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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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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5.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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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829

작성
23.12.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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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시체 유기

DUMMY

“싫다면서 알아서 침대에 눕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여자의 눈빛이 차분해졌다.

피녹호가 옷자락과 손목을 잡은 이 틈, 남은 손을 이불 속으로 빠르게 집어넣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꺼내, 입에 가져간다.


작은 육포 조각이 새빨간 입 속을 구른다.

손아귀에는 쇠젓가락을 갈아 만든 송곳이 남아 있었다.

여자는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준비했다.

아니, 피녹호는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준비했다.


“야, 이···!”


쓰러져 있던 피녹호가 쏜살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힘으로 밀고 들어가, 쇠송곳으로 목을 찔렀다.


콱! 콱! 콱! 콱! 콰악···!


순식간에 거친 피부는 너덜너덜하고 시뻘게졌다.

작은 구멍이 목덜미에 몇 개씩 생겨난 탓이다.

그중 하나에서는 유난히 강렬한 핏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콰아아아···!


“억···, 꺼윽···.”


진짜 피녹호는 목을 움켜쥐고 물러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다.

그러다 상황 판단을 마쳤는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망만 칠 수 있었다면.


“내가 보내주겠어?”

“끄억···!”


도플갱어가 두꺼운 팔을 뻗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머리카락은 우악스러운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곧 머리끄덩이를 잡혀서 바닥을 나뒹구는 피녹호.


머리로 가야 할 피를 너무 흘린지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뿐.

피녹호는 눈앞에 보이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간청했다.


“혀, 형···. 살려···.”


궁지에 몰리자, 인정에 호소했다.

도플갱어는 이 모습을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동정을 표하지도, 뻔뻔하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한 마디만 툭 던졌다.


“살아갈 거야, 피녹호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붙잡은 바짓가랑이를 놓는다.

목을 짓누르던 손도 천천히 떨어져 나갔고, 고통스럽던 두 눈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멍하니 또, 평화로이.


“죽고 싶었으면 곱게 죽지 그랬어.”

“······.”


이제 유일하게 남은 피녹호.

차분하게 시체에서 시계, 지갑, 휴대폰도 빼냈다.

시신을 의자에 앉히고 자신 역시 맞은편에 주저앉았다.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발소리를 기다렸다.



***


“뭐, 그런 얘기야.”


녹호가 유송을 허벅지에 앉히고 이야기를 끝마쳤다.

끌어안은 팔, 맞은편 의자에 앉은 시체, 피범벅이 된 주변은 얘기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았다.

달라진 점이라곤, 유송이 오랜 긴장 때문에 잘게 경련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까?”


유송이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계속 몸에 힘을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육 잘 받았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복종하고 말이야.”

“······.”

“그럼 다음 지시사항이야. 돌아앉아.”

“···네?”


녹호는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저 휘감고 있던 팔을 풀고 잠시 기다릴 뿐이었다.

유송은 어쩔 수 없이 허벅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앉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조금이라도 덜 닿기 위해 조심조심.


녹호는 성질 급하게 그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유송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뺀다.

동시에 커진 동공이 눈앞에 있는 얼굴을 주시했다.

반항하면 안 되건만, 억누르지 못하고 방어를 준비한다.


그런데 녹호는 유송을 더듬지 않았다.

단지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을 뿐.

고기 조각은 점점 작은 조각으로 으깨지고 또, 녹아든다.

그리고···.


“···어?”

“어때? 이제 믿을 수 있겠습니까?”


가는 등을 감싸던 손이 얇아진다.

거칠고 사나웠던 얼굴은 급격히 갸름한 곡선을 드러냈다.

변신, 유송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손아귀에서 도망치는 건, 너무나도 쉬워졌다.


“꺄아아아악···!”

“조용히 해주십시오. 누가 내려오면 곤란하니.”


녹호는 유송으로 변하고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 진짜 도플갱어···.”

“저 구석에 종이 가방을 가져와 주시겠습니까? 거기 피녹호 씨 사진이 있습니다.”

“···네, 네.”


진짜 유송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종이 가방을 가져와 멀찍이 팔만 뻗어서 건넨다.

눈앞에 나타난 진짜 악마에, 두려움이 샘솟은 모양이다.


그 사이, 마지막 스테이크 조각은 작은 입술로 쏘옥 들어간다.

고운 얼굴은 주어진 사진을 바라본다.

부드러운 눈매··· 아니, 사나운 눈길은 음미하듯 눈꺼풀에 몸을 숨겼다.

커다란 입이 사자처럼 고기를 완전히 삼켰다.


“변하는 건 없어. 너는 나한테 전적으로 협력하고, 나는 너한테 돈을 지불하면 돼.”

“하지만 당신은 피녹호 씨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녹호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미소 안에는 협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경찰에 신고해도 된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럼 어떻게 되는지 말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지만 경계심이 극도로 올라간 유송은 한 번 더 돌다리를 두들겼다.

녹호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입막음해야지.”

“······.”

“날 도울 수밖에 없는 사람, 어저씨도 있거든.”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협박 역시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있으니 겁박하고 윽박을 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알면 안 되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건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

품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니까.


“뭘 해야 합니까?”


유송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거부하면 본인도, 동생도 죽고 만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녹호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올라가서 다른 사람 전부 퇴근시켜. 이 건물에 아무도 없도록.”

“제 말을 들을지는··· 아니, 일단 해보겠습니다.”


유송이 마뜩잖은 얼굴로 철문을 나섰다.

혼자 남은 녹호는 느긋하게 일어나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고 짐승처럼 커다란 몸을 꼼꼼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붉어진 셔츠는 곧 식탁 위로 던져졌다.


그다음엔 시체로 다가갔다.

입고 있는 옷을 양손으로 쥐고 부욱 뜯어냈다.

자신과 똑같이 알몸이 되도록.

마찬가지로 피도 닦아냈고, 목에 난 상처에는 바지를 붕대처럼 묶었다.

이제 새로운 상처가 생기지 않는 이상, 어딘가에 혈액이 묻어날 리는 없다.


“얘기하고 왔···.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뭘 그래? 남자 알몸 처음 보는 것처럼?”


유송이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녹호는 구석 서랍으로 가서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예, 처음 봅니다.”

“좋은 구경 했네. 나한테 고마워해.”

“······.”

“말했을 텐데? 절대복종하라고.”


다시 옷을 입은 녹호.

유송은 그제야 겨우 얼굴을 돌린 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집에서 일하는 사용인, 전부 돌아갔지?”

“네. 아무도 없습니다.”

“좋아. 그럼 유리 정원으로 가자.”

“정원 말입니까?”


식탁보로 시체를 감싼 후 등 뒤에 업는다.

아직 사후 경직이 오지 않은 덕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 얘 묻어야지.”

“시체를 그런 식으로···. 너무 허술하지 않습니까?”

“왜? 경찰이 와서 조사라도 할까 봐?”


녹호는 유송을 지나 먼저 철문을 나선다.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지, 입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당연히···.”

“실종된 사람이 없는데 경찰이 여길 왜 와? 무슨 자격으로 내 정원을 파헤치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연찮은 일이란 늘 있는 법 아닙니까? 평생 시체를 묻어두고 지낼 생각이십니까?”


지하에서 올라온 녹호와 유송.

곧 현관을 지나서 유리 온실까지 도착했다.

과시용으로 보이는 열대 식물이 화단마다 심어졌다.

너른 잎사귀가 가득한 풍경과 후덥지근한 열기는 이곳이 동남아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양지바른 곳이라는 말 알지?”

“예. 묫자리로 쓰기 좋은 곳을 말하지 않습니까? 햇볕이 잘 드는···.”

“그래. 시체가 잘 썩는 장소지. 이렇게 덥고 비도 안 들이치면 훨씬 더 좋아. 몇 달이면 해골이 될 정도로 말이지.”


녹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그나마 식물이 적은 화단으로 갔다.

그리고 시체를 땅에 조심히 내려둔다.

잘못하다가 피가 터지지 않도록.


“여기 걷어내.”

“녹호 님, 이 식물 하나당 최소 수십에서 수백이라고 들었습니다.”

“푼돈이네. 묻을 만큼 깊이 파 놔.”


유송은 삽을 찾아 움직일 때, 녹호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들어온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발견했다.

하나씩 작동시키자, 먼저 천장에 전등이 들어온다.

비 오는 날에도 빛을 쬐게 해줄 수 있는 장치였다.


마지막 스위치는 독특했다.

갑자기 확 어두워진 유리 온실, 투명했던 천장과 벽이 어느덧 새하얗게 탁해졌다.

유리 화장실에서 쓰이는 소재였다.

밖과 안의 시야가 차단하는, 밀회를 위해 마련한 기능처럼 보인다.


“오, 이건 괜찮은데? 누가 보면 시체 묻으려고 마련한 곳인 줄 알겠어?”


껄렁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수도관을 살핀다.

시체가 묻힐 화단에 박힌 스프링클러, 그에 연결된 밸브를 꽉 조인다.

이제 시신은 건조하고 뜨거운 흙 속에서 말라갈 터였다.


“허억, 허억···. 다 팠습니다.”

“아, 잘했어. 생각보다 체력 좋네.”


유송은 얼굴이 빨개지고 땀에 푹 젖어서 비틀거렸다.

가뜩이나 더운 상황에서 중노동을 해댔기 때문이다.

저 가는 몸으로,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녹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식탁보를 풀어내고 핏기도 가신 시체를 안아 들 뿐이다.

조심히 구덩이 안으로 내려두고선 목에 묶인 바지를 풀어낸다.


“자, 이제 흙으로 덮자.”

“잠시만···.”

“힘들면 쉬엄쉬엄해.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유송은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땀방울이 뚝뚝 흐르는 얼굴엔 착잡함이 가득했다.


“그게 아니라, 이건 시체 유기 아닙니까.”


다시 시신을 마주하자 망설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살인이 벌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당혹스러운데, 그 공범이 되다니.

양심이 투철하지 않더라도 불안에 떨 만한 상황이다.


“그래서 뭐? 안 할 거야? 동생 목숨이 달려있을 텐데?”

“······.”

“얘도 만만찮은 개자식인데, 죽은 놈이랑 의리 지키자고 가족을 포기한다고?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 말에 유송은 한차례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잠깐 굳어있다가, 힘없이 삽 끝을 흙더미에 들이밀었다.


“···이제 덮겠습니다.”


창백하게 굳어가는 시체.

그 위로 흙이 한 줌, 한 줌 쌓여간다.



***


피녹호의 방.

거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넓었다.

실내용 골프 연습기, 각종 게임기가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는 시계와 넥타이가 가지런히 놓였다.

침대는 두 명이 써도 될 정도로 거대했고, 옷장을 두고도 드레스룸이 따로 붙어있기도 했다.


이 저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공간이다.

여기에서 짐승같이 거대한 남자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얼굴에 자그마한 호기심을 띄운 모습이 꽤나 흥미로워 보였다.

반면,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는 기다란 모니터 앞에서 피로한 얼굴을 짓고 있다.

저 괴로운 표정이 꼭 지금 작성하는 문서 때문만은 아니겠지.


“끝났습니다.”


작성이 끝났는지, 파일을 인쇄해서 녹호에게 가져간다.


“이게 끝이야? 나에 관한 내용이?”


작가의말

암 소 메에에에에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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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달동네 +1 24.01.04 9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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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의심 +1 24.01.01 10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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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배때기 +1 23.12.26 19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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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64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14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12 3 12쪽
1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6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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