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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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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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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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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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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화. 훌륭한 사람

DUMMY

두오가 했던 말.

내뱉은 대로 다시 듣게 되었다.

어쩌면 단순한 복수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너···”

“신고해. 납치, 감금까지 전부 다.”


하지만 뒤이은 말에 분위기는 달라졌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신고하면 전부 진술할게.”

“······.”

“얼마나 기다려야 해? 2, 3일이면 정리되지?”


녹호는 다시 한 번 칼자루를 두오에게 넘겼다.

신고하라면 신고하라는 말, 그리고 손자에게 직접 위해를 가한 적 없는 상황.

결과적으로 어떤 변화도 없었다.

여전히 자신이 우위였고 가족도 안전했다.

두오로서는 분노보다는 계산이 먼저 이어지는 상황이다.


“···묻기로 해.”


결론이 나왔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도련님으로 지내라고.”


거래.

두오는 녹호가 녹호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비밀을 지키는 데에 암묵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플갱어에게는 굉장한 행운이었다.

가장 큰 위협이 사라짐과 동시에,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됐다.

이대로 살아가면 된다.

이대로만···.


“···그래?”


녹호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단지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어색했다.

입가는 뒤틀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대칭이었고, 두 눈매는 흉폭하기 그지없었다.


무언가 심기가 불편했다는 말이다.

동시에 이 사자 같은 남자는 불쾌함을 참을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손이 묵직하게 쏘아졌다.


“커억···!”


투박한 소리와 함께 두오가 비틀거렸다.

정신이 아득한지,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왜···”.

“신고해. 나한테 맞았다고. 경찰서 가면 전부 진술할게.”

“······.”

“왜? 못 하겠어?”


두오가 침묵하자 녹호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콰악···!


주먹으로 머리를 치고, 멱살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연이어 복부를 계속 후려쳤다.


콱! 콰악! 콰악···!


두오는 이제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

아예 몸도 못 가누자, 녹호는 복부를 발바닥으로 밀어 차버린다.


콰당탕···!


“커헉!”


두오가 초라하게 쓰러졌다.

하지만 녹호는 걱정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크게 내뱉은 후, 여전히 은은한 분노를 내비칠 뿐이었다.


“후우. 신고해. 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잖아?”

“······.”

“왜? 못 하겠어? 너도 같이 엮여 들어갈까 봐? 10년도 넘게 납치하고 감금한 흉악범인 걸, 가족이 알게 될까 봐?”


녹호를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명분.

그건 타인이기에 내보인 단호함이다.

자기 자신과 가족이 얽혔는데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아니, 대부분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원리 원칙을 강요했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했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참아야 한다.

타인이란 그랬다.

그게 녹호가 다시 발길질을 시작한 이유였다.


콱, 콱, 콰악, 콰악, 콰아악···!


두오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몸을 웅크렸다.

혹여 장기가 터져나가지 않도록, 만약 화가 풀린다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버티고 또 버텼다.


콱, 콰악, 콰악, 콰아악···!


“후우, 후우···. 자, 이제 신고할 마음이 들어?”


녹호가 숨을 몰아쉬었다.

저 건장한 신체가 지칠 정도로 구타했다.

그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낸 두오도 멀쩡하진 못했다.

발길질을 막은 팔과 가슴은 유독 흙먼지를 많이 뒤집어썼고, 몸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뭐?”

“당신을 십수 년간 가뒀습니다. 그리고 주제도 모르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지껄였습니다.


피 냄새 섞인 목소리로 읊조린다.

아까와는 다른, 사죄가 담긴 존댓말을.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

“맞으라면 맞겠습니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가족에게만큼은 제 허물을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역시나 두오는 좋은 아버지였다.

좋은 할아버지였고, 좋은 가장이었다.

가족에게는 그 누구보다 충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가족에게는 그랬다.


“···하, 하하하하하하!”


그렇기에 녹호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밤이라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지, 세상이 찢어져라 폭소를 터뜨렸다.

소리가 너무 커서, 즐거움보다는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고함에 가까운 웃음은 한참이나 밤공기를 울렸다.


그러다 마른 숨을 몰아쉬길 잠깐.

곧 몸을 낮춰서 다시 두오를 바라봤다.

평소와는 다르게 감정이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여유 비슷한 공허함이 언뜻 느껴지기도 했다.


“일어나. 그러면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아까까지 일은 다 거짓말이라도 되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두오의 팔을 잡아 친히 제대로 앉혀준다.

어깨에 흙먼지를 털어주기도 했다.


“다 이해해. 이 집구석에서 아내 목숨줄 쥐고 일을 시키는데 어쩔 수 없잖아?”

“······.”

“몇십 년을 강제로 동조해왔는데, 관성이 남았을 수밖에. 얼떨결에 도와줬겠지.”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두오가 혼란을 내비쳤다.

하지만 곧 은은한 희망이 담긴 눈으로 녹호를 바라보았다.


“···정말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올려다본 얼굴은 그림자가 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짝 올라간 입꼬리만 드러날 뿐.

차마 감추지 못한 냉소 따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용서할 게 어디 있어? 다 이용당했는데. 세상에 누가 어린애를 감금하고 싶겠어? 손자가 감금당했을 때, 아저씨도 빡쳤잖아?”

“아···, 그렇습니다···.”

“하하. 지금처럼 아내 병원비 내면서, 아버지 노릇 할 수 있게 도와줄게. 어쨌거나 이젠 내 사람이니까.”


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려다봐야만 했던 시선은 거의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바뀌었다.

두오로서는,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려주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휴가 줄 테니까, 그동안 손자랑 여행이라도 다녀와. 오늘 일도 머릿속에 지울 겸.”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두오는 유능했고, 마음 놓고 부릴 수 있을 정도로 굴복시켰다.

녹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택으로 향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


녹호가 피곤한 얼굴로 거실에 앉아있다.

멍하니 눈만 감고 쉬고 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지갑에는 주민등록증, 그리고 육포가 들어 있다.

사진을 보며 씹어대는 고깃덩이.

당연하게도 외관이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로만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될 터였다.


“하아···. 그래, 연락해야지.”


녹호는 여전히 피로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너머엔 기다리다 지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송이다.


“다 끝났어.”

-그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든가.”


녹호는 잠이라도 자듯이 몸을 뒤로 기댔다.

정적이 공기를 감싸 안는다.


“녹호 씨, 몸은 괜찮습니까?”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유송이 들어온다.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래. 보다시피.”

“다행입니다.”


녹호는 그 말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으레 짓던, 사납고도 시원하게 보이는 웃음이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위험한···”

“형···, 누가 왔어요?”


그때,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깬 듯했다.


“내 손님이야, 들어가서 자.”

“할아버지는요?”

“남는 방에서 자고 있어. 너 내일 아침에 늦잠 자고 있으면 혼내실 걸?”


아이는 놀라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순수함이 느껴지는 뒷모습이었다.


“···누구입니까?”

“아저씨 손자.”

“설마···, 애를 납치해서 여기까지 데려오신 겁니까?”


유송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녹호는 시원스레 짓던 미소를 꺼뜨리고 말았다.


“아저씨도 당해봐야지. 자기 손자한테는 못 할 짓을, 나한테 했잖아?”

“그렇다고 애를!”


이제 이쪽도 진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할아버지를 잘못 둔 죄지.”

“어른이 잘못한 걸로 애가 상처받아선 안 됩니다!”

“글쎄? 딱히 상처받진 않을 걸?”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녹호는 그다지 흥미로워하지도 않는 얼굴로 대꾸했다.


“경험담이야. 애비가 외간 여자 데려와서 쿵떡거리는데, 그땐 그게 뭔지도 몰랐거든.”

“그게 무슨···”

“호들갑이라는 소리지. 이 같잖은 추궁은.”


유송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깨닫고 말았다.

도플갱어가 어릴 때 겪었던 일을 말하는 중이라는 걸.


얇은 입술은 달싹거리다가 힘없이 닫히고, 침묵은 몇 초간 이어졌다.

어릴 때의 비극이란, 누구나 섣불리 말하기 힘든 주제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당사자가 괜찮다고 말하더라도 껄끄롭기만 하다.


하지만 유송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눈치를 보고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쥐어짜듯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상처가 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비극은 상처가 될 수 있을까?

고통 따윈 없었는데?

아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기억일 뿐인데?


“난 멀쩡해.”

“아니요, 멀쩡하지 않습니다. 너무 예리한 상처라서 아픈 줄 몰랐을 뿐입니다.”


유송은 상처라고 답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면, 당신이 지금 피를 흘리고 있진 않을 겁니다.”


그 말에 녹호가 눈가에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분명 신경에 거슬린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를 하지도 않은 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당신이 겪은 일은 분명 불합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 아이에게도 불합리한 행동을 하신 겁니다.”

“······.”

“더는 타인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됩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녹호가 눈을 감았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고, 분위기는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러한 반응에 유송이 두려움을 느낄지, 희망을 느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왜.”


그러다 투박한 한 마디에 다시 침묵은 깨졌다.


“나는 당했는데, 왜 다른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건 불공평하잖아.”

“당신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든, 그게 타인을 해칠 권리가 될 순 없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당하든, 그게 타인을 해칠 권리가 될 순 없다?’”

“예, 그렇···”

“하, 정말 착해서 눈물이 나는 소리네.”


녹호가 몸을 일으켰다.


“맞아. 내가 무슨 짓을 당하든, 다른 사람이랑 관계없는 일이지. 갑자기 불똥이 튀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그건···.”

“근데 반대도 마찬가지 아니야?”


유송도 중간에 대꾸하려고 했지만, 대답을 내뱉지 못했다.

사실이기도 했겠지만, 무슨 의도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탓이겠지.

녹호는 그 얼버무림을 듣고서 마저 말을 이었다.


“누가 피를 토하든 말든, 왜 안타까워하고 꺼려야 해? 내가 그걸 왜 안타까워해야 해? 마음대로 괴롭혀도 되잖아, 어차피 남인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왜 말이 안 되는데? 다들 누가 죽든 말든 관심 없잖아? 자기한테 피해가 오지도 않는다면.”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 방금 확인 끝난 일이야.”


두오 얘기였다.

그토록 가족에게 충실한 사람이 도플갱어에겐 얼마나 가혹했는가?

손자가 갇혀있던 2시간은 그리도 아파했으면서, 20년간 있었던 감금에는 어떻게 그렇게 무관심했을까?


그 답은 바로 거리감이었다.

지상과 지상은 너무나도 멀었다.

서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니, 당연히 서로의 속내에 무관심했다.

타인이란, 이다지도 높다란 장벽인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해도 안 됩니다. 왜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과 똑같이 되려고 하십니까?”

“나야, 개X끼니까 그런 거지.”

“무슨 그런···”

“피해자보단 가해자가 낫겠더라고.”


커다란 입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고. 착하디착한 다른 피해자님들께서는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 무슨 짓을 당하든, 다 참으면서 버텨. 내 괴로움이 남을 해칠 권리가 될 순 없으니까. 그러면 개X끼니까.”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누가 참고 살겠습니까?”

“왜? 그런 훌륭한 사람 많아. 물론, 그렇게 자살하다가 밑에서 누가 맞기라도 하면, 죽어서까지 민폐란 소리나 듣겠지만 말이야.”


작가의말

예, 뭐.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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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이상 +1 24.01.25 44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44 1 13쪽
27 27화. 욥 +1 24.01.23 50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47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54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59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60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3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6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9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8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6 2 12쪽
»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3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6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9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8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4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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