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15 11:28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5,628
추천수 :
72
글자수 :
634,353

작성
23.12.25 04:38
조회
726
추천
3
글자
12쪽

1화. 악마가 태어났다

DUMMY

창문 없이 전등만으로 밝혀진 방 안.

구석에 손뼉 하나 크기로 뚫린 컨베이어벨트 통로.

두꺼운 철문과 언뜻 보이는 잠금장치.

언뜻 봐도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장소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중앙에 식탁을 두고서 시체와 마주 앉아있었다.

이상한 건, 그 둘이 똑 닮았다는 사실이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 근육과 지방이 적절히 붙은 몸, 커다란 흉통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누군가 본다면 쌍둥이라고 착각할지도 몰랐다.


“음, 식어도 맛있네.”


피에 젖은 셔츠와 눈앞에 있는 시체.

대부분 비위에 거슬릴 환경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했다.

사나운 인상으로 스테이크를 씹는 모습이, 언뜻 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광경을 한 여자가 바라보았다.

모델이라도 되는 듯, 늘씬한 굴곡이 잘 드러나는 바지정장 차림이다.

이마를 앞머리로 얇게 가리고 다른 머리카락은 질끈 묶었다.

흔히 시스루뱅, 포니테일이라고 부르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청순하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균형 잡힌 외모는, 어딜 가나 인기 있을 것만 같았다.


“···쌍둥이 형제가 있으셨습니까?”


그런 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두세 걸음 뒷걸음질을 친 것도 모자라, 당장이라도 뒤돌아 달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

시체와 핏자국을 봤으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아, 너 알아. ‘김유송’ 맞지?”


남자는 뒤늦게 여자, 김유송을 아는 체했다.


“네? 당연히···.”

“부모님은 없고 병 걸린 남동생만 하나 있어. 그래서 매달 돈이 많이 들고, 빚도 꽤 많이 쌓였다지? 여기서 일을 시작한 지는 일주일도 안 됐고 말이야.”


여자, 김유송이 인상을 찌푸렸다.

약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을 이렇게 대뜸 찔러대는 탓이다.


“맞습니다. 그런데 저 시체, 마네킹입니까? 아니면 분장이라든가···.”


하지만 그 사실보다 중요한 건, 지금 상황.

유송은 남자 맞은편에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알잖아? 이름, ‘피녹호’. 해외 주식 투자 귀재였던 아버지를 뒀는데 최근 별세하셨지. 그 덕에 미국 주식에만 5000억이 있다던가? 매달 주식 배당금으로 20억씩은 들어온다지?”


남자가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러자 유송은 떨떠름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알면서 왜 묻냐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을의 입장인 만큼 크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본인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똑같은 사람이···”

“이리 와. 내 허벅지 위에 앉아.”


남자, 피녹호가 단단한 제 다리를 툭툭 두들겼다.


“저기, 그건···.”

“그러려고 고용 당한 거 아냐?”

“······.”

“왜 너를 거금을 쥐여주고 고용했을까? 이름 있는 대학에 나온 것도 아니고, 무슨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밀 엄수 조건이 강하게 붙습니다.”

“그래. 다른 말로 하자면, 무조건 입 닫고 따르라는 뜻이지.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하든지 말이야.”


유송이 주먹을 꽉 쥐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녹호가 시키는 대로 단단한 허벅지 위로 조심히 앉았다.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거의 허공에 둥둥 떠서.


커다란 손은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대뜸 얇은 허리를 감더니, 몸쪽으로 바짝 당겼다.

가녀린 등은 순식간에 탄탄한 가슴과 완전히 밀착됐다.


“저 시체가 마네킹이냐고 물었지?”

“윽···, 예.”

“내가 옛날 얘기를 해줄게.”


녹호가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으적대는 소리가 유송의 머리 뒤에서 울렸다.

꼭 목덜미를 씹어대는 것처럼.


“어떤 가난한 집에서 악마가 태어났어.”


그런 와중에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


한 허름한 집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흔하디흔한, 평범하고 소중한 축복이었다.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가정이다.

아기가 눈도 못 뜨는 신생아일 때는 그랬다.


“꺄아아아악···!”


그러던 어느 날, 화목했던 집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출처는 바로 어머니였다.

맞은편에는 벌거벗은 여자가 꿈틀댔고, 바닥엔 이유식 그릇이 엎어져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애, 애기야?”

“아아아아아앙···!”


벌거벗은 여자가 아기처럼 울었다.

어머니는 다급하게 다가가 그 나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드러난 맨살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괜찮아, 괜찮아.”

“읍, 끄으읍···.”


두 여자는 쌍둥이처럼 똑 닮아 있었다.

행동은 완전히 딴판이지만 말이다.


“여보, 나 왔···.”


그러던 중 남편이 돌아왔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확인하고 잠시 굳어버린다.

하지만 다급히 시선을 돌리며 버럭 소리쳤다.


“뭐야! 쌍둥이 처제가 있던 거야? 그런데 왜 벗고 있어?”

“그게 아니라 애기가···.”


어머니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그때 벌거벗은 여자가 바닥에 쏟아진 이유식을 집어 먹는다.

방금 들어온 남편을 보면서.


꾸드드득!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부드러운 여성의 몸이 점차 부풀어 올랐다.

피부는 짙어지고 또 거칠어진다.

길었던 머리카락은 눈에 띄도록 짧아졌다.

그건 바로 눈앞에 있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어? 어어어어!”

“여보, 저렇게 보여도 우리 아기···”

“아아아아아악···! 괴, 괴물이···! 너네 뭐야! 뭐냐고···!”


손가락질을 하던 남편.

곧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멀리.


“······.”


며칠 동안 집을 비웠던 남편은 녹색 소주병을 들고 들어왔다.

붉어진 얼굴은 똑 닮은 두 여자를 보고서 크게 일그러졌다.


“여보, 왔어요?”

“아, 아바!”


당장 달려오는 한 명과 주저앉아서 어눌하게 말하는 한 명.

누가 누구인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애가 벌써 말을 해요. 특이한 체질이다 보니, 빠르게 크는···”

“너 누구야?”

“네?”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너도 쟤 같은 괴물이야? 아니면 어떤 새끼랑 바람이라도 핀 거야?”

“여보, 그런 게 아니에요.”

“저딴 게 어떻게 내 자식이야! 어떻게!”


소주병을 힘껏 휘둘러오자, 아내는 다급하게 팔을 들어 올렸다.


떵!


영화 속 설탕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진 않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반토막이 날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실제는 더 심각했다.


“아아아아악···!”


아내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흡사 벽돌에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그 손에는 날카로운 유리 흉기가 남았으니까.


“으아아아아아앙···!”

“저 괴물 새끼, 지금 죽여버려야지.”

“안 돼요! 우리 아이예요!”

“놔! 이거 안 놔?!”


남편은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 여자를 찌르려고 했다.

술을 마셨기에 진짜 살인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아내는 다친 팔로 다리를 힘껏 붙들었다.

굵직한 주먹이 얼마나 머리를 내리치든 참고 버티고서.


“이 미친년이, 남편한테!”

“제발···.”

“죽어! 차라리 죽으라고···!”

“으아아아아아앙···!”


울음소리와 고함이 귀 아플 정도로 요란했다.

둔탁한 음 역시 끊임없이 울렸다.

하지만 남자 역시 지치기 시작했다.

곧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다리를 힘껏 휘둘렀다.


“아윽!”

“···이 집에서 살고 싶으면, 내 눈에 절대 띄지 마.”


씩씩대던 남자가 깨진 유리병을 힘껏 집어 던졌다.

벽에는 길고 날카로운 자국이 생겨났다.


“······.”


시간이 흐른다.

아이는 태어난 시간에 비해 빠르게 똑똑해진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고, 금세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숨을 죽였고,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 말을 터득했다.

언제든 어른이 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 조카 사진이야. 앞으로 밥은 그거 보면서 먹자. 알겠지?”


지금은 사진 속 남자아이를 복사한 상태.

그 덕분인지, 겉보기엔 여느 가정과 비슷했다.

겉보기에는 그랬다.


“엄마, 아빠한테 맞았어?”

“아니야. 멀쩡해.”

“으음···.”


아이가 작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시선은 사진이 아니라 제 어머니에게 박힌 채였다.

당부에도 불구하고, 금세 그 모습을 훔치고 만다.

얼룩덜룩한 여인이 되어서.


“너, 엄마가 함부로 변하지 말라고···”

“아파. 엄마는 항상 아파.”


아니, 훔친 건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상처도, 고통도, 그 속사정도 그대로 확인하고 만다.

복사하지 못하는 건, 마음뿐이었다.

그게 아이가 가진 능력이었으니까.


어머니도 이제 더는 화를 내지 못했다.

얼굴은 점점 복잡해지다가 흘러내리듯이 울상을 띠었다.

그리고 자신과 똑 닮은 몸을 끌어안았다.


“엄마? 더 아파?”

“응···.”

“어디가? 어디가 아파?”


아이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이···.”

“마음? 그건 어디야?”


어머니가 코를 훌쩍였다.

그리고 안았던 몸을 떨어뜨리며 뭐라고 대답하기 직전이었다.


쾅!


갑작스레 문이 열렸다.

남편이 웬 여자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다급하게 아이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숨는다.


“엄마?”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걸까?

어머니는 또 다른 자신을 데리고 물러섰다.


“오빠, 방금 그 쌍둥이 뭐야? 마누라랑 처제?”

“신경 쓰지 마. 바퀴벌레 새끼들이니까.”

“흐응, 우리 오빠도 참 나쁘다.”


남편과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다정하게 쑥덕대더니, 곧 거실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마주 보았다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다.

동시에 그저 앉았다고 보기엔 너무나 기울어진 몸이기도 했다.


“애기야, 귀 막자.”

“왜?”

“···들으면 마음이 아파. 그래서 들으면 안 돼.”


어머니는 아이의 손으로 귀를 막은 후, 꼭 껴안았다.

30분 가까이 그렇게 있었다.

그런 나날은 몇 달이나 계속됐다.


“······.”


아이와 어머니는 쥐 죽은 듯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누굴 데려오든 무슨 짓을 하든, 없는 사람인 것처럼 지냈다.


“언젠가는 아빠도 널 인정하실 거야.”

“왜?”

“그래도 가족이니까···”

“아빠는 때리는 사람이잖아?”


아이는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물어보았다.

어떤 악의도 없이 정말 순수하게 묻고 있었다.

물고기가 물을 당연하게 생각하듯, 이 아이는 지금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아빠라는 호칭은 자신과 엄마를 때리는 남자를 부르는 말이었다.


“아니야···, 이건 잘못된 거야···.”

“왜? 그럼 어때야 하는데?”

“원래라면 아빠는 엄마처럼 널 사랑해야 하는데···.”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여전히 맑았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


그때,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아이와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숨으려고 했다.


“애 어디 있어?”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49 흑전사
    작성일
    24.01.19 11:47
    No. 1

    악마가 아니라 복사스킬을 갖고 태어난 신의 능력자군요. 악마는 못된 사람 새끼나 쪽쩨비, 수리부엉이, 유령표범계통이죠. 필요없이 살생을 저지르는 것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4.02.25 15:09
    No. 2

    재밌게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모텔 +1 24.01.26 52 1 12쪽
29 29화. 이상 +1 24.01.25 44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44 1 13쪽
27 27화. 욥 +1 24.01.23 50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47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54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59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60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69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3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3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77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6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89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99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6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03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06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09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28 2 12쪽
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4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58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4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05 2 12쪽
5 5화. 어젯밤 땀 흘린 사이 +1 23.12.25 266 2 12쪽
4 4화. 시체 유기 +3 23.12.25 272 2 12쪽
3 3화. 저항 +2 23.12.25 326 2 12쪽
2 2화. 비뇨기과 +2 23.12.25 427 3 12쪽
» 1화. 악마가 태어났다 +2 23.12.25 727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