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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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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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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8,436

작성
22.05.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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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10쪽

제 13화

DUMMY

태승은 눈물을 닦고 배낭을 향해 큰 절을 했다.


'할머니.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게.'


다시 절을 했다.


'부도탑 안에 계신 선조님들.

할머니를 잘 돌봐주세요.

저도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태승에게는 생전 처음 겪는, 그것도 자기가 먼저 하는 이별이었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고, 머리는 아까부터 터질 것 같았다.


태승의 가슴속에서 감정이 들끓었다.

머릿속 의식세계는 마구 뒤흔들렸다.

의식 속 성벽이 쩍쩍 갈라졌다.


부도탑이 반짝거렸다.


[어린 애가 이별을 경험하니까 속이 터지는 모양이야.

야단났네, 자칫하면 화가 미친 듯 달리고 마가 끼어들겠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큰 경험을 겪으면, 의식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빨리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태승은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니었다.

바로 결단을 내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태승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뛰었다.

눈을 감지 못하게 손가락으로 눈을 벌렸다.


"으아아악!"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휘이잉.


강한 바람이 태승의 귀를 때렸다.

거센 바람에 태승의 몸이 뒤집혀졌다.


태승은 천지가 뒤바뀌는 광경에 눈이 어지럽고, 속이 뒤집어졌다.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태승은 눈을 감지 않았다.


낭떠러지로 떨어진 태승의 눈앞에, 시간이 거꾸로 감기는 것 같은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착각하게끔 건너편 얼음벽에 영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니 영상이 나타난 것 처럼 환상이 보인 것이다.


환상 속의 태승은 조금 전 떨어진 낭떠러지에서 거꾸로, 위로 날아올랐다.


뒷걸음질 쳐서 눈 폭풍을 겪고, 계곡입구에 들어설 때로 되돌아갔다.


그 사이 봤던 귀신들, 호랑이와 늑대까지 전부 역순으로 나타났다.


계곡에 들어오기 전에 계곡까지 걸어왔던 여정이 거꾸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무요성에서의 일상.

흑산에서 뱀을 잡던, 여랑성 빈민가에서 살던 때로 되돌아갔다.


과거의 기억들이 되감겨 얼음벽에 환상으로 그려졌다.


태승은 슬픔과 공포를 순간적으로 잊고 눈앞의 환상에 빠져버렸다.


"우와, 신기하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살아온 삶이 순간적으로 되감겨 보이게 된다고 한다.


물론 미신이지만 이런 현상이 눈앞에 펼쳐지면,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더구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이런 환상이 보인다면, 아무리 수사라도 죽었다 하고 낙담한다.


이번 관문은 그것을 노렸다.


천옥미환진은 과거의 삶이 보이게 만들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떨어지는 사람의 기억 때문이다.

그것을 재료로 천옥미환진은 요족들의 고차원 술법을 써서 수사의 기억을 되돌렸다.


당하는 수사는 자신의 기억이 거꾸로 보여주는 눈앞의 환상에 빠져 속아 넘어간다.


죽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환상에 넘어가서, 죽는다고 생각하면 의식이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심약한 사람은 죽는다고 느끼면 진짜 죽는 경우도 생겼다.


가장 크게 당하는 수사는 살생을 많이 한 수사였다.


자기가 죽인 과거의 다른 수사, 영수, 짐승 들이 살아서 달려들면 기겁하지 않을 수 없다.


뿌리치고 도망가는데 모든 마음과 감정을 소모하여, 결국 말라 죽는 상태까지 간다.


마음이 생사를 초월하여 흔들리지 않는 수사는 이번 관문도 가볍게 통과한다.


죽음을 경험한 의식은 더욱 강해진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진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어린 애는 과거로 돌아가는 현상이 재미있기만 했다.



태승의 눈에 보이는 환상은 점점 과거로 흘러갔다.


거대한 건물이 불에 타다가 불에 타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건물에는 큰 전각과 넓은 정원이 여러 개 있었다.


건물 뒤로 보이는 산은 대단히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저 산은 유명한 백운산인데?"


할머니와 자신이 지나가자 좋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켜주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방 벽에는 비싸 보이는 도자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귀한 금 장난감, 옥 노리개가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굴러다녔다.


시녀들이 줄줄이 좌우에 서서 명령을 기다렸고, 일부 시녀들은 장롱에서 화려한 옷을 꺼내고 있었다.


"옛날에 잘살았다더니, 진짜였네.

할머니는 저 때만 해도 엄청 젊었어."


유달리 자주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젊고 어여쁜 여인.


할머니와 많이 닮은 여인은 자신을 끌어안고 물고 빠느라 바빴다.

감이 딱 왔다.


"어머니?"


바싹 다가와 자신을 어르는 젊은 사내도 자주 보였다.

자신과 절반 정도 닮았다.


"아버지인가 보다.

그리고 뒤에서 웃고 있는, 아버지 닮은 청년이 숙부인가?"


태승 자신도 기억 못하는 부모의 얼굴을 환상진이 기억 속에 저장된 것을 되살려 보여준 것이었다.


부모 얼굴을 알게 된 태승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이전,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자 태승의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억이 끊어지고, 의식은 깜깜해졌다. 태승은 기절했다.


떨어지기 시작해서 기절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숨을 세 번 쉴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낭떠러지 길이는 짧았다.



태승의 몸이 떨어지다가 속도를 늦추었다.

낭떠러지 아래에 푹신한 구름 같은 안개가 태승을 떠받쳤다.


천년동안 천옥미환진 속을 떠돌던 안개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유난히 낮은 낭떠러지 아래에 모였다.


모인 안개 위에 안개가 또 모이고 모여, 낭떠러지 아래는 안개의 호수처럼 되어버렸다.


그 위에 안개가 중첩되고 농축되어 안개는 이불 백 채가 쌓인 것처럼 두터워졌다.


떨어지던 힘 때문에 태승의 몸은 안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를 안개 이불이 에워쌌다.


눌려서 농축된 안개는 탈출구를 원했다. 빈 공간을 찾다가 태승의 몸속을 발견한 안개는 코를 통해 태승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태승의 속은 금세 안개로 가득 찼다. 그래도 안개는 계속 파고들었다.

태승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부도탑이 깜빡거렸다.


[어머, 왜 저러지?]


[수련곡 제자들이 안개를 수시로 걷어내야 하는데, 천년동안 놔뒀으니 안개가 모인거야.

큰일 났다. 저러다 몸속에서 터지면 죽어.]


[들어온 안개는 한수결을 운용해서 소화해야 하는데, 기절해 있으니 어쩌지.]



안개 호수 바닥.


층층의 안개가 햇빛의 절반을 막아 사방이 흐릿했다.

밑바닥에는 농축된 안개가 액체처럼 흘러 다녔다.


그리고 호수 밑바닥 중앙에는 수박 크기의 안개 구슬 하나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천년 동안 압축된 안개가 응집되어 안개 구슬이 생겼다.


그리고 계속 주입되는 안개를 받아들이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성(靈性 ; 영적인 본성)이 생겼다.


영성을 통해 구슬은 안개 호수속의 모든 안개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다.


지능도 생겨나, 호수 밖의 안개도 끌어당겨 구슬 안으로 흡수했다가 내 보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여 구슬은 호수 밖의 안개에 섞여 있던 것을 섭취하고, 호수 밖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태승이 떨어지면서 충격파와 압력이 발생했다.


호수 바닥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안개 구슬이 압력의 변화를 느꼈다.


구슬에서 가느다란 촉수 두 가닥이 밖으로 나왔다. 하나는 흑색, 하나는 백색이었다.


안개 구슬은 촉수의 힘으로 밑바닥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승이 있는 방향으로 물고기처럼 촉수를 흔들며 다가갔다.


부도탑 속의 그림자가 화들짝 놀랐다.


[저건 또 뭐야? 영핵 같은데.]


[영핵 맞아. 그런데 엄청 커.]


[영핵은 보통 영수의 몸속에서 생기잖아.]


[영기(영적인 기운)가 많은 자연 속에서 천지의 기운에 의해 생기는 것은 영핵부터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주위 것을 잡아먹고 몸이 생기는 거지.


심상치 않아. 무조건 먹으려는 식탐이 느껴져.

청설호! 빨리 가서 애를 구해.]


부도탑의 일층일면에서 튀어나온 청설호.


번개처럼 빠르게 안개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 태승의 몸 앞을 막아섰다.


안개 구슬을 노려보며 청설호는 이빨을 드러냈다.


다가오던 안개 구슬이 멈춰 섰다.


꼬록.


구슬 표면에 동그란 흑점이 생겼다.


구슬이 외눈박이가 되었다.


구슬과 청설호는 서로 노려보며,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했다.


안개 구슬이 먼저 움직였다.


아무래도 안개 속은 자기 영역이라 자신 있었다.


촉수 두 가닥이 청설호를 향했다.


그런데 청설호에 다가오던 촉수가 갑자기 서로 엉켰다.

직진하려는 흑색 촉수를 백색 촉수가 방해하는 모양새였다.

백색 촉수는 청설호를 아는 눈치였다.


[청설호. 이 틈에 빨리 데리고 나와.

그 안에서 싸우면 네가 훨씬 불리해.

싸우더라도 밖에서 눈 폭풍으로 싸워.]


[이상해. 안개가 천 년 동안 누적된다 하더라도 저런 영핵이 생길 리 없는데.]


청설호가 태승의 옷을 물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개 구슬이 힘을 발휘했다.


호수 속의 안개가 소용돌이치면서 안개가 엄청나게 압축되었다.


청설호의 진행 방향에 안개 벽이 생겼다.


꽈륵.


구슬 절반이 시꺼멓게 변했다. 입이 생긴 것이다.

안개 구슬이 청설호의 뒤에서 달려들었다.


청설호는 태승을 놓고 몸을 돌렸다.

이빨을 드러내고 싸울 준비를 했다.


두 영수 사이에 흉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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