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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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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15 11:28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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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634,353

작성
24.01.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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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2화. 죄를 지었으면

DUMMY

***


유송이 어두컴컴한 골목에 서 있다.

저택에서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아, 금방이라도 돌아갈 수 있을 정도다.

그 가까운 거리에서 서성대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빨리 받지···.”


불안하게만 보이는 표정.

그러다 작게 찰칵이는 소리가 들리자, 눈이 크게 뜨인다.


-왜?

“다시 돌아왔습니까?”

-목소리 들으면 알잖아.


퉁명스러운 말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아직 저택에서 멀리 가진 않았습니다. 말씀하시면 언제든 돌아가겠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마.

“선배님은 철저하신 분입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수 있습니다.”

-신경 바짝 세우고 있겠지. 그래서 계속 CCTV를 살피고 있을 수도 있어.


전화기에선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만 나온다.

분명히 녹호였고, 굉장히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경계···, 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들어올 생각하지 마. 괜히 담벼락 넘었다가 경보장치 울릴 수도 있으니까.


대문은 두오가 어느 곳보다 확실하게 볼 터였다.

동시에 담을 넘으면 사이렌이 울릴 수도 있다.

아무리 관계인이라고 하더라도, 몰래 저택으로 들어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녹호 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차라리 제가 들어가서···”

-끊어.


그 말은 녹호에게도 통용됐다.

집주인이라고 하더라도 대문을 지나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


두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움직인다.

문을 나가고 계단을 내려간다.


그렇게 뛰듯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실내 주차장.

불을 켜자 온갖 고급 승용차가 줄지어 늘어져 있다.

두오는 열쇠함으로 가, 입구를 막은 자물쇠를 푼다.

모든 차 키를 한 손에 받쳐 들고서, 옆에 있던 시꺼먼 차량을 확인한다.


삑삑!


차 키 하나를 쥐고 반질거리는 문짝을 연다.

깨끗한 내부가 반겨주는 한편, 두오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계기판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23km? 강원도 야산까지 가기엔 충분하겠지만···.”


살피는 숫자는 다름 아닌 주행거리.

평소에는 타지 않는 차량으로, 갑작스럽게 멀리 갔다 온 건 아닌지 살피고 있다.

그마저도 모자랐는지, 타이어까지 확인한다.

혹여 흙이 묻어 있진 않았는지, 낯선 마모는 없는지.


다만, 모든 승용차를 그렇게 살피는 건 아니었다.

색감이 어두운 차량만 연이어.

기껏해야 밝은 회색까지만 점검했다.

하지만 두오는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듯,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평소처럼 밝은색 차를 타진 않았을 텐데? 시체를 처리하는데 그렇게 요란하게 갈 리는···.”


그러다 바빠지는 눈동자.

뭔가를 떠올렸는지, 묵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여기 있어?”


그 한 마디와 함께 기다란 침묵이 이어진다.

크게 뜨인 눈에는 동공이 끊임없이 커진다.

수많은 시나리오와 가능성이 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겠지.

두오는 이내 발작적으로 움직여 차 키를 모두 정리하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어두운 본관을 지나 부엌으로 또, 냉동고로.


하얀 입김이 주욱 나온다.

넓디넓은 곳이지만, 비치된 물량은 많지 않았다.

한 사람이 할 식사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두오는 금세 얼어붙은 식량을 훑어볼 수 있었다.


“······.”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얼어붙은 고기가 대량으로 발견되진 않았다.

두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었다.


이제는 지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꼭 바람이라도 쐬고 싶은 듯 보였다.

문득 공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표정을 굳혔다.


“···아니야. 그때도 잔디는 멀쩡했어.”


잠시 스쳤던 걱정을 머리를 휘저으며 떨쳐냈다.

이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다시 몸을 돌리려고 했다.

무언가가 시선을 사로잡기 전까진.


“유리 온실?”


식물을 심고 기르는 곳.

당연히 흙이 존재하는 장소.

두오는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온실을 향해 걸어갔다.

얼굴에는 어떤 확신도 존재하지 않는 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보였다.


금세 캄캄한 유리 온실 안으로 들어섰다.

두오는 벽을 더듬어 전등을 켜자, 식물이 울창한 내부 모습이 보인다.

화단 하나만을 제외하고선.


“···저긴?”


원래라면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을 장소다.

자동화된 설비 덕분에 손대지 않아도 멀쩡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웬일인지, 흙만이 봉긋하게 올라와 있다.

꼭 뭔가를 묻은 듯이.


“찾았···”

“무슨 일 때문에 왔어?”


두오가 다급히 몸을 돌렸다.

캄캄하게 어두웠던 유리 온실 안, 그 구석에 있을 수 없는 얼굴이 있었다.


“도련님, 어떻게···.”


분명 여행을 갔다고 했던 녹호.

하지만 무슨 일인지 온실 안에서 두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대문 CCTV에는 아저씨가 오가던 모습만 있었나 봐? 그러게, 시간도 확인하면서 영상을 돌렸어야지.”

“······.”

“어딜 봐? 사람 얼굴은 보면서 얘기해야지?”


두오는 이제야 전말을 알아차렸다.

녹호는 자신의 모습을 복사해 몰래 저택에 들어왔다.

똑같은 얼굴, 복장으로 움직이니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우연···.


아니, 우연조차 아니다.

도플갱어가 들어오는 순간엔 CCTV를 보고 있지 못하도록 유송이 시선을 끌었다.

이후에도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했고, 화면에 적힌 시간 따윈 대충 보고 넘기고 말았다.

녹호는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주도했다.

그 증거가 바로 유리 온실 천장에 있었다.


“하려던 거 해.”


CCTV 앞에 자그마한 구조물이 있었다.

쇠막대기, 그리고 인쇄된 사진.

이 두 가지만으로 작은 모니터쯤 손쉽게 속여 버렸다.

대문만 통과하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밤 동안 만들어두었겠지.


“···죄송합니다.”

“기회 줄 때 해. 어떻게든 매듭은 지어야 하잖아?”


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오직 눈치와 침묵만으로 대화할 뿐.


답이 나왔는지, 두오가 몸을 돌려 화단으로 향했다.

이내 조용히 맨손으로 마른 흙을 벅벅 긁어내기 시작한다.

손톱은 금세 퍼석하게 검어진다.


“······.”


그러다 두오가 동작을 멈췄다.

갈색 흙, 그 안에서 새하얀 살갗이 드러난 탓이다.

그 모습을 보고 녹호는 태연히도 물었다.


“찾고 싶은 건 찾았어?”

“···너 무슨 속셈이야?”


이제 둘 사이에 의심은 없었다.


“속셈이라니? 선택한 건 아저씨잖아?”

“말장난하지 마.”

“내가 강요한 것처럼 말하지 마. 며칠 동안 기회만 보고 있었잖아?”


녹호가 느긋한 얼굴로 대꾸한다.

두오와 달리, 여유롭기만 했다.


“이젠 뭘 하고 싶어? 신고라도 할 생각이야?”

“······.”

“걱정하지 말고 말해 봐. 아저씨 입으로 말했잖아. 단지 일 때문에 날 돌보진 않았다고.”


녹호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두오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말해 봐. 내가 뭘 해야 할까?”


커다란 손은 아예 휴대전화까지 던져준다.

정말 바른 길로 인도해주길 원하는 걸까?

두오 얼굴에도 희망이 스친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정말 어릴 때부터 지하에 있었고, 그 안에서 얼어붙은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아이의 모습으로 지내기도 했다.

흉내만 낸 겉모습과 달리, 그 속은 갓난아기일지도 몰랐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두오가 결론을 내렸다.

기세를 멈추지 않고 연이어서 처우까지 말한다.


“우선, 지하실에 있어. 이 집안을 어떻게 정리할지 결정 내린 다음 부를게.”

“배웅해줘야지?”

“그럴 참이야. 자물쇠까지 잠가야 안심이 되니까.”


흙손을 쥐고서 일어났다.

거침없이 본관으로 향했고, 녹호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넓디넓은 거실, 그 구석에 교묘하게 가려진 공간으로 향했다.


짙은 회색으로 된 계단.

한참을 걷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반겨준다.

저 멀리 두꺼운 철문마저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익숙했다.

근 이십 년 동안 갇혔던 장소인 만큼.


“지하실, 방음까지 철저하지?”


문득 녹호가 그런 말을 뱉었다.


“그래. 드러나면 안 되니까.”

“고함을 질러도 못 들을 정도로?”

“당사자니까 대충 짐작하고 있잖아. 문에 손을 대고 있어야 진동이나마 느끼는 수준이라는 걸.”


두오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하고서 품을 뒤져 열쇠를 꺼냈다.

잠시 후 철컹대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느긋하게 열린다.

아무도 없을 방 안에서 밝은 형광등 빛이 새어 나온다.


“···할아버지?”


그래, 아무도 없었어야 할 방 안.

그곳에는 한 아이가 고개를 들고 두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우야, 네가 왜···.”


두오가 알고 있는 아이.

동시에 이토록 당황할 만한 관계.

당연하게도 그럴 사람은 단 한 명, 손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범인은 분명히···


“너 설마 가방 안에···!”


도플갱어.

캐리어 안에 손자를 넣어서 끌고왔다.

오직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날 여기에 가뒀잖아.”


두오는 화들짝 놀라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장 무릎을 꿇고 제 손주를 끌어안았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릴 뻔했다는 양, 그 모습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아니라···.”

“거짓말쟁이! 놀러 간다면서! 으아아아아아앙!”

“···미안해. 할아버지가 잘못했어.”

“으아아아아앙! 나빠! 나빴어···!”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두오는 다독거리기 바빴다.

위로는 어느새 사죄로 바뀌었다.

직접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사과했다.


부모 같은 존재는 제 자식에게 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프면 자신이 아픈 것만 같고, 아이가 잘못하면 제 잘못 같기만 하겠지.

참으로 든든한 어른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


그리고 녹호는 이 모든 장면을 냉담히 바라보았다.



***


녹호의 방.

게임기 앞에 한 아이가 눈을 끔벅이고 있다.

그 옆에는 두오가 같이 컨트롤러를 쥐고 있었다.


“지우야, 돌아가자.”

“게임 더 하고 싶은데···.”

“그만. 민폐 끼치면 안 되잖아.”


두오는 손자를 집에 바래다줄 생각인 듯 보였다.

여기선 해결할 일도 있으니 말이다.


“괜찮아. 여기서 자고 가도 되니까.”


하지만 녹호는 아니었다.


“정말요?”

“그래. 졸리면 침대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더하자.”

“와! 형, 고맙습니다!”


아이는 냉큼 고개를 꾸벅 숙였다.

두오는 뒤늦게 녹호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씻고 자. 형은 너희 할아버지랑 할 말이 있어서.”

“네!”


아이가 뛰듯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제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

녹호는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오자, 두오 역시 이를 악물고 뒤따라 나섰다.


“무슨 짓이야?”


두오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가족을 건드렸으니까.

잘못하면 주먹이 나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녹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빙긋 웃어 보이며 대꾸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작가의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피카레스크 물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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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3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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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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