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5.21 16:13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5,453
추천수 :
72
글자수 :
584,829

작성
23.12.25 14:10
조회
314
추천
2
글자
12쪽

3화. 저항

DUMMY

“······.”


며칠이 지났다.

사나운 얼굴이 수행원과 함께 지하를 찾아왔다.


“형, 나 왔어.”

“그래, 이번엔 무슨 일이야?”

“뭐, 이것저것 해볼까 싶어서.”


수행원은 가지고 있던 물건을 건네왔다.

피녹호가 안을 살펴보니, 육포와 사진이 여럿 들어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와 여자, 인물화, 포유류나 조류 같은 척추동물에서 곤충까지.

뭘 확인할 셈인지는 쉽사리 짐작 간다.


“아마 사람 한정일 텐데.”


피녹호는 건네받은 육포를 씹으면서 침대 모서리에 주저앉았다.

동물 사진 먼저 주욱 넘겨댔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리고 곧 인물화가 나왔다.


“그림으로도 안 변하네?”

“글쎄?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냐?”

“방금은 실존 인물이었어. 또, 실사체였고.”


그림으로는 변화할 수 없다.

이 사실을 확인한 후,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그러자 유명한 얼굴이 나타났다.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물리학의 대가, 아인슈타인이었다.


“아는구나? 어디서 봤어?”

“책. 들여올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었거든.”


그렇게 말한 후, 구석으로 턱짓을 한다.

그곳에는 교과서와 소설책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오랫동안 고립된 상태에서도 대화가 통했던 이유였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나 봐?”

“그냥. 재밌잖아.”


피녹호가 육포를 씹었다.

그러자 곧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생겨났다.

키가 작아지고 허리도 조금 굽는다.


“죽은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구나? 몸은 어때?”

“좀 무거워. 신체 능력은 따라가니까.”

“두뇌는? 머리가 맑아진 느낌은 없어?”


아인슈타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그런데 신체만큼 영향은 없더라. 기억이나 지식도 보존되잖아. 이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천재 물리학자가 될 순 없지.”

“퍼센티지가 있는 건가?”

“아마도. 내 지능은 복사해본 적 있는 천재들한테 비례할 거야.”

“비례? 예를 들어서?”

“창의력은 아인슈타인의 60프로, 논리력은 에디슨의 70프로. 뭐, 이런 식이지.”


늙은 손은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이번엔 유명한 여자 연예인이었다.

육포를 하나 더 입에 넣자 다시 변화가 일어난다.

늘어진 피부는 탄력이 생겼고, 푸석한 머리카락에는 생기가 돌았다.


“···오.”

“성별이나 나이도 관계없어.”


여자가 헐렁해진 셔츠를 추슬렀다.

그리고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분명 피녹호였지만, 미소년으로 보일 정도로 보정이 심했다.

더군다나 어디까지 되나 확인할 셈인지, 팔뚝에 움푹 패인 부분도 있었다.


“이건 힘들지 않을까?”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림도 안 통하는데 보정 사진으로 변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확인 방법은 간단했다.

육포를 작은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드드득!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머리는 노랗게 물들고 덩치는 불어났다.

다만, 이전과 달리 턱선은 다소 갸름했고 외곽선 역시 가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사진 속 모습과 그대로 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단 한 가지가 달랐다.


“아아아아아악···!”


보정된 피녹호가 바닥을 뒹굴었다.

고운 손으로 푹 패인 팔뚝을 움켜쥐고선,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도련님, 지금 당장 조치를···!”

“기다려.”


수행원이 도우려고 했지만, 피녹호가 말렸다.

관찰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구태여 상황을 끝낼 필요가 없었다.

비명이 바닥을 쓸고 신음이라는 이름으로 변할 때까지,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으으으윽···.”

“보정 사진으로도 변할 수 있네. 하긴, 모든 사진은 보정이 들어가지. 렌즈 굴절이 있으니까.”


미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피녹호를 바라보며 육포를 씹었다.

자연스레 그 모습과 똑같은 얼굴로 변하였다.

이미 흘려버린 땀방울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안색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하, 뒤지는 줄 알았네.”

“통증이 있었던 이유는?”

“어떤 놈이 사진을 팔 X신으로 만들어둬서. 그거 말고 있겠어?”


습기에 젖은 탓인지 흉흉한 기색이 더 강했다.

진짜 피녹호로서는 상당히 불편할 만한 반응이었다.


“그래, 미안하네.”

“······.”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남은 사진은 더 확인할 필요도 없으니까.”


화를 내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피녹호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다시 혼자 갇혀있어야 하건만, 눈빛이 흉흉하기만 했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에게는 소일거리만 주어졌다.

해봐야 건강검진을 대신 가는 정도.

셀카만 같이 보내왔기에, 녹호 없이 그 수행원만 만나볼 수 있었다.


“형, 안녕?”

“무슨 일이야, 갑자기.”

“그냥. 식사라도 하자는 거지.”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중, 피녹호가 지하를 찾아왔다.

태연하게 말하며 턱 짓을 했다.

그러자 수행원은 음식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두 명의 녹호는 식탁을 중간에 두고 맞은 편에 앉았다.


“아저씨가 왜 와? 유송이 시키라니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민감한 부분 아닙니까?”

“언제까지 보호하게? 다음 요리는 걔 보고 가져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둘 사이에서 오가는 말.

모르는 이름이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여기까지 온다고 한다.

잠자코 듣고 있던 피녹호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을 내뱉었다.


“유송이가 누구야?”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의심을 비치며 발길질해댈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소개해준다는 어조인지라, 대놓고 물어볼 수 있었다.

갑자기 오는 손님이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까지 섞어서.


“아, 3개월 전에 새 비서를 뽑았거든.”

“저 아저씨 있잖아?”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 나보다 일찍 죽을 텐데 계속 안심하고 있을 순 없지.”

“음···.”

“뭐, 다용도로 뽑았어. 어려야 하고 이왕이면 보기도 좋은 거. 내가 뭔 짓을 해도 말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깐깐해지더라고.”


태연히 말한 피녹호는 수행원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 지하에 단둘이 남게 되는 것이다.


“걔가 널 배신할 수도 있잖아? 뭘 믿고 나를 보여?”


그 말에 진짜 피녹호는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히려 캐물어달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배신 못 해.”

“그러니까 왜?”

“아픈 동생을 혼자 책임져야 하거든. 매달 나가는 병원비를 내가 대주기로 했어.”


돈으로 산 충성이라는 뜻.

지나치게 간단한 해결책이다.

그렇기에 질문은 연이어 이어졌다.


“누가 그만큼 돈을 준다고 하면?”

“돈은 쥐고 있는 이상 쓰게 돼 있어. 내 비밀 팔아서 뒷돈 챙기면? 다 쓰고 나서 어떻게 뒷감당할 건데?”

“사람은 생각보다 멍청한 법이잖아.”

“그래서 세 달 동안 교육하는 거지. 처음엔 학습만 시켜. ‘배신하면 안 된다.’, ‘보복은 쉬운 일이다.’, ‘배신을 종용한 쪽에서 제대로 대가를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다음엔?”

”내부 사정이 생긴 척, 계약을 끝내려고 하지. 트여줬던 숨통을 다시 틀어막는 거야. 다시 절박해지게끔.”


뒤는 더 듣지 않아도 된다.

그때 구원자처럼 나선다는 뜻이겠지.

충성심을 만들 겸, 배신했을 때 어떤 일을 겪을지 체험시키고.

그렇게 세 달 동안 가르치고 또, 체감시켜서 만든 노예였다.


“형, 다음은 식사 자리에 나가야 해.”


충분히 궁금증을 풀어주고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건 좀 힘들어. 스프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 그 이상은 거의 무조건 변해.”

“근데 그것도 다른 얼굴을 봐야 변하는 거잖아.”


그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내 건네준다.

하나는 여자 영화배우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접이식 식탁 거울이다.


“시선 처리만 조심하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겠지.”

“거울을 보면서 먹으라는 거야?”

“일단 그 사진으로 변해 봐.”


시키는 대로 에피타이저를 먹는다.

그와 동시에 사진 속 여자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은 기다랗게 자라났고 얼굴은 주먹만 하게 줄어들었다.

몸이 얇아지는 가운데, 가슴은 봉긋하게 솟아올랐고 골반은 도드라진 형상을 취한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큼큼, 남자 사진은 없을까요? 옷이 흘러내리는데요.”


여자로 변하자 다시 말투를 바꾼다.

치렁한 옷을 추스르는 모습은 누가 봐도 가녀린 여성이었다.


“그 모습으로 있어야 변화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겠지.”

“······.”

“스프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했지? 그럼 음료수로 모습을 바꿀 순 있어?”

“아뇨, 그건 힘들어요. 느낌은 오는데 한참 모자라다고 할까요?”

“그래?”


식사는 자연스러웠다.

고급스러운 요리인 만큼, 느긋하게 먹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화 중인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와인 마실 줄 알아?”

“아니요.”

“간단해. 유리잔 목 부분을 잡고 마시면 돼. 음식을 다 삼키고 나서.”

“향을 느낀다든가, 격식을 챙겨야 하지 않나요?”

“내가 왜? 그런 건 나한테 잘 보일 인간이나 할 일이지.”


확실히, 돈이 많다면 눈치 볼 일이 없다.

피녹호라면 예절이고 뭐고 챙기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지금 아이는 여자 영화배우로 변한 상태.

그렇기에 잔을 가볍게 흔들어 향을 맡고선, 느릿하게 한 모금 마신다.


“맛이 어때?”

“시큼하네요. 맨입으로 마셨다간 기침이 났을 정도예요.”


피녹호는 이를 보고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 여자가 잔을 내려놓기 직전, 눈을 번뜩이며 테이블을 옆으로 밀었다.


와장창창···!


음식과 함께 모든 집기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은 건, 여자의 손에 들려있는 와인잔뿐이다.


“무슨 짓이에요?”

“괜히 밖으로 돌리기 애매하잖아. 그냥 지하에 처박아놓고 원할 때마다 쓰는 편이 낫지.”


여자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턱 걸린다.

뒤를 돌아보니 침대 모서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왜 더 도망 안 쳐? 그러라고 풀어준 건데.”

“너 미쳤어?”


여자가 유리잔을 모서리에 휘둘렀다.

그러자 깨진 단면이 날카롭게 빛났다.

찔린다면 작게나마 상처를 낼 정도로.


“그래, 그래야지. 반항해야 나도 보람이 있지.”


피녹호가 느릿하게 다가간다.

가뜩이나 두꺼운 흉통과 번들대는 눈빛은 더욱 위압감을 줬다.

마치 거대한 사자가 얼굴을 들이미는 것처럼.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굳어버렸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듯한 초식 동물 같았다.

하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다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턱!


가녀린 손목이 두터운 손에 붙잡혔다.

당장 뿌리치려고 움직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건장한 남자의 힘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늦잖아. 왜? 너도 원하는 거야?”

“놔! 나는 네 형···”

“지금 모습을 봐. 이게 어떻게 형이야?”


피녹호는 남은 손으로 헐렁이는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예 뜯어내려는 기색.

여자는 다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가녀린 몸은 힘없이 침대 위로 엎어졌다.

한 손은 붙잡히고, 옷자락은 투두둑 뜯긴 채.

아름답게 변한 몸은 이렇게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작가의말

메에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2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5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8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7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4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1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5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8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5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1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5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2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199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59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64 2 12쪽
» 3화. 저항 +2 23.12.25 315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12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697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