옷을 입었다.

헐겁고 박음질이 뜯어지기 쉬워 보였다.

까딱하면 체형이 변하기에, 직접 이렇게 만들어 입힌 것 같았다.


“애랑 둘이 갈 테니까 넌 여기 있어.”

“힘들 텐데···.”

“신경 쓰지 마.”


아버지는 자그마한 손목을 잡고 길을 나섰다.

별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남자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쪽은 침묵이 익숙한 탓이다.


그러다 곧 택시를 타고 주소 하나를 불렀다.

차량은 금세 한 저택 앞에 도착했다.

유난히 화려하고 거대한 집이었다.


“왔는가?”


그곳에서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중후반쯤 됐을 듯한 외모다.

고급스러운 옷과 시계는 저 넓은 집과 아주 잘 어울렸다.


“예. 말씀드렸다시피 이 괴···,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평범해 보이는데?”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품에서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 안에선 처음 보는 남자애가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모습으로 변하는 거야.”


처음으로 내뱉는 다정한 목소리.

하지만 눈빛은 번들거렸고, 위압적인 그림자는 여전히 아이를 가리고 있다.


“안 되는데···.”

“뭐?”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어.”

“그냥 빨리 변하라고!”


다정했던 목소리는 금세 윽박으로 변했다.

아이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간 경험으로 생긴 반응이었다.


“먹을 거···.”

“지금 이 상황에서 먹을 거 달란 소리가 나와?”


그러자 아이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먹으면 못 변해···.”

“뭐?”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아이는 눈치를 봤고, 아버지는 저택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부탁을 들어주긴커녕, 인내심도 길지 않아 보인다.


아버지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도로에 먹을 음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마지막으로 자기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혹시나 뭔가라도 있는가 싶어서.


“···있다.”


손에 잡히는 건, 종이 곽과 라이터 하나.

아버지는 담배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씹어먹어.”


아이는 담배를 몰랐다.

동시에 거짓말이라는 개념 역시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의심 없이 주는 대로 입에 물었다.

여느 음식처럼 꼭꼭 씹어대길 잠깐.


“웁!”


당연하게도 역한 기운이 퍼졌다.

아이가 당장 고개를 숙였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토악질이었다.

커다란 손이 그 입을 막지만 않았더라면,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우우웁!”


아버지가 광기 섞인 눈으로 작은 입을 꾹 눌렀다.

다른 손으로는 사진을 눈앞에 갖다 댄 채였다.

작은 아이가 어떻게 그 힘을 뿌리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눈물을 그렁대면서 담배를 삼킨다.

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에 있는 남자애의 모습으로.


“켈록, 켈록!”

“됐다! 됐습니다!”


아버지는 가는 손목을 붙잡고 저택 주인에게 끌고 갔다.

그러자 이 부유한 남자는 아이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숨을 크게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툼한 봉투가 뒷주머니에서 나온다.


“여기 약속했던 돈이네.”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버지는 화색을 띠며 잡고 있던 손목을 넘겨주었다.

그건 거래였다.

자식을 팔아 돈을 버는 인신매매이기도 했다.


“······.”


아이는 그 저택 지하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냈고, 많은 일을 겪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

“아빠, 저 좀 꺼내주세요!”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아이는 지하에 갇혀서 십수 년을 보냈다.

무언가 생각할 시간은 너무나 많았다.

나가기를 갈망했고,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했으며, 기만을 결심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기회는 찾아왔다.


“안녕? 오랜만이네? 모습도 마지막에 봤던 그대로고.”

“···녹호?”


노란 머리 남자, 피녹호가 철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납게 생긴 인상에 명품을 두르고 있다.

갇혀있던 동안 스쳐 지나간 적이 있는지, 아이 역시도 얼굴을 아는 기색이다.

그 뒤에는 수행원으로 보이는 중년 양복쟁이도 한 명 보였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긴 하지만.


“형, 내 이름 기억하고 있었네?”

“······.”

“아버지는 며칠 전에 죽었어. 장례까지 끝났지.”


아이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럼 왜 왔어? 내가 누굴 흉내 내길 원해서?”

“오, 상황 판단이 빠르네?”

“······.”

“지금은 별생각 없이 왔어. 나중에 대타로 유용하겠다는 정도? 아버지 장례식 때도 이것저것 바빴거든.”


녹호는 여유로웠고 또, 당당했다.

그럴 만한 환경에서 자라난 덕이었다.


“날 대역으로 쓰겠다고?”

“그래. 대강 말투나 태도 정도만 배우면 돼. 개인정보가 필요한 곳에는 쓸 마음도, 쓰고 싶지도 않거든. 왕자와 거지는 너무 진부하잖아?”

“······.”

“아, 왕자와 거지는 알지?”


괜히 인생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소리다.

개인정보만 보호한다면 쉽사리 신분을 뺏을 수 없을 거란 경고이기도 했다.

혹여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될 거라고.

아이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컴퓨터가 있었네? 위험하지 않나?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건···.”

“관계자와만 통할 수 있도록 인트라넷 연결만 되어 있습니다. 허가된 자료와 페이지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하긴. 아버지가 아무리 정에 휘둘렸어도, 그렇게 허술하진 않지.”


녹호는 뒤에 있던 수행원이 대화했다.

아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형, 여기 내 사진.”

“응.”

“내 옷도 곧 보내줄 거야. 미리 몸이랑 옷에 적응하고 있어. 알겠어?”


아이는 흉내 내기를 강요받았다.

당사자에게서, 그리고 그 수행원에게서 검수받기까지 했다.

혹여 다른 사람 앞에서 걸리지 않도록.


피녹호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제 웬만해선 둘 사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예 과거를 긴밀하게 공유하던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괜찮네. 연기력 자체가 좋은데? 억양까지 조절하고 말이야.”

“완벽해야 하잖아?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얼굴만 복사하면 아예 스위치가 도네. 메소드 연기라는 건가?”


피녹호와 피녹호가 대화했다.

한 명은 의자에 앉아서, 다른 한 명은 일어서서.

하지만 어느 쪽도 우위로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은 서로가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목숨 걸고 연기하는 편이 좋겠네. 걸리면 어디 지하 실험실로 끌려갈 테니 말이야.”

“협박이야? 불안한가 봐?”

“하하하하···! 이딴 게 나야? 진짜 패 죽이고 싶네?”


앉아있던 피녹호가 즐거운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갔다.

이내 올라가는 구둣발.


콰악! 콰당탕탕···!


한 명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가슴팍에는 선명한 신발 밑창 자국이 생겨났다.

피녹호는 들어 올린 발을 내리고선, 완전히 미소를 가라앉힌 얼굴로 읊조렸다.


“연기는 좋은데 말이야, 너무 기어오르면 내가 좀 빡치잖아? 선은 넘지 말았어야지.”

“······.”

“할 말은?”


바닥에 쓰러진 피녹호는 잠시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올리며 비틀린 미소를 짓는다.


“아, 미안해라. 두 손 모아 사과라도 할까?”


은은하게 느껴지는 으르렁거림, 그건 누가 봐도 피녹호였다.

상대에게 우위를 내어주면서도 전혀 비굴하지 않았다.

진짜에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요구하는 바를 완벽히 충족했다.

오죽하면 직접 걸어가 손을 내밀어주고 있을까.


“하하하하하···! 좋아! 완벽해!”


피녹호가 피녹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더니 철문 밖으로 나섰다.

남은 피녹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


몇 달이 지났다.

연기가 완성되자 검증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굳이 내려와서 확인할 필요도 사라졌다.

고독함은 다시금 지하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형, 잘 지냈어?”


피녹호가 찾아왔다.

전보다 머리가 자라났고 살은 빠진 상태다.

같은 점이라곤, 여전히 뒤따라오는 중년 수행원 정도.


“근데 형은 멀쩡해 보인다? 그거 사진을 기준으로 변하는 거야?”

“아마도.”

“참 편리한 능력이네. 사실상 영생에 건강이 보장됐다는 뜻이잖아?”


흉흉한 눈빛이 언뜻 비쳤다.

돈으로도 구하지 못할 것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내려왔어?”

“아, 별일 아냐. 일정이 생겼다는 거지.”

“일정?”


초췌한 얼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 대신 비뇨기과 한 번 갔다 와.”

“비뇨기과? 그럼···.”


성병이라는 뜻이다.

듣고 있던 녹호는 비웃지 않았다.

그건 상대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지금 식사를 준비시켜야 하나?”

“괜찮아. 항상 육포를 챙겨두거든.”


멀쩡한 피녹호가 품에서 검붉은 덩어리를 꺼내 씹었다.

그러자 노란 머리카락이 점차 자라나고 얼굴이 빠르게 야위어 갔다.

눈앞에 있는 대로,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아저씨, 형이랑 갔다 와.”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막 야위어진 피녹호에게 다가갔다.

이와 동시에, 철문으로 안내하듯이 길을 터준다.


“가시죠.”

“···그래.”


피녹호는 그 손짓대로 밖으로 나섰다.

최대한 태연하게, 하지만 낯설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몇 년 전에 내려왔던 계단을 오르고, 기억에도 남지 못한 현관을 나선다.

그리고 겁에 질린 듯이 햇볕을 맞이한다.


노란 기운이 서린 백색.

피녹호는 눈을 가리듯 태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은 골방에 갇혀있던 나무 인형이 햇살을 그리워하는 것만 같았다.


“병원 시간이 다 됐습니다.”

“···알았어. 안내해.”


잠시 상념에 빠진 피녹호를 수행원이 안내했다.

검게 반짝이는 승용차의 문을 먼저 가서 열더니, 잠시 기다리고 서 있다.

피녹호도 무슨 뜻인지 깨닫고 안에 자리를 잡았다.

곧 문은 닫히고 수행원도 운전석에 앉는다.


“민망하시겠지만 참아주십시오.”


차에 타자마자 그런 말을 뱉었다. 처음 나오자마자 하는 일이 그래서인지, 안내하면서도 껄끄러워했다.


“뭐가 부끄럽단 소리야? 뜨거운 밤의 증거잖아?”

“···그렇습니다.”

“돌아올 때 가볍게 한 바퀴 돌지. 가끔은 매연도 마셔야 건강해지는 법이니까.”

“알겠습니다.”


병원을 방문한 뒤, 빙 돌아가는 드라이브.

첫 외출은 그렇게 억지로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그마저도 네 시간 남짓이었다.

피녹호는 은은한 씁쓸함과 함께 지하로 돌아와야 했다.


작가의말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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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59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2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5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8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4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1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5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8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5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1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5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2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00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62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68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20 2 12쪽
» 2화. 비뇨기과 +2 23.12.25 419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71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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