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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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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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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353

작성
23.12.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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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장난감 만들기

DUMMY

***


녹호가 자기 방 의자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유송이 적어준 인물 정보를 먼저, 그다음은 뉴스나 신문 기사를 살폈다.

마지막으로 SNS도 진지한 표정으로 읽는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데에는 역시 커뮤니티 사이트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벌써 밤인가?”


녹호는 캄캄한 바깥을 보면서 중얼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넓디넓은 집 너머, 더 넓은 마당.

그곳에선 두오가 막바지 작업을 끝내고 있었다.


“거의 다 완성했네?”

“예. 그래도 밤 동안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습니다.”


환한 조명이 철창으로 넓게 두른 공간을 비춘다.

언뜻 테니스장을 연상시킨다.

회색빛 바닥이 말랑한 녹색으로 덮인 덕이다.

골대를 설치한다면 당장 축구장으로 쓸 수도 있겠지.


“퇴근해.”

“알겠습니다.”


녹호는 두오가 머리를 숙이고 물러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집을 나설 때까지 지그시.

숨기지 않은 만큼, 시선을 받는 당사자도 눈치챘겠지.


“······.”


하지만 두오는 모르는 척 물러났다.

녹호 역시 그 직후 다시 저택 본관으로 향했다.


“녹호 씨, 이제 저도 퇴근할 수 있겠습니까?”


멀리서 자재를 정리하던 유송도 다가왔다.


“마음대로 해.”

“더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글쎄.”


녹호는 신경도 쓰지 않고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에 숨겨진, 언뜻 봐서는 알아채기 힘든 공간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티 나지 않게 파인 홈을 잡아당기자, 벽 뒤가 열렸다.


어둡고도 기나긴 계단.

주욱 내려가니, 마찬가지로 비슷한 복도가 있었다.

저 끝에는 아주 익숙한 철문이 보인다.

도플갱어를 십수 년간 가둬두었던.


“흠.”

“왜 그러십니까?”


어느새 따라붙은 유송이 물었다.


“별일 아냐. 뭐가 바뀌었나 싶어서 그렇지.”


철문에 걸린 여러 잠금장치.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만 중요한 듯, 대부분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다.

적당히 순서대로 움직이면 됐으니까.


하지만 단 하나, 자물쇠만큼은 달랐다.

두꺼운 고리는 잘라내기도 힘들어 보인다.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전에 잉크를 묻혀두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런데 아직 그대로네.”


녹호는 몸통 부분이 아닌, 고리를 잡고선 확인했다.

그 말대로 자물쇠는 뒷면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지문은 없어.”

“그럼 된 것 아닙니까? 선배님이 의심하지 않는다는 소리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녹호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손에 잉크가 묻지 않게 자물쇠를 열었다.

그렇게 나타난 방은 마지막 떠날 때와 같았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저기 도시락이···.”


유송이 말한 대로였다.

컨베이어벨트 끝자락에 도시락 일곱 개가 쌓여있다.


“평소엔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하셨습니까?”

“밖으로 보냈지. 나가는 컨베이어벨트도 있으니까.”


사람이 지나가기엔 좁은 통로.

저 구멍을 통해 도플갱어는 살아갈 수 있었다.

음식을 받기도 하고, 쓰레기를 내보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지금은 두오에게 의심의 여지를 심어줬을 터였다.

최근 2, 3일 동안은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정황 증거일 뿐이겠지.

그 정도는 한 번에 몰아서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지금이라도 내용물을 처리하고 빈 그릇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냥 버려.”

“예?”

“안 상했으면 가져가든가.”


유송은 도시락을 들고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퇴근 안 해? 재워줘?”

“아, 아닙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숙이면서 빠르게 물러났다.



***


하루가 지났다.

녹호는 홀로 저택을 오가며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 유송과 두오를 포함한 모두가 출근했다.


“일어나 계셨습니까?”

“어.”

“그럼 바로 식사를 준비시키겠습니다.”


녹호는 손을 휙휙 내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평소와 같은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늘상 그랬듯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어슬렁거렸다.


“아, 어제 만든 곳을 써야겠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하자, 옆에 있던 유송이 필요한 것을 되물었다.


“뭘 준비해드리면 되겠습니까?”

“휘발유, 물총, 토치, 용접기, 공구함.”

“알겠습니다. 선배님과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후, 녹호는 본관의 방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곳은 전시라도 하듯, 구하기 힘든 물건이 잔뜩 구비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사냥용 엽총과 활, 도검류 역시 존재했다.


“흠, 분명 그 영화에 활쟁이도 있었지? 적은 못 죽여도 아군은 진짜 잘 잡던데.”


도르래가 주렁주렁 달린 물건.

녹호는 컴파운드 보우라고 불리는 활을 들었다.

이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화살 몇 발과 웬 플라스틱 덩어리도 챙긴다.


“금방 가져왔네.”


밖으로 나오자 녹호와 유송도 시킨 일을 끝낸 참이다.

휘발유, 전자식 물총, 토치, 용접기 등등.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은 도구가 철창 안에 가득했다.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말했을 텐데.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고.”

“도대체 거기서 따라할 게 뭐가···.”


유송이 말끝을 흐렸다.

녹호가 물총 입구를 휘발유에 담그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전동식으로 된 사치품이다 보니, 저렇게도 충전할 수 있었다.


이제 탄창 안에는 연료가 가득 차 있겠지.

방아쇠를 당기면 기름이 주욱 나갈 테고.

그런데 만약 토치를 입구에 댄다면···,


“잠깐···”


화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불길이 뛰쳐나간다.

휘발유가 곧게 쏘아진 터라, 중간까진 레이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이 어린 남자라면 좋아할 만한 광경이다.

아주 멋진 무기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큰일 나십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 말이 유언이 될 수 있습니다!”


유송은 기겁을 하면서 말렸다.

평범한 여자가 평범한 철부지를 대하는 모습이다.

물론, 녹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하기만 했지만.


“아저씨,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겠지?”

“화염방사기를 만들면 됩니까?”

“그래, 이왕이면 리펄서처럼. 왜, 영화에서 손바닥으로 레이저 쏘는 거 있잖아?”


유송이 깨달음과 빡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금속 슈트를 입은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자신과 같이 봤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동시에 녹호는 그 로망에 브레이크를 걸 상식이 없었다.

오직 가속만을 가능케 할 돈만이 썩어날 뿐.


“알겠습니다, 도련님.”

“유송아, 너는 과녁 가져와. 화살도 쏴보게.”

“하아, 알겠습니다.”


유송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녹호는 활을 바닥에 내려놓고 플라스틱 덩어리를 꺼내 들었다.


“내가 이 장난감들을 얼마 만에 가지고 노는 거지?”


두오에게 넌지시 질문한다.

시킨 대로 물총을 만지는 와중에, 곰곰이 생각하며 답한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꽤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

“예. 종류별로 수집할 정도이시니···.”


녹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관심이 있으니 무기류를 모았을 테고, 그만큼 사용도 잦았겠지.

평범한 사람보다야 말이지.


“그렇게 최근이었나?”


하지만 녹호는 오히려 되물었다.


“착각한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자주 썼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두오가 손을 잠시 늦췄다.

그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들면서 대답한다.


“제 기준으로는 제법 자주라고 할 만합니다.”

“흠.”

“대회를 노리시지도 않는데 이 정도라면, 꽤 빈번한 편 아니겠습니까?”


두오와 녹호, 두 사람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표정은 태연했고 몸짓은 자연스러웠다.

누군가 옆에서 본다고 한들, 이상한 분위기라는 생각하지 못할 테지.

하지만 그렇기에 두 눈빛 안에는 의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요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기억이 안 나네.”


수 싸움은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서로가 의심을 품었고, 동시에 확신 없이 물러섰다.

녹호는 곧 활을 내려놓고 플라스틱 덩어리를 꺼냈다.

하지만 아직 용도를 모르는 듯, 이리저리 만져본다.


“칼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날이 바람 소리를 내며 나온다.

커다란 손이 우연히 버튼을 누른 덕에.


“알아.”


오토매틱 나이프.

스위치만 누르면 날붙이가 나오는 물건이다.

녹호는 금세 이해하고선 칼날을 넣었다가 꺼낸다.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오랜만이라 헷갈렸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과녁 들고 왔습니다!”

“그래, 빨리 설치해.”


유송이 뭔가를 바리바리 싸 왔다.

그리고 철창 안으로 들어와 하나씩 바닥에 늘어놓는다.


“너 뭐 하냐?”

“과녁을···”

“바닥에 사과를 왜 두냐고.”


유송은 눈치를 보면서 입을 뗐다.


“높이 뒀다가 화살이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딱히 올려둘 데도 없고···.”


녹호는 그 말에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꼭 혼내려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죄송···.”

“내놔.”

“예?”

“내놓으라고.”


녹호는 유송이 들고 있는 사과를 빼앗았다.

그리고 철창으로 가, 그대로 과육을 찍어 눌렀다.

빨간 껍질에 격자 문양이 생기며 단단히도 박힌다.


“됐네.”


과녁이 제대로 벽에 박혔다.

이제 다시 돌아가 활을 겨눈다.

사나운 얼굴에는 진지함이 서렸고, 가벼운 화살은 곧 사과를 주시한다.

팽팽히 당겨진 시위, 이내 줄 튕기는 소리가 퉁 하고 울려 퍼진다.


쐐애애액, 콰득!


초심자의 행운일까?

화살은 사과에 명중했다.

다만, 깔끔하게 꿰뚫지는 못하고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어쩌면 뒤에 있던 철창과 부딪히면서 충격이 갔을지도 몰랐다.


“유송아. 하나 더.”

“아, 네.”


녹호는 몇 발 더 물러나며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유송은 사과를 들고 철창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까 보았듯 힘을 줘서 짓눌렀다.


“됐습···, 어?”


하지만 워낙 얕게 박혀서 손을 떼니, 툭 바닥에 떨어진다.


“체중 실어서 제대로 박아넣어.”

“알겠습니다.”


유송은 두 손으로 사과를 잡고서 몸무게와 함께 밀었다.

이번에는 과육이 물을 질질 흘리면서 철창에 파고들었다.


“됐···”


콰득!


하지만 사과는 깨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유송은 그걸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맡기냐.”

“······.”

“뒷정리나 해.”


녹호는 활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다음 두오에게 가서 제작 중인 상황을 확인했다.


작가의말

재벌+어린애 라는 느낌으로 만든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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